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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당시, 이괄은 부하 이수백·기익헌 등과 함께 1만여 명의 병력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 중 130~150여 명의 항왜(降倭)(투항한 일본군)들이 선봉에서 조총을 앞세워 강력한 전투력으로 반란군의 초반 승리(한양 함락)를 이끌었다. 반란군 내 항왜들이 큰 위협이 되자, 조정에서는 동래의 왜인 1천 명을 용병으로 고용해 막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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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과 항왜의 역할 상세
  • 핵심 전력: 이괄이 가장 신뢰한 정예 부대는 임진왜란 때 투항했던 일본군과 그 후예인 항왜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의 조총 사격은 관군을 공포에 떨게 했다.
  • 동래 항왜와의 관계: 이괄의 난에 가담한 항왜들은 서아지(徐牙之)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관군에 소속되어 있던 다른 항왜 김충선 등과 맞붙기도 했다.
  • 동래 왜인 고용 건의: 반란군 내 항왜들의 전투력이 뛰어나자, 조선 조정에서는 경상도 동래의 왜관에 머물던 왜인들을 고용해 반란군을 막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책을 논의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 당시 부산 동래지역 인구가 1만여명으로 추청되는데 항왜가 무려 천명 있


었음 부산의 선조는 거의 반 일본인으로 봐도 무방


DNA오염으로 그 많은 인구를 가지고 명문대가 못가고 의대도 못가고


그냥 병신들만 수북히 쌓여있는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