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ㆍ공감하는 글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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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이 적은 글입니다.


1. 지금 우리 문화예술계 부문중, 그래도 <뮤지컬>쟝르가 꽤 크게 성장하여 자리잡았다고 생각됩니다. 불과 30년전만해도, 우리나라 뮤지컬은 소재도 없고, 가수도 없고, 연기자도 없는 걸 떠나서, 제대로 제작해 본 경험도 없고, 설령 만든다고 해도 무대에 올려서 어떻게 장사를 해야할 지 몰랐던 때입니다. 장사라고 하니 조금 저렴하다는 분들이 계시면, 마케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게 그거죠.


2. 우리나라 <뮤지컬>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대중문화쪽에서 유입되어 들어온 유명스타와 때마쳐 시작된 자금과 공간이 어우러진 것으로 분석들하지만,


3. 이벤트 만으로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로, 1990년대 중반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개관하면서, 당시 예술의전당이 기획하거나 공동기획한 <cats>나 <오페라 유령>, <레미제라블>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이 큰 계기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4. 물론 국내제작사가 기획한 <명성황후>같은 뮤지컬도 꽤 유명하게 장기공연을 하며 지금까지 공연을 했지만, 큰 흐름에서는 3항에서 언급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성공하며, 기운을 북돋은 바가 크다하겠다.


5.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건, 당시 에술의전당에서 <오페라 유령>을 호주측 버전으로 수입해 올 때, 그 팀이 가져온 제작 메뉴얼이었다. 큰 캐비넷 하나가득 각 파트별 제작 메뉴얼이 있었는데, 예술의전당 스탭들 대부분은 이를 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세세함을 떠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표준화되었고, 일관된 지침으로 제작하도록 적혀 있었고, 이를 통해서 모든 준비가 이뤄졌기 때문에, 세계 어디에 어느 팀이 가도, 언제나 거의 비슷한 수준의 <오페라 유령>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호주 버전을 가져왔어도 브로드웨이와 전혀 차이가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 때, 우리들은 비로서 <뮤지컬>이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게 된 것이다.


6. 당연히 예술의전당 스탭은 물론, 공동기획에 참여한 관계사 직원들은, 책임자는 물론, 말단 무대제작 망치 기능공까지 모두 이 지침에 따라 무대제작을 했고,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의 분장과 행동 등등 모든 걸 관리하였고, 이를 거의 한두달 하면서 체득할 수 있었다. 당시 이 경험을 한 모든 스탭들은 훗날 우리나라 뮤지컬이 제작되는 곳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7. 나는 이렇게 고작 문화예술의 한 분야에 불과한 <뮤지컬>이 <산업>으로서 자리매김하며, 크게 성장하는 출발점을 보게 되었다.


8. 물론 개인적으로도, 이미 90년대초에 미국 브로드웨이에 가서 당시 유명한 뮤지컬 대부분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토할 정도로 봤고 익혔지만, 실제로 생생한 업무 메뉴얼은 이 때 처음 접한 것이다. 


9. 물론 이후 우리나라 뮤지컬계도 우리 실정에 맞게 수없이 많은 실험과 도전을 하며, 이론과 실행을 하며, 엄청난 무대제작 경험을 갖으며, 이때 우리 나름의 소위 K-뮤지컬이니 뭐니 하지만, 사실 출발은 모든 게 그렇듯, 이렇게 올바른 사례를 보고 배운 것 부터 였을 것이다.


10. 그러나 누구도 알듯이, <오페라극장>에서는 <오페라>를 해야 했는데, <오페라>를 하지 않으니, 예술의전당의 이런 샛길에 <오페라계>가 달가울 리가 없었다.


11. 그래서 90년대 말에, 문익환의 아들이란 분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제일 먼저 한 것이, <오페라극장>을 <오페라>의 본산이 되게 해야 한다며, 국내 최초로 <오페라 축제>를 기획하였다. 나는 당시 오페라축제의 <마케팅 팀장>으로 참여했고, 당연히 오페라 제작은 물론 기획 단계부터 위에서 익힌대로 나름 <마케팅>기법을 동원하고자 하였으나.


12. 보기 좋게 실패했다.


13. 실패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나는 당시 실무팀에 들어가 있던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말한다면, 우리나라 오페라계의 한계를 들 수 밖에 없다. 


14. 이 당시 <제1회 오페라축제>라는 제목에 걸맞게, 국내 유수의 모든 오페라단이 동원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오페라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모였지만, 그들의 기획, 제작, 마케팅 능력은 한마디로 주먹구구식 그대로였다. 그러니 실패는 예정되었고, 당시 실무팀들은 행사가 끝난 후에 해체되었다.


15. 나는 물론 파리오페라하우스, 미국 메트로폴리탄, 로마 라스칼라좌 등을 다니면서, 수없이 지켜봤고, 지금도 그 찬란하고 드라마틱하며 웅장한 오페라를 만들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 중의 하나이다.


16. 그러나 그런 소중한 기회를 놓친 이후, 지금까지 예술의전당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오페라가 공연되었으나, 솔직히 언제나 비슷했고, 언제나 그저 그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기획께나 했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랬다는 것이다.


17. 그리고 그 이후 선후배들이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중요도와 랜드마크로서의 가치 때문에, 서울 여의도 밤섬, 부산 오페라하우스, 대구 오페라하우스의 설계나 건립, 기획등에 참여했고, 그 때마다 10수년전까지는 들락날락했지만, 무슨 귀신이 씌였는지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기가 힘들었다.


18. 이렇게 죽는 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며칠 전 짓고 있는 <부산오페라하우스>에서 개관 프로그램으로 <라스칼라>를 통째로 데려와 베르디의 <오델로>를 한다고 한다. 비용으로는 무려 105억을 들여서 한다고 한다.


19. 듣는 순간, 무릎을 딱 쳤다.


20. 정말 제대로 배워 볼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다. <오페라>를 배울 기회가 아니고 <오페라 제작과 마케팅>을 배워볼 기회라는 것이다. 


21. 분명, 이미 계약을 했다고 하니, 관련 팀은 계약서를 확인하고, 그 안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하나하나 메뉴얼 대로, 따라가면서 배울 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팀들이 또 다른 우리만의 메뉴얼을 만들기를 바란다. 정말 배울 게 많을 것이고, 우리나라 오페라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오페라가 아니고, <오페라 산업>이 될 기초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22. 그런데 이 뉴스가 나오자 마자, 난리가 났다.


23. 일단 오페라계가 난리다. 그런 큰 돈을 외국단체에 쓰고, 우리나라 예술가들에게는 안 쓴다며, 난리다. 웃기는 소리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국내 오페라계에서 말께나 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일 맡기지 마라. 그러면 망한다.


24. 부산이 난리다. 부산에서 이런 게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다. 역시 웃기는 이야기다. 부산은 충분히 할 수 있고, 능력과 시장도 충분하다. 정 안되면, 바다 건너 일본에게 마케팅만 잘 해도 일본 손님을 왕창 끌어 모을 것이다. 걱정마라. 


25. 그리고 무엇보다도 데이타화하고, 사람을 키워야 한다. 부산은 지금 당장이라도, 젊고 몸이 빠르며, 문화예술에 미치도록 빠진 능력있는 아이들을 뽑아서, 이태리어를 가르쳐라. 이들이 나중에 부산은 물론 우리나라 오페라계에 큰 일을 할 것이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어줍은 생각과 기존 관점으로 재단하며,

은근 슬쩍 자기 자리나 자기 이익만 챙기길 바라는 사람들때문에,

놓친다면...


다시 30년을 놓치는 꼴이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자술서 비슷하게 길 게 쓴 건, 오페라극장을 오페라극장 답지 못하게 만든 일종의 죄책감에 쓴 것이다. 물론 나만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런 시기에 그런 일을 못했기에, 그런 시절에 살았던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은 여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절대 개인적인 의견이고 당시 예술의전당에 종사한 사람들과는 다를 수 있으니, 이 글때문에 섣부른 논란이 일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튼 부산 오페라하우스의 개관공연이 큰 성공을 이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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