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초기라 잘 모르겠어요. 근데 가끔 배가 좀 아파요. 아기가 생기면서 아기집 만드느라 배가 아픈 거라고 하더라고요. 전엔 그것도 모르고…. 아. 아. 그렇게 많이 아프진 않아요.”
임신한 명대 친구 후거에게 명루가 꽤 이것저것 물어댔어. 어쩌면 명대에게도 올 수 있는 미래니까. 물론 명루 입장에선 안 왔으면 좋겠는데…. 명대 닮은 귀여운 조카는 또 보고 싶고….
“사실 마시는 것도 완전 생수 아니면 잘 안 마셨는데 그, 어…. 큰형님…. 분이 내려주신 차는 괜찮네요. 감사합니다….”
형이라고 불러야 할지 형님이라고 해야 할지. 큰형님이라고 하니까 삼합회 기분이라 형님분이라고 했는데 이건 또 이상하잖아. 눈치를 살금살금 보다 파란색 바탕에 금색 곡선이 그려진 찻잔 위를 엄지로 만지작댔어. 차를 자주 마시긴 하지만 맛으로 마시진 않고…. 그냥 물 먹는 것처럼 그냥 삼키는 것뿐이라 차 향이 좋다거나 어떻게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차 향에 입덧 안 하니까 다행이지.
“입덧이 심하면 힘들겠네요.”
“저보단 제 남편이 힘들죠. 제가 먹고 싶단 말에 나가서 매번 힘들게 구해오는데 그때 되면 또 다른 게 먹고 싶어져서….”
“한참 어린 부인이 임신했는데 그 정돈 해야지. 그것도 못하고 어떻게 남편이라고 하겠어요.”
남편 이야기에 명대와 고청명으로 감정 이입한 명루는 명대의 입덧에 시큰둥한 반응을 하는 청명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어. 그것도 못하고 어딜 결혼을…!
건화는 잘 해주고 있는데 왜인지 야단맞은 기분이 들어 뾰로통해진 후거는 고개만 여러 번 끄덕였어. 명대랑 놀러 온 건데 명대는 휴대폰 본다고 정신없고 무서운 두 형님은 나만 쳐다보고….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명대와 똑같이 생긴 명대 친구가 명대에게 볼 수 없는 대답을 해주고 있으니 두 형은 신기할 수밖에. 두 형 입장에선 아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동생이긴 하나 이 녀석이 말썽부리는 거, 말 안 듣는 거 생각하면 자다가도 혈압이 올라 눈도 못 뜰 지경이야. 그 상황에 똑같이 생긴 친구가 어색해할망정 묻는 말에 모두 대답을 하다니. 명대였으면 왜 묻는데. 왜 궁금한데. 내가 왜 말해줘야 하는데? 용돈 올려주면 대답해줄게. 하고 또 뒷목 잡을 소리나 했겠지.
“명대 너는 친구 두고 자꾸 휴대폰만 보냐.”
“지금 교수님한테 작업 거는 중이야.”
“…. 휴대폰도 압수했어야 했네.”
“그러기만 해봐. 진짜 콱 창문에서 뛰어내려 버릴 거니까.”
“네가 그럴 자신……. 안 된다. 그건.”
네가 창문에서 뛰어내릴 수나 있냐고 말하려다가 저 녀석 성미 상 진짜 아니다 싶으면 뛰어내리고도 남을 놈이라 말을 하다 말고 안 된다고 했지. 흥. 코웃음 친 명대는 맛없는 차 그만 마시고 방에서 놀자며 후거를 잡아끌었어.
“형이랑 좀 이야기하게 두지.”
“왜 나 없는 동안 얘한테 나 어떠냐고 물어보려고 할 거잖아. 싫거든?”
“아니라곤 말 못하지만 아니….”
“야. 여기서 형들한테 취조 당할래 아니면 올라가서 나랑 놀래?”
“…. 어 저는 위에 올라갈게요.”
머뭇대던 후거가 의자에서 일어나 올라간다고 하자 명루는 실연당한 남자 마냥 괴로운 얼굴을 하며 동생과 후거를 번갈아 쳐다봐.
“케익 곧 가져올 텐데….”
“이따 오면 위에 올려줘.”
“…….”
아까 후거가 전에 누님이 사주셨던 케익이 맛있었단 이야기를 잠깐 했더니 바로 주문하겠다고 했었지. 사실 그거만 아니면 후거도 명대한테 올라가자고 했을 거야. 케익도 사주시는데 이야기하다 말고 올라가는 게 좀 죄송스럽긴 하지만 부담스러운 건 부담스러운 거고. 다행히 명대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척 위로 올라갈 수 있었어.
“형들 진짜 무섭다.”
“별로 안 무서운데. 큰 형은 가끔 무섭긴 한데.”
“아니야, 무서워…. 그래도 네가 제일 무섭긴 하다.”
“하긴 내가 제일 쎄.”
아니 그런 의미 아닌데. 혼자서 자기가 제일 세다고 으스대는 명대를 뒤로하고 명대 방에 올라가자마자 침대 위로 누웠어. 바로 지적당했지만 무시하고 고개만 들어서 명대를 힐끗 봐. 명대는 아직도 휴대폰을 들고 심각한 표정이야.
“왜 그래? 교수님이 답장 안 해줘?”
“아침부터 계속 안 해주는데. 나한테 감정이 식은 게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하네. 너랑 사귀어 주는 거부터 교수님의 대단한 사랑인 거야. 나라면 너랑 안 사겨.”
“남 말하네.”
전혀 칭찬과 위로의 말로 들리진 않지만 어쨌든 아니라고 해주니 좋긴 하네. 명대는 침대에 쪼그려 누운 후거의 다리를 팔로 치며 침대 위에 걸터앉았어. 고청명 왜 답장 안 해 주냐.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차가울 수 있어. 수업 시간이라도 내가 문자 보내면 재깍재깍 대답해줘야 하는 거 아냐? 설마 나랑 잤다고 나에 대한 감정이 식었을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혼자서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명대와는 자 봤으니 이제 다른 사람을 찾으러 떠나는 청명을 떠올리곤 헛웃음을 지어. 진짜 안 어울린다.
“근데 저번에 내가 교수님이랑 잤잖아.”
“근데 뭐.”
“그때 내가 너무 목석같이 굴어서 아직도 신경 쓰여.”
“그게 뭐 어때서.”
“그땐 내가 너무 잘하면 교수님 기분이 이상할까봐..”
“지랄. 잘하긴 하냐?”
“당연한 소리를.”
옆에 누운 후거를 툭 치며 대답하는데, 사실 아직도 좀 걸려. 정말 교수님 정말로 괜찮은 건지. 정말 아무 상관 없는 건지. 교수님 앞에서 능숙한 모습 보이는 것도 싫은데, 그렇다고 목석처럼 누워있었던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아. 그냥 교수님 앞에선 다 그래. 이것도 이상해 보일까 봐 걱정되고, 저것도 이상하게 보일까 봐 걱정되고. 막상 걱정해놓고 앞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제멋대로 굴게 되지만.
명대 형님들이 사준 케익을 또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먹었어. 형님들 무섭다는 소리에 자기랑 같이 있으면 괜찮다고 굉장히 이례적으로 좀 믿음직해 보이던 명대자식은 고청명 전화 오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방으로 도망갔어. 형들은 청명과 전화하는 명대가 썩 마음에 안 들어 보이긴 했으나 후거에게 이것저것 묻느라 여념이 없었어. 결혼은 어쩌다했냐 무슨 과냐. 처음에는 후거에 관한 이야기를 묻다가 곧 명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지. 명대랑 고청명이랑 아느냐고 물었다가 아차 싶어 이건 비밀이라고 덧붙였어. 이미 아는데. 근데 듣다보니 형들이 고청명 교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아 후거의 마음 한 쪽이 뜨끔했지. 둘이 이어지는데에 꽤, 아주,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는 후거는 형들에게 안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어깨가 점점 굽어. 명대 학교에선 어떠냐, 평판이 어떠냐는 물음에 또라이 노답이라 대답하려다가 한참을 말을 고르고 골라...
“그냥 좀.. 특이한 애죠.”
“...조금은 아닌 거 같은데.”
“...네..”
들은 형들도 후거의 대답에 신빙성이 없다 판단하고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옮겼어. 고청명 험담 쪽으로.
“우리 명대랑 사귀기엔 너무 나이가 많잖아.”
“좀.. 차이 나긴 하는데..”
“그리고. 아무리 사람이 인성이 좋다지만 너무 무뚝뚝하고. 남편감으로는 영 별로야.”
“음...”
무뚝뚝하건 맞는데.. 교수님이 시끄럽거나 말이 많거나 하다못해 장단이라도 자주 맞춰주는 성격이면 옆에 있는 내가 너무 힘들어질 거 같은데. 지금도 명대가 허구 헌 날 교수님 이야기만 하는데 교수님의 말이 많아지다간.... 끔찍할 거 같은데.
***
“잘 다녀왔어?”
“응. 아 근데 명대네 집에서 형들 봤어.”
“형도 있어?”
“응. 형들 무서워.”
집에 돌아온 후거는 현관문을 열어주는 건화를 보자마자 입을 내밀고 코끝을 찡그렸어. 형들 엄청 부담스럽고 무서워. 본인들 딴엔 후거에게 잘해주려고 한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부담스럽단 말이야 나 낯가리는데..
“거기서 케익 먹었어.”
“케익은 입덧 안 해?”
“응. 근데 한 조각 먹으니까 물려서 못 먹겠어.”
“이왕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지.”
문을 닫고 후거가 신발 벗는 걸 내려다보는 데 집중한 건화의 눈가가 바르르 떨렸어.
“신발 사이즈 맞는 거야?”
“어?”
“사이즈 맞아? 큰 거 아냐?”
“당연히 아니지. 자기가 내 신발 다 갖다 숨겼으면서.”
“음. 그러네..”
후거의 임신소식을 알게 된 건화가 정신 차리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후거의 사이즈가 큰 신발들을 죄다 정리하는 거야. 임신한 상태에서 넘어지면 큰일 나니까.. 워낙 넘어지는 게 일상다반사인 편이라 신발을 정리한다고 마음이 놓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안 하는 거 보단 낫다고, 다음날 평소보다 늦게 집에 들어온 건화는 양손에 쇼핑백을 한가득 들고 있었어.
“그거 뭐야?”
“신발.”
“응?”
후거를 불러 백화점에 데려오는 것도 영 불안한 나머지 신발을 종류별로 사이즈도 두 개씩 사 왔거든. 그거 보고 돈지랄한다고 나랑 같이 사러 가면 될 걸 뭐하러 사이즈마자 사오냐고 뭐라고 했다가 욕한다고 잔소리 얻어먹고. 좀 삐지긴 해도 새 물건은 언제나 좋으니까! 삐진 마음도 얼마 안 가고 바로 귀엽게 볼을 부풀리고 쇼핑백을 푸르는데. 거기까진 좋았지. 건화가 사온 신발이 서른 켤레인 것도 괜찮았어. 문제는 신발 하나하나 신고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걸어보라는 것부터였지.
“그만할래..”
“몇 개 안 남았어. 이거만 더 신어보자.”
“그냥 나중에 해.”
“안 돼. 사이즈 안 맞는 건 환불하던가 버려야 해.”
“....”
무조건 신는 것뿐만 아니라 걸어봐야 한다고. 걷고 편한지 알아야한다고 강요해서 거실 여기에서 안방까지 한 바퀴 돌다 나와야 했어. 그러니 신발 하나 갈아 신는 데 오 분이 걸렸지. 그걸 서른 켤레를 해야 해. 이제 이 디자인은 어디가 마음에 안 들고. 이건 별로 신을 일이 없을 것 같고의 문제가 아니야.
“안 할래! 안 해! 나 안 신어!”
“또 사이즈 안 맞는 거 신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부축하는 사람을 들여? 경호원도 불편해서 싫다고 하면서.”
“안 넘어지면 되잖아!”
“한 달에 두 번씩 넘어지면서 뭘 안 넘어져!”
“으이씨..”
건화의 말이 맞아. 심심하다 싶으면 한 번씩 맨땅에, 아무것도 없는 거실 바닥에서 미끄러져서 아프다고 삼일 밤낮을 찡찡대는데. 그 때야 홀몸이니 넘어져도 좀 아프고 말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근데 그래도 너무해. 아저씨가 이렇게 챙기는 거 내가 아니라 아기 때문이겠지?
“알았어.”
계속 신으면 되잖아. 소파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발로만 운동화를 벗어 던지곤 다른 상자를 들어 열었어. 진지하게 찌푸려진 건화의 표정 살짝 누그러졌지. 후거가 삐졌는데. 이거 풀려면 또 온종일 걸릴 거야.
“화났구나.”
“....”
“신발 남은 건 다음에 신자. 오늘은 내가 너무 무리했네. 미안해.”
후거 앞에 쪼그리고 앉은 건화가 반 정도 신다 만 신발을 발에서 벗겨내며 말했어. 뚱한 얼굴을 하고 있던 후거는 그의 말에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 굳이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일은 아니었는데.
“화 안 났어..”
“아니야. 내가 너무 오버했어. 그렇지?”
“....”
“또 운다. 또. 그러다 애도 울보 되겠다.”
울보 소리에 눈물 그렁그렁한 상황에도 눈초리가 따가워. 건화는 혀를 차면서도 후거의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우느라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 위에 제 입술을 올려. 쪽쪽 가볍게 와 닿는 입술에 후거가 눈을 길게 감았다 뜨곤 고개를 뒤로 빼는데, 바로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감싸. 하지.. 싫다는 말은 금방 삼켜지고 건화가 후거의 입술을 크게 삼켰지.
“저번에 아저씨가 새로 사준 신발 신었단 말이야.”
사이즈 딱 맞는 걸 확인시켜준 후에야 현관에서 거실로 입성했어. 그리고는 바로 배가 고프다며 주방으로 쪼르르 걸어갔는데, 냉장고를 열자마자 입맛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아. 고기 먹고 싶었는데 고기 먹기 싫어졌어.
최근 후거는 생선류는 당연히 못 먹고. 조개는 식감이 이상하다고 싫어하고 고기는 누린내가 난다고 안 먹으려 했어. 겨우 먹는 게 빵이나 과자인데 임산부에게 그런 거만 먹일 순 없잖아.
“으음.”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냐, 됐어..”
어제도 새벽에 탕수육 먹고 싶단 말에 자다 깨서 나갔으면서.. 그렇게 사 왔는데 후거는 입에 세 번 넣고 더 이상 못 먹었지만. 그래서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거 같아서 일부러 건화 자라고 명대네 집에 놀러 간 건데. 고개를 약하게 젓고 냉장고 문을 열어 야채 칸에 야채 몇 개를 주워들고 씻어 와서 식탁에 앉았어. 맞은편에 건화가 턱을 괴고 후거를 지켜봤지. 토끼도 아니고 건화는 맛도 모르겠는 샐러리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데.. 저런 거만 먹어서 괜찮을까. 맛있는 거 먹고 싶을 텐데. 마음 아픈 것과 별개로 풀만 오물오물 먹는 게 너무 귀여워서 손바닥에 눌린 광대뼈가 슬금슬금 위로 올라가.
“나 방울토마토 먹고 싶어.”
“아, 그거 아까 사놨는데. 잠깐만.”
샐러리 하나를 쫑내고 당근 썰어 놓은 거 입에 넣는 걸 보며 건화가 일어났어. 후거가 명대네 집에 놀러 간 사이 자려고 했는데 혼자서는 도통 잠도 안와서 백화점 다녀왔거든. 후거 배나오면 입을 옷도 필요했고. 아직 한 달 좀 넘은 거라 배 나오려면 몇 달 더 있어야겠지만.
“명대네 집에선 케익만 먹었어?”
“차도 마시고... 거기 형들 엄청 무섭다니까. 그래서 그냥 금방 왔어. 명대도 계속 교수님 이야기만 하니까 하나도 재미없어.”
야채칸 아래에 숨겨져 있던 방울토마토 상자를 꺼내 든 건화가 불퉁한 표정으로 당근을 깨물어 먹는 후거를 흘끗 보며 싱크대로 다가가. 절반만 씻을까.
“아니, 형들이 교수님이랑 사귀는 거 반대해서 집을 못 나가게 한 대.”
“좀 심하네.”
“그치? 그래서 불쌍하기도 하고 심심하다고 계속 그래서 놀러 간 건데 온통 고교수님 이야기만 하잖아. 연락을 안 하니 어쩌니 어제 무슨 말을 했니. 걔는 진짜 교수님한테 완전 미친 것 같아. 교수님 이제 장가도 못 가. 걔한테 장가가는 거 아니면 명대가 상대 죽일 거 같아. 걔는 그럴 수 있어.”
완전히 확신에 차서 말했어. 진짜 백퍼 걔는 그럴 거야. 진짜 그럴 거라니까?
그러나 고청명과는 여전히.. 썩 좋은 관계가 아닌 건화는 후거가 고청명을 안쓰러워하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대충 대꾸하고는 물기를 탈탈 털어낸 방울토마토를 내오며 후거의 옆자리에 앉았어.
“나 방울토마토 먹고 싶은 걸 어떻게 알고 사 왔어?”
“그냥 눈에 보이길래 사 왔는데 잘 된 거지.”
당근을 다 씹어 넘긴 후거의 입에 꼭지를 딴 길쭉한 모양의 토마토를 넣어주고 건화도 하나 입에 넣었어. “토마토에서 당근 맛이 나.” 좀 투덜대긴 해도 헛구역질하면서 못 먹는 거 보단 낫지. 토마토 두어 개를 먹곤 손을 뗀 건화와 달리 후거는 오늘따라 유독 길게 먹어. 여전히 당근과 샐러리 토마토뿐이지만. 뭐라도 계속 먹는 게 어디야. 파란 샐러리 끄트머리를 문 채로 볼을 움직이며 먹는 후거를 빤히 보던 건화는 결국 눈 끝을 잔뜩 휘며 웃었어.
“왜 웃어? 사람 먹는데 계속 쳐다보고.”
“귀여워서.”
“난 귀여운 게 아니라 멋있는 거라고 몇 번을 말해.”
“맞아. 귀엽고 멋있어.”
“하나만. 하나만!”
“두 개 다 할 건데.”
기어코 후거는 멋있기만 해 소리를 듣고 싶은 건지. 의자의 각도를 돌리고 등을 보이고는 당근 썰어놓은 쟁반을 끌어안고 혼자서 먹어. 미치겠다. 왜 이렇게 귀엽지.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소리를 겨우겨우 참아내고 후거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면서 “나도 하나 주면 안 돼?” 하고 물으니 싫다고 고개를 저어. 동그란 뒤통수가 흔들리는 걸 보는데 곽건화의 마음도 그 뒤통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지. 여기서 웃음 소리 내면 후거가 토라질까 봐 숨죽여 참는 건데, 후거는 자기가 당근 안 준대서 건화가 삐졌을까 봐 슬쩍 돌아보곤 눈치 보듯이 말하는 거야.
“아저씨도 먹을래?”
“하... 크으..”
“왜 그래?”
웃음 참는다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숙이는 건화에 놀라 당근 든 쟁반을 올리곤 그의 등을 두드리는데 건화는 진짜.. 가끔 인터넷 보면 다 뽑는다, 부순다는 글 보고 왜 저렇게 화가 많을까 싶었는데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농담 아니고 진짜 뭐든 다 뽑고 싶다.
***
다음 날. 돈에 관해서는 확실한 아성형이 명대와 약속대로 큰 형 몰래 경호원에게 휴가를 줬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큰 형은 출근하기 전에 엎드려 인형 다 뭉개면서 자고 있는 명대의 엉덩이를 때리며 집에서 얌전히 있으라고 이야기했지. 자다 깬 명대가 웅얼웅얼 투덜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명루가 출근했고 선잠이 눈에 붙은 명대는 눈동자가 빨갛게 일 때까지 눈을 비비며 억지로 일어났어. 어제 교수님한테 데이트하자는 말은 했는데 교수님 별로 안 믿는 눈치야. 빨리 가야지...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한 몸을 들어 한 시간 동안 샤워하고, 형 넥타이 팔아서 번 돈이 꽉찬 카드를 챙겼어. 솔직히 엄청 혼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 혼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 과거형이지. 그랬었다고. 몇 대 맞을 줄 알았는데 형은 그냥 화 좀 내다가 한숨 쉬다가 이마 잡다가 자러 가더니 다음날 넥타이 오십 개 사온거야. 내가 명루형 좋은 일만 했구나. 형 사실 넥타이 다 새로 사고 싶었던 게 분명해.
형이 생각보다 덜 괴로워해서 좀 짜증 나긴 하고, 두 달간 용돈 없다는 말에 시무룩하긴 해도 명루형 넥타이 팔아서 번 돈이 꽤 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용돈이야 누나한테 받으면 되고, 형들 말은 두 달간 용돈 안 준다고 해도 내가 매달려서 애교 좀 부리면 용돈을 안 줄 수가 없을걸. 그나저나 고청명한테도 애교가 먹히면 얼마나 좋아. 그래도 뭐.. 어젠 좋았어. 어제 일을 떠올리고 또 집에서 드디어 나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듯한 명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운동화로 갈아 신었어.
“며칠간 저 못 봤는데 안 보고 싶었어요?”
택시 타고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청명의 연구실로 향했어. 애초에 학교 온 게 수업을 들으러 온 게 아니라, 청명을 보러 온 거니까. 혹시나 수업 중이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고청명은 연구실 안에 있었지. 노크한 사람이 명대일 거라 생각을 못 했는지 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그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안경을 벗어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섰어. 안경 계속 쓰지. 섹시한데.
“저는 교수님 엄청 보고 싶었는데 교수님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우리 며칠이나 못 봤잖아요. 통화만 했지.”
통화도 많이 못 했잖아요. 하루에 이십 분 밖에 못 했는데.
데이트 하고 싶고 만나고 싶긴 해도 집에 갇혀있는 동안 청명이 너무 명루형 편만 들고 날 별로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아 삐져서 만나면 화내려고 했는데 화는 무슨. 고청명 얼굴 보니까 백년 묵은 화도 다 풀리는 거 같은데. 어떻게 저 얼굴에 화를 낼 수 있어.
문을 닫아 몰래 잠가 버리기까지 하고 책상 옆에 선 청명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칭얼대듯 묻는데, 이어 나온 그의 대답이 명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얼어버리게 만들었어.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냐고 물었지만 고청명이 거기에 대답할 거라 생각을 안 했단 말이야. 고청명이 어떤 성격인데... 그 짧은 한 마디에 넉아웃이 된 명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그를 쳐다보다, 뒷걸음질까지 쳤지. 교수님 아닌 거 아냐? 나 어제 인베이젼 봤는데! 거기서 막 그 사람인데 그 사람이 아닌 그런 내용 나왔단 말야! 교수님 먹힌 거야?!
“교수님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요!”
“왜?”
기겁하는 명대와 달리 멀쩡한 표정을 한 청명은 뭐가 어떠냐고 물어. 그도 그럴 것이.. 명대에겐 형님이 정한 일이니 따라야 하나 말했지만 그건 청명이 명대 누님과 형님들 볼 면목도 없고 할 말도 없어서 그런 거지.
말은 안 했으나 그간 명대를 못 본 며칠간 청명은 끊었던 담배도 오랜만에 찾았어. 거의 2년 만에 담배 한 갑을 사고 한 개비 피는데 역시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아.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폐부에 깊이 파고드는 감각에 바로 입에서 담배를 떼어내고 나머지 19개비의 담배도 손안에 구기곤 쓰레기통에 처박았지. 조금이라도 더 피다간 2년간 참아온 게 소용이 없어질 것 같아서.
정말 자기가 명대한테 미치긴 한 것 같아. 언제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예전이라도 명대한테 미치지 않은 건 아니었지. 그냥 방식이 달랐을 뿐. 담배를 끊기로 한 순간부터 명대를 끊는다고 생각했는데 담배를 끊을 수 없는 것처럼, 그냥 2년감 참고 지냈을 뿐이라고.
“다시 말해줘요.”
“두 번은 없어.”
“너무해요. 다시 말해줘요. 네? 네?”
“수업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보고 싶었다고 했으면서 왜 두 번은 말 안 해주는데. 진짜 치사하네. 녹음하려고 했는데 그거 알아차린 건가. 입 불퉁하게 내밀고 청명의 팔을 잡아끌어도 안 해줘. 그리곤 기어코 수업 이야기가 나왔지. 진짜 누가 선생 아니랄까 봐 공부 엄청 시키네.
“어차피 저 교수님이랑 결혼할 건데 학교 좀 안 나가도 상관없잖아요.”
“...말 같은 소리를 해.”
“왜 말이 아니에요? 교수님 저랑 결혼 안 할 거예요? 저 먹어놓고 팽- 할 거예요?”
“남은 수업 없으니까 나가자.”
“왜 대답 안 해요! 결혼 안 할 거예요?”
또 결혼 이야기에 청명이 대답을 피하자 명대는 집요했어. 저번에 통화 할 때도 결혼 이야기를 해서 우리 만난 지 한 달이란 이야기를 하니 알고 지낸 건 2년 넘지 않느냐며 억지를 부렸지. 아니. 아직 고작 스무 살이면서 왜 이렇게 결혼을 하려고 해. 지갑과 차키를 챙기던 청명을 등위로 뺨을 부비며 어리광을 치는 명대를 느끼곤 이마를 팍 찌푸리며 손안에 든 차키를 세게 쥐었어.
“너 대학 졸업하면.”
“아직 1학년인데!”
“중요한 건 대학 졸업하는 거야. 졸업장 따는 거.”
“...졸업장 따야한다고요?”
졸업장 이야기에 허리를 감고있 던 명대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 졸업..? 나 졸업해야 해..?
“이런 식으로 계속 학교 안 나가면 졸업하는 데 한참 걸리겠지.”
“1학기도 학고 먹을 뻔 했는데..”
“자랑이야?”
학사경고 이야기 듣자 고청명의 뇌에도 찬물이 훅 끼얹어지는 것 같아. 아니 학고 맞을 뻔 했다는 게 할 말이야? 교수 앞에서? 마음 같아선 정말 데리고 억지로 수업 보내고 싶은데 며칠간 집에 갇혀있었으니 바로 수업에 들어가라고 하기도 그래.
“데이트하자며.”
“교수님.”
“왜.”
“연구실에 혹시 CCTV같은 거 달려있어요?”
“없는데. 왜..?”
갑작스런 CCTV이야기에 한쪽 눈썹을 내리며 묻자 명대는 새초롬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검지로 닫힌 문의 손잡이를 가리켰어.
“저 아까 들어오면서 문 잠그고 들어왔어요.”
“....”
“어제 우리 했던 거 있잖아요.”
“..기억 안 나.”
“그럼 제가 기억나게 해줄게요.”
“아니, 괜찮..”
문 잠갔다는 말에 불안함을 느꼈는데. 그 역시가 그 역시야. 결혼은 졸업장 따면 해주겠단 말에 의기소침해졌으면서, 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젯밤에 명대와 했던 전화통화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으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는 횡설수설하며 명대를 피해 뒷걸음질 치다 의자에 무릎이 걸려서 원치않게 의자위로 앉아버렸어. 등 뒤는 책장이고, 눈앞에는 명대가 있었지. 궁지에 몰린 쥐가 된 고청명 교수는, 한참 어린 야한 제자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해.
“명대, 그건 집에 가서..”
“밥도 매일 똑같은 거 먹으면 질리잖아요.”
“난 안 질려.”
“그것도 좋긴 한데. 가끔은 외식도 해야죠.”
“....”
저번엔 어제 밥 먹었다고 오늘 밥 안 먹는 거냐고 하더니, 이젠 외식타령이야.
의자 위에 앉은 청명의 다리 옆에 무릎을 대고 선 명대는 그의 손을 끌어 자신의 셔츠 단추 위에 대고 작게 속삭여.
“어제 교수님이랑 폰섹 할 거란 생각도 못 했었어요.”
“기억 안 난다니까.”
“교수님이 어제 뭐라고 했더라? 손가락 두 개..”
“그만. 그만 이야기하자.”
폰섹 단어에 파리하게 질린 청명은 말까지 더듬으며 명대의 입 위를 손으로 틀어막았어. 고청명이 눈에 띄게 당황하자 명대는 더 즐거워졌지. 기다란 눈이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접더니, 그의 다리 위에 올라타 목을 감싸 안으며 높은 콧날 위에 제 코 끝을 대며 말했지.
“어제는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거예요?”
“너한테 휘말린 거지.”
“흐응. 계속 휘말렸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어제 밤늦게 청명이 전화했길래 명대가 목소리만 좀 빌려달라고 했어.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 물었던 고교수는 곧 말 안 듣는 제자가 흐느끼는 소리를 내자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지. 명대는 언제나 고청명의 상상하는 범위를 뛰어넘고, 고청명이 해본 적도, 할 거라고 생각도 못 한 일을 벌여.
그리고 굳이 명대가 그가 매일 자신에게 휘말렸으면 ‘좋겠다.’하고 할 필요도 없이. 애초에 청명은 명대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명대를 마주하는 매번 명대에게 휘둘렸어. 화내지 않아도 될 일에 화를 내고, 속을 썩이고,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괴로워하고.
“학교에서 이러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그러니까 더 짜릿한 거죠.”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어린 애인의 행동에 한숨이 쏟아지는 것 같아. 곰인형 달라던 9살의 명대는 귀엽기만 했는데... 그렇다고 지금의 명대가 귀엽지 않다는 게 아니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이야기해줘요. 네?”
“의자 부서지겠다.”
“제가 다시 사줄게요. 우리 형 넥타이 다 팔아서 번 돈 있어요.”
“넥타이를 팔아?”
“그런 게 있어요.”
남자 둘이서 의자 하나에 올라타 있으니 당장 무너질까봐 걱정만 됐어. 뒤에 책장이라 뒤로 넘어가면 큰일 나는데. 그런 청명의 현실적인 고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 즐겁기만 한 명대는 청명의 매끈한 턱을 손등으로 간질이며 형 넥타이에 관한 이야기는 회피하고 다시 얼마나 보고 싶었냐는 말을 꺼내. 보고 싶은 건 알았으니까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말해줘요. 저는 교수님 때문에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보고 싶었는데. 교수님은요.
명대가 보고 싶어서 끊었던, 아니 참았던 담배까지 다시 폈는데. 그 말은 죽어도 할 생각이 없어. 대신 그는 올라탄 명대를 일으켜 세우고 본인도 의자에서 일어나며 대답했지.
“많이 보고 싶었어.”
“아.. 이제부터 보고 싶었다는 말이랑 사랑한다는 말하기 전에 지금 말할 거라고 신호주고 말해요. 그래야 녹음하지.”
“녹음을 왜 해?”
“자주 말 안 해줄 거잖아요.”
교수님이 뻔하지. 언제 쯤 말해줬는지 잊을 때쯤 말해줄 거죠?
연구실에서 화끈한 섹스 하려고 했던 건 몽땅 잊어버리고 사랑해와 보고 싶었어 이야기에 집중한 명대는 눈을 좁게 뜨며 청명의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투덜댔어. 교수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거 자체가 좋긴 하지만 그래도 자주 말 안 해줄 거니까 녹음해서 모닝콜로 쓸 거예요.
“왜 자주 말을 안 해줘.”
“그럼 자주 해줄 거예요?”
“학교 나올 때 마다 해줄게. 수업 들을 때 마다.”
설마 교수님이 정말로 자주 해주겠다고 말하려나 싶어 눈을 반짝반짝 뜨고 기대했는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에 푸쉬쉬 식어 눈꺼풀이 반쯤 내려왔지. 진짜 너무하네. 그냥 좀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겠다고 하면 어디가 덧나냐고. 입안의 살을 이로 깨물며 연한 회색 셔츠로 감싸인 청명의 등을 툭 쳤어. 그는 별말 않고 책상 위에 떨어뜨린 지갑과 열쇠를 쥐며 명대의 찌푸린 눈가를 손가락을 약하게 쓸어 만졌어. 눈을 감아 뜬 명대는 푸욱 한숨을 쉬면서도 입술을 당겨 웃었지.
“교수님은 로맨틱하다 말아요.”
그래도 좋아요.
헐 시엔셩 선개추후감상ㅜㅜㅜ
밍타이 요망하고 귀엽다ㅜㅜㅜㅜㅜㅜㅜㅜ그리고 건화가 후거 신발 숨기는거ㅋㅋ 넘어지먄 안되니까ㅋㅋㅋㅋㅋ 존좋ㅜㅜ
명대는 고교수 진짜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거 너무 티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웤ㅋㅋㅋ
형들 존나 고칭밍 결혼인사 올때가 기대된다 ㅋㅋㅋ
후거 토끼같아ㅠㅠㅠㅠ 졸귀ㅠㅠㅠㅠ
밍터이 존나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