“......그렇게 살지 말아요.”


“......네?”


“눈가에 그렇게 퍼렇게 멍들이는 사람이랑 살지 말라구요.”


“이, 이건 어제 넘어져서.......”


“여기 방음 잘 안 되는 거 알잖아요.”


“......그럼 어떡해요.”



저 사람이 나 버리면 난 정말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는데. 내가 어떡해요. 울음 섞인 목소리에 카이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어디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게 고운 얼굴에 퍼렇다 못해 보랏빛이 섞인 멍이 들었다. 넉넉한 티셔츠 아래로 아주 약간 부른 배가 보였다. 워낙에 마른 사람이라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그런 굴곡이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 섰고, 카이는 그를 뒤로 한 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닷새 뒤, 카이는 몇 번이나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휴일 아침부터 누구야, 하고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현관문을 연 카이는 그대로 굳었다. 문 앞에는 노랗게 변한 눈가의 멍을 단 ‘윗집 남자’가 서 있었다. 노랗게 변한 멍 대신 이번에는 입가가 찢어졌다. 정신없이 뛰어내려왔는지 슬리퍼를 끌고 있었는데, 한 쪽은 제 것 같았지만 다른 한 쪽은 너무 커 발등이 쓸려 있었다.



“나, 나 좀 숨겨줄 수 있어요?”


“무슨.......”


“제발.”



그 사람이 나 죽일 거예요. 제발. 제발요. 이 동네엔 아는 사람도 한 명도 없어서. 말끝이 울음에 먹어들었다. 카이는 먼 복도에서 울리는 발소리를 들었다. 급하게 팔을 잡아 현관 안으로 끌어당긴 후 그는 문을 잠갔다. 흘러내리듯 현관에 주저앉은 남자는 이미 울고 있었다. 안으로 마저 들이고 찬찬히 얼굴을 훑어보자 입가만 찢긴 것이 아니었다. 흉하게 늘어난 티셔츠 안, 목 언저리에는 흐린 손자국이 남아 벌겋게 변하고 있었다.



“설마 목까지 조른 거예요?”



혼잣몸도 아니잖아요, 당신. 그 말에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번쩍 든 남자는 본능적으로 배를 감쌌다가 김이 빠지듯 웃었다. 우는 얼굴에 번진 미소는 가련했다. 그래서 도망쳤어요.



“......나만 죽이는 게 아니라 내 애도 죽여서.”



닷새 사이 살이 더 내렸는지 둥그렇던 어깨가 가냘프게 말라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많이 부르지는 않았어도 제법 윤곽이 보이던 배가 여위었다. 희고 작은, 여기저기 빨간 상처가 남은 손이 부르르 떨며 제 배 위를 쓸었다.



“닷새 전에 쏟아버렸어요.”


“......네?”


“맞다가, 몸을 잘못 틀었는지 그 사람 발이 날 걷어차더라구요.”


“설마.”


“너무 아파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내 주위가 피바다인거 있죠.”



남자는 서글프게 웃었다. 이제 그 사람 곁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어서, 그래서 도망쳤어요. 그래도 애아빠인데, 아빠 없는 애로 키우기 싫어서 꾸역꾸역 붙어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서. 카이는 말을 잃고 침묵했다. 남자는 그 침묵이 불편했는지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정말 실례 많았어요. 귀찮으셨을 텐데.......”


“나가지 말아요.”


“하지만.......”


“나갔다가 그 사람한테 맞아 죽을지도 몰라. 여기 있어요.”



눈매가 길고 선한 눈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고 보니 갸름한 오른쪽 눈가에 길게 찢어진 흉이 있었다. 이것도, 그 사람이 그런 거예요? 그는 말이 없었다. 다만 카이가 그쪽으로 손을 들어 올리자 흠칫 어깨를 떨었을 뿐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카이는 물었다.



“나는 왕카이. 왕카이라고 해요.”


“......후거.”


“예쁜 이름이네요.”













새 아파트에 이사 들어온 첫날 엘리베이터에서 후거랑 마주친 카이가 첫눈에 후거한테 반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알고보니 윗집 남자고 결혼한 알파가 있는 걸 알았겠지.

그래서 그냥저냥 마음 접으면서 왔다갔다 마주칠때마다 인사만 하는 사이인데 자꾸 후거 얼굴이나 드러난 부분에서 멍이랑 상처 발견하는 카이 보고싶다.

이 아파트가 지은지 얼마 안 됐긴 한데 자재 빼먹는게 오졌어서 방음이 더럽게 안 됐으면. 그래서 카이가 모처럼 집에 일찍 돌아온 날 윗집 소리를 다 들었는데

막 뭐 부서지고 깨지고 우는소리 나고 부부싸움 할 때 오메가가 알파한테 두들겨 맞는 소리가 나는거야. 저 집 사정이겠거니 하고 무시하려는데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나.

그 다음날부터 유심히 윗집 소리를 들어보는데,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씨발년이니 개같은년이니 하면서 두드려 패는 소리가 나. 그리고 그런 날이면 꼭 후거 얼굴에 상처가 늘어 있겠지. 안녕하세요, 하면 꼭 울 것 같은 얼굴로 안녕하세요, 하고 마주 웃어주는데 가슴 안쪽이 사르르 아팠으면 좋겠다.


두들겨 맞지 말고 살라는 말 한 그날 밤에 후거는 맞다가 아이도 유산하고 만신창이가 되겠지. 후거는 엄마도 아빠도 없이 혼자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나이가 다 찰 때까지 입양이 안 돼서, 쓰레기같은 알파한테 팔려가듯 결혼한거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본인이 엄마도 아빠도 없는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아니까 아이 생긴거 알고는 도망칠 엄두도 못 냈을듯. 물론 뭐 그 전에도 보육원에서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남자 오메가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어. 인성은 쓰레기여도 돈은 그럭저럭 잘 버는 알파라서 보육원에서 18살짜리 예쁜 후거 보육원에 돈 기부하고 사오듯 결혼한거였으면 ㅇㅇ


아무튼 그래서 후거는 도망쳐서 자기한테 유일하게 잘해줬던 카이네 집으로 도망오는데 그 순간에 생각난 게 카이뿐이어서 그랬겠지....... 쓰레기였던 전 남편한테 시달리면서도 자기를 진짜로 아껴주는 사람이랑 같이 살면서 점점 꽃처럼 피는 후거 보고싶다. 나중에 그 쓰레기는 직장에서도 잘리고 알콜중독자가 되어서 후거 찾아오는데 카이가 좀 존나 잘나가서 검사거나 아니면 나이보다 승진 잘 한 경찰이었으면 좋겠다. 공권력 짱짱맨. 그래서 접근금지명령 내리고 폭력전과 이런거 다 씌워서 이혼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그리고 후조개 해감해서 카이후거 잘먹고 잘살았으면 좋겠다 햎삐엔딩이 체고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