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남용되어 신분제 및 복제(服制)에 큰 혼란을 불러왔다. 5기는 “신(新) 예제 도입기”로 충렬왕~공양왕(1275~1392)의 시기이다. 원나라를 통해 남송(南宋)의 주자성리학이 도입되고 명나라 관복이 사여되는 등 새로운 예제가 성립되었다.
5기로 구분된 고려시대 관복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신라의 제도를 계승한 1기에 왕은 신라의 왕권을 상징하는 “天使玉帶”를 이어받아 큰 제사에서 착용하였고, 자황포(柘黃袍)를 입었다. 백관의 공복색은 자(紫), 단(丹), 비(緋), 녹(綠)으로 구분하였다. 관복제도는 관계(官階) 정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경종대 전시과(田柴科) 내용으로 보아 지역적 차이를 복색으로 표현했다고 판단된다.
예제가 후퇴하는 4기에 왕은 금나라로부터 9류면 9장복을 받았고, 색복은 시기 말에 국내적으로는 황포(黃袍)를, 국외적으로는 자포(紫袍)를 입어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백관복은 무신정권이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문무관복이 혼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융복(戎服)의 기록이 다수 확인된다.
새로운 예제가 도입되는 5기에 왕은 9류면 9장복을 착용하는데 3기와 비교하였을 때 류(旒)와 대대(大帶), 수(綬), 신발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색복은 자포와 황색이다
신라시대를 이어 받는건 이해가 가지만
금나라 관복을 왜??? 다들 이상하겠지만
저게 당연 한거임
금이 왜 고려를 형제의나라 청이 왜
조선을 부모의나라라고 불렀는지 알면
거대한 진실이 보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