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홀 CEO 이자 예술감독이 쓰신 골베 앨범 해설

BACH: Goldberg Variations

BACH: Goldberg Vari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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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이 클래식 음악계에 몰고 온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파급효과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음악계 전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피아니스트의 황금기라 불려 마땅할 축복받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어떤 클래식 악기보다 피아노에서 유독 두드러지며, 작금의 피아노 콩쿠르의 수준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임윤찬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대를 대표하는 연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도적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올랐다.



위대한 아티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 무엇인지 누군가 물어올 때마다 나는 언제나 예외 없이 ‘겸손’이라고 답한다. 모름지기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에게는 재능과 헌신, 자신의 예술에 대한 열정, 통찰력과 호기심, 해석하려는 작품에 대한 분명한 구상을 비롯한 수많은 덕목들이 요구된다. 그러나 음악을 대하는 겸허한 마음이 없다면 그들이 연주하는 작품에 담길 통찰과 관객들이 느끼는 감동은 이윽고 한계에 봉착하고 만다. 겸손함은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는 핵심 동력인 호기심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연주에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으며,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더라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스스로와 타인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통찰을 더욱 예리하게 벼려낸다. 음악계에 몸담아 온 60여 년의 시간을 통틀어 나를 진정으로 탄복시킨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음악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가 항상 인격적인 겸손함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임윤찬은 의심의 여지없이 양쪽 모두를 갖춘 인물이다.



임윤찬의 관심사는 언제나 음악 그 자체와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고정되어 있다. 그는 연주자의 소임이 작곡가와 관객들 사이를 잇는 전달자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일찍이 로스트로포비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음악 작품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주하면서 무엇에 집중할지 정하는 것이다. 연주자는 작곡가와 관객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다. 만일 당신이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직접 곡을 쓰는 작곡가가 되는 편이 낫다. 그러나 모차르트와 베토벤, 차이콥스키나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연주하기로 결정했다면 당신은 각각의 작품을 연주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용하는 음색 역시 명확히 구별하여 관객들이 연주자 본인의 스타일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차이가 진정한 예술가와 고만고만한 연주자를 판가름한다.” 카네기홀에서의 첫 공연을 마친 후 임윤찬과 대화를 나누며 살면서 꼭 이루고픈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실로 단순했다. “제겐 두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는 평생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하며 가능한 많은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예프게니 키신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공연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 대답은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반의 주제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이번 녹음으로 영원히 후대에 기록될 지난 시즌 카네기홀에서의 임윤찬 리사이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이렇게 부담이 큰 콘서트를 앞두고 으레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하겠지만, 임윤찬은 공연 당일 음향 및 영상 팀을 위하여 일찌감치 무대에 올라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연주했다.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음악계에서 바흐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위대한 연주자들은 거의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최후에 마주하게 될 궁극의 음악적 관문으로 바흐를 꼽았다. 파블로 카살스는 96세를 일기로 사망하는 순간까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만큼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그야말로 평생에 걸쳐 이어지는 끝이 없는 탐구의 연속이다. 위대한 아티스트가 평생을 바쳐 걸어온 이러한 여정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건 음악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다. 이들의 해석은 그들의 삶과 더불어 끊임없이 자라고 발전하며, 이들의 개인적 탐구의 여정을 복기하는 것은 다시없을 호사다. 그러나 이는 결코 그들의 초기 해석이 나중 것만 못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지에 오른 아티스트에게 있어 각각의 연주는 그저 당시의 그가 어떤 연주자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결과물일 따름이다. 이 앨범에 담긴 임윤찬의 놀라운 연주 역시 예술가로서 그의 현재, 적어도 몇 달 전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임윤찬의 연주를 목격한 직후 우리 홀의 예술 기획 팀은 여태껏 내린 것 중 가장 쉬운 결정을 통과시켰는데, 우리 홀의 메인 무대인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움 / 페렐먼 스테이지에서 솔로 리사이틀을 갖도록 그를 초청한 것이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우리 홀의 보다 작은 공연장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후 점진적으로 큰 무대로 옮겨가지만 이번 경우는 그런 가능성을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 모두는 지금 우리가 장차 세계 전역의 관객들에게 오랫동안 감동을 선사하며 탁월한 커리어를 쌓아 나갈 것이 분명한 특별한 예술가의 첫 발자국을 목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데뷔 리사이틀 무대에서 쇼팽의 연습곡 전곡을 연주한 임윤찬은 쇼팽의 음악에 대한 깊고 심오한 혜안을 보여주며 앞으로 이어질 카네기홀에서의 연주 경력의 첫 시작부터 자신의 예술관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임윤찬은 자신이 연주하는 모든 음들 하나마다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며, 위대한 아티스트들이 응당 그러하듯 벌써부터 피아노를 연주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다. 물론 그는 실로 탁월하고 흠잡을 데 없는 기교를 갖고 있지만 단순히 모든 음을 빠짐없이 연주하는 것은 오늘날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그 음을 통하여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에 달려 있다. 지극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임윤찬의 터치는 음악을 듣는 청자들로 하여금 그가 과연 건반을 건드리긴 한 것인지, 혹여 어떤 마법을 부려서 건반이 스스로 연주하게 만든 건 아닌지 되묻게 한다. 새로운 발견과 경탄, 해석에 대한 겸손함이 녹아있는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연주는 이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적 여정을 비로소 시작하는 단계에 있음을 잘 보여주며, 그는 이 연주를 통하여 이 탁월한 작품을 인생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나눌 수 있게 된 자신이 받은 특권과 일종의 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마린 알솝은 이렇게 평했다. “임윤찬은 심오한 음악성과 경이적인 테크닉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 대단히 희귀한 아티스트입니다”.


카네기홀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는 이런 임윤찬의 감명 깊은 여정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는 이미 우리 카네기홀 음악 가족의 핵심 인물이자, 함께 하는 것이 오히려 영광으로 느껴질 정도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Clive Gillinson © 2026

카네기홀 대표 겸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