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시마
토리야마 군과 처음으로 만난 건 슈에이샤에 입사 2년차. 영점프상 월례 만화상에 응모로 두번째 투고를 했던 게 계기였지.
토리야마
처음에 했던 투고가 아와와 월드고, 두번째가 의문의 레인잭. 스타워즈가 히트해서 거의 그 패러디 만화였죠.(웃음) 번개 도깨비를 유괴해서 물부족을 연출. 물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얘기였죠.
토리시마
비슷한 이야기가 그 후에도 간혹 나오곤 했지.
토리야마
좋아하는 소재거든요. 최종적으로 SAND LAND라는 단편에도(웃음)
토리시마
그 단편 만화가 낙선했는데, 근데 레터링이 굉장히 깔끔했어. 그 디자인 센스가 군계일학이라서 내 눈에 들어왔지.
토리야마
나는 광고 대리점에서 근무했으니까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요.
토리시마
만화에서는 그런 게 보기 드물었던 점과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선이 지저분하거나 그림이 서툰 건 싫어하거든.
토리야마
그렇게 연락을 주셨죠. 부모님이 '맨날 놀기만 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기뻤지만 상금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낙선은 좀(웃음)
토리시마
낙선이면 상금은 없으니 말이지.(웃음)
서로 첫인상은 어땠나요?
토리야마
마르고 건강한 플라밍고 느낌.(웃음) 말도 거침없이 하고요.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 쪽이 태도는 정중하지만 진의가 보이지 않는 사람보다 나으니까 그 점은 의외로 잘 맞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토리시마
토리야마 군은 좋은 의미로 평범한 사람이야. 어두운 사람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있는 사람이 신인 만화가들 중에는 많은데 '일을 할 상대는 이런 사람들은 아니지'라고 생각했거든.
어릴 적부터 만화를 자주 읽으셨나요?
토리야마
초등학생 때는 만화 삼매경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영화랑 그림으로 관심이 옮겨가서 만화는 별로 안 읽게 됐습니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시작으로 연애물을 제외하면 전부 보는 식.
토리시마
닥터 슬럼프에 그게 잘 드러나지. 더티 해리처럼 영화의 별 볼일 없는 패러디가 등장해.
토리야마
TV방송도 애니보다 실사를 좋아해서 초등학생 때 본 울트라Q랑 울트라맨에 흥분했습니다.
토리시마
그 닥터 슬럼프에서 내가 충격을 받은 게 연재 전에 2화 네임에 아라레가 등장하지 않는 거야. '왜 이 귀엽고 재밌는 소녀가 안 나와?'라고 물었더니 '센베 발명품 중 하나니까, 한번 나오고 끝입니다'라고 하더라고.
토리야마
저도 '이 소녀를 주인공으로 해'라고 하셔서 엄청 충격 받았습니다.
토리시마
그래서 '싫어'라고 대답했지. '왜'라고 물었더니 '소년만화니까'라고.
토리야마
쇼와 남자는 남자다움에 집착하니까 소녀가 주인공이라니 무지 싫었어요.
토리시마
그래서 토리야마 군과 내기를 했지. 점프 증간호에 소녀가 주인공인 만화를 그려서 인기투표 3위 이내에 들지 못하면 아라레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아도 된다고. 그게 갸루 형사 토마토.
토리야마
으음, 이것도 잊고 싶은 작품입니다.
토리시마
그게 멋지게 3위를 차지했지. 아라레를 2화 이후로도 등장시키게 만들고 3화까지 그리게 한 원고를 연재회의에 제출했어. 근데 당시의 부편집장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는 사람이라서 연재가 결정됐는데 1화는 권두 컬러도 아닐 뿐더러 표지에 실어주지도 않았어. 어디 그 뿐일까 무단으로 느닷없이 2화까지 한번에 게재해버린 거야.
토리야마
맞아! 갑자기 세이브 원고가 떨어졌어요.
토리시마
그것도 충격인데 한번에 2화 게재를 세일즈 포인트로 삼아 버려서. 그랬더니 3회째에 인기가 톱이 되어서 난데없이 '권두 컬러 그려'라고 말을 꺼내고.
토리야마
그건 기뻤지만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처음 만화를 그린 시점에서 '이런 일이 매주 이어지는 건가요?'라고 물어봤더니 '괜찮아, 인기가 없으면 10주면 끝나니까'라고 하셨는데 느닷없이 지옥 같은 일정이었죠. 어시도 없어서 매일 겨우 한시간도 제대로 못잤고요. 펜선 작업도 처음에는 신경 써서 했는데 점점 생략하는 방법만 익히게 되고.(웃음)
토리시마
그래서 닥터 슬럼프를 연재하고 반년 정도만에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햇지.
토리야마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매번 1화 완결 형식으로 그려야하는 게 진짜 힘들었어요.
토리시마
도중에 그 왜 운동회나 깡통차기 대회 같은 걸 시작했지.
토리야마
고육지책입니다. 억지로 질질 끄는 게 훤히 보이죠.
신캐릭터도 나오죠. 그런 건 토리야마 씨가 직접 결정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토리시마 씨랑 의논을 하고 정하는 건가요?
토리야마
기본적으로는 내가 그린 걸 토리시마 씨가 평가하는 식이 많았어요.
토리시마
'이런 방향으로 그려'라거나 '이런 걸 그려'라는 지시는 거의 없지. 도중에 '단편 형식으로 그리는 게 힘들다'고 말했을 때는 '운동회를 하자'고 말한 그 정도.
토리야마
닥터 마시리토도 처음에는 평범하게 나쁜 놈을 그리려고 했는데 '개성이 없어. 더 나쁜 느낌으로'라고 하셨죠. 그래서 '알겠습니다. 더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는 이미 그 캐릭터가 머리에 떠올랐으니까.(웃음)
토리시마
원고를 봤을 때 '한방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수정할 시간이 없었어. 마감 직전이라서 OK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야.
토리야마
나도 좀 고의로 마감 막바지에 드렸습니다.(웃음)
토리시마
그래도 인기가 좋았으니까, 그 다음은 '이제 하지마'라고 말할 수가 없는 법이잖아.
연락이나 원고 전달은 어떻게 하셨나요?
토리야마
대체로 매주 한번은 토리시마 씨가 전화를 하셨어요. 내가 먼저 하는 일은 절대 없으니까.(웃음)
토리시마
내 전화는 10분에서 15분 정도. 30분 떠드는 일은 거의 없어.
토리야마
그렇죠. 길어야 10분 정도. 용건만 파바박 말하고.
토리시마
당시는 아직 팩스가 없었어. 그래서 원고나 네임은 배송으로, 우편 배달 같은 거.
토리야마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는 항공편이 됐죠. 나고야 공항까지 철야를 하고 밤을 샌 상태로 차를 몰고 가서....이른 아침편이니까 햇살이 강해서 신호 색깔이 잘 보이지 않아서 꽤 위험했죠. 매주 보내곤 했죠.
토리시마
주에 두 번. 네임이랑 완성 원고.
토리야마
네임을 퇴짜 맞으면 근처 건축 자재 가게에 가서 다시 한번 복사를 하고, 다시 공항에 가고. 그거 참 힘들었습니다. 진작에 팩스를 도입하면 좋았을 걸.
그렇게 닥터 슬럼프를 완결내고 드래곤볼을 연재하게 됩니다.
토리시마
그건 부편집장이랑 토리야마 군이 면담을 가져서, 나는 전화 응대였나 무슨 일로 30분 늦게 갔거든. 그랬더니 닥터 슬럼프보다 재밌는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그만둬도 된다는 말을 듣고 토리야마 군이 '알겠습니다'라고 했대.(웃음)
토리야마
그쪽에서 건 조건으로 남자가 주인공인 만화를 그려도 된다고 해서.(웃음)
토리시마
이 책에서도 쓴 내용이지만 토리야마 군이 일을 하면서 본 비디오가 새연재의 힌트가 됐지. 뭘 봤는가 하면 쿵푸 영화.
토리야마
맞아요. 자주 틀어놨죠. BGM을 대신해서.
토리시마
그럼 그걸로 한번 그려봐라고 말해서 완성한 게 드래곤 보이.
토리야마
그건 그것대로 싫었습니다. 영화로 좋아하는 것과 직접 그리고 싶은 건 다르니까. 나는 격투 표현이 서툴렀으니까. 그리고 나쁜 놈도 못 그리고요.
토리시마
드래곤볼의 피콜로 대마왕이 계기였지. 연재 초기에는 닥터 슬럼프 분위기의 연장선이었으니까. 정말로 나쁜 녀석을 그릴 수 없어서.
토리야마
맞아요. 철저한 악을 그리는 게. 그전까지는 오공과 정면으로 대적하며 상대방을 죽이는 일은 없었는데 처음으로 도전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토리시마
그래서 대마왕이 오공 앞에 섰을 때, 손을 휘두른 것 만으로 돌풍이 발생해서 오공이 날아가잖아? 이건 토리야마 군이 악의 캐릭터를 자기 패에 넣었구나 싶더라고.
토리야마
당시에 그 말씀을 하신 걸 기억해요. 이상한 부분에서 감탄하는 사람이네 싶었거든요.(웃음) 좀처럼 칭찬을 해주지 않는 사람이라서 기뻤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진정한 악을 그냥 해치우는 것 만으로는 개인적으로 떨떠름 해서 드래곤볼로 되살렸습니다.
토리시마
드래곤 보이를 그리기까지는 악전고투했지만 그 아이디어를 떠올린 다음에는 드래곤볼 연재까지 빠르게 네임을 완성했지. 주인공이 손오공이라면 여의봉이나 근두운도 있으니까.
토리야마
오공 캐릭터 디자인도 처음에는 원숭이였죠. 서유기라면 좋아하는 이야기니까 그걸 어레인지 하자고 생각했죠.
토리시마
볼을 일곱개 모으면 용이 나오는 설정은 토리야마 군 아이디어였어. 스토리를 정한 다음에는 연재회의도 거의 스킵, 1화 네임을 만들고 2화를 보여줬나 안 보여줬나 하는 정도일 때 이미 연재가 결정났거든.
토리야마
그래도 처음에는 거의 개그 만화였죠. 이야기가 어중간 했고 오공이 싸울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많이는 안 싸우고요.
토리시마
로드 무비를 했더니 앙케이트 순위기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해서 이대로면 출하각이라고 하길래 수행편을 만들고 크리링을 등장시켰지. 그랬더니 인기가 톱이 되어서 안정됐더니 토리야마 군이 한 말이 '스토리 만화는 편해서 좋네요'였어. '페이지 끝까지 그리면 끝이 나니까'라고.
토리야마
네. '다음에 계속'으로 끝낼 수 있으니까요.(웃음)
토리시마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등신의 오공은 무리라고 했어. '이래서는 액션을 못 그려요. 그러니까 오공 등신을 크게 만들고 싶어요'라고. 나는 반대했어.
토리야마
엄청 반대하셨죠.
토리시마
기껏 오공을 팔기 시작했는데 그걸 바꾸겠다고 하잖아. 이보다 무서운 일은 없지. 근데 '그러면 연재를 계속 못한다'고 했지. 그래서 편집장한테 털어놨더니 '별 상관 없지 않나?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하라고 해'라고 차갑게 대답해서.
토리야마
관심이 없었던 거군요.
토리시마
그렇지.(웃음) 나는 엄청 걱정이라서 오공이 커진 게재호가 발매된 날 오후에 항의 전화가 오지 않을까 싶어서 편집부에서 대기했어. 근데 어른이 한 전화가 딱 한 통. 앙케이트 순위도 굳건한 1위로 아무 일도 없었지.
오공과 마찬가지로 적도 프리저, 셀, 마인 부우로 점점 강해집니다. 그러면 토리야마 씨도 전보다 훨씬 굉장한 액션신을 그려야 하는 부담감이 있지 않았나요?
토리야마
액션 만화는 그게 제일 힘든 점입니다. 전 싸움과 같은 수준의 싸움을 그려봤자 독자 입장에서는 수준 낮은 싸움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점점 강하게 만드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액션 표현의 레벨업이라는 의미에서는 프리저와의 싸움이 끝난 이후부터 힘들었죠.
토리시마
거기서 그만 두는 게 제일 좋았는데 말이지.(웃음)
토리야마
...그 말씀 자주 하시죠.
토리시마
그만한 인기면 그렇게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웃음)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에서 만화를 그리는 방식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토리야마
닥터 슬럼프는 그리면서 만화를 그리는 법을 익힌 식이었고, 갑자기 연재를 시작해서 힘든 일은 힘들었어요. 마감을 지키려고 애써도, 도중에 엄청난 감기에 걸려 열이 높아서, 펜선 작업을 한 기억이 없는 게 2화 정도 있어요.(웃음)
드래곤볼은 연재 후기에는 전투씬이 없으면 네임에서 완성까지 빠르면 1화를 하루만에 완성하는 일도 흔했습니다. 물론 일을 얕보는 건 아니지만요.
토리시마
스토리를 생각하는 일이 없으니까 말이지.
토리야마
그런데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없을 만큼 바빴던 이유가 뭘까요..?.
토리시마
요컨대 얼마나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창작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만화를 그리는 일이 단순한 작업이 되어서 싫어지니까.
토리야마
역시 만화가가 되기 전에 회사에서 근무했던 게 중요했죠. 일을 하면서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난처해 하는 일이 노골적으로 보이니까.
토리시마
원고가 늦으면 다양한 사람한테 폐를 끼친다는 발상은 당신 말고는 아키모토 씨랑 고인이 된 타카하시 카즈키 씨 말곤 들어본 적이 없어. 이 세사람은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회인입니다.
토리야마
그야 마감을 지키는 건 철칙이잖아요. 전단지를 만드는 일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투고했을 때 토리시마 씨가 편집부에 없었다면 나는 만화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토리시마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당신과 만나서 입사 3년차에 히트작을 만들지 못했다면 편집부에서 더 괴롭힘 당했을 거야.(웃음)
토리야마
나는 항상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관련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연재 도중부터 '만화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나 혼자서 만드는 일일지도'라고 생각하게 된 다음부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토리시마
그래도 취미가 아니라 서로 일이라는 의식이 있었으니까. 후딱 끝내려고 생각했지. 그럼에도 점프에서 두 작품 연속으로 히트 친 사람은 거의 없어.
토리야마
운이 좋았어요. 그리고 토리시마 씨 어드바이스도 있었고. '뭐 일이니까'라고 딱 잘라 분별한 것이 좋았던 것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닥터 슬럼프도 드래곤볼도 내 취향인가 하면 전혀 내 취향은 아닙니다.(웃음)
토리시마
그런 말 하면 팬이 충격 먹어.(웃음)
토리야마
그치만 정말로 내 마음대로 그리면 절대 통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웃음)
잘읽었다
충격이네 아라레가 '센베 발명품 중 하나니까, 한번 나오고 끝입니다' 라니. 죽을애를 살려놨네.
라무 1회용으로 기획했던 루미코 여사 생각남...
근데 토리시마도 오공 크는거 반대한거 보면 항상 촉이 좋았던건아님
토리시마 원피스 망할거라고 고사지내던 사람이자나 ㅋㅋ
만화를 아예 안본건 아니구나 영화광인건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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