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베르비에 라이브 보다 몰입이 안되서 오디오로 들으려 껐음.
오디오 세대라서 그런지 스프링쿨러처럼 뿜어져 나오는 땀방울에
관크, 기침소리, 전화벨소리 만큼이나 내 신경을 곤두서게함

연주자의 불편함과, 공연측의 안일함에 대한 짜증이 공명하면서
그런 불쾌함들이 음악을 온전히 듣지 못하게 하더라.
마지막에 카타콤 트레몰로 연주의 강약에서 연주가 고통이 느껴짐

아무튼, 전람회의 그림은 바베모만 즐겨듣던 나에게
고역 그 자체였음. 솔직히 그전까지 전곡을 온전히 들은적 없을 정도
누구는 예습을 한다던데,  유명한 연주가들의 연주 레퍼런스 있었지만

놀랍게도 가장 좋았던 것은 15살의 패기넘치는 조성진 연주
(나는 아직도 차콥때의 조성진을 추억한다...)

돌이켜보면 교향악적 편곡이 필요한 이유가 느껴지는게,
이 곡은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베교9번 과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
비탄,  분노, 광기, 카타르시스가 피아노 악보로는 너무 많이 손실됨

그 여백을 꿰뚫은 라벨 등의 작/편곡가가 관현악 곡으로 완성했을 것이고
이 곡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작곡가의 의도를 엿볼수 있는
그런 자질이 있는 사람들일 테지만, 평험한 리스너인 나는 그렇지 않았음.

아무튼 임윤찬 연주는 솔직히 작곡가의 악보를 상당히 변형했고
악보를 신성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불경하게 느껴졌을 테지만
(근데 이미 관현학 버전도 있는 마당에 그런 불평이 무슨 의미인지?)

오디오버전으로 벌써 수십번 반복해서 들은 지금에서 평하는건
작곡가가 이 곡을 써내려간 감정과 연주가 자신의 용암같은 감정이
공명하는 지점을 정말로 "Intelligence" 하게 버무린 연주라는 느낌

연주를 느끼면 광기어린 연주로 건반을 내리치는것처럼 보일수 있으나
실제로 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심지어 Baba Yaga 에서까지
계획과 계산이 들어간 차가운 이성의 통제가 엿보임.

우리가 듣고싶은건 연주가 자신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담긴 연주가 아님
오만상을 다 쓰면서 자신에 몰입한 연주가 꼴보기 싫은게 바로 그것

임의 연주는, 또다시 느끼지만.
온몸을 던질듯이 연주하는 연주가와 그 자신을 1미터 위에서 관조하며
계획하고 통제하는 지휘자적인 연주가의 모습이 중첩되어 있고

그런 치열한 양립, 몰입과 불협의 공명이 참으로 인간적인 우리를
말 그대로 울리고(resonating) 울리는(tearing up) 것 아닐까.
마지막에 키예프에 대문에서 (솔직히 눈물까진 안남) 울컥하는 이유일듯

아무튼 임의 이번 연주로, 얼빠들이 박멸될 수 있을것같아 좋다
임갤에서 외모 찬양하는거 꼴불견이었는데 쏙 들어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