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서울에서 KBS교향악단의 새로운 장을 열다**


이상권 글, 2026년 1월 1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KBS 정기연주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프로그램이었으나, 그 틀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정명훈이 제10대 음악감독으로서 지휘대에 오른 첫 연주회였기 때문입니다. 레퍼토리는 그대로였지만, 그것을 둘러싼 프레이밍이 달라지면서 듣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광택이 아니라 노출 위에 지어졌습니다. 마치 문자판을 걷어내 기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스켈레톤 시계 같았습니다. 음색은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었고 비브라토는 엄격히 아꼈으며, 기본 템포는 리듬의 관절과 화성의 전환점이 구조를 떠받치는 하중 지점으로 들리도록 한 발 물러섰습니다. 기교는 과시가 아니라 가독성이 되었습니다. 반음계적 장식이나 셋잇단음표처럼 흔히 ‘연결구’로 흘려보내기 쉬운 패시지도 주제 선율만큼이나 세심하게 조각되었습니다. 경이로운 광경이었습니다. 다만 그의 루바토는 숨을 쉬는 것이라기보다 숨을 고르려 멈추는 것에 가까웠고, 클라이맥스를 향해 쌓여야 할 긴장은 분석적인 템포 안에서 휘발되고 말았습니다. 밀리미터 단위로 마감된 카덴차는 장인적 완성도로 눈부셨으나, 드라마는 어딘가 약간 거리를 둔 채 남았습니다.


칸초네타에서 카바코스의 절제는 더 깊어져, 범접할 수 없는 거장의 경지로 바뀌었습니다. 선율은 너무 작아 마치 빌려온 숨으로 겨우 지탱되는 듯한 소리에 실렸는데, 전성기를 지난 가수가 쉰 목으로 마지막 노래를 밀어내듯, 끊어질 듯한 선을 위태롭게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것은 차이콥스키의 온기라기보다 온기의 기억에 가까웠고, 향기를 기대한 청중에게 그 풍경은 가혹할 정도로 건조하고 엄숙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엄정함은 끝까지 유지됐습니다. 소리가 물러서는 방식이 마지막까지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미누엔도는 정교하게 조절되었고, 색채는 창백해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걷어졌으며, 목관은 실내악적 거리감에서 응답하며 그 고독이 우연이 아닌 설계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피날레는 가장 논쟁적인 악장이었습니다. 알레그로 비바치시모 지시에 맞서 카바코스는 더 느슨한 기본 템포를 설정하고, 무거운 짐을 끌어올리는 윈치처럼 움직였습니다. 회전 하나하나가 계측되고, 톱니가 한 칸씩 정확히 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독주자가 속도에 묻어 흐려버리는 패시지마저 음표 하나하나 분절되었으니, 차원이 다른 테크닉이었습니다. 그러나 느린 악장 이후 돌아와야 할 해방감은 끝내 온전히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구간에서 속도가 다소 붙기는 했으나 그 고양감은 완만했고, 긴 단락이 환희보다 인내를 요구하는 동안 객석에는 조바심이 잔물결처럼 번졌습니다.


카바코스가 소리를 해체했다면, 정명훈은 베토벤에서 소리를 부풀리고 채우는 쪽으로 일했습니다. 그의 에로이카는 시대악기 연주 특유의 짧고 각진 어택 대신, 여유로운 템포와 풍성한 배음으로 가득 찬 울림을 택했습니다. 둥글게 시작되는 어택, 길게 이어지는 잔향, 조화롭게 융합된 성부. 두 개의 내림마장조 화음이 울리는 순간 악장의 스케일이 단번에 설정되었고, 정명훈은 그 긴장을 끝까지 이어갔습니다. 발전부 끝, 재현부 직전에서 그는 오케스트라를 진정한 피아니시모까지 끌어내렸습니다. 맥박은 살아 있으되 소리는 가청의 경계까지 물러났다가, 재현부가 툭 하고 되튀며 돌아왔습니다. 긴 코다 깊숙한 곳에서도 그는 다시 한 번 텍스처를 전하를 머금은 정적까지 가라앉혔습니다.


푸가토에서 정명훈은 각 성부를 부각시키기보다 하나의 누적되는 팽창으로 형상을 잡았습니다. 비극은 날카롭게 물어뜯기보다 묵직하게 눌렀습니다. 장송행진곡에서 그의 해석은 가장 설득력 있게 펼쳐졌습니다. 저현이 무게를 깔고, 목관이 꾸밈없는 인간의 목소리로 말했으며, 마지막의 파편화는 침묵 자체가 구조적 수사가 될 만큼 길게 잡힌 쉼표들로 테두리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연주가 언제나 구상을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베토벤은 집단적 딕션에 의존하는데, KBS는 바이올린에서 종종 일체감을 잃었습니다. 빽빽한 대위법 속에서 내성부가 흐려지고 앙상블의 결속력이 느슨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스케르초는 조심스러웠습니다. 피날레에서 정명훈은 프로메테우스 주제를 하나의 긴 호흡으로 다루었습니다. 변주들을 연속성 속에 묶어내고, 밀도가 내적 정렬을 시험하는 와중에도 종결을 향해 의지를 갖고 밀어붙였습니다.


남은 것은 아직 배아 단계의 파트너십이었습니다. 깊이와 울림, 유기적 통일을 향한 정명훈의 지평은 이미 분명했지만, 때로는 오케스트라의 현재 동기화 수준보다 한 발 앞서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보던 리뷰 수준이 아니네... 진짜 이런 리뷰가 많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