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한국전쟁 서울 함락으로 인해 수도 이전에 대한 여론이 나오기 시작함.
특히 일제강점기 때부터 서울(사대문안과 그 인근)은 도시공간 부족과 난개발 문제로 인해 많은 도시문제가 발생했던 상황임.
이때 수도 이전론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음.
1. 임시수도론
통일 전까지 지방으로 수도를 임시 이전하는 것임.
서울은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위험하며, 남한 내부에서는 북쪽으로 치우쳐 있으니 통일 전까지 수도를 임시 이전하자는 주장이었지.
당시 수도 이전지역으로 강력하게 거론되었던 곳은 교통이 편리했던 대전과 대구였음.
2. 서울 도심 이전론
서울의 도심을 사대문안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국회와 중앙청까지 옮겨 수도로 만들겠다는 신도시 계획임.
북한에 비해 소지하던 강력한 정통성인 서울과 대도시 서울이라는 메리트를 유지하면서 도심을 이전하는 것이지.
사대문안은 북한 방어에도 힘들고, 일제강점기부터 이미 너무 낡고 난개발이 심하여 복구 대신 신도심 이전을 추구한 것임.
이때 거론된 곳이 영등포, 구로, 부평, 부천이었음. 모두 한강 이남이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고려된 곳은 사진에 나온 부평임.
부평은 평야라서 개발하기 쉽고, 고려시대부터 계양산이 있어 북부의 적을 방어하기 좋다고 정평이 나 있었으며
서울과 인천의 사이였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총독부가 부평을 ‘조선의 맨체스터’로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
하지만 이 두 계획은 다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진짜 단순하게 돈이 없어서;; 수도 이전이 불가능했음.
당시 서울은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가며 수복하면서 전쟁 중에도 각자 꾸준히 복구를 한 덕에 쑥대밭이 된 것도 아니었으니까.
결국 2는 반정도는 실현됐네.. 이전은 아니지만 영등포 구로만 - dc App
해당 계획은 박정희 정권에서 서울의 3핵도시계획을 통해 절반 정도 실현됨. 사대문안의 기능을 여의도/강남으로 분산시켰지.
그 당시에는 대부분 강남이였고 여의도는 국회 관련 기관만 물려받고 80년대 63빌딩 완공 이후에 천천히 발전했지.. 역사가 참 재밌긴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