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럽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자 음악가 선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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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노베스 몽뻬 헨 3세 (1846 9 1 ~1909 5 23 ) 프랑스

이 사람은 본업이 작곡가였지만 취미로 초상화도 그렸었어.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사실주의 유행에 편승해서 그림을 그렸어, 다만 초상화가 위주였지.


몽뻬 3세의 대표작
북한 슨튜라우슨 1세의 노데츠키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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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의 기르모트 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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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기르모트 뒤중, 젊었을적 그린 초상화를 같은 구도로 다시 그려낸것.)

기르모트 뒤중 과 문됭크 죈느 앙 파르트 ( 노베스 몽뻬 헨 3세와의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노베스 몽뻬 헨 3세는 대중적인 명성을 얻으며 기르모트 뒤중(1824 1 6 ~ 1909 8 24)과의 친분을 쌓게되, 그러면서 그는 제자를 들이게 되는데

그게 문됭크 죈느 앙 파르트(1843 1 24 ~ 사망일 미상)야.

같은 예술가인 뒤중과는 같이 협업하며 많은 예술을 뽑아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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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모트 뒤중과 노베스 몽뻬 헨 3세의 합작

논두렁의 일꾼(1867)


다만 이런 협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어, 대표적으로 그의 제자
문됭크 죈느 앙 파르트야

평소 자신에게도 일거리가 주어져도 이목은 다 그의 스승과 스승의 친구가 다 가져가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결국 그는 자신의 스승을 프랑스의 봉헬론 마을 Rocher d'huître에서 밀어버리고 말아

인류의 예술사에서 좋은 작품을 내놓았던 예술가는 ㅂ|참한 최후를 맞이한거지.


안타깝게도 그의 사망이후 자리를 차지한 죈느 앙 파르트는 형편없는 작품만을 내놓고 세상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돼.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당시 사람들은 죈느 앙 파르트를 정말 추종하고 사생팬까지 존재했을정도니 참 이상하지.

콜붕이들도 게임만 하지말고 가끔 이런 예술인들을 찾아보는건 어떨까?

근데 시발 비ㅣ참 왜 금지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