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임윤찬 언급 외 러셀 셔만에 관한 이야기들과
손민수 피아니스트의 철학에 관한 인터뷰들도 번역 해 옴

매우 길지만 주옥같다. 
관심있는 사람라면 꼭 한번씩 꼼꼼히 읽어 보길 추천 함


본문에 있는 손민수 베토벤 소나타 추가

Russell Sherman: A Way of Living
러셀 셔먼: 하나의 삶의 방식

1977년 한국에서 태어난 손민수는 다양한 관심사를 존중해주던 열린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랐다. 한때는 운동선수나 의사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고, 그로 인해 예술고등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그는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환경 속에 들어가자,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폭넓게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손민수는 자신의 문화적·음악적 정체성이 어린 시절부터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를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로서 진정으로 형성한 것은 New England Conservatory에서 보낸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한예종에서 김대진과 이경숙에게 1년간 사사한 뒤, 그는 “운명처럼” 보스턴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스승 Russell Sherman(1930–2023)과 그의 아내 변화경을 만나게 된다.

손민수는 자신을 셔먼의 “영원한 제자”라고 여긴다. 그에게는 언제나 “셔먼 선생님”이다.
“제 스승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겁니다.”
그의 말투에는 분명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그저 함께 앉아 차를 마시며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스포츠든, 정치든, 무엇이든요. 이제 그가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픕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는 여전히 “매일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업을 받은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답을 찾지 못한 질문 앞에 서게 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셔먼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그것은 음악적인 질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인간적인 문제들까지 포함됩니다.”

셔먼과의 개인 레슨은 결코 편한 조건이 아니었다. 손민수와 동료 학생들은 그의 집까지 가기 위해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그 수고는 그들이 얻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삶과 음악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셔먼은 결코 평범한 스승이 아니었고, 말 그대로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하나의 연주 방식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였고,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수학한 러셀 셔먼은 폭넓은 학문적·문화적 소양을 체득했고, 이는 그의 가르침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는 학생들이 다른 예술, 자연, 그리고 더 넓은 세계와 적극적으로 관계 맺도록 독려했다.
“그가 우리에게 처음 내준 과제 중 하나는 단테의 『지옥편』을 읽고, 강연을 들은 뒤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학생에게는 식물을 키우며 그 성장 과정을 기록하게 하기도 했죠. 또 동물원에 데려가 동물들이 어떻게 울고, 어떤 소리를 내는지를 듣게 했습니다. 마르셀 마르소가 보스턴에 왔을 때는 공연을 반드시 보고 감상문을 써야 했습니다.”

셔먼은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언변으로 깊이 존경받았다.
“그는 ‘어휘의 사람’이었습니다.항상 우리의 표현력이 너무 제한적이라고 말하곤 했죠.”
많은 음악가들과 달리, 셔먼은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언어로도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손민수는 셔먼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그가 늘 독서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곤 했다.
“저는 그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꼭 확인하고, 그 책을 찾아 제 서가에 더하는 것이 일종의 의식처럼 되었어요.”

그의 음악적 철학은 교육 방식만큼이나 확장되어 있었다. 손민수는 한 유명 피아니스트가 어떤 작품에 대해 하나의 해석으로 정착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셔먼이 불만을 드러냈던 일을 떠올린다.
“셔먼 선생님은 음악에서 하나의 생각을 고정할 수 있다고 보지 않으셨습니다. 늘 눈을 열고 있어야 한다고,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셔먼의 시선에서 영감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레슨 도중 그는 갑자기 멈춰 서서, 나뭇가지의 곡선이나 새의 소리, 지나가는 동물, 혹은 “노을 속 색의 층위”를 관찰해보라고 하며, 그것을 음악적 색채와 연결 지어 설명하곤 했다.

셔먼에게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단순한 연주 행위가 아니라, 삶 그 자체와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으면 인간의 모든 경험과 대면했습니다.울고, 탄식하고, 억누를 수 없는 기쁨과 분노, 열정을 느꼈죠. 그는 이 모든 감정을 마음속에 그려냈습니다.”
인간 감정의 복합성은 그의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곡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완벽하게 다듬는 데 몰두하는 것, 그건 선생님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Pianists are Painists"
“피아니스트는 ‘고통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올해 2월 선전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손민수는 한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피아니스트는 painists입니다.”
그 말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터뷰를 통해, 이 표현이 사실은 셔먼의 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분이 그런 말을 하신 건, 인간 삶의 본질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것을 잊고 살아가죠. 물론 기쁨의 순간도 있지만, 삶의 많은 부분은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그것을 피하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음악은 그런 고통에서 비롯됩니다.”

손민수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존경하는 대부분의 음악가들도 이 생각에 공감할 거라고 믿습니다. 작곡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과 마주합니다. 물론 빛의 순간도 존재하지만, 그것은 종종 어둠과 함께합니다. 우리는 음악 앞에서 스스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답’을 찾으려는 여정 속에서 진짜 고통을 느끼게 되죠. 그것은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조정하고, 질문하고, 조금이라도 그 답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입니다.”

셔먼의 미학의 중심에는 확신이 아니라, 그것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그가 말한 “탐구(quest)”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제가 그를 공연장으로 모셔다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동 중에 그가 이렇게 말했어요. ‘내 삶의 마지막에 남길 단어는 “탐구”여야 한다.’ 그것은 그가 평생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정체성에 대한 탐색,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음악 속 이상적인 세계를 향한 추구였죠.”

이러한 ‘탐구’의 감각은 셔먼의 연주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왜 우리는 라이브 연주를 필요로 할까요? 아마도 그것이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불완전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것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연주에서는 드라마가 살아 움직입니다. 연주자는, 혹은 어떤 예언자적 존재로서, 작곡가가 만들어낸 거대한 극적 풍경 속을 청중이 지나가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긴장과 이완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그 흐름 속에서요. 그것은 결국 진실을 향한 탐색입니다.”

나는 인간의 언어 자체에도 고통의 감각이 내재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passion이라는 단어는 사랑과 고통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으며, 그런 고통 어린 사랑에서 compassion이 비롯된다고 말이다. 이에 대해 손민수는, 셔먼이 무엇보다도 두 가지 덕목, 연민과 자비를 늘 강조하곤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주변을 향해 깊은 자비를 지닌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지진과 같은 먼 곳의 비극조차도, 그의 레슨에서는 즉각적이고 진심 어린 반응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스승과 마찬가지로, 손민수는 음악을 보편적인 언어로 본다. 점점 더 분열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주는 언어로서.
“요즘 사람들은 하나의 생각을 굳게 믿고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갈라놓죠. 목소리가 크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상에서는, 같은 말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는 지금 이 시기에 특히 바흐와 베토벤에 몰두하고 있으며, 그들의 음악을 “깊은 증언”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형제애,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고, 서로의 말을 듣는 법”을 이야기한다.
음악이 끝없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손민수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말한다.
“고통과 취약함입니다. 이 둘은 모두 불완전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취약함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모든 연주는 열린 대화에 기여해야 합니다. 누군가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 시작하면, 저는 흥미를 잃게 됩니다. 이미 삶에는 그런 확신에 찬 목소리가 너무 많으니까요.”

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작품 110번)의 아리오소 돌렌테가 바로 그런 취약함의 순간을 보여주는 것인지 물었고, 그는 곧바로 동의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는 그 음악에서 바흐의 「요한 수난곡」 중 “다 이루었다”(그의 해석으로는 “나는 이루었다”)를 떠올린다고 했다.
“베토벤은 아마도 끝이 가까이 왔음을 느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작곡에 몰두했죠.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위치에 두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고통의 무게를 깊이 느꼈던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충분히 해냈다, 나는 이루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푸가에서는 일종의 기도가 들립니다. 천국의 문 앞에 선 천사들의 모습 같은 것이죠.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깊이 취약한 순간입니다.”

소나타 마지막 악장의 극적인 흐름, 마치 작은 칸타타를 연상시키는손민수의 녹음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드러난다. 나의 언급은 그의 보다 진솔한 답변을 이끌어냈다.
“그 악장에 대한 저의 첫 영감은 바흐의 「요한 수난곡」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고통이 있고, 어떤 이상향을 향한 탐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코다에서는 모든 것이 집약됩니다. 확대와 축소 기법이 극도로 활용되며 푸가가 전개되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승리의 결말로 보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요. 그것은 아름다운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을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러셀 셔먼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을 녹음한 최초의 미국인이었고, 손민수 역시 비교적 많지 않은 음반 작업 속에서 소나타 전곡을 남겼다. 자연스럽게, 셔먼의 베토벤 해석이 손민수의 연주에도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생각에 선을 긋는다.
“그것은 제 피 속에,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가 특정한 부분들을 어떻게 연주했는지 깊이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그와 비슷하게 연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선생님은 한 번도 같은 방식으로 두 번 연주한 적이 없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제 안에서 스스로 자라납니다. 셔먼 선생님이 제 해석 속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북극성 같은 존재입니다. 저는 그저 그 빛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할 뿐입니다.”

실제로 셔먼의 가르침은 모방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했다.
“제자들의 연주가 자신의 연주와 닮아 있다면, 그는 누구보다 먼저 실망했을 겁니다. 그는 특정한 연주 방법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직접 보여줄 때조차 그것이 ‘정답’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는 성의 없는 연주를 싫어했습니다. 모든 순간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심지어 모든 쉼표까지도요. 그는 자신의 길을 보여주었지만, 그 길을 따라오도록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셔먼에 대한 기억 가운데, 손민수에게 특히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88세로 마지막 연주회를 앞두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셔먼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작품 109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그 곡을 연주해 왔습니다. 70년이 넘는 시간이었죠. 저 역시 그 연주를 열 번 이상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네 번째 변주만을 위해 열 시간을 연습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부분도 아닌, 단순한 상행과 하행 선율을 가지고요. 그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왜 이제야 더 깊이 탐구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어리석게 느껴졌다고도 말했죠. 우리의 탐색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Teaching without Answers
정답 없이 가르치기

모교이자 셔먼이 한때 재직했던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서, 손민수는 이미 높은 평가를 받는 교육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나의 칭찬에 그는 곧바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제가 훌륭한 교사라는 전제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려는 것은 단지 피아니스트로서의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그 점에 있어서는 학생들에게 전혀 아끼지 않아요.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때로는 함께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항상 답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것,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많은 발견으로 이어지는 그 출발점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불필요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질문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정말 의미 있는 질문을 찾으려 합니다.”

그가 셔먼에게서 배운 많은 것들은 지금도 그의 가르침을 형성하며,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살아 있는 흐름을 이루고 있다.
“저는 학생들에게 셔먼 선생님과 제 사이에서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늘 들려줍니다. 그래서인지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음에도 학생들은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거의 할아버지 같은 존재로 여기기도 하죠. 제 수업의 큰 부분은 그의 가르침, 그의 연주, 그의 삶을 나누는 데 있습니다.”

셔먼과 마찬가지로, 손민수는 규범적인 권위를 경계한다.
“저는 제가 어떤 곡을 이미 안다고 전제하지 않습니다. 제 연습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을 하나의 방식으로 고정해버리는 순간, 가르치는 일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됩니다. 저는 학생들의 탐색 속에서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제 경험에서, 때로는 어떤 생각이나 철학에서 출발해, 그에 대한 응답을 건넵니다. 그런 열려 있는 태도가 아마도 셔먼 선생님이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일 겁니다. 생각을 바꿔도 괜찮습니다. 사실 저는 종종 학생들이 저에게 배우는 것보다, 제가 그들에게서 더 많이 배우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것이 저로 하여금 끊임없이 제 자신의 기반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교육자로서 그는 신체적 개별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기술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의 ‘올바른’ 방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손의 형태, 팔, 몸통, 심지어 몸을 지탱하는 방식까지도요. 정신이 이끌어야 하지만, 몸은 그 토대입니다.”

그에 따라 그는 학생마다 다른 방식으로 가르친다.
“저는 예측 가능한 교사가 아닙니다.” 어떤 학생에게는 더 유연해지고, 사고를 넓히고, 회복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반대로 더 예민한 학생에게는 긴장과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 할 수도 있다.
“긴장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이완과 부드러움이 함께해야 균형을 이룹니다. 그것이 삶의 법칙입니다. 우리의 호흡도 그렇죠: 긴장과 이완. 어떤 학생에게는 이 부분을 매우 세밀하게 다룹니다. 팔과 손, 심지어 호흡 속에서 긴장과 이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요. 반대로 건반 앞에서 지나치게 조급한 학생에게는, 마음이 너무 바쁘면 이해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술적인 지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손민수는 자신의 수업에 보다 “실질적인 측면”도 있음을 인정한다. 아마도 “손가락 번호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던” 셔먼과는 다른 점일 것이다.
“가장 까다로운 레퍼토리를 연습하다 보면 구체적인 문제들이 생깁니다. 때로는 손가락 번호를 두고 길게 이야기하기도 하죠. 물론 이상적으로는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손가락 번호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니까요. 가끔은 분명한 문제가 보이기도 합니다. 연주 자체를 망치기 때문이라기보다, 프레이징이나 선율의 흐름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른바 “황금시대” 피아니스트들의 기술적 접근도 언급한다.
“예를 들어 리파티는 엄지손가락의 유연성을 강조하며, 오로지 엄지로만 음계를 연습해 레가토를 기르라고 했습니다. 부조니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중시했죠. 호로비츠는 때로 손을 완전히 평평하게 펴서 깊이 있는 음색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먹이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논의 끝에, 손민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한 기교가 아닙니다. 덕에 관한 것이고, 온전한 예술가가 되는 문제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술은 예술성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는 농담처럼 덧붙인다.
“차라리 ‘사랑하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네요!”
기술은 정말 필요할 때에만 다루어진다.
“만약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운명이라면, 저는 그것이 가장 어려운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발견하고자 하는 충동이죠. 바로 그것이 천재성을 만들어냅니다.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뿌리를 둔 깊은 결단력입니다.”

“탐구하는 것,” 내가 말했다.
“탐구하는 것, 그리고 탐구를 위해,” 손민수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