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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리뷰 - 스크랴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이 한국인 피아니스트는 위그모어 홀 공연에서 스크리아빈 소나타 세 곡과 슈베르트를 나란히 배치해, 유난히 생생한 연주를(exceptionally vivid) 들려주었다.

Daniel Lewis Sunday 31 May 2026 10.00pm BST


위그모어 홀 지하로 내려가 화장실 근처를 가보면, 1914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한 기대작 리사이틀 광고를 발견할 수 있다. 연주자는 “스크리아빈(Scriabine)“이라고 적혀 있는데, 오늘날 우리가 주로 스크리아빈이라 부르는 그 독창적인 러시아 작곡가다. 포스터에는 《옵서버》지의 기사 일부가 실려 있는데, 그 기사는 스크리아빈을 “쇼팽의 후계자”라고 부르며 그의 음악을 “매우 아름답고, 섬세하며, 호전적이다(very beautiful, dainty and belligerent)“라고 묘사했다. 섬세하다는 표현에는 잘 모르겠다. 쇼팽과의 비교도 그렇다. 내게 스크리아빈은 오히려 퇴폐적인 리스트에 더 가깝게 들릴 때가 많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호전성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임윤찬의 이번 큰 기대를 모았던 오후 리사이틀에서도 충분히 드러났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선택으로 스크리아빈 피아노 소나타 2번, 3번, 4번을 슈베르트의 1825년 D장조 소나타와 나란히 배치했다.

임윤찬은 지난달 졸업 연주회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을 연주했다(그의 젊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사실이다). 그는 틀림없이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스크리아빈 음악 자체를 설명하는 좋은 표현이기도 하다. 화려한 색채로 가득한 음악 말이다.

임윤찬은 이 작품들을 유난히 생생하게 그려냈으며, 특히 그의 놀라운 왼손 테크닉이 유감없이 빛을 발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때때로 그 색채들이 너무 흘러넘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는 거의 쉬지 않고 한 소나타에서 다음 소나타로 넘어갔다. 물론 이는 엄청난 기술적 위업이었고, 임윤찬은 피로의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앙코르곡인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가 끝났을 때에야 그는 의도적으로 몸을 축 늘어뜨렸다. 하지만 스크리아빈 특유의 강렬하고 열병 같은, 그래, 호전적이기까지 한 음악 언어는 청중으로 하여금 방어벽을 세우게 만들 수도 있다. 임윤찬은 이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종종 오케스트라 같은 압도적인 힘으로 연주했고, 평소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신체 표현을 보였다. 특히 3번 소나타의 비극적인 마지막 화음에서는 발을 구르기도 하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전반부의 슈베르트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임윤찬은 그 차이를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만들었다. 여전히 힘은 있었지만, 훨씬 더 장난스럽고 유희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실제로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악장의 셋잇단음표 진행에서는 몸을 들썩이며 연주했고, 느린 악장의 주제는 노래하듯 부르는 동시에 가볍게 뛰어노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한 화음들 사이에 평소보다 훨씬 넓은 공간감을 두었다.이러한 접근 때문에 뒤이어 나오는 도약하는 스케르초와의 대비는 다소 줄어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악장에서는 또다시 판을 뒤집었다.
그는 악보가 암시하는 것보다 훨씬 지속적이고 깊은 표현성을 부여하며 마지막 악장을 빚어냈다. 대담하지만 매력적인 개입이었다. 덕분에 이 음악은, 작곡 당시 매독을 앓고 있던 슈베르트가 마셨던 알프스의 공기만큼이나 신선하게 들렸다.
이는 임윤찬이 앞으로 선보일 모차르트 투어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