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및 충청권으로 호남 인구가 많이 이동했지만


지역에 따라선 호남향우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곳은 인천과 부울경이다.



인천)


인천 충청도 출신들이 전라도 출신에 비해 많고 인천 토박이나


황해도와 미수복 경기도 출신 실향민 후손의 비중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충청도 출신들이 인천에서 거주한 지 오래되거나 정착한 사람들이 많은 반면


호남 출신들은 충청 출신 출향인에 비해 늦게 인천에 정착해 실질적인 영향력 차이는 훨씬 크다.



특히 인천은 전라도 출신만큼이나 충청도 출신자들이 영향력만큼이나 텃세도 심해서


전라도나 충청도 등 기호지방과 서쪽 지역의 영향력에 비해


동남쪽 지역인 경상도, 즉 영남 출신은 정착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세력이 미약하다.


일단 영남 지역에서 서울 및 수도권으로 이주한 사람이 호남 출신이나 충청 출신에 비해


지역 특성상 목소리를 못 내고 이질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울경)



부울경 동부 지역의 경우 호남 지역 출신 외지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만 수도권에 비해 토박이들이 많고


대경권, 제주도, 이북 5도 출신 후손들의 비중 역시 적지 않은 특성 상 향우회의 조직이 미약하다.


1970년대에 남동임해공업단지가 개발되면서 호남 출신 주민들이 많이 정착했지만 주류는 전라남도 동부 출신이고,


상당수가 경상도와 문화가 비슷하다 보니 전남 서부 지역 위주인 호남향우회와는 꽤 이질감이 있다.


당시 부산을 주름잡던 조폭 조직인 칠성파 등의 조직원들 중에 전라남도 동부 출신들이 굉장히 많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