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임윤찬(피아노). 데카 클래식스 4871517. 총 재생시간 77분.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카네기홀 실황 특유의 팽팽한 기운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이번 앨범은 듣는 사람을 피아노 바로 앞으로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고, 홀에서 실제로 음악을 마주하는 것과 흡사한 자연스러운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 덕에 홀에 감도는 잔향이 서서히 흩어지는 과정조차 음악적 프레이즈를 빚어내는 요소가 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임윤찬은 이 대곡을 각기 다른 액자에 담긴 서른 편의 소품으로 쪼개어 연주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풀어낸다. 바흐의 음악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치밀하고도 강렬한 수사학으로 읽어낸 것이다.
반다 란도프스카가 하프시코드로 이 곡의 맥박을 되살리고, 글렌 굴드가 피아노로 강렬한 해석을 각인시켰다면, 임윤찬의 연주는 그와는 또 다른 결을 지닌다. 그는 선율 속에 절제된 낭만성을 스며들게 한다. 그것은 결코 감정 과잉으로 흐르지 않으며, 오히려 대위법의 엄격한 논리를 잃지 않은 채 음악이 스스로 유려하게 노래하도록 만든다.
바흐가 직조해 낸 음악적 구조는 더없이 엄격하다. 아리아의 기저에는 32마디의 화성적 토대가 견고히 깔려 있고, 서른 개의 변주는 세 곡씩 열 묶음으로 정연하게 배열된다. 매 묶음의 마지막 곡이 모방 간격을 점차 넓혀가는 카논이라는 점도 치밀하다. 이 빈틈없는 규칙은 마지막 묶음의 콰들리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틀을 허물며, 한가운데 우뚝 선 제16변주의 프랑스풍 서곡은 이 방대한 작품을 두 날개로 가르며 균형을 잡는다. 놀라운 점은 임윤찬의 연주를 거치면 이 모든 정교한 장치들이 건조한 도식으로 휘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피아니즘 안에서 바흐의 설계도는 귓가에 아련히 맴도는, 한 편의 기억 속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의 피아니즘은 묵직한 덩어리보다 선명한 윤곽을 택한다. 음의 시작과 끝을 명징하게 세공해 각 성부를 또렷이 살려내면서도 소리가 경직되는 일은 없다. 페달 사용 역시 극도로 절제되어 있어, 화성들이 서로를 옅게 물들일 만큼만 허용할 뿐 대위법적 가독성은 끝내 놓치지 않는다. 그의 서사가 가장 입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반복부다. 임윤찬에게 반복은 기계적인 복사본이 아니라 온전한 ‘두 번째 발화’다. 소리의 균형이 은밀하게 재편되고, 색채가 새롭게 배합되며, 때로는 선율의 무게중심이 다른 음역으로 슬며시 이동한다. 이런 변화가 축적되며 만들어 내는 심상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한다. 창틀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통과하는 빛은 매 순간 달라진다.
아리아는 이러한 해석의 단단한 기조를 세운다. 선율은 깊이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결코 생기를 잃지 않으며, 반복부에 이르면 같은 프레이즈가 기계적 복제가 아니라 내밀한 회상으로 변모해 다가온다.
이러한 접근은 바흐의 가장 엄격한 작법과 만날 때 더욱 선명해진다. 동도 카논인 제3변주를 임윤찬은 반듯하게 채워 넣은 연습문제나 건조한 모범답안처럼 제시하지 않는다. 선율이 그리는 선은 또렷하게 새겨지되, 반복부에 이르면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내성이 숨을 쉬면서 기계적 모방은 더욱 짙은 울림으로 바뀐다. 첫 번째 비르투오소적 아라베스크인 제5변주에서도 이 절제는 그대로 유지된다. 과감한 손 교차 대목에도 주저함은 없지만, 아티큘레이션은 각 성부의 결이 투명하게 읽힐 만큼 날렵하게 살아 있다. 기교의 현란함이 연주자를 과시하는 대신 오직 음악의 문장을 세우는 데 봉사하는 것이다. 이토록 아득한 속도에서는 홀의 잔향이 자칫 불꽃을 흔들 수 있다. 마치 대성당 안에서 잠시 떨리는 촛불처럼. 그러나 그 경건한 불은 꺼지지 않고, 음악이 나아가는 방향 또한 끝내 흐트러지지 않는다.
제7변주는 구조의 틀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유희의 문을 활짝 연다. 리듬의 탄력은 약박에서 경쾌하게 솟아오르고, 장식음은 포근하게 부풀려지기보다 각기 또렷한 선을 세운다. 반복부에 이르면 음색은 한층 밝아지는데, 마치 하프시코드의 두 단 건반을 오가는 발상처럼 들린다. 그 결과 음악은 민첩한 연극성을 띤다. 몸짓과 타이밍, 음색 모두가 정교한 수사의 일부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낭만성이 가장 짙게 배어나는 제13변주 역시 흐름의 단절이 아니라, 같은 방법론이 보다 내밀한 방향으로 확장된 결과처럼 다가온다. 여기서 임윤찬은 건조하고 분리된 타건에서 한 걸음 물러나 피아노의 공명을 한층 유연하게 풀어내며 칸타빌레의 정수를 드러낸다. 선율의 윤곽은 부드러워지고, 아리아가 남긴 아득한 잔광도 다시금 살아난다.
제16변주의 서곡은 이 거대한 건축물을 여닫는 경첩과도 같다. 점음표가 빚어내는 수사학적 제스처가 팽팽한 푸가적 보행으로 전환되며, 후반부를 향한 새로운 토대를 단단히 놓는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어지는 제20변주다. 여기서 임윤찬은 가장 예리하고도 대담한 양식적 모험을 감행한다. 특유의 점리듬을 한층 육체적인 스윙의 감각으로 밀어붙이는데, 이 해석은 보다 균질한 표면을 기대하는 청자에게는 지나치게 도드라진 파격으로 들릴 여지도 있다. 사단조 아다지오인 제25변주는 이 연주의 연속성이 시험대에 오르는 지점이다. 임윤찬은 불협화음이 충분히 어두워질 만큼 템포를 늦추면서도 저음의 걸음을 결코 멈추지 않음으로써, 곡의 구조가 달콤한 정서 속에 굳어 버리는 것을 막는다. 어떤 청자는 이 너른 호흡이 하나의 정서적 색채를 너무 오래 끌고 간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선율선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그 덕분에 개개의 반음계적 굴절은 기교로 과시되기보다 피부로 체감된다. 이어지는 제29변주의 화음은 단지 거대한 덩어리가 아니라 건축적 설계로 들리고, 콰들리벳은 일상의 선율을 엄격한 논증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여기서 민요 선율은 단발적인 농담으로 소비되지 않고, 오래된 기억처럼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물론 이러한 접근에 대한 이견의 여지는 있다. 보다 균질하고 매끈한 양식적 표면을 선호하는 청자라면 그의 변형된 반복을 지나친 개입으로 들을 수 있고, 홀의 풍성한 잔향이 가장 민첩한 악구의 예리한 세공을 다소 둥글게 만든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임윤찬의 이러한 접근은 바로크 연주의 근본 전제 위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분명한 당위성을 얻는다. 당대의 건반 악보는 닫힌 대본이라기보다 실현을 전제로 한 열린 단서에 가까웠다. 아티큘레이션과 장식, 다이내믹은 물론 반복의 처리 방식까지도 연주 관습과 수사학적 의도에 상당 부분 맡겨져 있었다. 동시대 작곡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악보에 기입했던 바흐가, 오히려 연주자들이 관습적으로 메우던 영역까지 지나치게 상세히 적어 넣었다는 이유로 1730년대에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이는 역설적으로, 당대 음악에서 연주자의 개입과 자유가 얼마나 당연한 권리였는지를 보여 준다. 따라서 이 연주를 클랑레데, 곧 ‘음향적 화법’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임윤찬이 반복부에서 들려주는 두 번째 진술은 개인적 방종이 아니라 치밀한 논증이 된다. 견고한 화성의 토대는 온전히 유지되고, 다성부의 궤적은 투명하게 투영되며, 매번 새롭게 발화하는 자유는 오직 음악의 표면 위에서만 허용된다.
마지막에 제자리로 돌아온 아리아는 깊은 절제를 통해 처음의 전제를 끝내 완성한다. 이 작품이 하나의 문장을 발음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식을 시험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맨 처음의 문장이 돌아온다. 템포는 한 걸음 물러서고, 타건은 한없이 가늘어지며, 홀의 잔향만이 부드러운 잔상처럼 맴돈다. 끝내 마음에 남는 것은 향수다. 고요하고 명징하며, 기나긴 여정을 끝까지 통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향수. 그것은 단지 흘러간 시간을 뒤돌아보는 얄팍한 감상이 아니다. 가장 단순명료한 선율 속에서, 그 문장을 발화하는 존재가 이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묵묵히 목도하게 하는 감정이다.
북미 음악평론가협회(MCANA) 협회지
대단히 공신력 있는 평론임
https://classicalvoiceamerica.org/2026/03/08/lims-goldbergs-on-cd-letting-romanticism-in-to-sing-bachs-argument/
원문도 클릭
리뷰 수준이 장난아님
저런분한테 그분들은 아마추어같다고 망언을 ㅋ
여기 ㅇㄱㄹ 들아 음모론 그만 펄치고 이거나 읽고 좀 삶을 정성들여 살자
글 너무 좋다 공유 ㄱㅅㄱㅅ
한국인 유일의 그라모폰 평론가이자 북미 평론가협회 평론가님 그라모폰지에 그라모폰 평론가님들이 일찍부터 일 골베 리뷰 신청를 엄청 많이 해서 아쉽게 그라모폰는 다른 평론가가 선정됐는데 그 후에 북미 평론가협회 비평지에 신청해서 선정된 임 골베 리뷰
리뷰 수준 엄청나다
평론가님 임 페북 팬그룹에 리뷰 공유하심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yunchan&no=56459&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