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래보다 빠르게 힙스터에 입문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의 만화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근처 큰 서점을 하다가 망한 친구가 재고 떨이를 하는 대신 귀찮다며 아버지에게 팔았는데
아버지는 나에게 줄 생각으로 산 것이었다.
만화 악의 꽃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학교에서 읽지는 않았지만,
종종 아이들이 돌려보던 메이플 스토리나 크레이지 아케이드 만화책도 나는 보지 않았다.
빌려주지 않아서였지만 나중 가서는 그런 책 더러워서 안 본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더더욱 주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은 그게 '삐뚤어졌지만 의로운 학생'이건 '모범생'이건간에
부족한 정체성을 메꾸려 한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아이돌 음악에 비웃는 사람이 내 정체성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 옆에서 아이돌 음악은 지겹다고 말하며 J-POP이나 애니 노래를 듣는 애들은 싫었다.
반의 구석에 음습한 곳에서 씹덕 토크를 나누는 사람들에 억하심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느 날과 같이 점심시간에 자는 척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훔쳐 듣다가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여학생이 씹덕들을 깐 것을 듣고 다짐한 사실이었다.
가끔 그 학생들은 로리와 쇼타에 대해 토론하며 일본의 우월성에 대해 말했는데
그들의 말을 들으면 일본은 북유럽 뺨치는 지상 낙원이 따로 없었다.
들리지 않는 줄 알고 소곤거렸는데 다 들렸다.
아이들의 눈초리는 매서웠고, 오른쪽 구석에 앉은 안경잽이는 구취가 심했다.
어느 날 그 여학생이 만화 이야기를 하다가 원피스나 웹툰을 좋아한다고 했다.
전교 최상위권의 성적의 사람도 원피스나 웹툰을 좋아하는데 내가 뭐가 잘났다고
원피스와 주류 만화를 굳이 부정하는가? 그리고 눈을 돌려 만갤을 보니 힙스터 만화를
빠는 사람들이 쌍욕을 내뱉고 온갖 어그로를 끌어대는 모습을 보였다.
문득 학교 안의 씹덕들이 보였다.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힙합 갤러리나 락 갤러리에서 깝죽거리면서 온몸으로
자신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며 이렇게 희귀한 것도 듣는다고 깝죽거리는
혐오스러운 군상들이 눈에 밟혔다.
일종의 자기 혐오가 뒤섞인 반성 끝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2병을 까며
어른이 되었다는 걸 어필하려는 설익은 풋내기처럼 힙스터를 까고 있었다.
나는 원피스나 나루토 같은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실은 읽지 않고 디시 갤러리에서 힙스터를 마구 깠다가 나중에야 봤다.
재미는 있었지만 썩은 맛에 익숙한 힙스터 픽에 길든 입맛에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 길었다. 나는 재미를 찾으려 했지만,
끝없는 원피스의 모험처럼 그 모험은 끝이 없어 보였다.결국 포기하는 날이 왔다.
그 날 나는 원피스를 만화책 방에 돌려주고 오랜만에
다시 힙스터 만화책을 꺼내들어 자리에 앉아 30권을 연달아 읽었다.
그 시작이 우월감이건 뭐건 간에 만들어진 취향은 나의 것이 되었다.
결국 나를 부정한다는 건 의미 없는 짓이다.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것이다.몸에서 작동하는 장기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다시 힙스터 만화를 읽었다.하지만 힙스터로서 읽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게 재미있어서 읽는 것이었다.
가끔 힙스터인 걸 과시하는 체인소맨과 같은 만화를 보면 짜증이 치미는 것은
그 방황했던 시절의 영향이리라.
원글 작성자 제너럴유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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