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때 양반이 짚신신는건 등산할때와 귀양갔을때 뿐이라고 했다.
원래 가마타고 다녔는데 가마꾼이 힘들어 일부러
벼랑으로 떨어져 같이 자결하는 통에 (금강산 만폭동 전설)
그뒤 험한길은 짚신신고 다녔다.
등산로가 없어 줄타기가 있었고
산천도와 노지지도와 유람기책, 쌀,김치,말린고기,간장,홍시,미숫가루,꿀,다래,베게,방석,종이,붓,먹,
나침판,짚신,나막신,도롱이,삿갓,지팡이 등을 하인,짐꾼,심부름꾼,길잡이 승려,기생,말몇마리와 함께 나누었다.
일행은 보통 30명-50명정도
숙식은 사찰에서 하는거라
돈많은 양반이 시주하고 숙식했다.
보통 한달에서 석달간 먹고자고 하는거라
서민들은 엄두도 못내었다.
지금으로 치면 세계일주 수준이라
양반가에선 금강산 백두산 설악산 갔다오면 자랑거리였다.
60,70년대는 암벽화 대신 고무신 신고 바위 했다는 선배들의 이야기.
짚신은 금방 헤져서 여러개를 묶고 다녔다고 - dc App
그당시 양반은 쌍놈집에서 이리오너라 하면 숙식이 가능했음.
헬조선은 맨발충들 엄청 많은데
일본에서는 조리나 게타에 끈을 묶어 등산하였고 명청시대, 짱깨들은 어떻게 등산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