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세포이 항쟁이 진압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하던 무굴 제국이 사라지고 인도 제국이 세워지면서
(사실 칭제는 1877년에 함)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칭호는 기존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여왕에다
<인도 제국의 여제>라는 타이틀이 추가되게 되었음
그 전부터 사실상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인도 아대륙은 그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으며
마하트마 간디를 필두로 한 비폭력•불복종 운동
나중에 독립하여 인도 공화국의 초대 총리가 되는 자와할랄 네루를 필두로 한 독립 운동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이끄는 무슬림 연맹의 독립 운동 등등, 여러 분파의 독립운동이 있었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독립을 열망했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자치권 확장을 중심으로 주장을 펼쳐나감
때는 1944년
1937년부터 장제스의 중화민국 국민정부와 이에 협력하는 군벌이 주축을 이룬 국공합작과 싸우던 일본은
남진론에 의거하여 남태평양으로의 확장을 꾀했음
1940년, 마침 유럽에서 독일이 파리를 6주만에 점령하며 프랑스가 무너지자 기존 프랑스의 식민정부들은 독일에 협력하며 본토에 남아 괴뢰정부를 세운 필리프 페텡의 비시 정부에 충성할 지, 샤를 드 골을 주축으로 해 연합국의 편에서 항전을 계속하는 자유 프랑스에 충성할지 결정해야 했음.
적도 아프리카 식민지, 그 중에서도 차드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가 비시 정부에 충성하기로 하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또한 비시 정부에 충성했고 향후 독일과 소련 간의 전쟁에서 일본이 연해주를 공격하여 소련으로 하여금 유럽과 극동 양면에서 적을 상대하길 강요받길 원했던 히틀러는 비시 정부를 압박하여 인도차이나 반도는 사실상 일본의 통제를 받게 됨.
1941년 진주만 공습과 함께 일본과 연합국 간의 전쟁이 시작되자 영국은 인도를 통하여 중화민국 국민정부에게 물자 지원을 시작하게 됨.
이미 100년 이상의 식민지배를 받아 영국의 통제가 확고해진 인도는 좋든 싫든 일본에 맞서 싸웠고 1944년 결국 일본 제국은 버마를 장악한 후 인도까지 진출하는 <임팔 작전>을 계획함
인도의 독립운동가 중에는 간디와 같은 평화적 독립운동가도 있었지만 무력투쟁주의자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수바스 찬드라 보세였음.
수바스 찬드라 보세는 일본과 협력하여 영국을 인도에서 몰아내고 인도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일본의 괴뢰정부인 <자유 인도 임시정부>의 주석 자리에 앉게 됨
아래 있는 글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이러한 무장투쟁주의자들이 인도의 주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소수였음
그 후 역사는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수십만의 피를 쏟은 인도인들의 독립 요구 + 전후 집권한 영국 노동당 내각의 인도 독립 추진으로 인해 인도 공화국이 독립하고 영연방에 가입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게 됨.
대역갤인줄 알았네 일단 개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