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당서>


日本國者,倭國之別種也。以其國在日邊,故以日本為名. 


일본국은 왜국의 하나인데 종족이 다르다. 그 나라가 해 모양의 태두리(경계) 안에 있었으므로 일본(日本)이라고 이름을 하였다. 


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改為日本. 


혹자가 말하기를, 왜국은 스스로 그 나라의 이름이 고상하지 않다 하여 일본으로 고쳤다고 한다. 


或云:日本舊小國,併倭國之地. 倭國者, 古倭奴國也. 


혹자가 말하기를, 일본은 옛적에 소국이었는데 왜국의 땅을 병탄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왜국은 옛적 왜노국이다.


去京師一萬四千裏, 在新羅東南大海中. 依山島而居, 東西五月行, 南北三月行. 世與中國通.


(당나라) 수도(京師, 서안)에서 1만 4천 리 떨어져 있으며, 신라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다. 산과 섬에 의지하여 살고, (영토의 크기는) 동서로 다섯 달을 가야 하고, 남북으로 석 달을 가야 (끝에) 이른다. 대대로 중국과 통교하였다.


 


<위략>


倭在帶方東南大海中, 依山島爲國, 度海千里, 復有國, 皆倭種. 


왜국이 대방(황해도) 동남쪽 대해(大海) 가운데 있는데 산과 섬에 의지하여 나라를 이루었는데, 바다를 건너 천리를 가면 다시 나라가 있는데 모두 왜국 갈래의 나라다.


 


구당서를 보면 "일본"은 본래 왜노국(일본열도는 왜국의 속국이란 의미로 왜노국이라고 했음)이 아니고 일본열도인 왜노국을 병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당회요> 倭國古倭奴國也. 在新羅東南. 居大海之中. 왜국은 옛 왜노국이다. 신라의 동남쪽, 큰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위략을 보면 왜국이 황해도를 말하는 대방의 동남쪽의 '대해' 안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옛적에 지금의 요동반도 북한지역이 감싸는 황해를 소해(小海)라고 불렀고 그 아래의 산동반도와 남한이 마주보고 있는 바다를 대해(大海)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방위를 보면 호남지역에 왜국이 있는데 이곳에서 다시 바닷길로 천리를 가면 다시 왜국이 있는데 모두 왜의 종족이다 라고 해서 당시에 왜국이 한국과 일본열도에 걸쳐서 형성되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국이 처음에 한국의 남쪽에 있었다는 것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서가   후한서 입니다.


 


<후한서>


韓有三種. 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辰. 


한은 셋인데, 첫째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이라고 한다.


 '馬韓在西, 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


마한은 서쪽에 있으며 54개의 나라가 있었고, 그 북쪽으로는 낙랑과 접하고 남쪽으로는 왜와 접했다.


辰韓'在東,十有二國,其北與'濊貊'接.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열두 나라가 있으며, 그 북쪽은 예맥과 접했다.


弁辰'在'辰韓'之南,亦十有二國,其南亦與'倭'接. 凡七十八國,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으며, 역시 12개 나라로 이루어졌고, 그 남쪽으로는 왜와 접해 있다. 모두 합쳐 78개 나라이다.


 伯濟是其一國焉. 


백제는 그 중 한 나라였다. 


大者萬餘戶,小者數千家,各在山海閒,地合方四千餘里, 東西而海爲限,皆古之'辰國'也. 


큰 나라는 만 여 호, 작은 나라는 수 천 가였고,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있으며, 총면적이 네모진 땅의 둘레가 사천 여 리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막혀 있는데 모두 옛 진국이다.


 '馬韓'最大,共立其種爲'辰王',都'目支國',盡王'三韓'之地.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마한(馬韓)이 가장 컸으며, 그 종족(사람)들을 공동으로 세워 진왕(辰王)으로 삼았고, 목지국에 도읍하여 삼한(三韓)의 땅 전체를 다스렸다. 그 여러 나라의 왕들은 이전에는 모두 마한 종족 사람들이었다.


 初,'朝鮮王準'爲'衛滿'所破,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


처음에 조선왕 준이 위만에게 패하자, 남은 무리 수천 명을 이끌고 바다로 들어가 마한을 공격하여 무찔렀으며, 스스로 한왕이 되었다


'準'後滅絶,'馬韓'人復立爲'辰王'.


준의 후손이 끊어지자, 마한 사람으로 다시 진왕으로 세웠다.


 


위 기록을 보면 마한과 변한의 남쪽에는 왜국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한, 진한 변한의 땅의 둘레는 사 천 여 리 인데 모두 옛적의 진국(辰國) 땅이었음을 기록하고 있읍니다. 즉 본래 진국 땅에 마한, 진한, 변한이 새롭게 들어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한반도 왜국의 최초 기록인 산해경의 기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산해경>


蓋國在鉅燕南 倭北 倭屬燕


개국은 거대한 연나라의 남쪽에 있고 왜의 북쪽에 있으며, 왜는 연에 속한다. 


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조선(朝鮮)은 열양(列陽) 동쪽에 있고, '해(海)' 북쪽 산(山) 남쪽에 위치하며, 열양은 연나라(燕)에 속한다.


 


위 기록은 연나라가 기자조선의 요동 땅 2천 여 리를 찾이한 때로 기원전 300년 경 가장 강력했을 때의 기록입니다. '개국'은 '진국'을 말하는데 개국의 북쪽은 연나라의 남쪽에 있고 왜국의 북쪽에 있어서 한반도의 중간에 '진국'이 자리잡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 기자조선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 보이는데 열수가 청천강인데 청천강은 남북으로 흐르다가 하류에서 직각으로 꺾어서 서해로 흐릅니다. 열양은 '열수의 북쪽'이라는 의미로 청천강 남북 물줄기의 서쪽 땅을 말합니다. 연나라 최전성기 때의 영토가 청천강 유역까지 이르렀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산'은 백두산을 의미하는 것이고 '해(海)'의 의미는 중국에서 한국을 "바다의 중원"이라는 의미로 "해중(海中)"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황해도 이남으로 보면 됩니다.


 


왜국이 한반도의 남쪽에 있었음을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남대방(南帶方)>


曹魏時, 始置南帶方郡[今南原府], 故云. 帶方之南, 海水千里, 曰瀚海. 


조위(曹魏) 때 비로소 남대방군(南帶方郡; 지금의 남원부)을 설치하였다. 옛날부터 이르기를, 대방의 남쪽, 바다 건너 천 리 되는 곳의 바다를 '한해'라 한다


後漢建安中, 以馬韓南荒地, 爲帶方郡, 倭韓遂屬, 是也


후한 건안 연간에 마한의 남쪽 먼 땅을 대방군으로 삼았으니, 왜와 한이 드디어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조조의 위나라가 한국의 남쪽을 경략하여 남원에 치소를 두고 간접통치를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일제시대 남원 광한루 사진을 보면 "대방고부(帶方古府)"라고 적힌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남원이 고대시대에 한 때는 남한 전역을 통할하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치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한의 남쪽 땅을 경략하여 대방군으로 했는데 이 때 '왜'와 '한'이 대방군에 속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한'이 '왜'의 속국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력관계가 계속이어져서 삼한 땅에서 일어나 백제, 신라, 가야도 왜국의 속국으로 역사를 전개해 나가게 됩니다.


 


<양직공도 신라 제기>


 斯羅國本東夷辰韓之小國也. 魏時曰新羅宋時王斯羅其實一也.或屬韓或屬倭國. 魏時曰新羅宋時王斯羅其實一也.或屬韓或屬倭國


사라국은 본래 동이 진한의 작은 나라였는데, (북)위나라 시기에는 신라라 불렸고 송나라 시기에는 사라(斯羅)라 불렸으니 실은 같은 나라이다. 혹은 한나라에 속하기도 하고 혹은 왜국에 속하기도 했다


 


<양직공도 백제 제기>


百濟舊萊夷 馬韓之屬


백제는 옛적 래이의 부족으로 마한에 속했다.


晋末 駒麗略有遼東樂浪 亦有遼西晋平縣


(서)진 말기(서기 300년 경)에 고구려가 요동과 낙랑을 공략하여 차지하자, (백제) 또한 요서의 진평현을 차지하였다.


 


<수서 왜국전> - 621년 편찬 - 


新羅 百濟 皆以倭爲大國 多珍物 並仰之 恒通使往來 


신라, 백제 모두 왜를 대국으로 삼아서, 귀한 물건이 많아 또한 숭앙하였고, 항시 사신을 통하게 하여 왕래했다 .


 


양직공도 백제제기를 보면 백제인이 본래 산동반도 동단의 춘추시대까지 있었던 래국(萊國)과 이국(夷國)의 사람들이었는데 서해를 건너 넘어와서 마한의 영토에 백제를 세워서 마한에 속했다고 합니다. 백제의 건국지역은 황해도(대방군)입니다.


백제가 멸망하기 전의 시기와 가장 근접한 시기에 편찬된 수서 왜국전을 보면 신라와 백제가 왜국을 대국으로 삼아 사신을 파견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국이 처음 어디에 세워졌는지 사서의 기록을 통해 추정을 해보겠습니다.


 


 <日本書紀>


皇孫乃離天磐座...且排分天八重雲 稜威之道別道別而 天降於日向襲之高千穗峯矣. 


황손은 드디어 천반좌를 떠나서... 또한 겹겹의 구름을 걷어내고, 위엄을 갖추어 길을 가르며, 하늘에서 일향습의 고천수봉에 내렸다. 


旣而皇孫遊行之狀世者 則自 槵日二上天浮橋 入於浮渚在平處(...) 而膂肉之空國 自頓丘覓國行去(...)到 於吾田長屋笠狹之碕矣. 


얼마 후 황손이 유행(遊行)하는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자 스스로 환일의 천부교 두 봉우리에 올라 평평한 곳에 있는 물 위에 떠 있는 섬으로 들어가서 여육의 공국을 언덕을 지나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걸어서 오전장옥입협의 곶에 이르렀다.


 故天津彦火瓊瓊杵尊 降到於日向槵日高千穗之峯... 而膂肉之胸副國 自頓矩覓國行去 立於浮渚在平. 乃召國主事勝國勝長狹而訪之 對曰 是有國也 


그러므로 천진어화경경저존은 일향 환일의 고천수의 봉우리에 하강하여...여육의 흉부국의 언덕을 지나 나라를 찾으면서 작은 섬이 있는 평지에 내려섰다. 그래서 그 나라의 수장 사승국승장협을 불러서 나라가 있느냐고 물었다.


而立天孫之前 遊行降來 到於日向襲之高千穗 槵日二上峯天浮橋 而立於浮杵在平地 膂肉空國 自頓丘覓國行去


그리하여 천손의 앞에 유행하여 내려와서 일향습의 고천혜와 환일의 두 봉우리 위의 천부교를 걸어서 평지에 있는  물 위에 떠 있는 절구공이에 서서, 여육의 공국 언덕을 지나 나라를 찾아 나섰다.


 


위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는 곳이 "膂肉之空國" "膂肉之胸副國" "膂肉空國" 입니다. '여육(膂肉)' 등골뼈 바깥쪽에 붙은 살이고 '공국(空國)'은 고어로 읽으면 "구무누리"입니다. "구무누리"의 모음이 변하여 "구마나리"가 된 것입니다.


훈욕십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훈요십조>


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並趨背逆, 人心亦然, 彼下州郡人...


차현 남쪽으로부터 공주강 외곽(금강이 원을 그리면서 흐르므로 '外'는 외곽 즉 금강의 이북)은 산의 모양과 땅의 형세가 나란하게 뻗어 내려 등을 거꾸로 하고 있는 모양이라 인심 또한 그러하니, 이곳에 포함된 주군 사람들은...  - '下'는 '포함되다' 라는 뜻 -

(차현-소백산맥-금강이 이루는 망나니칼 모양의 땅을 '구마나리'라고 함 이곳이 소위 '배역지'라 지칭한 곳으로 해가 돋는 모양인 금강이 또한 척추뼈의 단면처럼 생겨서 생겨난 말)

 


<일본서기>


二十年冬, 高麗王大發軍兵, 伐盡百濟.


고려(고구려) 왕이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二十一年 春三月,天皇聞百濟爲高麗所破以久麻那利賜汶洲王,救汶洲王,救興其國


 21년 봄 삼월, 천황은 백제가 고구려에게 격파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마나리(공주) 땅을 문주왕에게 주어 문주왕을 구하고 그 나라를 다시 일으키도록 하였다. 


久麻那利者,任那國下 치呼里縣之別邑也. 久麻那利 


구마나리는 임나국에 속하는 치호리현의 별읍이다.


 


<삼국사기>


二十四年秋七月. 王作熊川柵. 馬韓王遣使責讓曰. 


24년 7월에 왕은 웅천책(熊川柵)을 축조하니 마한왕(馬韓王)은 사신을 백제로 파견하여 책망하였다.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其待王不爲不厚. 宣思有以報之. 今以國完民聚. 謂莫與我敵. 大設城池. 侵犯我封疆. 其與義何. 王慙. 遂壤其柵 , 


왕이 처음 강을 넘어 왔을 때는 발들일 곳이 없으므로 내가 (웅천강의) 동북방 100여리의 땅을 갈라주지 아니하였는가. 왕에 대한 대우도 후하게 하였으니 마땅히 이의 보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지금 국가를 이루고 백성이 모이자 우리를 적으로 대하여 성과 해자를 크게 설비하여 우리 강토를 침범하니 그 도리인가 하였다. 왕이 부끄러워하며 곧 (웅천)책을 헐었다.


 


 한국민족을 '배달겨레' 'ᄇᆞᆰᄯᆞᆯ족'이라고 하는 여기서 '배달(培는 'ᄇᆞᆰ(日)'의 고어)' 'ᄇᆞᆰᄯᆞᆯ'은 해가 돋는 모양을 하고 있는 금강 이남 즉 호남을 말합니다. 고어로 "ᄯᆞᆯ"은 '계집(女)'과 '뿌리(本)'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배달' 'ᄇᆞᆰᄯᆞᆯ'의 한자표기가 곧 "日本"입니다. 


금강이남과 낙동강 하류 이남 지역을 핵심지역으로 하는 한국의 왜국(倭國)은 고구려의 남진으로 도성을 나주에서 큐슈로 옮긴 후에 다시 한반도의 남부지역을 회복하여 호남은 '일본(日本)'이 되고 경남의 낙동강 이남 지역은 '가라(加羅)'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국(桓國)=일본(日本)=배달(培達)=밝달(朴達)=조선(朝鮮) 입니다. 즉 호남이 상고시대 환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