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할 일 없는 한 잉여인간의 집. 방도 많지 않고 빌라 자체도 낡았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어두운 작업실 - 한때는 그의 고시공부 방이었다- 에는 그가 수집한 각종 에어소프트 건과 군장들, 그리고 각종 공구들이 늘어져있다.
집 주인인 철웅은 그의 작업실 전체를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는, 골판지와 스티로폼 그리고 약간의 레고 블록으로 이루어진 구조물 앞에 서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넨드로이드’를 닮은 4개의 밀리터리 피규어가 ㅡ 아니, 각종 장비를 빼입은 네 마리의 실장석 같은 것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네 마리는 작은 골판지로 이루어진 시가지 모형을 통과해 스티로폼으로 만든 거대한 ‘가옥’ 앞에 모였다. 주변은 야간을 상정한 듯 매우 어두웠다.
[“당소 코리 1, 목표지점에 도달한 테스.”]
철웅이 손에 쥔, 현장보고 단말용 핸드폰에서 조용한 목소리의 무전이 들려온다. 그는 핸드폰을 입 가까이로 옮겨 버튼을 누른다.
[“당소 HQ가 코리 팀에게, 브리칭 준비 후 돌입하라. 내부의 모든 표적은 적으로 간주하라, 이상.”]
[“솔리드 카피 테스, 코리 1 아웃.”]
분대장, ‘코리 1’이 수신호를 보내자 나머지 세 마리가 가옥의 대문 앞에서 대형을 갖추고, 한 실장이 문에 자그마한 화약덩이 - 마치 옛날의 딱총 화약처럼 생긴 것-를 붙였다.
‘코리 1’이 자신의 헬멧을 두드리는 순간, 폭발물을 부착했던 실장, ‘코리 2’는 조그마한 격발기를 꾹 눌렀다.
그 순간 폭음과 함께 얇은 종이로 된 문(혹은 문을 모방한 것)이 떨어져 나가고, 코리 팀은 그곳으로 돌입한다. 내부에는 십 수 마리의 성체 들실장들이 깜짝 놀라 빵콘을 한 채 굳어있다.
[“브리칭, 브리칭, 브리칭!”]
선두로 돌입한 ‘코리 2’는 자신의 소총에 부착된 LED 전등을 깜빡이며 내부의 꾀죄죄한 들실장들에게 비춘다. ‘스트로브’라 하여, 인간들 사이에서도 쓰이는 장비였다.
[“데갸아아아아악!!!! 어떤 분충이 와타시의 단잠을.....데겍!”]
가장 가까운 실장의 머리와 가슴에 리 탄을 몇 발 선사해 준 후, 코리 팀은 계속해서 방 안의 실장석들을 정리해 나갔다. 철웅은 ‘코리 1’의 헬멧카메라가 보내온 실시간 영상을 핸드폰 앱을 통해 보고 있었다. 그 때였다.
[“똥을 쳐발라도 시원찮은 갈보년들 같으니, 꺼지는 뎃샤아아아!!!!”]
덩치 큰 실장석 하나가 갑자기 구석에서 튀어나와 ‘코리 2’의 소총을 쳐서 떨어뜨렸다. 대응하는 그녀를 박치기로 쓰러뜨린 후, 그 실장석은 그대로 ‘코리 2’ 위에 올라타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나타나는 경고표시가 ‘코리 2’가 피해를 입고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심각한 타격에 철웅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것 밖에 안 되는 데스? 오마에들은 그 총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데스!”]
하지만 그것이 덩치의 유언이 되었다. ‘코리 3’이 도리 탄이 장전된 산탄총을 덩치에게 여러 차례 발사한 것이다. 덩치의 왼팔과 오른쪽 어깨, 그리고 몸통에 도리가 명중했다.
[“헤끼야야야야앙앍!!! 와타시의 소중한 오테테 씨가! 와타시의 아름다운 보-디이가아앍하!!!”]
염산에라도 닿은 것 마냥 덩치의 몸은 연기와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녹아갔다. 덩치는 목이 떨어져나가라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뒹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코리 1’과 ‘코리 4’가 엄호하는 동안, ‘코리 3’은 언니를 일으켰다. 그 와중에도 코리 탄을 몇 발씩 맛본 실장석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머리가 나름 굴러가던 실장석 하나가 동족이 죽어가는 틈에 바닥에 나뒹구는 ‘코리 2’의 소총을 집어 들었지만, 곧 “데프프”하는 웃음만 남긴 채 ‘코리 4’에게 머리가 깔끔히 날아가고 말았다.
[“헤드샷, 나이스인 테스, 코리 4.”]
‘코리 1’이 ‘코리 2’에게 소총을 돌려주며 덧붙였다.
[“그리고 앞으론 조금 더 조심하는 테스, 코리 2.”]
입가에서 피를 흘리던 ‘코리 2’는 말없이 총을 집어 들어 들실장들을 향해 겨냥했다. 조금 전의 분노를 방아쇠에 담은 듯, ‘코리 2’는 이미 쓰러진 것들에겐 확인 사살을, 아직 쓰러지지 않은 것들에게는 더욱 많은 코리 탄을 선사해주었다. 그 기세를 몰아 나머지 팀원들도 학살을 이어갔다.
‘데갸악’과 ‘파킨’의 향연이 조금 더 이어진 후, 작업실 겸 훈련실에 조명이 들어왔다. 코리팀은 헬멧을 벗어들고 유혈 낭자한 ‘가옥’ 바깥으로 나왔다. 밝은 형광등 조명에 비친 것은 중실장이라기보다는 ‘실취석’에 가까웠다.
[“훈련 시나리오 종료. 수고 많았다, 코리팀. 탄알집 분리 및 약실 확인 후에 거치대에 개인화기 놓고 디브리핑을 준비한다.”]
철웅이 그들을 향해 지시했다.
코리 팀은 능숙하게 소총에서 탄창을 분리하고, 노리쇠를 두어 번 당겼다 놓은 후, 찰흙을 채운 요구르트 병에 격발했다. 그리고는 훈련 세트장 한 구석에 마련된 미니어처 테이블에 소총과 헬멧을 놓은 후 ‘다 되었다’는 듯이 철웅을 바라보았다.
철웅은 작은 화이트보드를 가져와 이것저것을 그려가며 코리 팀의 전술을 평가했다. 대체로 정석대로 잘 했지만, 예상 가능한 매복지점을 포함한 주변 상황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하고, 기동간 사격을 더 연습할 것을 지시했다. 그 뒤에는 재차 격려의 말을 전하고, 각자에게 콘페이토 하나씩을 배급했다.
코리 팀이 장비를 들고 숙소로 이동할 때, 그들을 바라보던 철웅은 잠시 회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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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
[“으아니 챠! 리롤(re-roll)이요, 리롤!"]
여기는 ‘참피타운’, 이름대로 실장석들을 위한 미니어처 장난감들도 취급하지만, 실상은 경기도 두루마리 시의 유일한 미니어쳐 보드게임 전문점이다. 햄덕들과 인피니티 덕들을 비롯한 미니어처 워 게임 덕들은 오늘도 테이블에 모여 ‘다이스 갓’, 즉 ‘주사위 신’의 가호만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 테이블의 한 구석에, 가드맨 분대 하나를 채색하고 있던 철웅도 있었다.
천성이 밀덕인 철웅 본인은 딱히 보드게임에 큰 흥미가 없었지만, 워햄/인피니티 모두를 아우르는 박쥐같은 친구 덕에 이곳을 처음 알게 되었고, 미니어처 조립하는 재미에 빠져 결국은 매일 같이 이곳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죽돌이가 되었다.
원래부터 돈은 없어도 손재주는 나름 있었던 철웅인지라, 참피타운에서 매일같이 돈을 받고 남의 미니어처를 만들어주는 것이 일과였다. 밥 먹듯이 그 일을 하였으니 자연스레 그의 미니어처 조립 솜씨는 ‘휴지 인사이드’의 워해머 갤러리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로 예술의 경지에 다다랐다.
그의 이름은 햄덕을 떠나 단순 미니어처 마니아들에게 널리 알려져 의뢰인들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그의 잉여로운 열정을 높이 산 ‘참피타운’의 사장 ‘워보스’가 그에게 알바 자리를 제안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철웅의 27년 인생의 첫 니트 탈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만이 있었다. 판타지, 미래, 고대전은 물론이요 2차 대전 컨셉까지 존재하는 보드게임의 세계에 그가 좋아해마지 않는 현대전은 드물다 못해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를 가장 괴롭게 했던 문제는 다름 아닌 주사위의 존재였다. 매 턴마다 주사위를 굴리느라 흐름이 끊기는 것은 물론이요, 다이스 갓의 은총으로 내려지는 음경 같은 결과들은 현실과 지나치게 괴리가 있어보였다.
이러한 불만을 해소하고자 철웅은 스스로 보드게임의 룰을 고안해보기도 하였으나, 주사위와 턴의 문제는 도저히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현대전 미니어처도 많지 않은 판국이라, 그는 최근 애호파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실석류 호신용 총기 시리즈를 조립하며 쓰라린 마음을 달래고는 했다. 인간에게는 해가 없지만 실장석에게는 가히 치명적인 이 무기는 꼴에 총이라고 현대 개인화기 류와 매우 비슷한 모양과 작동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국내에 합법적으로 수입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지만, 들실장 치안이 좋지 않은 한국과 일본의 특성상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그의 빈 마음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실장 무기류로는 만족을 할 수 없어 비싼 레진 킷에 월급을 쏟아 붓고, 현실화될 수 없는 보드게임 룰을 만들었다가 지워버렸다가 하며 고통 받던 와중, 그는 동네 뒷산을 산책하다가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무언가를.
[“테테테테테...” “테테테테테...”]
나무 둥치의 한 구석에서 자실장 몇 마리가 나뭇가지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광경처럼 보였겠지만, 진성 밀덕인 철웅의 눈에는 보였다.
그들의 행동은 매우 전술적이었다.
철웅이 보아하니, 그 자실장들은 어설프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은엄폐를 구사하고, 나뭇가지를 소총마냥 파지하고 있었으며, 입으로 “테테테” 소리를 내며 총성을 따라하고 있었다. 이 산에는 철웅이 속한 에어소프트 게임 -흔히들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부르는 그것- 팀의 필드가 있었다. 어쩌면 자신과 팀원들을 보고서 따라하는 것일까?
그 때 철웅은 생각했다. 그래, 이거면 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각자의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살아있는 미니어처’. 이런 녀석들에게 실석용 총까지 쥐어줄 수 있다면? 그의 꿈이 현실이 될 길이 보인 것이다! 그는 즉시 자실장들을 낚아채어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애호파도, 학대파도 아니었지만, 적당히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배변훈련 같은 기본적인 훈육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매일같이 제로 다크 서티, 액트 오브 밸러, 블랙호크 다운과 실제 교전 영상, 밀리터리 FPS 플레이 영상 등을 보여주며 자실장들에게 그런 종류의 세계관을 주입했고, 참피 타운 샵에서 얻어온 실장용 보호구와 총기 사용법을 보여주었다. 기본적인 전술을 가르치고, 사격술을 연습시키는 것은 기본이요, 체력 향상을 위해 50원 동전 들고 뛰기, 수영까지 실시했다.
하지만 실장은 어디까지나 실장. 그들은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달리기와 수영을 견디지 못한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자실장용 방탄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치프프. 똥닌겐은 와타치를 해칠 수 없는 테치.”라고 지껄이다가 분노의 슬램을 맞고 요단강을 건넌 녀석이 있는가 하면, 첫 사격 실습 때에 철웅에게 총을 겨누고 “이걸로 와타치는 강해진 테치! 똥노예는 죽고 싶지 않으면 와타치를 주인으로 모시는 테치!”라는 유언을 남긴 채 황천을 건넌 녀석도 있었다. 심지어는 실장총의 총성 - 인간이 듣기에 그건 그다지 큰 소리도 아니다 -을 듣고 파킨 해버린 녀석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철웅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뿐인가, 훈련을 견디지 못한 분충들과 멍청이들을 솎아내고 나자, 당초 7마리였던 자실장 중에 철웅에게 남은 것이라곤 단 한 마리뿐이었다. 그마저도 전술에 대한 이해보다는 오로지 총기 그 자체에 매료된, 중증 ‘총덕’의 기질만을 가진 녀석이었다. 철웅은 별 수 없이 그 녀석을 훈련장구 관리실장으로 데리고 있기로 했다.
들실장이라 멍청한 녀석이 많은 것인가 싶어 펫샵에서 판매하는 애호용 자실장을 구매해 훈련시켜 보기도 했지만, 그 녀석들은 ‘오로지’ 사람 손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라 몸이 너무 약해 훈련을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살아남은 녀석들을 전부 분양보낸 후, 철웅은 한동안 실의에 빠져 지냈다. 밀덕 친구들과 술을 퍼마시며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으레 철웅을 미친놈이라며 비웃기 일쑤였다. 그러면 그는 이것 또한 무지했던 자신이 응당히 받아야할 벌이라며 술을 목으로 넘기는 식이었다.
그러기를 몇주 째, 또 술에 절어 집에 가던 철웅은 메스꺼운 속을 게워내려고 한 전봇대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뜬금없게도 웬 골판지 상자 하나가 테이프로 잔뜩 포장된 채 놓여 있었다. 마치 ‘아무도 이것을 열 수 없도록 하겠다’라는 듯이. 그런데 철웅은 술김에 [“이힣힣 택배다”]라며 그 상자를 집에 들고 온 것이었다.
병적으로 튼튼하게 둘러놓은 테이프와 한참동안이나 씨름하던 그가 마침내 상자를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상태가 좋지 않은 한 실장석이 있었다. 아니, 실장석이 아니다. 비교적 뚜렷한 이목구비, 풍성한 머리숱과 손가락. 이건 실취석이다.
‘JIX'파였던 전 주인에게 학대받다가 버려진 이 실취석 ’레인보우‘는 자신을 돌보아준 철웅을 주인으로 모셨다. 그리고 자연스레, 제 주인의 취미를 접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해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철웅은 반신반의하며 한동안 잊고 있던 훈련을 재개했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실취석은 실장석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최소한 초-중학교생 정도의 머리를 가진 그녀는 기본적인 전술을 완전히 숙지했고, 우레탄 몸뚱이라는 조롱을 듣는 실장들에 비해 체력도 좋았다. 이 발견은 철웅의 마음 속 사그러졌던 불꽃을 다시금 타오르게 했고, 얼마 후 산책하던 ’레인보우‘가 꽃가루에 임신해 아이들을 낳았을 때, 그는 이제 프로젝트를 재개할 때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까지가 4개월 전의 일이었다.
중실취석이 될 때까지 훈련에 잘 따라준 아기 실취석들을 새삼 대견해하며, 그는 실습에 소모된 들실장들의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넣고, 실취석들의 식사를 준비하러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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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레식갤이 아닌데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