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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도시에서 고층 아파트는 여전히 “필요한 선택”처럼 이야기된다. 땅이 좁아서, 효율적이어서, 공급을 빨리 해야 해서라는 설명이 반복된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도 고층 아파트 몇 동이 도시 한복판에 등장해 주변 경관과 가로 구조를 무너뜨리는 사례를 보면, 이 설명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문제는 밀도가 아니라 개발 방식의 관성이다.



1. 문제의식: 고층 아파트는 밀도의 해법이 아니라 맥락 파괴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구밀도 100명/km² 이하의 지역에서도 30층 안팎의 아파트 몇 동이 들어서며 도시미관이 급격히 나빠지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경우 도시는 고밀도가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저밀도의 장점도 살리지 못한다.
주변은 2~3층 규모인데 특정 지점만 과도하게 솟아오르면서 스카이라인은 기준을 잃고, 조망은 단지 내부로만 독점된다. 결과적으로 “왜 여기에 이런 건물이 있지?”라는 이질감이 도시 전체에 남는다.

이 문제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스케일이 붕괴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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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8층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높이다.

도시 설계 차원에서 보면 4~8층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높이다.
이 높이는 다음 조건을 동시에 만족한다.

1) 거리에서 사람의 표정과 활동이 인식되는 마지막 높이

2) 엘리베이터·주차·일조 관리가 안정적으로 가능한 범위

3) 가로 연속성과 스카이라인 조절이 가능한 상한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이 잘 채택되지 않는 이유는 기술이나 비용 문제가 아니다.

1) 분양 구조의 단순화
고층은 “조망 프리미엄”이라는 명확한 가격 논리를 만든다. 반면 중층 다동은 도시에는 이롭지만, 분양 마케팅에는 설명이 길어진다.

2) 행정 평가 기준의 한계
현행 제도는 가로 활성화나 공간 질보다 용적률, 세대 수, 층수 같은 정량 지표를 더 쉽게 관리한다. 그 결과 성의 없는 고층 타워가, 잘 설계된 중층 블록보다 행정적으로는 더 “편한 선택”이 된다.

3) 장기 운영 주체의 부재
디귿자(ㄷ자) 블록형, 공동주차장, 중정 중심 설계는 필지 통합과 장기 관리가 필요하다. 도시에는 이득이지만 단기 사업 논리에는 불리하다.



3. 이미 작동하는 해법: 중층 도시가 만드는 생활 밀도

사실 대안은 새롭지 않다. 4~8층 규모의 건물을 연속된 가로로 배치하고, 1층을 정갈한 상점과 생활 시설로 채우면 상권은 “만들지 않아도” 자생한다. 이는 대형 상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 구조다.

이 구조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1층의 질이 도시의 표정을 결정한다
높이가 아니라, 걷는 사람의 시선 높이에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잘 정리된 소규모 상점과 열린 입면은 유동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2) 주거–상업–산업의 느슨한 혼합
중간중간 비워진 필지에 대기업 사업장이나 연구시설이 들어오면, 도시는 베드타운이 되지 않는다. 오창 사례처럼 주거와 산업이 함께 존재할 때 거리의 리듬은 하루 종일 유지된다.

3) 작고 잦은 공공공간의 효과
대형 공원 하나보다, 작은 공원과 빈 공간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 바람길과 시선, 보행 피로도를 훨씬 잘 관리한다. 이는 미관 장식이 아니라 밀도를 조절하는 장치다.



4. 결론: 문제는 복잡함이 아니라 선택의 부재다

지금의 도시 문제는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해법을 제도적으로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된다.
고층 아파트는 예외적 상황에서만 필요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오히려 기본값처럼 사용되고, 그 결과 도시는 조망을 잃고, 가로를 잃고, 기억을 잃는다.

국토부와 시도는 더 이상 “지을 수 있다/없다”의 판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맥락에 맞는 층수 상한, 중층 블록형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 타워형 주거의 예외화만으로도 도시의 풍경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도시는 더 높아질 필요가 있는가, 아니면 더 잘 연결될 필요가 있는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