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이긴 한데 나 본인이 웹툰업계 지망인지라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어느정도 웹툰에 더 호의적인 방향성이라는건 염두해두고 읽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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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웹툰이란 장르는 내가 나고 자란 한국에 뿌리박혀 미래를 기다리는 중이다. 많은 만화 매니아들은 이에 따른 출판만화의 홀대를 비극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다고는 말 못한다만, 근래에 들어 이 상황을 새로운 영역의 발전으로서 전환시키길 바라던 참이었다. 웹툰이라는 형식이 새로운 예술매체로서 인정받을 수는 없는것일까?
그 탐구의 대상으로 굳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웹툰을 콕 집은 것에 대해, 애국심이란 낮간지러운 이유까지 들고싶진 않다. 다만 그 편이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는 내게 있어 가장 큰 이득이다. 어떠한 국가에서 좋은 만화와 이를 향유하는 건전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면, 기왕이면 그게 한국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공부한다며 일본 중고서점을 털다 해외직구를 하고, 되지도 않는 일본어 자료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생한 기억이 정말 괴로운 탓이다. 일본인이 매니아가 되기 얼마나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 그러한 환경이 얼마나 부러운 것인지를 뼈아프게 체감한 후로, 한국에서 새로운 포멧이 주류로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커다란 기회로 느껴졌던 것이다.
허나 어째서인지 웹툰은 아직 강렬한 창작정신이 두드러지지 않고있다. 작가 개인의 시도는 나름대로 관측되고 있으나, 그것이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일은 드물다. 알려지지 않으면 그 어떤 시도건 무의미해진다. 심지어 주류 독자층에서도 소위 양산형 작품에 대한 피로를 호소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는데, 그 흐름이 마이너하고 실험적인 웹툰에의 유입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피로감에 의해 깊이 들어가고 나면 매니아층이 추천해주는 것은 지하의 웹툰이 아니라 이미 무수히 존재하는 일본만화의 명작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만화 마니아들에게 있어 웹툰의 인식은 출판만화의 하위호환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웹툰이라는 장르의 짧은 역사와 다사다난한 위치 탓에 충분한 수의 매니아층을 확보하지 못한 탓은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의 발전은 소수의 매니아층으로부터 이뤄진 논쟁이 대중에게 퍼저나가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영화계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변혁인 유럽의 누벨바그의 시작은 영화 애호가끼리 모여서 발족한 카예 뒤 시네마라는 평론잡지였다. 그곳에서 시네필 집단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열띤 토론과 지적, 비평을 계속했으며 그로부터 무수한 변화가 시작되고 새 발전을 이뤘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처음 리미티드 방식을 활용했을 때는 분명 디즈니와 같은 카툰의 하위호환에 불과했으나, 지금 그들이 저만의 독창적 움직임과 표현양식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사이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며 한계를 개성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는 카나다 요시노리와 같은 천재와 함께, 그림자에 가려진 애니메이터란 존재를 재조명하며 새로운 애정을 발견한 오타쿠층과 평론집단의 협력이 있었다.
어느 매체나 장르건 간에, 매니아들이 요구하는 것은 으례 하나로 귀결된다. 작품이 자신의 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또한 그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고 있느냐다.
이를테면 내가 생각하는 웹툰의 장점이란 컷연출의 자유로움이다. 따로 지면이나 세로축의 한계가 없으므로 컷의 연쇄를 구성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출판만화보다 더 유리한 위치라고 느낀다. 반면 가로축 길이가 극도로 제한되는 특성상 강렬한 확장 - 양면 페이지 연출이 불가능하며, 이 부분에 있어서 웹툰은 무척이나 취약하다.
어쩌면 웹툰은 웅장하고 강렬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유럽영화식 컷연출, 실험정신에 더 부합하는 매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웹툰계는 정반대로 어떻게든 세로축을 확대해서 임팩트를 추구하려 몸부림치고 있다. 크고 임팩트 있는 컷의 추구는 당연한 것이며 배척해야 하는 부류도 아니지만, 그 외의 다른 시도는 지금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이유는 당연하다. 그런 시도를 해봤자 알아줄 사람이 없다.
지금 웹툰계의 가장 큰 취약점은 새로운 탄생을 받아줄 매니아층의 부재다. 이 매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치열한 탐구가 없는 채로 확장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무엇이 좋은 웹툰인지, 어떤 것이 장기적으로 추구해야할 방향인지, 제3자인 독자의 시선에서 평론하는 흐름이 너무나 미약하다. 그 미약한 평론마저도 대부분 작품 개개의 스토리나 주제의식 측면에 한정되며, 매체 전체를 포괄하는 웹툰이라는 정체성의 논의는 업계인 사이에서만 암암리에 이루어질 뿐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리고자 작품을 그리는 창작자가 알아주지 않는 구역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란 어렵다. 애초에 제대로 된 평가기준조차 확립되지 않았으니, 그러한 영역에 눈을 뜨는 것조차 마땅치 않은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 결과 웹툰은 현재 ‘스크롤 늘리기’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웹툰을 읽는 독자층 사이에선, 손가락을 움직이는 시간이 길수록 좋은것이라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감각이 아직까지 상당수를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세로길이의 신축을 통해 리듬감을 형성한다는 웹툰으로서의 장점은 희석되고, 가로로 뉘인 인간의 두 눈에 적합하지 못한 세로축으로만 끝도없이 늘어나며 스스로를 출판만화의 하위호환으로 만들고 있다는 감상을 뿌리칠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대중이 둔감한 탓이라며 비난할 수 있을까? 뭣도 모르는 세상이 잘못되었다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상에 잘못된 사람은 없다. 다만 뭔가가 잘못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스크롤이 길면 좋다는 감상은 앞서 말했듯이 매우 일차적인 감각에 기반하고 있다. 간단한 사고회로로 얻는 감상인 만큼 깨트리기도 쉽다. ‘스크롤 길이가 창작자의 노력과 정성을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이론이 독자 사이에 퍼져있다면, 읽기도 편해질 뿐더러 컷의 길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매니아층이 제대로 기능하고 형식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는 환경이라면 이미 벗어났을지도 모르는 함정이나, 웹툰은 아직도 그 덫에 발목잡혀 다른 길목을 향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평론의 영역에서 웹툰을 다루는 사람의 수는 너무나 한정되어있고, 이를 읽어주는 사람도 거의 없는 판국이다. 매체가 가진 한계를 미학으로 재인식시켜줄 힘이 부족하니, 관련된 담론이 형성되지 못한다.
작가 개인의 힘으로 그 영역에 발을 들이라 하는건 어찌보면 잔혹한 일이다. 데즈카 오사무같은 재능을 가지지 못한 것이 죄라고 할 수는 없다.
웹툰이 일본만화 수준의 매니아층과 평론규모를 탐낼 수는 없다. 그건 정말 오랜 시간동안 길을 개척하고 역사를 쌓아오며 얻어낸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그림자에 가려져서 다른 방향으로의 발전가능성이 막혀있다면 이는 비극이다.
사실 웹툰에 매니아층이 없다면서 독자 탓을 하기엔, 이쪽도 너무 많은 고충이 있는게 사실이다. 애당초 짧은 역사와 더불어, 옛날부터 존재하던 출판만화란 거성은 너무 중력이 강하여 이쪽으로 와야 할 혜성들을 모조리 자신의 궤도권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더군다나 일본만화의 축을 이루던 잡지는 여러 작품을 묶어 사야했기에 자연스레 마이너한 작품도 한꺼번에 소개할 수 있었지만, 웹툰 플랫폼은 한 작품만 따로 골라보게 되니 한번 묻힌 작품은 입소문 없이는 영원히 묻히기 십상이다. 슬픈 일이지만, 혼란의 인터넷 시대에서 예술이 아니라 국가,정치,사상적 논쟁에 휘말린 악영향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결과, 이제 만화를 깊게 파고든다는 커뮤니티 내에서 웹툰에 대한 언급은 싸움만 낳거나 금기시당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런 환경에서 혁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게 가능할까?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이리 말한다고 해서 만화 매니아층이 나서서 웹툰쪽에 힘을 실어줄 의무는 없다. 덕질은 즐겁자고 하는 일이다. 즐기지도 않는 분야를 밀어달라고 강요할만큼 염치가 없진 않다.
다만, 만화 매니아라면 만화가 영상물의 하위취급 받는 것에 분노한 적이 있을것이다. 장르문학은 순문학의 부산물이 아니다. 게임이 영화에만 종속되서는 안된다. 각 매체가 그만의 형태를 발견하고 저마다의 방향을 따라 발전하는 것이, 이후 영향력을 주고받을때의 폭발력을 낳는 원천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내가 웹툰이라는 매체에 호기심을 품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금의 일본 만화 역시 형식이 고착화되었다며 지적하기도 한다. 다만 그건 일본만화는 이미 탐구의 시대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카툰과 영화로부터 이어받은 자산을 발전시켜온지 벌써 70년이다. 그들은 이미 보물과 같은 경험을 지나왔으며, 새로운 뭔가를 발굴하기가 힘들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웹툰은 아니다. 웹툰은 아직도 황금시대를 지나지 못했다. 그 앞으로 향하는 길이 막혀있다. 뚜껑을 연다고 뭐가 나올지는 모를 불안한 상자일수도 있으나, 나는 그 미래를 한번 보고싶다. 핸드폰의 시대가 얼마나 오래갈지 불투명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것이다. 제발, 이쪽도 가끔 돌아봐주세요...하는 구걸의 의미로 말이다.
+메모
-한때 네이버에서 웹이라는 특성을 살려 여러 시도를 한 전적이 있긴 하다. 대부분이 움직임이란 요소를 도입해 간단한 애니메이션의 형태를 만드는 것인데, 실패할 이유는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꽤 매력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도 많고, 잘만 하면 굉장한 임팩트를 구사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만화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서의 평가도 받아야할텐데, 그쪽 분야로서는 빵점에 가까운 움직임이라는게 상당한 패착이었다. 대부분의 움직임은 단순한 PAN효과나 스켈레톤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데다, 움직임의 템포를 스크롤에 연동시켜서 조금의 기교조차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계산되지 않은 움직임은 도리어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속도감을 깎아내기만 했다. 주간연재의 한계로 쓸 수 있는 매수가 극도로 낮아지는 만큼,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으로서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는데 거기까지 역량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1. 웹툰/애니 양 측면에 모두 지식이 있는 인재, 2. 극도로 적은 매수로도 박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연출에 대한 깊은 이해 3. 그 많은 작업량을 소화하고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완벽한 제작시스템
등이 필요한데... 이런게 가능했으면 애니 회사를 차렸겠지. 게다가 애당초 주간 장기연재로 소화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닌지라, 현재로선 월간연재가 제대로 정착되고 나서야 국소적으로 시도 가능한 포멧이 아닐까 싶다.
-헬퍼와 살인자ㅇ난감같은 작품들이 웹툰의 정체성을 탐구한 동시에 대중적 반향을 일으킨 사례지만, 대부분은 단발적인 반향으로 끝나고 추가적인 담론이 생성되지 않은게 아깝다.
글 잘썼네요 ㅊㅊ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