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화제가 되어 다양한 칼럼의 소재로 쓰였던 일본의 유토리(ゆとり)세대의 뒷 세대,

사토리(さとり) 세대가 사회 활동을 시작한지도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깨닳음을 뜻하는 悟り의 이름을 딴 이 세대는 범람하는 정보의 바다에 무방비로 노출된 세대죠.


흔히들 현자 타임이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자기 위로 후 엄습하는 허탈감과 허무함을, 많은 것을 알게 되어 세상에 담담해진 현자에 빗댄 단어인데요.

사토리 세대는 그 반대입니다.

TMI(Too Much Information), 너무 많은 정보에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느낄 때 찾아오는 허무함. 남는 것은 자기 위로 뿐.

서구식 개인주의의 똥양화와 맞물려 겉으론 멀쩡한 척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어떤 세대보다 방어적이고 이해타산적이죠.

한국이라고 다르지는 않습니다.

감정소모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러한 개념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감정에 가치를 매기고, 쓰임새를 정해놓는다는 뜻이죠.

개인적으로 정말 비인간적인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이시구로 마사카즈가 그린 네무루바카의 주제가 이 한장에 담겨져 있다는 감상글이 올라왔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너무 뚜렷한 것 같아서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인싸형 만스터(찐따들끼리 모아놔도 인싸와 아싸가 갈리듯이) 이시구로 마사카즈가 그런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동네 편의점 야간알바도 알고 있는 사실이죠.

사토리 세대의 허무는 소재이자 사회적 배경일 뿐이지 네무루바카의 주제는 아니에요.

물론 이시구로 역시 만스터답게 사토리 세대의 허무를 시원하게 해결하진 않습니다.

그저 클라이막스에서 '으아악 아니야!'한 뒤에 도망칠 뿐이죠.

만화의 분위기 상 희망차보이는 엔딩을 그리고 있지만, 글쎄요.

도망은 도망입니다.




사실 한 세대를 관통하는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 건 만화가가 할 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역겨운 해피엔딩(쿠지라이가 사고를 낸 뒤에 진짜 실력파 가수로 인정받는다든가)을 그리지 않은 게 다행이죠.

만갤러에게 애증섞인 비판을 받는 이시구로지만, 그는 철저한 재미주의 만화가고

네무루바카의 진짜 포인트는 이리스와 쿠지라이의 정신적 백합보빔레즈섹스입니다.

달달함 속에 야한 냄새를 풍길랑 말랑 하는 완급 조절이 일품이죠.




정리하자면 네무루바카는 사토리 세대의 고민을 소재로 그린 백합개그만화고,

책 사서 읽은 독자들이 그대로 갖다 버리지 말라고 넣은 주제는

'뭐가 맞는진 모르겠지만 뭐가 아닌진 아니까 열심히 살다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정도입니다.

실제로 네무루바카는 이시구로의 다른 단편집과 다르게 중고서점에 나온 매물이 적은 편이에요.

자세한 통계 자료는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에 나와있습니다.














네무루바카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찐따 새끼 주제에 인싸 만화를 그리려고 달려드는 자낳괴 아사노 이니오의 서비스 에어리어 이야기를 해보죠.

이 단편의 소재는 얼핏 단순한 부자갈등으로 보이지만,

그 갈등의 형상을 약간만 파고들어보면 전후~버블 세대와 유토리~사토리 세대의 갈등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선 전후 세대를 로스트 제네레이션(웃음)이라는 단어로 칭하기도 하는 것 같더군요.





만화에 묘사된 아버지의 모습은 지극히 가부장적인 모습과 함께 '정'이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로 안 되는 걸 알고 있지만 아들을 억지로 이끌고 캐치볼을 하거나

가족과의 소통을 완전히 막아두지 않고 방문을 조금이나마 열어두는 게 바로 그거죠.

안 되도 일단 해 보고, 사람간의 소통을 완전히 떼지 못 하는 '구세대' 감성을 대표합니다.




반면에 아들이란 작자는 만화 내내 시종일관 아버지에게 시비를 털어댑니다.

저게 개그 소재라고요? 하하.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저런 개그를 치지는 않아요.

저건 누가 봐도 싸우자는 겁니다.

결혼 한답시고 집에 찾아온 김에 아들 행세 하고는 있는데 이제 피곤하니까 그만 발닦고 자자고 압박을 넣고 있어요.





글쎄요. 다른 사람들이 이 만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삔또 상해서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집 나간 아들놈이

옛날 일을 구구절절하게 꺼내들면서 아버지의 뒷담이나 까지만

자신의 '아버지 얼굴 안 보고 사는 불효자'라는 프레임을 견디지 못 하고 화해하는 흉내라도 내기 위해 고향집에 내려와서

정말로 화해하는 '흉내'를 내다가 아버지가 마음대로 살라고 하니까 그새 기분 좋아져서 '관대'하게 술 한잔 하는,

고맙다고 말 한 마디 못 해서 등 뒤에 대고 비맞은 중늙은이마냥 쫑알거리는 만화입니다.


하하. 쓰다보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요.

재능 없는 코미디언에 도전하기 위해 상경하는 아들의 모습은 유토리~사토리 세대와는 달라보이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지 못 하고 자신의 고뿔이 중해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 행동하고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이 못난 건 알아서 또 움츠러드는 전형적인 '요즘 세대'의 모습이에요.




사실 이 단편 만화의 주인공은 아버지입니다.

자신이 '당한' 사고 탓에 회사에서 짤리고 좌절한 상태에서 아들놈에게 밀려나고,

그래도 어찌어찌 부부가 힘을 합쳐 아들을 출가 시키고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집 나갔던 아들이 옛날 일을 아직도 못 잊고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모에모에 포동포동같은 소리나 하고 있네요.


'그런 아들도 가족이다'가 이 만화의 주제라면 제법 그럴싸해질 겁니다.



하지만 아사노는 이 단편을 철저하게 아들의 시점에서 묘사하고,

아들이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아버지와 상호작용하는 어엿한 주인공으로 설정되어있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자신의 주요 독자층인 2~30대의 '요즘 세대'를 대상으로 그린 만화기 때문이에요.

아사노는 '존나 성공한 청년 만화가'인 자신과 그런 자신에게 가랑이를 벌리는 여자들을 유지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오늘도 만갤에선 '씹자 좆푼'이 오지게 빨리고 있죠.

만알못에도 정도가 있지.








여러분.

아사노는 갯마을 소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