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호소다 말고도 미야자키를 깎아내리는 중년 남성들이 많이 보이는데 누가 이야기한김에 생각나서 적어봄



1. 이마무라 쇼헤이의 발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의 한 장면 철 없이 막 나가는 남편 대신 시아버지를 향해 연정을 품는 여인의 모습>



일본영화학교를 세운 일본의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패전 후 남성과 여성들의 생활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남성들은 전쟁에서 졌다고 항상 취해있고 빠칭코에서 아내가 번 돈을 탕진하는 막나가는 자들이 많이 보였는데


나에겐 미군에게 몸을 팔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여성들이 절망에 빠진 청년들보다 훨씬 더 강인해 보였다."-1




2.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来ました。 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当つかないのです。

- 그의 대표작 인간실격의 본문 첫 문장 -2


그는 패전 3년 후인 1948년에 자살했다.





3.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쇼와 천황의 인간선언으로 인해 일본의 민족신화는 해체되었고, 먼 미래 그의 아들 아키히토 천황은 먼 미래 일본평화헌법수호의 상징이 되었다. 전쟁가능한 국가를 주장하는 아베총리어깨너머에 보이는 아키히토 천황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패전 후 일본은 전쟁신화의 거품이 무너지고 민족과,기성세대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했는데


연합군에 의해 지배된 7년간 미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서구의 민주주의가 주입되고


천황은 전쟁의 상징이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화되고 일본의 민족주의는 크게 옅어진다.


이것은 패전 직전 태어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연출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다.


세계화 , 자연주의 , 반전 , 옅어진 민족성(이방인과의 협력으로 평화를 이끌어 가는 모습)과 남성성이 아닌 여성성이 가져오는 평화의 정치적 메세지는


그의 시대상에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연합군은 떠났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시대정신이 일본을 지배해가고


그에대한 반발로 일본인들은 잠재의식속에 민족주의적 의식을 다시 격렬히 키우게 되었는데



<야쿠자들이 겨우 진압을 했다고 전해지는 일본의 전공투 세대>


<영화감독 츠카모토 신야의 데뷔작 "철남 데츠오"의 한 장면. 힘을 추구하다 폭주해버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디어와 자본시장으로 인해 확장되고 이식되는 서구민주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속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일본의 전통과


옅어진 민족성과 무력감에 대한 분노로 젊은 세대들은 당시 가장 격렬한 학생운동을 했다.





요약

1.미야자키 하야오는 패전 후 세계화,평화,여성주의등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전공투세대이후 미군정에 대한 반감으로 극우화된 일본의 패전 2세대들은 미국에 의해 바뀐 일본의 냄새가 나는 미야자키가 좆같을 것이다.




출처-1 - 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 당시 아들의 발언

출처-2 - 좆무위키에서 긁어옴


첨언-혹시 머라할까봐 적음

미야자키가 41년생이라 바로 전공투 세대아니냐? 그냥 태어난건 전공투세대맞는데 영향은 전공투보단 미군정하에 나타난 일본의 시대상이 작품에 더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