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건화왕카이
헉헉 거의 끝나간다
13.
눈 앞의 건물은 번듯하기 그지없었다. 청명은 오늘에야 문득 이 고아원이 지난 상해탄 전투 이후 새로 지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청 남서쪽, 괴뢰정부의 땅과 중경정부의 땅 경계선에 아슬하게 걸쳐 간신히 상해라 할 만한 위치에 건물만 우뚝 서 있었다. 청명은 그간 여러 고아원을 들락거렸기 때문에 이 곳의 위치는 위태로우나 아이들이 자라나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명가의 돈이 얼마간 섞여들어갔을 고아원은 3층 높이에 자그마한 운동장까지 딸려 훌륭한 소학교처럼 보였다. 청명은 지난 주 이 날에도 이 곳에 왔다. 그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입가에 가는 주름이 진 눈웃음이 인상적인 중년의 원장만 만나 부탁만 전하고 돌아왔었다. 청명은 일주일을 제시했고 너그러운 여자는 최선을 다해보겠다 답했었다.
청명의 사촌이 가졌었다는 그 팔찌가 최초로 발견된 고아원에서 이 쪽으로 온 것은 세 명 정도였다. 많은 편이다. 지난 번 찾아왔을 때 원장은 말했었다.
제가 여기를 맡은 건 상해가 공습당한 이후예요. 그 전에는 나이 드신 남자분이 원장 노릇을 하셨지요. 한 번에 아이를 많이 받았다면 아마 돈 때문이었을 거예요. 나라에서 고아원에 돈을 지원해줄 때에는 고아원의 크기와 데리고 있는 아이 수로만 계산을 하니까요.
그것은 전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청명은 고개만 끄덕였었다. 문득 이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확신이 떠올랐다. 어디였더라……? 왜인지 매우 중요하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어 고집스럽게 머리를 싸매봤지만 소용없었다. 청명은 근래 그런 이야기를 들을 만한 곳들만 골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청명은 희미한 희망을 갖고 다시 이곳에 왔다.
옷을 그리 잘 차려입은 편은 아니었으나 깨끗했고 옷감의 질이 좋았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이 곳에 세 번이나 온 깔끔하고 잘생긴 젊은 남자를 의식하고 있었다. 청명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몇십개의 눈이 빼꼼히 자신을 지켜보는 것을 느꼈다. 누차 말했다시피 이 고아원은 아이들을 썩 잘 챙겨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린 아이들은 항상 친부모건 양부모건 상관없이 부모를 찾아다니는 존재였다. 청명은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그대로 받으며 오히려 정체모를 남자에게서라도 아버지의 정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차올랐다. 그러나 청명이 찾고자 하는 자는 그와 동갑내기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원장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일찍 오셨군요."
아직 정오 전이었다. 칠일 전과는 사뭇 다른 방의 풍경에 청명의 눈도 동그랗게 뜨였다. 그 깔끔하고 단촐했던 방에는 책상을 중심으로 갖가지 상자와 잡동사니와 종이뭉치가 둥글게 쌓여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부탁하셨던 것들을 알아보느라 창고를 뒤졌어요. 아직 정리를 못했네요."
청명이 부탁했던 것은 세 아이의 신원과 행적이었다. 그녀가 원장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과거의 일은 자연히 알기 어려울 것이다. 청명은 그녀 자신도 잘 모르면서 일면식도 없고 내력도 알 수 없는 저를 힘껏 돕는 그녀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어떻습니까?"
"성년이 되면 고아원에 머물 수가 없지요. 셋 다 지금은 이곳에 없다고 말씀 드렸었나요?"
"예."
"하나는 성년이 될 때까지 여기 있었어요. 32년에 나가서는 아직도 정기적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일자리도 구하고 돈도 벌고, 가끔 쉬는 날 찾아와서 일을 돕고 가지요. 만나고 싶으시면 다음에 연락이 올 때 알려드리겠습니다. '생'이란 아이는 상해 공습때 사라졌어요. 성년이 되기 전에 제 발로 나가서 신문 파는 일을 했던 모양인데, 안됐지요. 둘 다 나가기 전에 사진을 찍었었어요. 창고에 있던 거예요."
청명은 낡게 바래고 귀퉁이가 우그러진 사진을 받아들었다. 척 봐도 수십개는 되어보이는 희고 둥그란 얼굴의 홍수 속에서 청명은 익숙한 고모와 고모부의 얼굴을 찾으려 애썼으나 실패했다.
"이것만 보고는 모르겠군요."
"제가 오기 전부터 일했던 분께 여쭤봤어요. 오른쪽 맨 끝 제일 뒷줄에 있는 아이 둘이 희와 생이라더군요."
청명은 다시 사진을 들여다봤지만 여전히 생소했다.
"일단 사진을 잠시만 빌리겠습니다. 다른 아이는요?"
"그 아이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입양이 됐어요."
"…입양이요."
"입양 관련 서류가 남아있나 살펴봤는데 들어있던 상자가 그때 통째로 다 타버린 모양이예요. 아직도 연락이 닿는 나이 많은 아이들한테 물어봤는데 카이라는 아이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입양이 됐다고도 얘기해줬어요."
"어느 누구한테 입양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까?"
"힘들 것 같네요."
아……. 청명은 적나라한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얼굴에 드러냈다. 여자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퍼졌다. 대신 그녀는 서랍에서 사진 뭉치를 꺼내 보상처럼 내밀었다.
“그 애도 사진을 찍었어요. 아마도요. 입양됐다던 바로 전 해에 사진을 찍은 게 몇 장 있는데, 여기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원한다면 가져가도 좋아요.”
청명은 사진을 뚫어져라 내려다봤다. 원장은 그가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청명의 눈은 무표정하게 뜨여있을 뿐이었다. 청명은 둥근 눈을 보고 있었다. 자그마한 머리통을 보고 있었다. 어깨는 비쩍 말라 옷 위로도 뼈가 뾰족하게 올라와있는 게 보였고 눈에는 그 나이대 아이 특유의 발랄함이 없었다. 청명은 공손한 태도로 사진을 받아 느리게 품 속에 넣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네요. 여자가 말했다.
"일하셨다던 분은 얼마나 오래 여기 계셨습니까?"
"20년 정도일 거예요. 다른 아이에 대해서는 아마 모를 겁니다. 그 아이가 입양간 다음에 일하기 시작했다더라고요. 저도 물어보았었죠."
"입양간 다음이라는 게,"
"그 다음 해일 거예요."
청명은 희미한 가능성을 보았다.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요."
"……사는 곳을 알고 있어요."
원장은 세로로 빨갛게 줄이 그어진 종이를 한 장 꺼내 그 위에 사각사각 글씨를 적어갔다. 청명은 종이를 받자마자 감사하다는 인사만 남기고 날듯이 떠났다.
청명은 집에 들어와서 코트도 채 벗지 않은 채 두 장의 사진을 짙은 나뭇빛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둘 다 낡았으나 귀한 것이었다. 한 장은 청명의 지갑에서 나왔고 다른 한 장은 오늘 고아원의 원장에게 건네받았다. 기이한 우연으로 사진의 규격이 완전히 일치하여 청명은 그 두 사진의 끄트머리를 맞붙여놓고 팔짱을 단단히 낀 채 눈만 까딱이고 있었다.
왼쪽의 사진은 갓 돌이 된 아기의 사진이었다. 아기는 비단으로 된 모자를 쓰고 어리둥절한 듯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청명이 상해에 온 첫날 아버지의 사람으로부터 건네받았던 것이다. 오늘 받은 오른쪽의 사진에서는 바짝 마르고 생기없는 아이가 벤치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기가 막히게 가늘었다. 본디 아이들에 관심이 없던 청명이 상해에 온 뒤 고아원을 돌아다니면서 눈동냥한 바에 의하면 기껏 해야 네 살 쯤 되었을 것 같았다. 말이나 제대로 할까.
두 사진을 늘어놓고 청명은 두 가지를 보았다. 두 사진의 등장인물이 퍽 닮아있다는 것이 하나였고, 네 살 꼬마의 얼굴에서 자신의 어릴 적이 보인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이 아이는 필히 자신의 사촌이 맞을 것이다. 청명은 일단 그렇게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가방에 사진 두 장을 곱게 싸넣고는 주소가 써진 종이를 꺼내 펼쳐들었다. 상해를 뽈뽈거리며 돌아다닌 보람이 있는지 대강 그 주소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집을 나왔다. 마지막 단서를 얻을 때가 되었다.
야근하는 명루 곁을 지키던 아성은 한 밤중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집무실 밖 비서실의 전화 소리가 닫힌 문틈을 타고 고요한 방 안을 흔들어댔다. 명루는 짧은 잠을 청하고 있었고 아성은 그런 명루가 깨버릴까봐 서둘러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전화기는 아직도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집에서 누님이 건 전화가 아닐까 싶었다.
"경제부 비서 아성입니다."
아성은 순간 전화가 이미 끊긴 줄 알았다.
맞은 편은 고요했다. 위험을 감지한 아성이 귀를 바짝 세우자 분명 숨소리는 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숨을 멈췄으니 제 숨소리도 아니었다. 아성은 맞은 편의 의문과 줄다리기를 하듯 한참을 그렇게 고요하게 수화기만 맞잡고 있었다. 아성은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너 누구야."
–나야.
아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왜 안 해. 이상한 놈인 줄 알았잖아."
나야, 하는 두 글자로 아성은 단번에 의문의 정체가 청명임을 꿰뚫었다. 청명은 흐흐, 하는 힘없고 감정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 밤 중에 밥먹자고 전화한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야."
–언제 명가에서 널 좀 보고싶어.
"누님한테 네가 온다고 말해놓을게."
–명가에서 널 보고 싶다니까. 집에 아무도 없을 때가 있나?
"……무슨 일 있어?"
이상한 요구였다. 아성과 단둘이 만나고 싶다면 항상 해왔듯 집 밖에서 만나거나 그도 불편하다면 청명의 집에서 만나면 될 터였다. 아성은 이상한 요구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뒤 그것을 말하는 청명의 목소리도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나치게 담담했고 깊게 가라앉아있으며 약간 메어있기까지 했다. 누가 들어도 운 목소리가 아닌가.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래. 언제 시간 돼? 네 누님과 동생이라도 항상 집에 있진 않을 거 아냐.
"명대는 원래도 자주 나다니고…… 누님은 조만간 일 때문에 이틀쯤 나가실거야. 진짜 아무 일 없는 거 맞아? 너 괜찮아?"
–아무 일 없다니까. 그럼 네 누님 나가시면 알려줘. 명대도 내쫓아보내고. 너도 일 반나절 빼고.
그 날은 생각보다 금방 왔다.
아성은 그 통화의 이상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답지 않게 바짝 긴장해있었다. 단둘이 만나자는 요구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장소가 이상했고 그의 태도가 이상했다. 아성은 청명이 부탁한 대로 이틀 후 내일 오전 집이 빌 것이라고 전화했다. 아향과 계이도 집이 빌 때는 자유시간이니 어련히 나갈 것이고, 혹여 나가지 않더라도 아성이 어떻게든 내보낼 예정이었다. 근처에 감시의 눈이 붙어있는 것을 아는 이상 튀는 행동임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성은 청명을 들여보낸 뒤 집 안과 밖을 꼼꼼히 살폈다. 집 안에는 사람이 없었고 녹음기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집 밖에서는 일단 눈에 띄는 차량은 없었다. 숨어있는 눈까지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성은 그저 청명과 제가 집 밖에서만큼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기를 바랐다.
오늘의 청명은 어느 때보다도 초췌해 보였다. 어디 아파? 눈 밑은 검었고 눈빛만 형형한 것이 며칠 굶은 사람같았다. 살이 더 내렸는지 광대에서 턱으로 내려오는 선이 움푹 패여있었다. 아성은 우두커니 서 있는 청명 앞으로 다가가 뺨에 손을 올렸다. 볼에는 거죽만 가까스로 붙어있었고 피부는 거칠었다.
"밥은 먹고 다니는 거 맞아? 점심 아직 안 먹었지, 밥이라도 먹고 가."
"저건 네 사진이야?"
우두커니 서 있다고 생각한 청명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진은 명대의 것이었다. 명대가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다. 바가지처럼 눈썹을 덮은 앞머리에 볼이 토실토실했다.
"명대야."
"넌 어릴 때 사진 없어?"
그 선반에는 명씨 가족의 사진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아성은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액자를 들어 청명에게 건넸다. 아성은 명루의 살뜰한 가르침 아래 일 년도 안 되어 글을 뗐다. 아성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마음을 열고 그의 마음에 드는 아이가 되고 싶어 얼마나 독하게 글자를 익혔는지를 기억했다. 이것은 그 다음 이야기였다. 그가 글을 그럭저럭 읽게 되고 또래의 수준을 따라잡게 되어 학교 입학이 가능해지자 명루는 한없이 뿌듯해했다. 다섯 살 명대의 손을 잡고 명경까지 이끌고 네 명이서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 아성은 볼을 붉힌 채로 수줍게 웃었으나 사진은 붉어진 볼까지는 담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만 담았다.
“몇 살 때야?”
“열 한 살.”
청명은 액자를 들고서는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소파 한 가운데에 앉았다. 액자가 테이블 위에 얌전히 올려졌다. 청명은 머뭇거리며 서 있는 아성에게 이리 오라는 듯, 제 옆 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쳤다. 아성은 가 앉았다. 청명은 양복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 넣더니 지갑을 꺼냈다. 청명은 뉘에게 제사라도 올리는 듯 경건했고 엄숙했다. 아성은 숨을 죽이고 눈동자만 도록도록 굴리면서 청명을 살폈다. 확실히 그는 이상해보였다.
그의 손 끝에서 사진 두 장이 걸려나왔다.
청명은 아기의 사진을 제일 왼 쪽에 두고 그 액자와 그 사진 사이에 유아의 사진을 놓았다. 절로 시선이 옮겨졌다. 제일 어린 아기부터 소년까지 나이순으로 가지런히 놓여지자 그것은 서로 다른 사진 세 장이 아니라 명백하게 한 사람의 인생처럼 보였다. 청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성의 표정을 살피다가 일어서서 다시 액자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아성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이 마지막에 놓여지자 아성은 참을 수가 없어 씹어뱉었다.
“뭘 보여주고 싶은 거야.”
아성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다시피 했다. 그 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고 소중한 순간도 없었으며 고통과 자기학살만 있었으니 있는 것이 없는 것만 못한 기억이기는 했다. 아성의 열 살 이후는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기억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는 자신의 진실된 출생이 명루의 품에 안겨 정신을 잃었던 그 때가 아닌가 생각해왔을 정도로 어렸던 때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성은 의도적으로 고독과 고통으로 구성된 어린 시절을 유리시켰다. 고아원 침대에 몸을 묻고 존재도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그리던 때나 계이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던 순간들은 삶에 없는 편이 나았다. 청명이 아무 말 않고 있다지만 시계열순으로 놓인 것이 명백한 사진 네 장은 과거와 자신을 유리시켰던 아성에 대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너는 너의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청명은 과거로부터 온 사자(使者)였다.
하지만 출생이나 입양같은 것은 자신이 선택한 과거가 아니다.
“설명해!”
눈물없이 버럭 울부짖는 아성의 황망한 표정이 청명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아성을 상처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그에게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내 찾던 답의 끝에 아성이 있는 것을 알았으니 그에게 네가 내 문제의 답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당연했다.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멋대로 과거를 파헤쳐놓고서 주인의 의사도 고려치 않고 그의 인생을 뒤흔든다고. 뒤흔든다고. 청명은 자신을 고문에서 살려낸 사람에게 고문 비슷한 것을 선물로 내어놓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알 권리가 있었다. 청명은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아니할 생각이었다.
“그래, 설명할게.”
청명은 며칠 전 고아원에서 20년 간 일한 사람의 집에 찾아갔을 때를 떠올렸다.
14.
아성이 고아원에서 나간 지 일 년쯤 뒤에 그 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는 여자는 청명에게 굉장히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밤이 늦었고 그녀는 피곤에 절어 있었다. 고아원을 들고 나는 아이들은 수없이 많았고 그녀는 청명이 내민 사진들로는 고개만 저었다. 내가 애들 얼굴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살겠어? 그러나 청명은 결과를 얻는 데만 조급했기 때문에 그녀의 불편함은 무시하고 이기적으로 굴었다. 청명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그를 들인 여자에게 취조 비슷하게 윽박을 질렀다. 거실도 마땅찮게 없어 식탁에 둘러앉아서는 백열등만 달랑거리는 아래서, 청명은 내내 그녀의 기억이 남아있기를 희망했던 대목을 물었고 그녀는 다행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못 잊지. 잊어버릴 수가 없어. 그 날 얼마나 뒤집어 놓고 갔었는지.”
“아이가 바뀌었다고 했다고요?”
“원장이 그 여자한테 다른 애를 줘버렸었는갑지?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애새끼가 내 새끼가 아닌 거냐, 내 아들 내놓으라 고래고래 소리를 쳤어. 집기도 다 뒤엎고 그 날 저녁으로 끓이고 있던 탕도 뒤엎었으니 내 똑똑히 기억하지. 또래 남자애들이라곤 몇 없는데 그걸 또 지 새끼 찾겠다고 샅샅이 뒤지더라고. 애들은 경기 일으키지, 여자는 반쯤 미쳐서 비명을 지르지, 내 아직도 일하고 있지만 가장 최악의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야.”
“혹시 그 여자가 데려갔다는 아이가 어떤 아인지 아십니까?”
“입양간 지 두 해 정도 됐다데? 이름은 몰라. 그것까지 기억을 하고 있으면 내가 학자가 돼야지. 고아원 찾아 왔었다며? 것도 안 물어봤남?”
“관련 서류가 몽땅 불탔다 했습니다. 정말 아시는 게 없습니까.”
“다들 먹고 살기 힘든데 입양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 내 일하는 동안 입양간 놈들 몇 못 봤어. 입양을 갔다는 것만 해도 큰 거 아닌가? 애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어. 게다가 난 그 애를 제대로 본 적도 없다 이 말이야. 어떤 아이를 찾냐니,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거야.”
“그 여자가 원장하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를 말입니다.”
“했잖아. 그 여자가 애를 키우면서 뭐가 이상했던 모양이지. 원장하고도 친했고. 찾아와서 물었던 거에 원장이 이실직고를 했겠고. 내가 들은 건 그 여자가 찢어지게 비명을 지르던 게 제일 처음이야. 그러고 보니 그 여자가 그랬던 거 같은데. 애도 도로 데려가라, 내 애 이름도 도로 떼라. 개명시키고 파양도 시킬 테니 서류 가져와라, 애 전 이름은 뭐였느냐…….”
“전 이름이 뭐랍니까?”
“몰라. 그 여자가 미쳐 날뛰는 바람에 원장은 파랗게 질려서 도망가 버렸어.”
“그럼 여자의 이름은요?”
“…계이. 그 여자는 똑똑히 기억해. 원장이 그 여자가 그렇게 깽판치고 나간 다음에도 연락을 했었거든. 아들을 찾으려면 그 여자도 별 수 없었겠지. 그런데 그 여자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애 이름은 알아서 뭐하누? 그 여자를 어디서 찾게. 예전에 북쪽으로 가버린 이후에 연락도 끊겼다던데.”
“그냥 알아보는 겁니다.”
“애를 찾는 건가, 그 에미를 찾는 겐가? 니가 그 아들이야?”
“그냥 알아보는 거라니까요. 묻지 마십시오.”
“지는 물어보고 나더러는 묻지 말래. 이래서야 내가 순순히 대답을 해주나?”
“뭡니까.”
“안해줄거야.”
“뭐냐고요.”
“그 여자가 어쩌다 애가 지 애가 아닌 걸 알았을 거 같아?”
“모릅니다.”
“쯧쯔……. 영 얘기할 맛이 안나는구만. 그 애, 지 부모가 준 거라고 보물처럼 갖고 있었던 게 있던 모양이야. 그 여자는 그런 걸 준 적이 없었겠지.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혹시나 고아원에 찾아와서 원장한테 물었더니 혹시나가 역시나였던게지.”
“그 보물이라는 게 뭐였답니까?”
“무슨 돌멩이라던데. 그 여자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말한 거라 확신은 못하겠어.”
“네 생일은 나와 그리 멀지 않아. 손자가 둘 태어나고 난 다음 할아버지가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하나씩 채워주셨지.”
아성은 팔찌 안쪽에 희미하게 청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 새겼을 때는 더 선명했겠지만 세월이 지워버렸다. 옥구슬 두 개가 부딪혀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성의 서랍 속에는 이것과 비슷한 구슬이 있다. 그는 퍽 담담하게 팔찌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보더니 청명에게 숫제 던지듯 그것을 돌려줬다.
“넌 언제부터 알았어.”
“내가 네 방에 처음 들어가서 서랍을 뒤진 날에.”
“저런 건 흔해.”
“그런데 하필 구슬 하나 딱 떨어진 팔찌를 봤다던 사람이 있어서.”
“왜 말 안 했어. 나 갖고 노냐?”
“그냥 추측인데 뭘 굳이 말을 해. 맞으면 어떡하고 또 아니면 어떻게 하라고. 확실하지도 않은 일 갖고 예민하게 만들기 싫었던 거뿐이야.”
“예민해지지 않아.”
“예민하잖아.”
핑퐁처럼 튀어오고 튀어가던 말의 세례가 순간 뚝 멈추었다. 아성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청명은 다시금 제가 잘못하였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혼란하여 있는 대로 말을 던지던 아성은 분명히 청명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동그란 눈동자가 그리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성은 스물여섯이었고 스물 네 해 동안 없던 부모가 갑자기 생긴다는 것은 많은 것들이 송두리째 뒤바뀐다는 의미였다. 아성은 그것을 얌전히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다. 그는 선전포고를 하듯이 선언했다.
“나는 이대로가 좋아. 그분들껜 죄송하지만 지금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될 생각은 없어.”
“달라지지 않으면 돼. 있잖아, 너한테 이걸 알려준 건, 당연히 알아야 될 일이긴 하지만, 네가 알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지, 너한테 뭔가를 강요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야. 나는 알려주는 거야. 선택은 네 몫이야. 천지분간 못하는 아이라면 모를까, 사람은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권리가 있는 거잖아.”
아성에게 평생 동아줄은 하나 뿐이었고, 이제 와 그는 그 동아줄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아성은 변화를 바라지 않았다.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친부모보다는 제 손으로 힘들게 일구고 빚어놓은 쪽이 사랑스러웠다. 주려고 노력하였으나 매번 받기만 하였고 아성은 그 고마움과 부채감마저도 온전히 제 것으로 받아들여 아껴왔다. 친부모가 나타났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인 일이었고 고아에게는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일이겠으나 차분히 앉아 생각해보면 그리 충격적일 일도 아니었다. 청명이 옳았다. 그는 어중간한 위치에 선 만큼 굉장히 객관적이었고…… 아성을 배려한 생각을 해줬다. 청명을 잠시나마 현재를 무너뜨리려는 적으로 간주한 아성의 생각은 애초부터 틀렸던 것이다. 그는 아성이 버리고 아성을 버렸던 모든 것들의 대표가 아니라 다정한 사회자였다. 조금 더 스스로를 감동시킨다면 그는 온전히 아성의 편이었다. 무미건조하게 그런 생각들을 머리로 늘어놓고서는 어이없게도 정말로 감동을 받아버렸다. 아성은 뿌듯하고 따뜻하게 차오른 가슴을 어쩔 줄 몰라 했다.
“한 가지는 아쉽다.”
뭐가? 청명이 되물었다.
“너랑 가족이 될 수도 있었을 거 아냐.”
잊고 있던 것은 그와 제가 핏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하지만 괜찮아, 키스할 수 있음 되는 거지.”
아성의 입술이 나비처럼 가볍게 다가왔다 멀어졌다. 청명은 눈을 멀뚱멀뚱 뜨고서는 아무 말 없이 굳어 가만히 아성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성의 조그만 머릿속에 온갖 의문이 들어찼다. 아성은 항상 최악을 상정하는 버릇이 있었고 그의 불안 섞인 의문은 해안가를 달리는 성난 말처럼 끝간데 없이 달음박질쳤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 아성은 순간 다시 가족도 부모도 없는 고아가 되었다.
청명이 손을 잡아왔다.
아성이 정신을 차리려 작게 고개를 털고 청명을 다시 바라보니 그는 당황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격에 차 있었다. 부은 눈에 물빛이 반짝였다. 서툴게 웃으려다 그마저도 실패해버린 청명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어쩌면 나는…….
“그건 내가 달라지지 않게 해줄 수 있어.”
아성은 순간 청명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아성은 어설프게 잡힌 손을 빼냈다가 깍지를 꼈다. 얇고 연약한 피부 속에서 쿵쿵대며 울리는 심장의 박동이 귀에 들릴 만큼 고요했다.
“아성,”
아성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들어 청명을 보았다.
“내가 네 가족이 될게. 허락한다면, 우리는 사촌이 아니라, 무촌이 되는 거야.”
아성은 고등교육을 이수한 지식인인 데다가 공산당과 국민당 양측으로부터 군사교육까지 받은 훌륭한 인재였다. 아성은 자신이 이렇게 스스로를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올 줄 몰랐다. 이태껏 아성을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명루 뿐이었고 그는 분명 아성보다 9년을 더 살았고 더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들을 받았으니 그것은 별로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아성이 청명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청명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그의 연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거리던 아성이 순간 후두둑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와 있으면 자꾸 젖었다. 아성은 그 혹독하게 목을 죄었던 물이 얼마나 자신을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감싸 안는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난 너하고 가족이 될 운명이었나봐. 좀 우습지 않아? 알고 보니 내가 사랑하는 것도 너였고, 형제가 되어주겠다 다짐했던 것도 너였잖아.”
청명의 투박한 아성의 뺨에서 눈물을 걷어냈다. 그래서, 대답은 뭐야? 속삭이듯 묻는 얼굴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아성은 몸을 기울여 청명에게 입을 맞췄다. 버드키스에서 시작한 입맞춤이 점차 깊어져 둘은 금세 혀를 나누고 호흡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다. 청명은 아성의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2층 창문에서 사선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계단을 타고 내려와 그들의 머리 위를 비췄다. 청명은 아성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먼지가 영원히 내려앉지 않을 것처럼 시간은 느렸고 둘 뿐인 망망대저택도 영원을 관통해 온갖 소음이 제거된 것처럼 고요했다.
그것은 작은 혼례식 같았다.
아성은 청명에게 하얀 박스를 하나 건넸다. 안에는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벨트가 들어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제 반응을 기대하는 아성을 보자니 하려던 말도 쏙 들어가고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이건 날 묶어놓겠다는 거야? 아성은 발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생이
많아오
시엔셩
재업은
럽
응 아니야 시엔셩 거기 끝 아니야 이거 단거리 아니고 장거리 마라톤이야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가슴이 넘나벅차 숨쉬기힘드러 후욱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