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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6일, 프랑스 브장송에서 열린 33세 젊은 피아니스트의 독주회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공연이 시작되자 창백한 얼굴의 피아니스트가 힘겹게 무대에 올라 바흐의 파르티타 1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과 슈베르트의 즉흥곡 2곡을 연주한 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배열한 쇼팽의 왈츠 13곡을 선보였다. 마지막 왈츠 2번을 남겨둔 채 기력을 다한 피아니스트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병마는 그의 불굴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잠시 후 다시 무대에 오른 그는 평소 가장 사랑했던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연주하며 독주회를 마무리했다. 이 독주회를 끝으로 1950년 12월 2일,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는 영면에 들었다.

디누 리파티(Dinu Lipatti, 1917~1950)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사라사테의 제자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1살 때부터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탔고, 조금 더 자라서는 한 번 들은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며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루마니아의 걸출한 음악가 제오르제 에네스쿠는 그의 스승이자 대부가 되어 그를 지도했다.

에네스쿠의 가르침을 받은 리파티는 1933년 빈 국제 콩쿠르에 출전해 당당히 우승할 것처럼 보였으나, 심사위원들(펠릭스 바인가르트너, 빌헬름 박하우스 등 당대의 거장들)은 그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젊은 나이(16세)를 이유로 1등을 주지 않았다. 이 불공정한 판정에 분노한 알프레드 코르토는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던 파리 고등 음악원으로 리파티를 데려갔다.

(빈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폴란드 출신의 볼레스와프 콘 또한 2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1등을 빼앗았다는 오명과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삶을 비관한 끝에 음독자살했다. 이는 심사위원들이 한 피아니스트의 삶을 망가뜨린 사례로 남았다.)

파리에서 코르토의 지도를 받은 리파티의 음악 세계는 더욱 깊어지고 섬세해졌다. 완벽주의적이고 예민한 성격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그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지만, 동시에 지나친 예민함으로 인해 무대 공포증이 심해지기도 했다.

1943년, 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며 리파티는 조국 루마니아를 떠나 스위스로 정착했다. (스위스 출신의 명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가 그에게 제네바 음악원 교수직을 제안했으나, 그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운명은 가혹했다. 정체불명의 고열과 통증으로 독주회를 자주 취소해야 했고, 병원에서 결핵 진단을 받았다. 당시 결핵은 치사율이 높은 병이었지만, 문제는 그가 실제로 앓고 있던 병은 백혈병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백혈병은 불치병이었고, 리파티는 사실상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남은 생애를 음악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제네바 음악원 교수직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절친한 친구이자 EMI의 프로듀서인 월터 레그의 녹음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최신 치료법으로 잠시 병세가 호전되는 듯했으나, 1950년 그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생의 마지막을 직감한 그는 독주회를 열기로 결심했지만, 그의 몸 상태는 독주회를 치르기에는 너무나 나빴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모르핀을 맞으며 독주회를 강행한 그는, 앞서 언급한 대로 3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독주회는 절친한 친구 월터 레그에 의해 녹음되었다. 그러나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은 월터 레그가 리파티의 연주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녹음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어버려 녹음되지 못했다. 월터 레그는 이 곡을 녹음하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했다고 한다.)

'나는 음악에 봉사하는 사람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리파티는 누구보다 따뜻하면서도 심오한 음악을 추구했다. 그가 남긴 쇼팽, 바흐, 슈베르트, 모차르트의 녹음을 들어보면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그의 음색은 수많은 음악가들을 매료시켰으며, 특히 클라라 하스킬은 그의 음색을 무척 부러워했다고 한다. 완벽주의적인 성격 탓에 베토벤 녹음을 남기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의 주요 녹음으로는 쇼팽 왈츠 전집, 바흐-모차르트-슈베르트 녹음(EMI), 그리그-슈만 피아노 협주곡(EMI, 카라얀 지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협연),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EMI),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및 에튀드(EMI, 관현악 편곡 버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카라얀 지휘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 등이 있다. 이 녹음들은 그의 유려하면서도 섬세한 피아노 소리를 느낄 수 있는 명연주로 꼭 들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