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소련에서 망명한 예고로프는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이 결정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는 청중이 가장 열광적인 갈채를 보낸 연주자였고 준결승 리사이틀 후 기립 박수를  받았지만 심사에서 결승에 진출할 자격이 없는 것으로 판정받았다. 그러자 심사결과에 분노한 일부 청중들이 1등 상금 1만 달러에 해당하는 기금을 모금하여 예고로프의 뉴욕 리사이틀을 직접 후원했다.


망명이 승인된 후, 유리 예고로프는 네덜란드에 정착했고 1978년, 반클 라이번 콩쿠르에 참가해 이변을 일으켰다. 결승에 오르지 못하자 성난 관객들이 1등 상금 10만불을 모아 뉴욕 데뷔를 후원한 것이다. 그해 말, 카네기홀 무대는 그의 이름을 클래식팬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단 1년만이라도' 자신만의 삶을 살며 자신만의 예술을 펼쳐내고 싶었던 예고로프가 자유를 '승인' 받기 위해 치룬 댓가는 가혹했다. 평생 가족을 만나지 못했으며 위대한 스승 야코프 자크가 그의 망명때문에 지독한  고문으로 죽었다는 자책감을 견뎌야했다.  


유리 예고로프의 이탈리아 일기 1976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