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센 번역글은 너무 가독성이 떨어지고 새로 올라온 글은 챗GPT가 너무 요약한 듯 해서 기록용으로 나도 다시 올려




두 젊은 피아니스트, 한계에 도전하다(Two Young Pianists test Their Limits)


임윤찬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도전하고, 조성진은 라벨 마라톤을 선보인다.


2025년 3월 10일, 알렉스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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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위)과 조성진(아래). 임윤찬은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마치 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연주하는 화산 같은 재능을 지닌 피아니스트이며, 조성진은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지난달, 터무니없이 재능 있는 스무 살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캘리포니아 코스타 메사의 세거스트롬 예술센터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을 때, 청중은 내가 최근 클래식 공연장에서 들어본 것 중 가장 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보다 일주일 전, 서른 살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디즈니 홀에서 라벨 독주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도 관객들은 비슷한 열광적인 함성을 터뜨렸다. 두 공연 모두에서 객석의 평균 연령은 전형적인 클래식 공연장보다 확연히 낮았으며, 그 광경은 클래식 음악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해 내게 희망의 떨림을 안겨주었다.


임윤찬과 조성진은 모두 한국 출신이며, 한국계 청중이 그들의 탄탄한 팬층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두 사람 모두 음악과는 거리가 먼 가정에서 자랐으나, 스스로 피아노에 강렬히 매료되었다. 또한, 둘 다 화려한 스타 피아니스트의 삶을 추구하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개성은 확연히 다르다. 조성진은 우아한 연주자로,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지만, 때때로 의외의 표현적 개입을 시도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뒤집기도 한다. 반면 임윤찬은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마치 자신이 직접 작곡한 듯 연주하는 폭발적인 재능을 지닌 연주자다. 그 역시 특정한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데, 이번 시즌 그가 내놓은 주요 레퍼토리는 낭만주의와 정반대에 있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나는 그가 이 곡을 샌디에이고의 콘라드 프레비스 공연예술센터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오는 4월에는 카네기 홀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솔직히 말해, 조성진의 라벨도, 임윤찬의 바흐도 완전히 설득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조성진은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3년 뒤, 그는 디즈니 홀에서 쇼팽과 드뷔시로 구성된 사실상 완벽한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여린 피아니시모 화음을 벨벳 위의 에메랄드처럼 빛나게 만들었다. 2023년에 다시 같은 무대에 섰을 때, 그는 한층 날카롭고 예측 불가능한 연주자로 변모해 있었다. 헨델의 모음곡 5번은 매혹적인 우아함과 유연함으로 펼쳐졌지만, 브람스의 헨델 변주곡은 다소 갑작스러운 악센트와 과하게 계산된 프레이징 탓에 아쉬움을 남겼다.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은 풍성한 음향의 향연이었으나, 전체적인 응집력이 부족했다. 조성진은 각 순간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때때로 곡을 이끄는 중심선을 놓치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험적인 정신 덕분에 그해 가장 인상적인 독주회 중 하나가 탄생했다.


맑고 투명한 터치를 지닌 조성진은 라벨의 음악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올해는 라벨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로, 조성진은 라벨의 모든 독주 피아노 작품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투어 중이며, 이 곡들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음반으로도 녹음했다. 물론, 이 음반이 상송 프랑수아, 애비 사이먼, 스티븐 오스본 같은 거장들의 라벨 해석을 대체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의 연주는 지나치게 다듬어지고 통제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즈니 홀에서는 분위기가 한층 달아올랐다. "밤의 가스파르(Gaspard de la Nuit)"의 첫 번째 악장 "온딘(Ondine)"은 음반에서는 다소 기계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이날 무대에서는 황홀하게 빛났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악장인 "교수대(Le Gibet)"와 "스카르보(Scarbo)"에서는 위협적인 긴장감과 강렬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거울(Miroirs)"에서 "슬픈 새(Oiseaux Tristes)"들은 불길한 침묵 속에서 불안하게 노래했고, "바다 위의 작은 배(Une Barque sur l’Océan)"에서는 파도의 정점 위로 내던져지는 듯한 아찔한 감각을 선사했다.


조성진은 라벨의 피아노 작품을 채우는 소규모 성격 소품들에서는 다소 약한 인상을 남겼다. "고상하고 감상적인 왈츠(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의 변덕스러운 왈츠 변주들은 조성진이 부여한 것보다 더 많은 세기말적 아이러니와 매력이 필요했다. 마지막 곡인 "쿠프랭의 무덤(Le Tombeau de Couperin)"에 이르렀을 때는 집중력이 떨어졌고, 라벨의 신고전주의적 리듬에서는 특유의 경쾌함과 탄력이 부족했다. 조성진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마르셀 마이어(Marcelle Meyer)에 대한 존경을 표한 바 있는데, 그녀의 라벨 연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여전히 마이어가 각 프레이즈를 보이지 않는 춤의 한 걸음처럼 다루는 방식을 배울 여지가 있다.


솔로 마라톤을 마친 후, 조성진은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함께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연주했다. 이는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와 함께한 라벨의 두 피아노 협주곡 녹음(도이치 그라모폰 발매)의 연장선에 있는 공연이었다. 여기서도 실황 연주가 스튜디오 녹음보다 더 뛰어났다. 음반에서는 보스턴 심포니가 최대한 생동감 넘치는 연주를 들려주지만, 협주곡 G장조의 아다지오에서 조성진의 시공을 초월한 서정미를 향한 시도는 다소 맥이 빠진다. LA 공연에서는 예르비가 템포를 조율하며 이러한 늘어짐을 방지했고, 아다지오의 사티풍 주제는 부드럽게 흔들리는 몽환적인 선율로 변모했다. 앙코르로 조성진은 '톰보(Tombeau)'에서 리고돈(Rigaudon)을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연주했으며, 그것은 리사이틀에서의 연주보다 더 개성 있는 해석이었다. 결과적으로, 일주일에 걸친 라벨 집중 공연은 멋지게 마무리 되었다.


임윤찬은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클라이번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스티븐 허프는 임윤찬의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연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리스트의 화법, 규모, 개성을 이해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일종의 카리스마다.” 이 수줍음 많고 헝클어진 머리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그런 깊이 있는 이해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단번에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고, 마치 본능적으로 곡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듯하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의 유명한 도입부—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불길한 F단조풍 화음이 저음에서 울리는 F음과 함께 펼쳐지는 부분—에서부터 임윤찬의 마법은 즉각적으로 드러났다. 작곡가는 점진적인 크레센도를 요구하는데,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는 이를 주요 화음을 점진적으로 강화하며 저음도 이에 따라 증폭되는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자연의 힘과도 같은 왼손을 지닌 임윤찬은 저음의 F음에 점점 더 강한 압력을 가하며 청중을 낭만주의의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의 열정적인 반주가 더해졌지만, 처음부터 곡을 장악한 것은 임윤찬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기교를 과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연주는 내가 들어본 가장 교향적으로 통합된 해석 중 하나였다. 연주가 끝난 후 터져 나온 객석의 폭발적인 환호는 충분히 그럴 만한 것이었다.


라흐마니노프에서 바흐로의 도약은 상당한 조정이 필요한 일이다. 더 콘래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라호야 공연장은 유난히 섬세한 음향을 지니고 있는데, 때때로 임윤찬의 강렬한 음향이 바흐의 기하학적 구조를 압도했다. 마치 바그너 소프라노가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확실히, 이는 순수주의자들을 위한 연주는 아니었다. 임윤찬은 안드라스 쉬프를 따라 몇몇 변주곡의 반복 부분을 조옮김했다(7번과 19번은 한 옥타브 위로, 18번은 한 옥타브 아래로). 여기저기서 왼손에 옥타브를 추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선택은 세련된 감각 안에서 이루어졌다. 어차피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로 바흐를 연주하는 것 자체가 본래부터 ‘순수하지 않은’ 행위다. 바흐는 이와 같은 악기를 알지 못했다.


임윤찬은 이 우주적인 음악을 분명 깊이 숙고해 왔다. 반복 구간에서는 자연스러운 장식음이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특히 5번 변주곡에서는 이미 경이로운 수준의 16분음표 흐름 속에서 이러한 장식음이 더욱 짜릿한 효과를 발휘했다. 단조 변주곡에서는 몇 가지 인상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 15번 변주곡에서는 불협화음을 강조하고 애조 띤 선율을 부각시키며 고통스럽고 거의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장엄한 비애가 깃든 25번 변주곡에서는 높은 D에서 내려오는 선율에 강렬한 힘을 실어 강조한 후, 반복 부분에서는 같은 구절을 더욱 가라앉은 분위기로 표현해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지나치게 늘어져 정체되는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최근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지나치게 꾸며진 해석과는 달랐다.


불가피하게도,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라호야에서의 연주는 안드라스 쉬프, 머레이 페라이어, 이고르 레빗 같은 경험 많은 연주자들이 구축하는 유기적인 내러티브라기보다는, 강렬한 순간들이 모인 하나의 콜라주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흐의 미로를 탐험하는 임윤찬의 연주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이 음악은 그 누구에게도 모든 비밀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기에 앞서, 임윤찬은 이하느리(Hanurij Lee)의 "... 둥글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블렌드 ..."라는 짧은 작품을 선보였다. 이하느리는 열아홉 살의 한국인 작곡 신동으로, "슈퍼마켓 음악(Supermarktmusik)"나 "잘못 조율된 클라비어(Wrong Tempered Clavier)" 같은 제목의 작품을 발표해 왔으며, 쇤베르크, 메시앙, 슈톡하우젠에게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임윤찬의 정교하고도 공감 어린 연주는 그가 앞으로 탐험할 수많은 새로운 레퍼토리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앙코르는 리스트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이었다. 그것은 마치 태평양의 파도가 해안에 부딪히듯,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2025년 3월 17일 자 뉴요커 지면에 “한계를 시험하며”라는 제목으로 게재됨.


평론가 알렉스 로스(Alex Ross)는 1996년부터 뉴요커에서 음악 비평을 맡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