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 서브컬쳐 70년
만화 파트 기사 5편중 3편까지
https://tvbros.jp/regular/2021/12/13/2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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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만화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시노모리 쇼타로나 데즈카 오사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셨지만, 본격적으로 "만화"라고 하는 문화에 대해서입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만화를 작가를 통해 말하는지, 혹은 미디어를 통해 말하는지에 따라 다르죠.
장 뤽 고다르가 캐나다 대학에서 강의를 했을 때 말했던 것입니다만, "영화는 작가(감독)라는 큰 산의 연속으로 말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작가를 이야기하면 영화사를 논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고다르가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영화의 본질을 영원히 말할 수 없다"며 "작가주의의 폐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주의"는, 고다르 본인이 주장한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본인이 말했던 거니까 설득력이 엄청나죠. 자신들이 시작한 누벨바그는 작가주의를 추구한 무브먼트였지만, 그건 자신들이 영화를 찍고 싶었기 때문이고. 작가주의를 주장한 이유는, 당시의 많은 감독이 영화 평론가 출신이었기 때문.
고다르도 트뤼포도 샤브롤도, 자신들이 영화를 찍고 싶었기 때문에, 감독을 치켜세워, 작가주의를 표방했을 뿐이며, 영화의 본질과는 관계가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즉, 위대한 감독들을 말한 것으로, 영화의 본질을 말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는 겁니다.
――프랑스에는, 당시의 고다르와 같은 젊은 감독이 데뷔하는 시스템이 있었습니까?
없었어요. 당시 프랑스 영화계는 장 르누아르와 줄리앙 뒤비비에 등의 이른바 거장들이 즐비해서, 그들이 찍는 것은 문예 영화였어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찍고 있다는 현실에서 고다르와 동료들은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부정하면, 자신들에게도 메가폰을 잡을 기회가 돌아온다고 생각했겠죠.
그 당시 프랑스가 어땠냐면, 업계에 인정되지 않으면 필름 한 통 살 수 없었어요. 현상조차 해주지 않았고.
프랑스는 문화를 국가가 관리하고 있죠. 정치와 군사뿐만 아니라 문화도 그렇기 때문에 중앙집권입니다. 지금도 예술가는 정부에 등록되어 있어 "나는 아티스트다"라고 해도, 나라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예술가"라고는 자칭할 수 없어요. 자격제인거죠.
그런 가운데, 예를 들어 뤽 베송은 할리우드 영화 같은 작품을 계속 만들어 히트시키고 있어요. 베송이 깔끔한 것은 프랑스스러움을 깨끗하게 버리고 자기 나름의 할리우드 영화를 만든 것. 프랑스의 평론가들은 그를 껄끄럽게 생각하고, 인정하지 않잖아요?
그들은 예컨대 파리도 하나의 도시라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문화로 파악하고 있어요. 도시는 문화 그 자체라는 사상으로, 이런 것이 유럽에서 드물지 않지만, 특히 프랑스는 엄격합니다. 작가의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 장관을 맡은 것도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나라라서, 왠지 자유의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네요.
그건 환상입니다. 민주주의의 본원은 영국. 프랑스는 혁명 후에도 왕정으로 돌아오거나 다시 시민에게 돌아가거나 하면서 혼란스러웠어요. 부드러운 민주주의의 역사를 밟은 것은 영국. 영국이야말로 시민혁명의 나라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말하자면 폭동이지만, 영국의 시민 혁명은 제대로 근대를 만들어 냈으니까. 왕족을 사형에 처한 것은 프랑스와 러시아만으로, 영국은 하지 않았어요. 귀족과 왕족은 피투성이가 되어 싸웠지만.
그래서 프랑스에서 오타쿠 문화가 꽃 피는 것도 당연하고, 나라에 관리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입니다.
――그렇군요...근데 오시이 씨, 주제가 만화에요.
네. 그래서 개별 작가를 말함으로써 문화의 본질은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내가 항상 말했듯이 문화의 95%는 쓰레기. 어떤 장르라도 위의 5%만이 말할 가치가 있어요. 그러나 그 5%는 아래의 95%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즉, 95%를 말하지 않으면, 문화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이든 영화든, 만화도 소설도 같고요. 그래서 장르가 있어요.
그 장르 안에서 산더미만큼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5%의 주옥같은 작품만이 떠오릅니다. 그런 5%의 첨예가 없으면 표현도 쌓이지 않아요. 윗부분이 생기면, 거기가 만들어낸 것이 아래쪽으로 흘러 옵니다. 그 반복이 곧 문화입니다.
이 피라미드 없이는 적어도 서브컬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미디어입니다. 영화에서 시작하여 TV라는 미디어가 태어나고 그 내부에서 애니메이션이 시작되어 지금은 스티리밍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것에 의해서 서브컬쳐의 존재도 바뀌어 오는 것입니다.
그런 움직임이나 흐름 속에서 감독도 작품을 만들어 가고, 만화도 마찬가지예요.
――오시이 씨, 드디어 만화 이야기가 됐네요!
서두가 길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만화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시노모리나 데즈카를 거론하면서, 만화를 언급했을 뿐이니까. 일본에서 만화의 역사라는 것은 미디어를 말하는 건데, 즉, 만화 잡지입니다.
――만화잡지라고 하면, 전후에는 대본소(貸本屋)라는 문화가 있었고, 이후에 부록이 많이 붙어 있던 월간 만화지가 등장했지요.
어린 시절의 월간 만화지는 월에 한 번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월간지에는 10대 부록이라든지 12대 부록이 붙어 있어 본편은 만두피 같은 거고, 부록이 만두소였죠. 부록에는 골판지를 잘라 만드는 장난감이나 뱃지, 소품이 있어서 당시의 어린이 문화를 담았죠. 결국 "어린이 문화 팩"이었어요.
<철완 아톰>이나 <철인 28호>가 연재되던 <소년>지가 왕도로, 그 밖에도 <보쿠라>나 <모험왕>이라는 월간 소년 만화지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서점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고, 정기 구독해 서점에서 집에 배달해 주었죠.
그런 흐름 속에서 언젠가 코단샤와 쇼가쿠칸이 <주간 소년 매거진>과 <소년 선데이>를 창간했어요. 일본 최초의 주간 소년 만화 잡지. <선데이>의 표지는 분명, 나가시마(시게오)였던거 같은데,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격이었죠.
왜냐하면, 달에 한 번의 "어린이 문화 팩"이 아니라, 매주 만화만이 게재되고 있는 잡지. 부록도 좋지만, 역시 좋아하는 만화의 다음편을 빨리 읽고 싶잖아요? 한 달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을 읽을 수 있다니 최고죠? 그걸 실현해 준 것이 주간 만화지였어요.
우선 <매거진>과 <선데이>가 창간되고 제 3세력으로 <소년 킹>이 등장했어요. <킹>의 창간호는 무려 30엔이었으니까. 다른 만화 잡지가 50엔이었는데 30엔이라는 것은 이것 또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무렵 애들 용돈은 대체로, 하루 10엔 정도에요. 50엔이라면 일주일을 모아야 하지만, 30엔이라면 조금만 참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간호는 모두 샀던거 같은데, 나도 샀으니까.
그래서, 각각 다른 잡지를 사고, 학교에서 읽어서, 모든 주간 만화지를 제패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되니, 월간 만화지는 구석에 몰렸던 거죠.
――소녀 만화도 같은 느낌이었지요. 다만, 소년지보다 수가 적었고, 월간 만화지는 지금도 있군요. <나카요시>라든가 <리본> 등등. 조사해 보니 지금도 부록이 붙어 있어요. 음, 지금은 잡지에 부록은 당연합니다만. 이 두 잡지는, 제 어린 시절 무렵부터 그랬어요. 주간 만화 잡지도 제 기억이라면 <마가렛>과 <소녀 친구> 정도여서 소년지만큼 많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왜라고 생각해요? 왜 소년지 쪽이 많다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그다지 생각한 적이 없는데...앗 다음 주에 부탁드립니다.
=2=
――만화라는 서브컬쳐를 말하고 계시는데, 오시이 씨는 그것을 작가가 아니고, 만화 잡지 본연의 방법이나 역사로 말하는 편이 본질에 가깝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월간에서 주간으로 바뀌어 갔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시이 씨는, 소년 만화와 소녀 만화의 역사는 미묘하게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소년 만화는 "주간"이 메인이 되어 크게 바뀌었지만, 소녀 만화의 경우는 거기까지 영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주간 소녀 만화 잡지의 인상이 흐릿합니다.
소녀만화계의 신 고산케라고 불리던 하기오 모토, 야마기시 료코, 타케미야 게이코가 활약하고 있던 것도 월간지 아니었나요?
――찾아보니 하기오 모토의 <포의 일족>은 <별책 소녀 코믹>과 <플라워즈>, 야마기시 료코의 <아라베스크>는 <리본>이라 월간지. 하지만 타케미야 게이코의 <바람과 나무의 시>(1976~1984년)는 <주간 소녀 코믹>과 <프띠 플라워>군요. 덧붙여서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1972~1973년)는 주간인 <마가렛>입니다.
그런가... 그렇지만, 제 인상은 역시 월간지예요.
내가 은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여자는 그다지 만화에 돈을 쓰고 싶지 않은게 아닌가. 단순히 남녀를 비교하면 만화에 돈을 쓰는 건 절대적으로 남자가 아닌가? 만화뿐만 아니라 게임도 애니메이션도 남자가 돈을 씁니다.
즉,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서브컬쳐에 돈을 쓰는 것은 남자 쪽이란 것입니다. 여자의 경우, 옷이나 화장, 맛있는 것이나 여행... 돈을 쓰고 싶은 장르가 많이 있어요. 그렇지만, 남자의 경우, 이거라고 정하면, 거기에 계속 쏟아 부으니까. 유상 자원에 돈을 투하하는 것은 분명 남자 쪽입니다.
――내가 아는 여성은, 쟈니즈에 돈을 쏟고 있어요. 콘서트에 가서 굿즈를 사고 쫓아서 지방 콘서트에도 갑니다.
그렇게 대단한건 아닙니다. 남자의 경우는 더 쏟아붇기 때문에. 아마도 아이돌에 대한 자금투하는 남자가 90%. 게임에 과금하는 핵과금자와 중과금자는 거의 100% 남자니까.
――여자는, 형태로 남는 쪽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요. 브랜드를 사서 손에 쥐는 것은 여자 쪽이 많지 않을까요.
브랜드 상품은 허영심이에요. 여자는 골고루 흔들리고, 골고루 원하죠. 반면, 남자는 이거라고 결정하면 일점 집중. 거기에 밖에 돈을 투하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게다가 남자의 경우는, 좋아하게 되면 "프로"를 노립니다. 프라모델도 게임도, 곧바로 "프로화"하고 싶어져, 일로 하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남자가 애니메이션에 빠지면 "애니메이터"라는 문자가 머리에 떠오르지만, 여자의 경우 그런 사람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만화도 같아요. 만화가 지망은 압도적으로 남자가 많습니다.
아까 말한 "신 고산케"를 지지한 것도 실은 남자예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남자가 몰렸거든요. 특히 하기오 모토의 <포의 일족>이요. 야마기시 료코의 <아라베스크>도 남자가 많이 읽고 있었으니까.
――<포의 일족>은 뱀파이어 물이기 때문에 남자가 읽을 수도 있지만, <아라베스크>는 발레 만화인데, 그래도 남자가 읽었습니까?
그런 고정 개념을 무너뜨린 것이 그 3명이에요. 게다가, 그녀들은 아도니스 시리즈로 크게 떴어요. 소년애 작품.
――하기오 모토는 <포의 일족>과 <토마의 심장>, 야마기시 린코는 <해 뜨는 곳의 천자>, 타케미야 게이코는 <바람과 나무의 시>. 모두 야오이계랄까 부녀자계랄까 BL계랄까, 그쪽 계열이었습니다.
테마도 고정 개념을 부수고 있었죠... 근데 무슨 이야기였죠?
――오시이 씨, "만화를 잡지를 통해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맞아요. 그러니까 월간지 시대의 만화는 부록이나 소설도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담은, 이른바 종합 선물 세트였는데, 그것이 주간지가 되어, 만화만 집중해서 엄선한 스타일이 되어, 노도와 같이 만화를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부터가 겨우 원래 주제인데, 월간지에서 만화를 읽던 아이가 중학생, 고교생이 되어 주간 만화를 읽게 되어, 그대로 대학생이 됩니다. 지금과 똑같아서, 모두 좀처럼 만화를 졸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완 아톰>으로 만족할 수 있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린 시절과 같은 만화로는 만족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는 쪽도 좀 더 작가적인 것을 그리고 싶어집니다.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그 전형으로, 좀 더 작품을, 좀 더 만화의 표현을 파악하고 싶어하는, 만화의 문학적 요소를 추구하고 싶다든가, 그러한 개인적 야심을 가진 작가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데즈카 오사무도 끊임없이 새로운 만화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어린이용은 물론, 어른용, 역사 만화, 더 위험한 만화도 그렸죠.
그런 독자나 작가의 요구로 등장한 것이 <가로>와 <COM>입니다.
――오시이 씨, 드디어 그 이름이 나왔네요.
네. 이 두 잡지는 처음부터 작가주의였어요.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 연령층도 높고 초등학생은 무리. 중학생도 어렵고요.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어떻게든 될려나. 그런 세대를 타겟으로 하여 창간했어요.
<가로>는 청림당이라는 작은 출판사인데, 그 전신이 대본소로 기억합니다. 창간한 사람들은 유명 편집장(나가이 카츠이치)과 시라토 산페이. <카무이전>으로 시작해 시라토 산페이가 간판 작가였죠.
한편, <COM>은 무시프로덕션에서 출발해, 데즈카 오사무가 간판.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가 연재되고 있었어요. 즉, 시라토 산페이인가, 아니면 데즈카 오사무인가. 이 두 사람은 다른 곳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다른 문화예요. <선데이>와 <매거진> 차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말 철저하게 다른 문화! 그래서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당시의 나의 인식에서는, <COM>은 프티 부르주아적. 중산계급적인 인상이었어요. 하지만 <가로>는 더 첨예하고, 분명히 말하면 "빨강". 어차피 <카무이전>이니까 테마는 계급투쟁, 반권력이며 반사회적이죠.
만화의 표현도 완전히 달랐어요. <가로>는 폭력과 에로. <COM>은 상쾌한 인상이었죠. 이와바(이시이 이사미)의 <750 라이더> 느낌 압니까? 농구화의 세계랄까.
――오시이 씨, 그렇다면 보통 만화와 별로 차이가 없는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당시의 소년 만화의 일선을 넘은 표현이 있었습니다. 잡지의 의도가 "만화의 표현 그 자체를 바꾸어 가자"니까. 이시노모리가 그린 <준>이라는 작품은 거의 문자가 없고, 무성 만화, 궁극적인 표현을 목표로 한 실험적인 만화였어요.
<COM>은 이른바 데즈카 오사무의 실험지 같은 것이었고, <가로>는 프롤레타리아 아트. 신좌파적인 학생이나, 날카로운 만화를 목표로 하는 이들이 지지하고 있었죠. 시라도 산페이는 능숙하고 화력이 있었지만, 다른 작가는 그렇지 않았고, 팔리는건 헤타우마(ヘタウマ)였죠. 헤타우마 운동의 원조라고 해도 좋을 정도가 아닌지?
이 <가로>의 흐름을 펌핑했던게 <월간 코믹 빔>. 언제 휴간이 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20년 이상 (2021년 12월호로 창간 26주년 기념호) 열심히 하고 있네요.
――오시이 씨도 참여했던 도쿠마 서점의 만화지, <월간 COMIC 류>는 마치 <가로>같지 않았습니까. 마루오 스에히로라든지 아즈마 히데오도 그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건 편집장의 취향이에요. 나도 "이래도 괜찮은가?" 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저도 <류>의 시작에는 가담을 해서, 창간호의 부록 DVD를 제작했어요. <여입식사 팔레스타인 사투편>. 제작비는 XX만엔으로 당연히 엄청나게 싸고 적자를 봤는데, 이 작품을 계기로 <여입식사> 시리즈가 탄생했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적자라도 만든 보람은 있었죠.
――그렇군요.
그래서 다시 이야기를 되돌리면, 이 두 잡지의 창간에 의해, 대학생 이상의 어른이 읽을 수 있는 만화지의 수요가 있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소위 청년지라는 카테고리군요. 그럼, 그 이야기는 다음에 부탁합니다!
=3=
――오시이 씨, 이번은 <빅 코믹>입니다. 아직도 건재한 청년지네요.
<빅 코믹>이라면, 지금도 연재가 계속되고 있는 사이토 타카오의 <고르고13>이죠.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오, 오시이씨, 지금, 사이토 타카오가 죽었다는데요.
응? 무슨 말입니까, 코로나로 <고르고13>이 휴재라는 뉴스가 NHK에서 나오긴 했는데, 죽지는 않았어요.
――아뇨, 지금 인터넷 뉴스로 떴어요! 4일 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췌장암이었던 것 같습니다.
놀랍네요.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과연 끝날까요? <고르고>.
――어떨까요.
하지만 그가 <빅 코믹> 창간 때 그리던 것은 "어쩌구 매"라는 사립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였어요. 체격은 좋지만, 머리 쪽은 그닥인 남자에, 글래머에 머리가 명석한 여성 조합. 두 사람이 사건을 해결합니다. 분명 권투선수 출신 남자였던 것 같은데…
――찾아보니 <사람 찾는 하늘매 등장捜し屋はげ鷹登場>이라는 만화군요. 확실히 전직 복서라는 설정입니다.
그래요, 그런 제목이죠. 나의 기억에 의하면 사이토 타카오가 오랜만에 한 오리지널이던게 아닐까. 그때까지 <007>이라든가 <나폴레옹 솔로>의 만화화만 하고 있었으니까.
이 만화에는 매회 섹스신이 있었어요. <나폴레옹 솔로>는 가볍게 키스하고 끝이었는데 여기에 와서는 농후한 침대 장면이 됐죠. 사이토 타카오 취향의 아줌마가 나오는데, <고르고>에서도 매회 그려지는 섹스신은 이때부터입니다.
그렇지만, 역시 어중간했습니다. 주인공의 직업이 사립 탐정이니까, 사람을 죽이지도 않고, 액션이라고 하면 경비원 아저씨를 때리는 정도. 이게 뭐야 싶었는데 갑자기 <고르고13>이 시작됐습니다. 그때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독수리>가 끝나고 <고르고>가 됐어요.
처음에는 "요즘 시대에 세계에서 활약하는 암살자? 시대착오 아니야?"라는 반응이었죠. 제임스 본드나 나폴레옹 솔로와 같이 큰 조직이 뒤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닌 고독한 늑대 암살자, 게다가 동양인이라는 설정이, 대본소(貸本屋) 시대로 돌아온 느낌. 사이토 타카오가 대본소 출신이었으니까.
그런데, 시작하니까 엄청 재미있었어요.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는가 하면, 현실감이었어요. 매우 정치적이고 동시대성이 있었죠. CIA나 MI6가 혼란해진 스파이 세계가 제대로 배경이 되어 있었죠. 테러, 실행부대로서 고르고를 부른다는 설정에 매우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게다가 성공률 100%이니까.
――즉, 21세기가 되어도 연재가 계속되고 있던 것은, 그렇게 시대를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군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연재가 시작했을 때부터 <빅 코믹>의 간판 작품이라기보다, 거의 "얼굴"이 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 역사를 함께 걸었습니다.
――그 밖에는 어떤 작가가 있었나요?
<가로>나 <COM>은 약소 출판사였지만, <빅 코믹>은 대기업인 쇼가쿠칸. 진정한 상업주의 청년 만화지가 등장했어요. 당연히 자본이 있기 때문에 작가도 기라성같은. 미즈키 시게루에 이시노모리 쇼타로, 데즈카 오사무도 그렸고, 무려 시라토 산페이까지 그렸습니다.
모두가 가장 놀란 것은 시라토 산페이에요. "그 시라토 산페이가 쇼가쿠칸에 영혼을 팔았다"라고, 당시의 독자가 깜짝 놀랐으니까. <가로>하고 싸웠나? <카무이전>은 어떻게 되는 거야? 라든지, 여러가지 추측을 불렀어요. 뭐, 진상은 잘 모르겠지만.
――데즈카 오사무와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COM>에도 그리고, 라이벌 잡지에도 연재했습니까?
라이벌은 <가로> 쪽이었기 때문에, 그런 의식은 희박했을지도 모르고, 당시는 지금처럼 작가를 독점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라이벌은 아니지만, <가로>와 <COM>이 있었기 때문에 <빅 코믹>이 태어난 것은 확실합니다. <가로>, <COM>의 작가주의를 계승하면서 상업주의를 정면으로 내세워 대성공했어요.
나는 <빅 코믹>은 정기 구독하고 있었지만, 만화를 그렇게 읽은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년 점프>가 등장했을 때부터 더 이상 만화는 읽지 않게 되었어요.
――<점프>와 <빅 코믹>은 모두 1968년에 창간되어, <점프>는 1969년부터 주간지가 되었네요.
그래서 만화가 양산되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 <빅 코믹>과 <점프>의 등장이었죠. 소년만화 주간지가 시작되고 청년지가 일어나 상업주의에 박차가 걸렸습니다.
만화라는 문화를 공기처럼 호흡해 온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을거에요. 만화가 귀중품이었던 시대부터 대량 소비로 접어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네요. 지금은 모르는 만화가 넘쳐나는 인상이군요.
카오스죠. 그런 와중에, 무엇이 지표가 되느냐 하면, 역시 잡지예요. 만화는 잡지 문화이며 잡지가 만들어낸 문화. 다른 잡지와 다른 것은 만화 출판이라는 문화가 있고, 만화 잡지 자체가 이미 문화가 되고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서브컬쳐인 겁니다.
매니아가 아닌 보통 사람이 만화 이야기를 하면 대체로 제목과 작가는 기억하고 있어도 게재지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만화라는 문화를 계속 혁신해온 것은 분명히 제가 보기에는 잡지입니다.
만화는 시대 자체에 영향을 미쳤어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버렸습니다. 그런 재능을 많이 배출했으니까. 만화를 독자적인 문화로 만들어 버린 것은 일본뿐이라고 생각해요. 미국 코믹스와는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미국 코믹스를 읽는 사람이 미국 인구의 50%라고 하면, 일본은 이미 80%정도의 사람이 읽고 있지요. 연령도 성별도 관계없이 읽고 있고요.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간으로 만화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요시모토 다카아키를 다시 읽고 있는데, 그는 40년 전에, 서브컬쳐가 문화의 본류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문학의 세계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다카하시 겐이치로, 시이나 마코토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즉, 예측이 완전히 들어맞았다는 겁니다.
긴 분량인데도 술술 읽히네 현장감이 굉장하다
역시 오이시 마모루
시라토 산페이. - dc App
땨흐흑 ㅠ.ㅠ 너무 잘 읽었서요 고마왕아앙ㅇ아ㅏ 하편도 기다릴게게ㅔㅇ엥에ㅔ에ㅔ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