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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화왕카이 지리멸렬하게 지지고 볶는 연애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곽건화는 왕카이의 어머니를 탓해본다. 

건화가 여섯 살 때 이사 갔던 동네는 높지 않은 고만고만한 주택들이 야트막한 울타리를 사이에 끼고 늘어져 있는 주택단지였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이 길게 수소문을 하지 않고 건화를 안고 갔던 유치원은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경제적인 이유로 간택된 곳이었다. 초록색 아치형의 철문을 열면 제법 넓은 잔디마당이 있었다. 이미 ‘나이답지 않게,’ ‘또래 같지 않게’ 라는 말을 가장 빈번한 수식어로 갖고 있었던 어린이 건화는 그 잔디마당의 구석에서 빨간 플라스틱 삽으로 흙을 퍼 담고 있던 왕카이를 처음 만났다. 카이의 머리에는 맞춘 듯이 새빨간 색에 노란색 땡땡이가 큼지막한 리본이 달려있었다. 조그만한 양동이에 물을 담아 야무지게 물까지 뿌려가며 흙장난에 열중인 모습이었다. 아유, 또 옷을 갈아입혀야겠네. 건화의 어머니와 건화를 마중 나왔던 여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왕카이를 불렀다. 쪼르르 달려온 카이의 흙 묻은 원피스를 털어주며 선생님은 그렇게 건화와 카이를 소개시켰던 것이다. 오늘부터 햇님반에 함께 할 친구에요. 안녕, 해야지.

 ‘안녕.’

흙이 잔뜩 묻은 제 양손을 맞잡고 조물락거리던 왕카이의 원피스 역시 머리에 달고 있는 리본과 맞춘 듯한 빨간 색이었다. 새카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반질반질하게 윤을 내는 것이 할머니 댁에 가면 저를 향해 달려오며 꼬리 흔들던 강아지의 것 같았다. 건화는 같이 안녕. 말을 했고, 그 짧은 말에 잘 익은 홍시처럼 통통한 아이의 두 볼이 발갛게 물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다리로 얼굴을 파묻고는 ‘안녕.’ 이미 한 인사를 다시 건네는 수줍은 모습에 선생님은 웃음을 터뜨리고 카이를 안아 들고 교실로 갔었다.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건화는 장난감통을 끌어안고 저를 힐끔이던 왕카이의 노란색 원피스도 기억하고 있다. 갈아입은 새 옷을 입고 우물쭈물하며 제 앞으로 다가와 같이 놀자. 하고 손을 잡아끌던 그 병아리색의 원피스를. 대체 왜 왕카이의 어머니는 6살 먹은 사내애에게 하얀 프릴이 아기자기했던 원피스를 입혀야 했단 말인가?! 물론 건화는 고교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왕카이의 집에서 밤참을 얻어먹으며 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고, 우리 카이가 좋아했거든. 그리고 예쁘잖아. 예뻤잖아? 너도 예쁘다고 생각했었잖아? 라고 카이 어머니의 질풍같은 질문 공세를 받았다. 건화가 그렇다고 인정할 때 까지 젖은 국자가 날아왔었다. 



 건화가 카이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어린이집에서 연말 행사로 준비하고 있는 율동을 위해 연습을 시작하던 날이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건화는 왕카이의 작고 통통한 손을 잡고 유치원을 누비며 건화는 크면 카이랑 결혼할 거에여! 라고 외쳤던 것이다. 사실 아직도 건화는 자기를 먼저 꼬신 것은 왕카이였다고 생각한다. 나란히 앉은 옆에서 손짓하기에 귀를 갖다 댔더니 간식으로 먹은 요구르트의 달큼한 향이 훅 끼치는 발간 입술을 벌려 ‘사실 있잖아.’ 커다란 비밀을 말하는 듯이 조금 망설이다가 ‘나보다 예쁜 애는 처음 봤어.’ 수줍게 말하는 모습이 얼마나 깜찍했던가! 건화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비둘기 유치원 햇님반에서 단연 가장 예쁜 어린이는 왕카이였다. 커다란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듯이 한숨을 포옥 내쉬는 왕카이의 손을 붙잡고 아니야, 카이야, 니, 니가 더 예뻐! 라고 말을 해 줄 때 빵떡같은 뺨을 사과같이 붉히는 모습은 또 얼마나 예뻤던지! 그러니 신랑신부 율동연습을 하기 위해 둘둘씩 짝을 지었을 때, 신부 옷이 아닌 신랑 옷을 입은 카이의 모습과 더불어 짝궁이 될 수 없다는 마른하늘의 날벼락같은 말을 들었을 때 으아앙 울어버린 것은 결코 건화의 탓이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건화의 첫사랑은 일곱 살이 되기 전에 끝이 났었고, 까까머리 중학시절을 거쳐 대학 입학을 앞둔 열아홉의 겨울까지 첫사랑은 조금 색깔을 달리 한 불알친구라는 단어로 치환되어 아직까지도 지리멸렬한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 나 오늘 형네 집에서 자고 들어갈 거니까 엄마한테 연락 오면 대충 너랑 같이 있다고 해. ]



 대학 입학을 앞두고 카이와 건화의 부모님들은 집에서 제법 먼 거리의 학교에 나란히 입학하게 된 둘을 위해 같이 살 방 두 개 딸린 빌라를 구해주었다. 미리 이사를 한 것이 이미 한 달 전이었다. 건화는 카이가 좋아하는 배추를 많이 넣은 된장국을 끓이던 가스렌지를 신경질적으로 탁 내리쳤다. 고삐 풀린 망아지가 따로 없었다. 독립은 방좋과 같은 말이 아니거늘 발랑 까진 것이, 맨날 외박이다. 


 다시 왕카이의 어머니를 탓해본다.  

 6세 건화의 첫사랑과 실연의 주인공은 모두 왕카이였다. 그날 충격에 빠져 울며 밖으로 뛰어나간 건화의 뒤에서 뒤늦게 울음을 터뜨린 왕카이를 달래준 것이 같은 반의 양삭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온 카이의 어머니가 아니 예쁘잖아! 예쁘잖아요? 그럼 됐지 뭐가 문제냐며 신부꼬까옷을 입혔고 카이는 양삭의 손을 잡고 학예회의 무대에 올랐다. 곽건화 최초의 실연이었다.  

 


 [ 양심이 좀 있어봐라. ]

 [ 양심이 떡 치게 해주니? ] 

 [ ...... ] 



 왕방울 만한 리본을 머리에 달고 배시시 수줍게 웃던 천사같은 아가는 어디 가고 지갑을 열면 지폐보다 콘돔이 더 많은 발랑 까진 소년만 남았다. 소년은 자라 자유연애의 성인으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예쁜 어린이는 예쁜 청소년이 되어 쉬지 않고 연애를 이어갔다. 요즘 만나는 것은 카이의 수험생활 내내 과외를 해 주던 대학생 형이었다. 카이와 같이 그룹과외를 받아, 요망한 것이 과외 날만 되면 허벅다리를 다 드러내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바닥에 엎드려 있던 것을 보아왔던 건화로서는 명문대생에 소탈하기까지 한 그 작자가 애초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건화는 입맛을 쩍 다시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카이의 연애사에 대해 말하자면 건화는 언제나 뭐라 말 할 자격이 없는 제 3자가 된다.


 유치원 학예회의 연습이 끝나고, 행사가 끝나고 새해가 되기까지 카이는 그렇게 건화가 뛰어나간 이후로 인사 한 번 받아준 적이 없었다. 쭈뼛거리며 당시 카이가 제일 좋아하던 우유사탕을 들고 선 건화의 앞에서 새초롬히 발치만 내려다보았더랬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 꼭 집어서 말 할 수 없었지만, 건화는 제가 카이를 상처 냈다는 걸 어린 마음에도 알았다. 앙 다문 입술만 오물거리던 카이는 고개를 숙였다. 밉다 말하고 눈을 흘기는 것보다 고개를 숙이는 모양이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 뭐라도 계속 말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니가 여자아이였으면 너랑 꼭 결혼했을 거야.’

 그 말에 고개를 든 카이의 뺨으로 도르륵,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이 얼마나 커다래 보였던지, 건화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덜컥 떨어지는 것 같은 심장을 느꼈다. 카이는 고개를 들어 까맣고 순한 눈망울을 끔뻑거리다 물었다.

 ‘그래도 내가 제일 예쁘지?’

 ‘...응.’

 잠시 망설이던 카이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내 생명줄인듯 꼭 쥐고 있던 토끼그림이 그려진 우유사탕을 내려다보고 ‘나 껍질 까줘.’ 말했을 때, 건화는 제가 용서받았음을 알았다. 땀이 밴 손 안에 한참동안 있었던 녹은 사탕의 껍질을 벗겨 알맹이만 입 안으로 넣어주고서 건화는 약속했다. 앞으로 평생 카이의 편이 되어주기로.



 [ 형네 부모님 집으로 돌아오신대 ]

 [ 그래서 ]

 [ 나는 꼭 오늘 해야겠어 ]

 [ 그래서 ]

 [ 너 오늘 하루 나가있을 데 없어? ]



 건화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씨발 그럼 나한테 어쩌라고!”

 “너 지금 나한테 욕 한거야??”



 쨍, 전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카이의 목소리에 별 수 없이 지갑을 챙겨서 운동화를 구겨신으며 건화는 인상을 썼다. 현관문을 열자 쨍한 겨울추위가 코 끝을 맵게 했다. 불알 친구 떡 치라고 집을 비워주는 꼴이라니. 집 앞에 있는 피시방으로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건화는 파카주머니 속에서 토끼그림이 귀여운 우유사탕을 꺼내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날씨 한번 염병하게 추웠다.  




 건화가 운동화를 끌고 나간 피시방은 건화와 카이의 중등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정확하게는 그 동창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늘 카운터를 보고 있는 동창은 문을 딸랑이며 들어오는 건화를 일별하고 손을 한 번 휘적이고는 먹고 있던 컵라면으로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후루룩, 개운하게 면발을 들이키는 모습을 보며 건화를 턱을 긁고 아무 자리에나 주저앉았다. 까만 화면을 부팅하고 로그인을 하고서는 멍하게 생각했다. 

 몇 시 쯤이면 끝날까...? 

 만만한 데가 피시방이라서 오긴 했는데 건화는 원래 현대문명 선진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마트폰은 그냥 액정이 커다란 전화기였고 SNS 같은 건 먼나라 별나라 얘기였다. 포털사이트의 스포츠 기사를 한 번씩 다 클릭했는데도 한 시간밖에 지나있지 않았다.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아이스커피잔을 보다가 한 잔 더 돌라고 하면 저 쫌팽이 주인 아들놈이 공짜로 커피를 줄까 말까 생각해본다. 피시방에서 한 잔씩 서비스로 나오는 냉커피는 더위사냥을 녹인 맛이 났다. 건화가 알고 있는 세상 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멍 때린 시간이 얼마였는지 불쑥 모니터 앞에 기다란 그림자가 지더니 모든 일의 원흉 왕카이가 얼굴을 디밀었다. 집에서 갈아입었는지 트위티가 그려진 하얀 후드티를 입고 양 손을 구겨넣은 채로 건화를 내려다보았다. 날도 추운데 티셔츠 위에 후드 하나 덜렁 뒤집어 쓰고 온 어깨가 조금 움츠려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건화가 이제는 얼음도 다 녹은 아이스커피의 남은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미간을 한 번 구깃 했다. 


 "야, 가자."


 건화는 입술을 비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 매낀한 거 봐라 저거, 개운하냐?? 시원하냐??? 먼저 돌아 나가기 시작하는 왕카이의 뒷통수를 보고 이죽였다가 카이가 뒤를 돌아 시선을 마주치자 눈에 힘을 더 주어본다. 왜 뭐 왜! 


 "가는 길에 내가 캔 맥주 사줄게."


 집에서 쫓아내서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카이가 피시방 문을 닫을 때에 팔랑, 손을 한 번 흔들어준 것뿐인데 피시방 집 아들내미는 열렬하게 손바닥을 흔들며 인사 하고 덩치에 안 맞게 꽃받침을 해 가며 히죽히죽 웃더니 요금도 안 받았다. 저자식은 맨날 차별이다. 건화 혼자 올 때는 컵라면 하나 서비스가 없고, 백 원 단위로 요금도 다 받는 놈이. 건화는 피시방을 빠져나오며 몸을 돌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곧이어 카운터에서는 쌍으로 치켜든 손가락이 올라왔다. 

 피시방 아들내미가 이렇게 카이라면 껌뻑 죽는 것은 왕카이가 녀석의 첫사랑이기 때문이다. 건화와 카이가 나란히 진학하였던 곳은 역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남자 중학교였는데, 비둘기 유치원의 예쁜 어린이 왕카이는 금릉 중학교의 예쁜 남학생이 되어 3년 내 고백받은 횟수만 기십이오 신발장에 들어가 있던 러브레터만 기백이라. 돌이켜 회상하기를 금릉 중학교의 아이돌이 아주 따로 없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쉬는 시간에 건화가 카이의 반으로 놀러가기 전까지는 말 한 마디 하지를 않았었다. 때 이르게 찾아온 변성기 역시 한 몫 했다. 높고 가냘프던 카이의 목소리가 쇳소리가 나는 듯 갈라지고 낮아져, 그 때 쯤에는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어도 여자애라고 오해를 받는 일도 없어졌다. 곽건화는 왕카이와 햇님반을 시작으로 초-중-고교를 모두 같이 붙어다니는 바람에 부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불쌍하다 눈물을 글썽이던 카이가 오진 어린이와 침묵 시위를 일삼던 청소년, 되바라진 고급식을 거쳐 꼬리를 여섯 개 쯤 숨겨놓은 채 청순가련을 떠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역사를 지켜봐왔다. 그 중에서도 중학시절은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사실은 카이뿐만 아니라 건화에게도, 또래 남자 애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였다고 해야 공평하다. 


 "야 근데 빨리 왔다? 탁 하니 찍 하디?"

 

 슈퍼로 향하는 골목길에서 붙인 말에 카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흘기는 걸 모르는 척 했다. 나이도 많은 기생 오래비같이 생긴 놈팽이가 뭐가 좋다고,로 시작하는 구시렁을 왕카이는 묵묵히 듣다가 '너 지금 우리 형 디스하는 거야?! 묻더니 뾰족한 어깨로 곽건화의 등짝을 찍었다. 맨 살에 맞으면 제법 매서운 공격인데 곽건화가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챙겨입은 덕분에 별 소득도 없었다. 코를 한번 훌쩍이고는 '누가 누굴 더러 기생 오래비처럼 생매겼다고 하는지 모르겠네.'하는 왕카이의 말에 왁왁대며 카이가 입고 있는 후드티의 후드를 머리위로 뒤집어 씌운 곽건화는 어영부영 몸싸움의 끝에 제 오리털 파카를 벗어 왕카이에게 입히고 지퍼까지 길게 올려주었다. 왕카이는 입혀주는대로 얌전하게 있다가 흥, 한번 턱을 들어 올렸다 내리는 게 전부였다. 예전부터 손을 탔다. 건화는 티쪼가리를 입고 슈퍼문을 얼면서 제 신세를 한탄했다. 어쩌다 내가. 


 카이와 건화가 진학한 금릉 중학교에는 이렇다할 큰 사건 사고가 없었지만, 사건사고가 있었다 하면 그것은 왕카이와 관련된 일이었다. 왕카이와 관련된 일이면 곧 곽건화와 관련된 일이기도 했다. 중학 3학년 초반에 건화는 같은 반 급우를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팼다가 며칠 정학을 먹은 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애어른'이 별명이었던 건화는 이미 노인 같은 사상과 말투로 굴곡 없는 학창시절을 영위하던 중이었다. 시선을 강제로 잡아끄는 그 화려한 이목구비로도 쭉 비교적 얌전하게 살아왔으므로 평범하다 할 급우간의 다툼도 나름의 파장이 있는 일이었다. 그 때 왕카이가 이미 금릉 중학에서 양 손가락이 넘어가는 숫자의 사람들과 스캔들을 뿌린 뒤였다. 건화가 지금까지도 가장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학 2학년 때 야구부였던 3학년 선배와 사귀었던 것인데, 앞머리가 이마로 늘어지지 않도록 헤어제품을 발라 넘기기 시작한 카이가 장난을 치다 손가락이 닿기만 해도 파드득 지랄견이 되어 짖어대던 주제에 그 선배놈이 머리를 쓰다듬으면 뺨을 붉히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꼬라지가 아주 기도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때 건화가 밟아놓았던 급우는 그 야구부를 하던 놈이었다. 이미 당시의 3학년 선배는 졸업을 했었고, 졸업과 동시에 헤어졌으므로 야구부와도 더 이상 연이 없었건만 카이와 사귀었던 1년 전을 기억하고 있는 놈들이 멋대로 혓바닥 위에서 카이를 굴렸던 것이 화를 불렀다. 건화는 그냥 얌전하게 저의 반에 앉아 다음 시간 교과서를 꺼내고 있었던 것 밖에는 죄가 없었다. '야, 안 들리는 데 가서 짖어.' 하고 친절히 말 해 주었는데도 들어 처먹질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전교에 곽건화가 왕카이 엄마인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 애들 잘못이다. '아주 야구부 선배들 좆을 다 따먹고 다녔다드만' 하는 말 까지도 참았는데 '미친년, 좆콜렉터냐?' 라는 말은 참아줄 수가 없었다. 우선 첫째로 카이는 여자가 아니고 남자니까 미친놈이고, 좆콜렉터라니 그 무슨 되도 않는 창조국어더냐, 말을 해 주려고 했는데 열여섯은 말 보다 주먹이 빨랐던 것도 아무튼 건화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당시 고교진학 후에는 야구에 전념하는게 좋겠다 했다던 그 선배가 먼저 이별을 고하는 통에 일주일이 넘게 눈이 빨갛게 짓무르도록 왕카이가 펑펑 울고 다녔던 것들은 아주 미약한 동기에 불과했다. 건화는 이주가 넘게 '건화야, 나 안 예뻐?' 하는 말에 꼬박꼬박 금릉 중학교와 금릉 시에서 가장 예쁜 것은 왕카이라고 대답을 해줘야 했단 말이다. 하여튼 맹세코 야구부에 개인적인 악감정이라고는 없었다. 실컷 때리고 정학까지 받고는 후련하다는 얼굴로 집에 돌아온 곽건화의 앞에서 왕카이는 팔짱을 끼고는 따져 물었었다. 

'왜 그랬어?'

우물쭈물 아이고 어깨가 쑤시네, 말을 하는 곽건화의 등짝을 내리치는 왕카이의 앞에서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줄줄 들은 말을 실토하고서는 눈치를 보는 것은 왜 건화의 몫이어야 했던가.

그러나 상세하게 전말을 듣고서 '..내가 참을걸.. 너무 심했지? 그렇게까지 때릴 건...' 이라고 살살 눈치를 보는 건화의 앞에서 왕카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던 것이다.

 '그럼 그걸 안 조져놓으려고 그랬단 말이야?!'   

아주 잘했다는 말과 함께 수훈 훈장처럼 미주알고주알 어머니에게 일러바친 왕카이의 덕분으로 건화는 정학기간 내내 소꼬리 곰탕 장어꼬리탕 온갖 종류의 꼬리 보양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건화에게 후드려 맞았던 아이들은 졸업까지 남은 1년 내내 왕카이를 피해서 화장실을 다녀야 했다. 마주칠 때마다 카이가 세모눈을 뜨고 위에서 아래로 쭈욱 훑고는 작달만한 그네들의 고추를 보고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흐응, 저걸 어디다 쓸지 모르겠네.' 라고 좆감별을 해댔기 때문이었다.

 

 "여기 계산이요."


 건화는 카이의 눈치를 보며 맥주캔 뒤로 토끼우유사탕을 밀어 넣었다. 못 본 척 해주고 봉지에 쓸어 담는 것이 오늘의 카이는 좀 관대한 기분인 모양이었다. 그러니 피시방을 나오면서 손도 흔들어 주었나보다. 피시방 아들내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카이는 그 아들내미를 싫어한다. 정학에 이어 아주 짜아아아앏게 지나갔던 건화의 불량청소년 시기에 피시방 아들내미가 건화와 함께 오토바이를 탔었기 때문이다.     



 뭔가 특별히 달라졌을 것도 없는데 건화는 괜히 머쓱하게 팔을 휘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킁킁 코를 벌름대보지만 밤꽃나무 향기 같은 건 나지 않는다. 카이의 향수 냄새만 났다. 창문을 연다 환기를 해야 한다 우리 집은 모텔이 아니다 구시렁거리는 뒤에서 카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식탁 위로 맥주캔을 쏟았다. 정신을 차리니 건화는 앞치마를 매고 카이가 먹고 싶다고 하는 토마토 달걀 볶음을 안주로 만들고 있었다. ..역시 꼬리가 일곱 개야. 


 "너 부자우가 너 좋아했던 거 알았냐?"

 "그걸 어떻게 몰라?"

 "......"

 "그리고 세상에 날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턱을 치켜들고 입을 삐죽이며 도도하게 말하는 모양새가 오리새끼 같아서 턱 밑을 간질였더니 이빨을 앙 드러내며 손가락을 무는 시늉을 했다. 불쌍한 피시방 아들내미. 건화가 달달하게 익힌 토마토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 앞으로 가져다대자 새처럼 조금만 입을 벌려서는 받아먹고 오물오물 씹었다. 맥주 몇 캔을 먹은 것뿐인데 취하는 것 같다. 술이라면 건화보다 카이가 훨씬 잘 했다. 몇 잔만 받아먹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저와는 반대로 정말로 취할 때까지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았다. 입을 째깐하게 벌리는 통에 토마토를 더 잘게 찢으려는데 술에 취한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고 자꾸 헛손질이었다. 건화는 맨 처음 부모님이 집을 비우셨을 때 몰래 맥주캔 하나를 비장하게 꺼내 놓고 번갈아 맛을 보던 소학교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으으 써. 이걸 뭔 맛으로 먹지. 라고 말해놓고 이제는 얼굴 색 하나 바꾸지 않고 물처럼 꿀꺽꿀꺽 맥주를 삼킨다. 겨우 잘게 쪼갠 토마토를 집어 들고 올리는데 가물거리는 시선 통에 제대로 입 앞으로 갖다 대지 못했는지 큭큭 웃으면서 안주를 받아먹었다. 


 “맛있냐.”

 “응.”


 취기가 돌아 이제는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 되었다. 경험상 좀 있으면 기절할 것이라 느낀 건화가 비척비척 침실로 걸었다. 눈도 못 뜨고 걷다가 문에 부딪힐 뻔한 걸 카이가 구해주었다. 침대에 풀썩 쓰러지는 걸 빤히 구경만 하더니 왕카이가 물었다.


 “건화야.”

 “왜.”

 “나 아직도 예뻐?”

 “예뻐.”

 “.....”

 “예쁘고 헤퍼.”


 건화는 바지춤을 뒤져서 몰래 산 우유사탕을 꺼내 내밀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사탕을 받아가지 않아서 실눈을 떴는데, 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 있는 카이의 얼굴은 그림자로 뒤덮혀 어떤 표정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몇 번 손을 흔들자 지는 이제 단 게 싫다고 짜증을 냈다. 영 못써먹을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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