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계 긍정적 반응>
주요 비평가 및 간행물 (1955–1956)
폴 흄 (Paul Hume) - 워싱턴 포스트 (The Washington Post)
1955년 D.C. 라이브 콘서트 리뷰"글렌 굴드는 세상을 위해 나타난 희귀한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다... 우리는 어떤 연령대를 막론하고 그와 같은 피아니스트를 본 적이 없다."
윈스럽 사전트 (Winthrop Sargeant) - 뉴요커 (The New Yorker)
사전트는 굴드의 접근 방식에 대해 지적이고 높은 수준의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그의 기행(Eccentricity) 이면에 숨겨진 광채를 알아차림.
기타 초기 지지자들: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스위크(Newsweek), 그리고 *뮤지컬 아메리카(Musical America)*에서도 극찬과 비평적 찬사가 쏟아짐. 이들은 굴드의 기술적 광채, '춤추는 듯한 경쾌함(Dancing sprightliness)', 그리고 독특하고 분리된 듯한 **'쳄발로 같은 터치'**를 강조함.
핵심 지지층: 흄과 사전트 외에도 많은 젊은 비평가와 청취자들이 즉각적으로 그를 수용했음. 1955년이 콜럼비아 레코드가 새로운 재능을 홍보하는 전환점이 됨에 따라, 이 22세의 예술가는 지지자들에 의해 빠르게 옹호되었음.
<부정적 반응>
출시 초기에는 클래식 음악 비평계의 '구세력(Old Guard)', 특히 유럽과 뉴욕의 보수적인 진영은 회의적이었음.
특정 비평가 및 잡지
해럴드 숀버그 (뉴욕 타임스): 숀버그는 나중에 굴드의 주요 지지자가 되었지만, 1955년 당시 낭만주의 전통에서 너무 멀리 벗어난 '기괴한(eccentric)' 해석에 대해 회의감을 표함.
초기 영국과 유럽의 비평가들은 바흐의 지적인 깊이를 훼손한다고 느껴지는 그 템포에 자주 충격을 받았음.
'기계적'이고 '건조하다'는 비판: 독일이나 프랑스의 보수적인 유럽 잡지 비평가들은 이 연주를 '재봉틀(sewing-machine)' 음악이라 불렀는데, 이는 다이내믹한 명암 조절의 부재와 논레가토 아티큘레이션을 지적한 것.
'자의적'인 템포와 프레이징: 비평가들은 이것이 음악을 심오하게 만들기보다 가볍거나 **'과시적(showy)'**으로 만든다고 느꼈음.
감정적 깊이의 결여 (건조함): 그들이 바흐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던 **'따뜻함'이나 '관능미'**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함.
기계적/재봉틀식 접근: 그를 피아니스트가 아닌 **'기계'**에 비유.
굴드가 모든 도돌이표를 생략한 것을 '오만함 혹은 무지함'의 소치로 봄.
1950년대의 많은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이 녹음을 진지하고 정당한 음악적 돌파구가 아니라, 콜럼비아 레코드의 **선정적인 마케팅 상술(ploy)**로 보았음.
결론
당시 유럽의 주류 학구파 저널들은 압도적으로 회의적(Heavily skeptical)이었음. 이들은 굴드의 연주를 '의도적으로 어리석거나(Wilfully idiotic)', '자극적인 상술(Sensationalist)'로 몰아세웠음.
지역적 편차: 영국과 프랑스가 가장 비판적이었음. 굴드의 기교를 '기계적'이라 비하하며, 유럽의 영혼이 담긴 전통과 대조되는 '미국식 상업 제품'이라며 텃세를 부렸음.
독일: 흥미롭게도 독일은 세대 차이가 뚜렷했음. 구세력은 거부했지만, 모더니즘에 열광하던 젊은 지식인층은 굴드의 구조적 명징함에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보았음
흥미롭다
이런글 좋다 재밌게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