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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이런 맥락에서 임윤찬의 데카 계약은 단순한 음반 계약을 넘어서는 문화적 선언이다. 조성진이 도이치 그라모폰(DG) 대표 아티스트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임윤찬의 선택은 단순히 ‘또 하나의 메이저 레이블과의 계약’이 아닌, 클래식 산업 내 자신의 정체성을 천명한 결정이었다. DG가 투어, 영상 마케팅, 브랜드 협업을 아티스트 패키징의 일부로 보는 반면, 데카는 안드라스 쉬프나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사례에서 보듯 음악가의 자율성을 중시한다. 데카에서 발매된 임윤찬의 쇼팽 연습곡 음반은 LP를 연상케 하는 포맷, 해석 중심의 사운드, 비스듬한 조명 아래 자신을 응시하는 비주얼까지 결과보다 과정, 기교보다 구조를 중시하는 그의 방향성과 정확히 조응했다. 데카는 ‘DG 문법과는 다른 세련됨’을 임윤찬 팬들에게 제시한 셈이다.


20세기 후반의 클래식 음반계를 이끌던 이름이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글렌 굴드였다면, 2020년대 음반 시장의 화제성은 단연 임윤찬의 몫이다. 데카 레이블에서 발표한 쇼팽 에튀드 음반으로 2024년 그라모폰 어워즈에서 ‘피아노 부문’과 ‘올해의 신인’을 수상했고 BBC 뮤직 매거진 어워즈에선 ‘올해의 음반’ ‘기악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전례 없는 3관왕을 기록했다. 클래식 음반 시장의 최정점에 있는 이름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지만, 현실은 분명하다.


쇠퇴하는 전통 음반 산업의 흐름과 임윤찬의 급부상 시점이 교차한 것은 역설적인 행운이었다. 실물 CD 시장이 한계를 맞은 가운데, 오히려 어렵게 제작된 피지컬 앨범을 연주자의 해석이 집약된 편찬물로 평가하는 흐름에서 임윤찬이 등장했다. 데카는 이 맥락을 정확히 짚었다. 복고적 미감을 담은 쇼팽 에튀드 음반은 ‘음반이 예술이던 시대’의 기억을 환기시켰고, 음반 시장의 종언을 앞두고 음반 시장을 다시 흔드는 연주자로 임윤찬을 소개했다. EMI 해체 이후 정체성을 잃은 런던 시장이 임윤찬에 열광하는 이유다. 굴드나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처럼 음반을 통해 문화적 권위를 쌓았던 시대를 소환하며, 음반을 매개로 지금의 청중과 과거의 청중을 동시에 불러모은다. 임윤찬의 독특한 스타성은 연주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무너진 음반 시장 위에서 ‘기록의 권위’를 다시 불붙인 데서 비롯된다.


오늘의 임윤찬이 있기까지 세 명의 조력자가 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는 음악적 방향성과 해석의 깊이를 설계한 내면의 안내자였고, 아시아 시장의 매니지먼트인 목프로덕션 이샘 대표, 서구 시장을 담당하는 IMG 아티스트 니콜라스 마티아스는 임윤찬의 음악을 시장과 만나게 한 상업적 동반자다. 국내 리사이틀은 목프로덕션이, 해외 악단 내한 시 임윤찬 출연은 국내 기획사의 초청 연주 형태로 진행된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마티아스는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유롭스키, 안토니오 파파노, 키릴 페트렌코를 담당하면서 이들과 임윤찬의 협연을 연결했다.


다만 임윤찬은 클래식 비즈니스에서 흔히 보는 지휘자·피아니스트 파트너십 기반의 ‘동반 상승 모델’을 되도록 피하고 있다. 지휘자나 악단과의 지속적 예술 동맹을 구축하려는 또래 연주자들과 달리, 임윤찬은 과감히 ‘고립형 성장’ 노선을 택했다. 선후배 관계나 예의에 민감한 한국 출신 아티스트로는 드문 전략이다. 동일 지휘자와의 반복 협업에 따른 ‘케미스트리’라는 자산 대신, 베토벤 협주곡 3번,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협연에서도 자신의 해석을 중심축 삼아 상대를 흡수해나갔다. 네임드와의 시너지’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전략은 관계 서사까지 소비하려는 고관여 소비자들과 일정한 선을 긋는 행동이자, 본인이 중시하는 가치를 명확히 드러내는 제스처다. 누구와 연주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연주했는가만 남기려는 시도다. 예외가 있다면 파리 오케스트라에 이어 협연이 예정된 시카고 심포니의 메켈레 정도다. 프로코피예프,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처럼 상호작용이 필수적인 레퍼토리에서는 좀더 열린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처음 직면한 중대 고비는 손 부상이었다. 진단명은 염좌(sprain)였고, 유럽 주요 무대 다섯 곳의 공연이 연달아 취소됐다. 개인 연습, 리허설, 실연, 회복, 휴식의 루틴이 정교하게 작동하지 않으면, 투어 연주자의 몸은 필연적으로 마모된다. 단순 염좌를 경시한 채 무리하게 투어를 이어가다 건초염이나 더 큰 부상으로 악화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키신은 부상 재발 방지를 위해 커리어 내내 ‘5일 1회 연주’ 원칙을 고수했는데, 키신 정도 레전드급 투어 연주자에겐 연주 간격이 곧 생존 전략이란 것을 말해 주는 사례다.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도 멀지 않은 듯


임윤찬이 인터뷰와 홍보 활동을 자제하고 음악에 침잠하는 방식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청년 시절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음악을 둘러싼 외부 세계와의 ‘거리 설정’이라는 점에서 임윤찬과 지메르만의 잠행과 묵언은 오로지 연주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존재 방식’이자, 자신만의 음악관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다. 침묵과 거리 두기를 통해 심오한 예술의 경지로 나아가려는 태도는, 공연과 음반이 상품을 넘어 미학으로 승화되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은둔을 택한 마우리치오 폴리니처럼, 정말로 임윤찬을 ‘산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오는 18일 임윤찬은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블라디미르 유롭스키 지휘,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주요 관계자와 베를린 음악계가 이날 공연장을 찾아 임윤찬의 실력과 상업성을 가까이서 볼 것이다. ‘대세’ 메켈레 역시 평정심이 흔들렸던 베를린 필하모닉 무대다. 지금 추세라면 임윤찬의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도 멀지 않았다. 매 연주마다 흔한 작품의 파격적 해석을 기대하게 되는 지금의 흐름에서 임윤찬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임윤찬이 ‘미학적 수퍼스타’로 현현(顯現)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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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공연평론가·에투알클래식 대표. 런던 시티대 대학원 문화정책 매니지먼트 석사.

발레리나 박세은, 축구인 박지성 등 예술 체육계 명사의 에이전시와 문화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에투알클래식 대표를 맡고 있다.

월간 객석, 일본 오케스트라연맹에서 일했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다양성위원회 민간위원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353/0000051632

흔한 작품 파격적 해석 최정점에 선 임윤찬,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 한정호의 클래식 수퍼스타즈 2025년 상반기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화제 공연은 단연 클라우스 메켈레와 임윤찬의 파리 오케스트라 내한이다. 6월 10~11일 예술의전당, 13일 LG아트센터 서울, 15일 롯데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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