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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수도권은 이 균형이 무너진 대표적인 사례다. 인구밀도는 이미 극단적인 수준에 도달했지만, 이를 감당할 물리적 여유는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 도로는 좁고, 보행 공간은 불연속적이며, 차량과 사람은 항상 같은 공간에서 충돌한다. 평균 용적률은 계속 높아지지만, 그에 비례하는 도로나 공공 완충 공간은 거의 늘지 않는다. 도시의 모든 기능이 압축되면서, 일상은 흐름이 아니라 마찰로 구성된다.

 이 구조에서 가장 먼저 파괴되는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언제 길이 막힐지, 어디서 소음이 터질지, 어느 순간 시야가 과잉 정보로 포화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일상이 된다. 사람의 신경계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오래 노출될수록 경계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 상태가 만성화되면 피로는 사라지지 않고 성격처럼 굳어진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는 모두가 늘 조금씩 날카롭고, 조금씩 방어적이다.

 간판과 시각 정보의 문제는 이 맥락에서 단순한 미관 논쟁이 아니다. 상업 공간에서 경쟁적으로 증식한 간판들은 서로를 압도하기 위해 점점 더 크고, 더 밝고, 더 자극적인 신호를 뿜어낸다. 그 결과, 거리를 걷는 행위 자체가 끊임없는 선택과 판단을 요구하는 노동이 된다. 시선을 둘 곳이 없고, 쉬어갈 지점도 없으며, 시각은 계속해서 끌려다닌다. 이것은 도시가 사람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아니라, 소리를 지르며 흔드는 방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