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판관

大丘判官|大邱判官




정의

조선 후기 대구도호부의 지방 행정을 책임지던 종5품 지방관.



개설

조선시대 국왕의 명으로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관을 수령(守令)이라고 한다. 농민들은 수령을 안전(案前), 사또[使道], 또는 원님 등으로 일컬었다. 대구판관은 대구사또 또는 대구원님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내용

대구도호부는 종3품 도호부사[부사]가 부임하던 곳이었지만, 1601년(선조 34) 대구부에 경상감영이 설치되고 경상감사가 대구부사를 겸하면서 대구부의 행정은 대구판관(大丘判官, 大邱判官)이 담당하였다. 효종·숙종·영조 때 일시적으로 감사와 부사를 분리하여 판관을 폐지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대구판관이 대구부의 수령 역할을 하였으며 임기도 비교적 긴 60개월이었다.


판관은 종5품직으로 비교적 낮은 직급이었다. 그러나 대구판관은 경상감영이 있는 큰 고을을 다스리기 때문에 관록 있는 이들이 부임하는 것이 관례였다. 17세기 중엽 이후 대구판관은 주로 음관(蔭官)을 임용하는 자리였다. 음관은 가문을 배경으로 벼슬살이를 하는 이들이었으며, 생원이나 진사를 거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적으로 객사인 달성관(達城館)의 전패(殿牌) 앞에서 국왕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과 객사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의식은 부사를 겸한 경상감사가 주관하였다.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부의 판관은 수시로 감사와 비공식적인 접촉을 하면서 보좌관 구실을 하였다. 그리하여 감사의 정기적인 평가나 암행어사의 평가에서 나쁜 평가를 받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감사가 탄핵될 때에는 함께 탄핵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