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모 고교 학생들이 다른 학교 학생을 구타하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짐. 이 학생들은 평소 타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등 품행이 불량한 문제아들이었다고 함.


이들은 스스로를 '일진회'으로 칭했는데, 이 단체명은 당시 유행하던 만화 '캠퍼스 블루스(비바 블루스)'에서 따왔다고 자백함.

구한말 친일파들의 단체였던 일진회를 떠오르게 하는 네이밍 센스 탓에 반일이 하늘을 찌르던 당시 사회풍조 상 엄청난 파란을 몰고 왔음.


그리고 애꿏은 비바 블루스는 학폭을 조장했다는 죄로 판매중지 먹고 7년 후에나 다시 출판가능하게 됨.











1997년 7월, 국회에서는 청소년 보호법을 발효됨. 명목상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과 약물등의 유통을 근절하고 청소년들이 이를 접하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였음.


정부에서는 학교 폭력의 배후에는 유해만화가 있다는 논리를 펴서 142명의 만화방 점주를 불구속기소함. 그리고 1700종의 유해만화 목록을 만들어 서점 전시, 비치를 못 하게 했음. 서점 주인들은 만화책 중 유해만화를 구분해서 비치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경찰에 입건될 게 두려워 아예 만화 판매를 중단해버렸고, 한국에서 만화 판매량은 이전보다 80~90% 줄어듬.


일본만화들은 그냥 출판사 수입이 줄어든 것 빼면 별 타격이 없었지만, 이제 막 기지개를 켜던 한국 만화 계의 수많은 만화가들에게는 사형선고였음.












못 보게 한다고 그걸 진짜 안보는 것도 아닌데, 대가리에 군대식 까라면 까만 차있던 정부의 방침 탓에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피를 봤음.


그리고 저 규정을 지키기 어려운 성인극화를 주로 연재하던 잡지들이 제일 먼저 개박살 나버림.

특히 미스터블루 같은 잘 팔리던 만화잡지가 졸지에 하루아침에 폐간 당함.












그리고 한국 상고사를 다룬 국뽕만화 '천국의 신화'를 그리던 이현세는 그저 네임드라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 당하게 됨.

물론 천국의 신화가 윤간, 난교, 수간이 나오는 등 수위가 요즘 시점으로 봐도 좀 세긴 했지만 검찰은 이현세를 거의 국가내란죄 수준의 범죄자로 취급함.


이현세는 그렇게 한국대표 만화가에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어버림. 결국 2003년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그의 커리어에 엄청난 타격이었음.












그리고 대망의 IMF가 터짐.


졸지에 실업자가 된 수많은 장년층들이 얼마 안되는 적금을 깨서 해볼만한 자영업이 바로 만화대여점이었음.


동네 골목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로 대여점이 판을 쳤고, 만화를 사서 보기보단 집 앞 대여점에서 300원에 빌려보는 문화가 생겨남.

1세대 만화가들이 가까스로 만들어 놓은 ‘만화책 사서 보는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림.


이런 기회를 틈타 총판을 비롯한 유통업자들이 까다로운 서점 판매에서 옛날의 익숙한 대본소 유통 시스템으로 전략을 바꿔버림. 만화대여점에 맞춰 물량을 조절했고, 출판사들은 작가들에게 다작을 요구함. 그로 인해 한 작가 밑에 여러 제작팀을 동시에 돌리는 공장 시스템이 유행하게 됨. 본래 만화공장은 1970년대에도 존재했었지만 이는 확실히 업계의 퇴보라고 할만 했음.



작품의 질과 재미가 검증되지도 않아도 일단 대여점들이 무조건 사주게 되니까 좆노잼 B급 만화들만 양산됨. 저급한 B급 만화에 실망한 많은 독자가 국내만화를 외면하기 시작함.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한국만화는 일본 만화에 비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도 이 때 생겼음.


일단 판매량이 늘어난 출판사, 유통사, 거기에 동조한 작가들은 큰돈을 만질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은 독이 든 성배와 같았음.

소년물, 청소년물, 성인물 등 남성향 국내만화는 사망선고를 받았고, 썰물 빠지듯 시장에서 사라지게 됨. 스스로 시장을 죽여버린 거임.


10~20대 독자층들은 퀄리티와 재미가 보장되는 일본만화로 갈아탔고 한국만화는 아재들이나 보는 걸로 취급함.















시간이 흐르자 청소년 보호법을 피하며 그나마 버티던 청소년 만화잡지들 역시 잡지 판매량이 급감하여 스스로 폐간의 길에 들어섬. 연재처가 사라진 작가들은 펜대를 놓고 애니메이션 학과 교수, 학원강사등으로 업종을 변경함. 본래 한국에서는 70년대부터 정부의 만화 조지기 스킬은 유구한 역사였으나 이번에는 여러가지 상황이 겹치고 겹치다보니 후폭풍이 너무 강했음.


이것으로 한국 만화계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현실화 된것 마냥 멸망의 문턱 바로 앞까지 갔었고, 2000년대는 한국만화의 암흑기로 평가됨.





물론 그런 지옥도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작가들도 존재했음. 하지만 이들도 투잡을 뛰거나, 아예 일본으로 진출하여 그작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에서 만화로 돈벌어 먹기란 힘들다는 걸 몸소 체험함.


그렇게 멸망 직전까지 갔던 한국만화는 네이버, 다음, 파란 같은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시작한 '웹툰' 덕분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사실상 리셋되어버림.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