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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오싹 옛날 대국민 역사왜곡 레전드였던거붉은악마 핫한 시절때 지겹게도 쳐나오던 치우천왕사실 치우는 원래 짱깨 구려족(또는 동이족) 우가우가 야만인의 실존한건지도 불확실한 반전설적인 우두머리였고 이걸 짱깨애들이 고나우마냥 군신화 시켜서 치우천왕이라 숭배했던건gall.dcinside.com


나는 정신병자 중에 정신병자가 환빠라고 생각함.

인생에서 되는 것이 없으니 우월감을 어디서라도 얻고 싶은데 그게 지들 입맛대로 왜곡한 판타지 역사소설이거든......

얼마나 내세울게 없으면 남북 7500만이 공유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뽕을 빨아야 할까?

먼저 환빠들(일명 사이비역사학자들) 논리를 하나하나 보도록 하자.


1. 여진족은 신라의 후손이라 자처를 했고 여진족은 청나라를 세웠으니 우리가 중국을 정복했다!


그럼 고려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왜 여진족들이 약해졌을 때, 여진족을 그리 학대하고 주기적으로 마을 쳐들어가 학살했을까?

그리고 왜 여진인들의 세력이 강해졌을 때, 고려와 조선 조정을 장악하고 형제관계와 군신관계를 요구했을 때 왜 고려와 조선은 수치심을 느꼈을까?

같은 민족인데?

그리고 같은 민족이면 여진에 지배받으면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조선인들은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원조 정신승리 국뽕TV인 '박씨전'이 유행했을까?

그냥 여진족이라는 민족을 통해 국뽕 정신승리하고 싶은 정신병적 행동에 기인함.


2.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고 일본은 백제의 속국이었으니 일본은 우리민족


전형적인 조선인 수준이 나오는 주장인데 조선인들은 평등한 관계보다는 남을 지배하고 싶다는 가스라이팅 정신이 이 주장에서 나옴.

그럼 과연 조선인들의 주장대로 일본은 백제의 속국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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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 고대사 왜곡) 일본은 백제 속국이었다.사실 일본과 백제는 동맹관계일 뿐 서로 종속되고 지배하는 관계라기보다는 튼튼한 동맹국이었다.매일 백제가 일본에 뭐를 알려주네 지랄이지만 그 논리면 백제가 얼마나 병신이면 공짜로 일본에 중국에서 넘어온 선진기술을 알려주gall.dcinside.com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먼저 백제와 신라는 일본의 압박과 요청으로 주기적으로 자신들의 왕족을 인질로 보냈는데 종속국에 종주국의 왕족 심지어 태자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게 말이 될까? 심지어 태자는 한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인데?

또한 신라의 왕족들이 고구려와 일본에 끌려가서 수난당하는 '박제상의 이야기'나 강력했던 일본이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함락시키고 점령해서 이를 후환으로 여긴 고구려의 왕이 경주에 토벌을 갔다는 이야기를 담은 '호우명 그릇'의 문구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전라도 남부와 경상남도 서부에는 왜 당시 한반도 왕조들과 구분되는 각종 야마타이 시기 일본의 전방후원 무덤과 유물들이 대거 발견되고 왜 한국의 사학자들은 그것을 바로 부랴부랴 덮어버릴까? 과연 무엇이 더 발견되었기에?

과연 저게 종주국의 모습인 것인가? 자세한 것은 링크를 참조하길 바란다.


3. 중국 한족은 북방민족의 지배도 받았으니 노예 민족이다!


먼저 중국 한족의 개념은 상나라부터 춘추전국시대까지 이어진 중국의 사상을 통일한 한나라의 문화를 받아드린 정착민이라는 소리임.

원나라 몽골이 괜히 북방에 살던 정착민(한족과 여진족)과 고려인들을 괜히 한漢인으로 퉁친 것이 아니지.

그뿐만 아니라 화북지역을 경영했었던 여진족들도 비슷한 개념으로 도입했고.

지금은 서쪽으로 이동해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특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 아닌 이상 중국본토에 남아 거기에 정착한 선비족 강족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등등(여진족과 몽골족의 경우는 예전에 이민와서 정착하여 중국에 동화된 경우) 그들의 후손들이 중국문화에 동화되고 자신을 한漢족이라고 여기면 한漢족이 된 것임.

나치와 같이 순혈 이런 것에 집착하는 특성상 조선인들이 저 개념을 이해할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 논리면 에티오피아 페르시아 로마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와 같이 근본있는 역사들도 다 파괴되었다고 주장해야 함.

또한 한국의 경우도

1)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곳곳에 한漢사군이 세워졌으며 해당지역에 매우 많은 중국인들이 이주하였다.


2)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후 대부분의 왕족과 인질들을 중국으로 끌고 갔다.


3) 중국의 혼란기마다 중국인들이 한반도로 대거 이주했다.


4) 여진족 거란족과 같은 북방민족은 고려시대부터 강력해질 때마다 수시로 한반도 북쪽을 약탈하고 강간을 시행하였으며 수도인 개경과 한성도 털어먹음. 거란인 여진인과의 혼혈도 매우 빈번히 이루어졌다.(무슨 여진과 거란이 조선에서는 야만인으로 여겨지던데 개소리이고 저 민족들 예술작품보면 왠만한 한국 예술품들 다 씹어먹음 요 거란의 북면관 남면관 제도와 여진의 맹안 모극제는 중국에서 받아드린 중앙통치제와 북방민족의 자유롭고 방임적인 유목인 특유의 제도가 매우 잘 섬세하게 어우러진 제도)


5) 고려 무신정권 말기에는 40년간 몽골의 침입이 있었으며 무신정권이 강화도에 짱박혀 본토에 뭐하든지 말든지 술이나 퍼먹고 세금이나 거둬드리려는 상황 속에 본토의 고려인들은 몽골에 대량 학살을 당하고 강간이 시행되고 있었으며 몽골 본토로 끌려가는 고려인들도 수두룩 빽빽했음. 어느 수준이었냐면 당시 호구조사를 보면 인구의 '적어도' 30-40%가 증발됬다는 것이 정배이고 고려왕실은 강제적으로 몽골 공주와 결혼하고 몽골 다루가치가 고려왕보다 강한 권력으로 고려의 정치를 담당했으며 현재 한국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족두리, 연지곤지, 순대, 설렁탕 등등은 사실 몽골의 문화였으며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는 동안 받아드린 문화임. 그럼 고려는 몽골의 속국이고 노예의 역사인가? 이것을 인정해야만 3번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3216765#home

몽골군 포로 된 백성 한 해 20만 … 사망자는 그 이상 | 중앙일보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1614년)에 실린 ‘김천이 어머니 몸값을 치르다’의 그림과 글. 그림은 포로(오른쪽 하단), 상봉(오른쪽 중단), 몸값 치르기(맨 위), 장례(왼쪽 중단)로 돼 있다. 1231년 1차 몽골군의 고려 침입 때 구주(龜州)성은 최대의 격전지였다. 이 전투의 고려www.joongang.co.kr

https://m.blog.naver.com/ecips/20068642360

몽골과의 전쟁으로 줄어든 고려인구알다시피 고려에 대한 기록은 매우 빈약하다. <<고려왕조실록>>이 존재했더라면, 조선...blog.naver.com


6)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고려와 조선의 해안가 지역은 일본 쓰시마섬에 거점을 둔 해적들(왜.구라는 표현이 있지만 일본인뿐만 아니라 고려인들도 상당수 있기에 이런 표현을 씀.)에 의해 고려의 남부 해안가 지방은 무정부상태까지 갔었다. 어느 수준이었냐면 이들의 활동 때문에 고려정부에서 세금이나 특산품을 개경까지 가져오는 것이 힘들정도이고 개경 주변도 저 해적들이 장악함. 그 과정에서 많은 고려인들이 학살당하고 굶어죽고 강간당했을 것이다.


7) 6)의 연장선. 당시 몽골의 원나라가 흔들리고 대륙에서는 한漢인들이 몽골에 반기를 들며 곳곳에서 홍건적이라는 세력이 등장함. 저 홍건적 세력이 한반도에 있는 고려까지 와서 고려 북부지역은 저들과 여진족들의 침입과 약탈로 여기 또한 무정부상태라고 봐도 무방했다. 홍건적은 개경까지 함락시키고 점령했으며 고려국왕이었던 공민왕은 몽골에서 독립적으로 가려고 하자마자 홍건적들이 들어오니 바로 수도 버리고 안동으로 런했다. 저 과정 속에서도 각종 학살과 강간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8) 중국에 공녀를 바친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아주 유구한 역사. 어느수준으로 바쳤나면 당나라 황제가 신라에 신라의 여인들이 고향을 떠나와 외롭다하는데 더이상 공녀를 보내지 마라 할 정도. 뭐 고려와 조선은 말할 것도 없이 사서 뒤져보면 중국에 공녀 보낸 기록이 산을 이룰 정도로 많다. 사실 저런 순혈주의 편협한 사상으로 세계사를 보면 전세계에 노예역사가 아닌 곳이 없을 수준이다. 한나라 때도 화친을 위해 흉노족에 여인을 보냈으며 당나라 또한 티베트가 강성할 당시 공주를 보냈었었다. 이런 역사는 인도사나 중동사 그리고 유럽사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근데 조선과 고려는 그 수준이 왠만한 국가들을 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순혈주의를 따진다면 과연 같은 논리로 한국이 노예의 역사밖에 없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


9) 임진왜란. 약 10년간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침입해서 조선 전 국토를 유린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평양 남부 지역은 선조가 전쟁나자마자 개성, 평양을 거쳐 의주로 빤스런 했기에(당시에는 군인들은 걸어와서 싸웠을텐데 20일만에 수도가 먹히고 전국토가 거의 몇달도 안 되서 먹힌 수준이면 그냥 무혈입성이라고 봐도 무방) 10년간 평양 이남을 점령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뭐 항왜 어쩌고 지랄인데 대부분은 양반밖에 없었고 그냥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그냥 수긍하거나 전쟁을 피해 여기저기 도망치기가 바빴다. 당연히 국가의 임금이라는 놈도 백성들을 버렸으니 곳곳에서는 강간과 약탈이 잃어났고 조선은 몽골의 침입때와 마찬가지로 인구 대감소의 시기를 거친다. 어느수준이었냐면 호구 조사해보니 인구 박살나있고 국토도 황폐화되서 이전까지 양반들의 거센 반대로 양반의 특권에는 손도 대기 힘든 수준이었는데 저때 대동법이라는 이전에 보면 말도 안되는 법이 광해군을 거쳐 숙종시기까지 전국에 퍼졌을 정도.


10) 병자호란. 여진족에 서북부 거하게 털리고 군신관계를 요구받은 사건. 당연히 여진족들이 강간 학살을 했을 것이다.


11) 근대시기. 조선이 쇄국을 풀면서 서양인 일본인 중국인들이 조선에 와서 이전보다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기. 각종 상인무륙무역장정들이 통과되면서 조선 내륙에도 외국인들이 들어올 수 있었음. 당연히 혼혈이 늘어났고 북부같은 경우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에 러시아의 영향이 매우 강해지면서 이들에게 털리는 그림이 남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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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제시대. 1910년 형식적으로 일본과의 합방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각종 일본의 문화와 일본의 학문(지금 한국 학문에서 쓰이는 학술 한자어는 다 일본파생이라고 봐도 무방. '과학' '사회' '경제' '평화'.... 너무 많다) 그리고 내지인들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함. 조선인들도 일본 러시아 중국 남미 유럽이나 미국등지로 이주. 일본의 36년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건 노예의 역사가 아니라고 우긴다.(특히 일본인들이 조선과 같은 민족이라는 괘변을 늘어놓으며. 같은 민족이면 일본이라는 국명이 생겼는데도 왜라고 낮춰부르고 원조 국뽕TV인 김인겸의 '일동장유가'나 '임진록'이 나오지도 않았겠지. '박씨전'도 마찬가지)


13) 6.25 전쟁. 당시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주의 자본주의 세력(미국 일본 서구 대만 미국 UN) 과 소련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력(소련, 중국) 한반도에서 거하게 충돌하며 생긴 전쟁. 당연히 조선인들을 상대로 한 학살이 남한과 북한에 의해 자행되었고 미국에서는 파병된 군인들을 위해 위안소(이건 그나마 당시에 인도적인 조치였음. 돈주고 대우해주고 하는 것이니)를 세우고 소련 미국 중국 군인들에 의한 강간도 매우 많았을 것임. 당시에 아이노꼬라는 혼혈인들이 꽤 생겨남.


14) 현대. 1970-198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과 개방정책 이후부터 한국의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함. 그 수준은 상상 그이상이어서 근 20년 넘게 한국에서 그렇게 저출산 어쩌고 거리던 일본보다 출산율이 높았던 적이 없었음. 또한 작년에는 0.78이라는 3세대를 거치면 인구가 95%가 감소하는 전설의 수치를 기록함. 심지어 바닥을 모르고 올해도 계속 감소추세. 그리고 1990년에는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폭증했는데 2010년대 부터는 전체 출생아 중 5%이상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임. 현재는 7%대까지 오름. 앞으로는 윤석열 정권에서 한국의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가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이니 이러면 인프라 세금 다 박살나 경제빈곤국으로 돌아가게 생기니 대거 이민자들을 받아드리기 위해 이민청을 설립하고 있음. (물론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에는 이민자들 다 외면할거라고 생각함. 지금도 비자 뿌려도 남아도는게 실정인데) 이미 한국은 저 베이비붐 노인 세대가 죽기시작하면 200만명의 외국인과 200만명 정도의 결혼이민 배우자와 다문화 가정아이들의 정치적인 힘은 매우 강력해질 것이라고 생각함.(다문화 아이들까지 다 더해도 한국인 나이 중앙값이 46세인데 다문화나 외국인들은 한국인 평균보다 훨씬 젊음) 저런 민족.파시스트주의와 나치 뺨때리는 순혈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환빠 주장은 어차피 지금도 무시되지만 앞으로는 아예 사장될 것임.


4. 동이족

매일 나오는 것이 동이족인데 실제로 동이족이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강간 약탈 학살을 당했는데 과연 자기들이 동이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상나라 당시 동이족의 개념은 당시 수레와 마차가 최신 운송기술이어서 멀리 가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중심지였던 허난성 지방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허난성 동부나 산동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음. 실제로 동이족이라고 하는 공자도 지금의 산동성 곡부에서 태어났으니 그리 쓴 것이고. 즉, 한반도에 살던 애들과 관계없음. 일본과 한국이 동이라고 언급된 것은 중국대륙이 통일되고 도로와 교통이 발달한 한나라 시대 가서야 나온 이야기. 한국인이 상나라 당시의 동이족이 자신들의 선조라고 하려면 동시대에 있던 단군 신화나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