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당시 어설픈 피아노 실력이었지만 용기를 내서 악보를 구입했습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너무 오래되어서 이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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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듬떠듬 악보를 읽으며 집에서 혼자 연습했지만, 실력도 부족하고 끈기도 없어서 완곡하지는 못했죠.

아리아와 초반부 변주 몇 개 연습한 정도였어요.


어느덧 나이 먹고 50대 아저씨가 되었고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카네기홀 연주를 도이치그라모폰 스테이지 플러스로 들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건반악기 단일곡으로는 아마도 서양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이라 할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20대 극초반의 피아니스트가 인생 3회차 정도 되는 내공으로 연주하더라고요. 글렌 굴드 연주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 이상인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는데, 저는 21변주에서 22변주로 넘어가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악보에서는 다음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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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변주에는 Canone alla Settima (7도 카논)라고 적혀 있습니다.


참고로,


3변주: 1도 카논

6변주: 2도 카논

9변주: 3도 카논

12변주: 4도 카논

15변주: 5도 카논

18변주: 6도 카논

21변주: 7도 카논

24변주:: 8도 카논

27변주: 9도 카논


3의 배수 변주마다 3에 곱해진 숫자만큼의 음정 간격으로 카논이 등장하지요.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21변주 7도 카논을 느린 템포의 고뇌어린 몽환적 분위기로 연주하다가 마지막 음의 여운을 충분히 음미한 후에,

22변주의 첫음과 둘째 음을 누릅니다. 이 두 음에서 시작해 이어지는 선율에서 저는 그야말로 전율이 흘렀어요.

위에 첨부한 악보의 22변주를 보면, 왼손 엄지가 '솔'을 누르고 오른손 약지가 '미'를 누르죠.


이 두 음이 저에게는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이 던저져 작은 파문이 시작되는 순간,

어둠이 차 있던 공간에 틈이 생기고 빛줄기가 들어오는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파문(혹은 빛줄기)은 조용히 영역을 넓혀나가면서 호수 표면에 잔잔한 떨림을 만들어요.

이 구간이 도돌이표로 반복될 때는 이미 호수 전체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앞선 변주와 단절된 느낌이 아니라, 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서는 22변주가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22변주는 정말 가슴 벅차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글렌 굴드와 울라프손의 22변주를 일부러 찾아들어봤어요.






두 연주자 모두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지만,
임윤찬이 연주한 22변주의 그 특별한 느낌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22변주 이후로는 거의 넋을 잃고 들었던 것 같아요.
정신 차리니 마지막 아리아가 연주되고 있더군요.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고요.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이번 연주는 저에게 22변주의 새로운 매력을 깨닫게 해 주었어요.
21변주의 마지막 음을 길게 끌어가고, 22변주의 첫음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것을 보면 이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연주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런 해석을 했는지 그저 놀랍고 놀라울 뿐이에요.
저에게는 그야말로 '심장을 때리는 음'이었습니다.

솔직히 골드베르크 앨범 나오면 쇼팽 에튀드와는 또 다른 차원의 평가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