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를 콩쿠르에서 떼어낼 수는 있지만, 때로는 콩쿠르를 피아니스트에게서 떼어낼 수는 없다.


조성진의 국제적 커리어는 2015년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캐나다의 준우승자 샤를 리샤르아믈랭을 제치고)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당시 21세였던 이 한국인 피아니스트는 곧바로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했고, 전 세계를 도는 숨 가쁜 콘서트와 리사이틀 일정이 이어졌다.


이제 23세가 된 그는 화요일 밤 오타와 데뷔 무대에 올랐는데, 부상당한 랑랑을 대신해 사우스햄 홀에서 솔로 리사이틀을 연 것이었다. 우리가 들은 것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젊은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그의 정서적 표현과 정체성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확고한 테크닉에 아직 완전히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조는 베토벤 소나타 두 곡, ‘비창’과 Op.109, 드뷔시 「영상」 제2권, 그리고 쇼팽 소나타 3번을 연주했다. 그날 저녁을 관통하는 단어는 ‘정확함’이었다. 모든 것이 다듬어져 있고, 정통적이며, 보수적이었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진 데가 없었다. 


모든 음악가가 열정적인 기질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이 연주는 마치 조가 아직도 콩쿠르 모드에 있는 것처럼 들렸다.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지나친 개성으로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조심하는 상태 말이다. (그는 화려한 랑랑과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조의 테크닉 어느 부분도 흠잡을 수 없다. 공격성 없이도 깊은 힘의 저장고를 지니고 있다. 소리는 모범적이며, 언제나 둥글고 매력적이다. 그의 해석적 선택 가운데 거슬리거나 불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처럼 끊임없는 조심스러움은 결국 다소 오트밀처럼 밋밋한 결과를 낳는다.


조의 ‘비창’은 전형적으로 들렸는데, 특히 2주 전 이곳에서 리처드 레이먼드가 보여준 전율적이고 신선한 연주와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Op.109는 학구적이었다 — 예쁘기는 했지만, 심오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연주하면서도 불꽃은 거의 없는 연주가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쇼팽 콩쿠르 금메달리스트로서, 쇼팽 소나타 3번에 대한 기대치는 높았다. 조는 이 곡이 자신의 레퍼토리에 새로 들어온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실제로 음악적으로 아직 길을 더듬고 있는 듯 들렸다(그가 연주한 모든 곡에서 그랬듯, 음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1악장은 구조와 형태가 부족했다. 조는 한 부분을 연주하고, 그다음 또 다른 부분을 연주했을 뿐, 이를 강하게 연결하는 실마리는 없었다. 3악장의 서정적인 주요 주제는 더 많은 한숨 섞인 벨칸토적 부드러움이 필요했다. 피날레 역시 꽤 조심스럽고 절제되어 있었는데 — 코다에서는 음 몇 개쯤 틀려도 좋으니 조가 정말로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