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작가로 활약하던 히로유키 선생이 망가 타임 키라라 캐럿에서 만화를 그리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2004년 여름 코믹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가 있을 때 편집자 분이 메일을 보내주신 게 계기입니다. 아마 여름 코믹에 낸 동인지를 보고 연락을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키라라의 지명도가 결코 높지 않았습니다. 제의를 거절한 만화가도 알고 있는데 히로유키 선생은 수락을 한 이유가 뭔가요?


동인지 전업 작가로 1년을 해보고, 출판사에 원고를 들고 가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재를 시켜준다면 솔직히 어디든지 상관 없었습니다. 나는 키라라 잡지는 읽어 본 적이 없지만 단행본은 사고 있었기 때문에 이름은 알고 있었어요. 동료들 사이에서도 지명도는 있었습니다. 모에 4컷 잡지는 동인작가한테 자주 연재 제의를 합니다. 지인한테도 편집자 연락이 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한테도 오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타이밍 좋게 메일이 온 느낌입니다.


히로유키 선생은 그 무렵 이미 잘 나가는 동인작가였나요?


코미케에 내는 신간을 5000~6000부 정도는 인쇄했습니다.


굉장한 부수네요! 그 후에 편집자와 미팅을 하고 연재 개시까지 어떤 흐름으로 진행됐나요?


편집자의 연락이 온 게 8월 하순이었는데 10월 하순에는 연재를 시작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즉 마감은 한달 반 정도. 요즘 같아서는 상상할수도 없는 하이페이스인데(웃음) 원래부터 4컷 만화의 진행은 그런 법이 아닐까요? 기획을 세세하게 짜기보다,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로 만든 것을 팍하고 연재하는 느낌이 아니었나 싶어요.


연락을 받고 바로 동인워크의 아이디어를 짜지 않으면 마감을 맞출 수 없으니까요.


여름 코믹이 끝나고, 8월말 무렵에 낸 동인지 즉매회의 회장에서 동인워크 캐릭터 디자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점에서 아이디어는 있었어요. 나는 현시연을 좋아했는데, 동인지를 테마로 아슬아슬한 개그를 치면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동인지를 통해서 태어나는 우정 이야기 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블랙한 부분도 그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발상은 멋지게, 실제로 독자를 사로잡았습니다. 연재전부터 승산이 있었나요?


동인지 업계 소재를 아키바Blog 같은 뉴스 사이트가 다루는 걸 봤으니까, 만약 동인워크가 기사가 되고 화제에 오르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동인워크의 제작에 편집자는 얼마나 개입했나요?


딱히 개입은 없었습니다.(웃음) 표현적으로 위험한 부분은 수정이 들어갔지만, 내가 그린 네임이 그대로 실렸습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로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소수파였습니다. 키라라는 디지털화가 빨랐다고들 합니다. 히로유키 선생은 연재 개시 당초부터 원고를 디지털로 작업하셨나요?


펜선 작업까지는 아날로그였지만, 톤이나 베타는 디지털, 그리고 입고도 디지털이었습니다. 당시부터 동료들 사이에서는 판 타블렛을 써서 그리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만 나는 판 타블렛으로는 마무리 작업이나 채색 정도의 작업이면 모를까 캐릭터의 선을 생각한대로 긋는 게 전혀 되지 않았어요. 따라서 액정 타블릿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판 타블렛과 똑같이 작업이 어렵겠거니 생각하고 20대가 끝날 때까지 선화는 아날로그로 계속 그렸습니다. 실제로 써보니 기우였지만요.(웃음)


왜 히로유키 선생이나 지인 작가 분들은 디지털을 소화할 수 있었나요?


당시 디지털 작업을 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오타쿠가 많았어요. 특히 미소녀 게임을 하는 사람은 컴퓨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디지털로 작업하고, 입고까지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었죠. 스캐너가 한대 있으면 톤도 컴퓨터 상으로 붙일 수 있기 때문에 마무리 작업도 빨라서 유용했죠.


말씀대로 미소녀 게임 동인지를 내는 작가는 디지털로 작품을 그렸었죠.


나는 처음부터 상업 작가를 목표로 동인을 했기 때문에 밑그림에 펜선을 넣었는데, 당시의 동인작가는 펜선 작업을 하는 사람의 의외로 거의 없었어요. 러프한 동인지는 연필로 그린 선 그대로 인쇄하는 예도 있었으니까요. 그랬던 것이 컴퓨터를 갖고 있으면 연필선을 스캔해서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해서 마무리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이 처음부터 디지털로 제작을 하기 때문에 연필로 그린 동인지는 찾아볼 수 없게 됐죠.





2000년대 초반 동인지 판매회를 테마로 삼은 미소녀 게임 코믹파티가 인기였습니다. 동인워크도 의식을 하셨나요?


나도 코믹파티는 해봤습니다. 그 게임은 동인지가 잘 팔리면 여자랑 친해지는 시스템이라서 엄청 즐겁잖아요. 무척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한편 내 동인워크는 동인계의 금전적인 리얼함을 그려서 차별화를 모색했습니다.


동인워크는 돈에 관한 얘기 등, 살짝 블랙한 부분의 이야기도 나오죠.


동인워크는 픽션이라고 여겨지는데 내용은 사실에 기반한 부분도 많습니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아는 거지만, 당시의 동인지는 20세 남짓한 인간이 말이 안 될 정도로 돈을 벌었어요. 20p 정도 그리고 100만엔 이상은 벌어버리는 건 이상한 일이고, 그 이상함이 재밌었어요. 당시 개인적으로 동인지는 엄청 돈이 된다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세간의 이미지와의 갭을 만화 속에 담아내면 재밌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렸습니다.


말씀대로 동인워크를 읽고 동인지의 이미지가 바뀐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리고 만화가는 돈 얘기를 하는 걸 꺼리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기에 매상 이야기를 그리면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화제를 다루면 화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나다를까, 2찬넬에서는 개쓰레기라는 소리를 들었죠. '이새끼는 4컷 만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나. 근데 앙케이트 순위는 평범하게 좋았어요.


상입지 일을 시작하고 동인지 매상에 변화가 있었나요?


동인워크를 연재하기 전에는 앞서 말했듯이 5000~6000부였습니다. 1권이 2005년 12월에 나왔는데, 직후의 겨울 코믹에 낸 동인지가 느닷없이 1만부 팔렸습니다. 그야말로 상승효과죠. 당시 개인적으로 상업 연재를 하면 결과적으로 동인지도 팔리게 될 거라는 계산이 있었는데, 멋지게 적중했습니다. 지금은 동인활도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이나, 주간소년 매거진이나 단행본으로 읽는 분이 동인지를 사는 것보다 훨씬 싸고 많이 읽을 수 있다는 문제 때문인지, 동인지가 폭발적으로 팔리는 일은 없어졌지만요.


요즘은 동인지 전업 작가 활동을 하며, 상업 연재 제의를 거절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히로유키 선생이 상업 연재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상업지는 많은 사람이 봐준다는 메리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애니화 같은 미디어믹스의 기회는 상업지가 훨씬 많습니다. 상업지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전달하기 위해서 출판사의 힘을 빌리자는 가치관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돈을 버는데는 상업지가 더 낫습니다.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마감이 있고, 동인지로 장기 시리즈를 그리는 건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성인물이 아닌, 일반 만화를 그릴 거라면 상업지를 추천합니다.


2007년에 동인워크가 애니화 됐습니다. 망가 타임 키라라 연재 작품 중에서는 최초의 애니화입니다. 캐럿을 포함하면 이 해 1월에 히다마리 스케치가 애니화 됐는데, 어쨌거나 키라라 애니의 선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애니화에 이르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인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웃음) 1권의 초판이 1만 9000부였는데, 바로 1만 7000부 증쇄를 찍었습니다. 그 후에 점점 부수가 늘어서, 한달 남짓한 기간에 5만 1000부까지 찍었습니다.


최근에는 봇치 더 록!이 애니화 방송후 200만부를 돌파했습니다. 동인워크도 애니화를 기회로 단행본 매상에 변화가 있었나요?


애니가 시작되기 전에 단권 10만부를 넘겼고, 3권이 나올 때 애니 발표가 있었습니다. 애니에 맞춰 각 권 5만부 정도 증쇄를 찍고, 방송이 다가옴에 따라 점점 판매량도 올라갔습니다. 그랬는데 애니가 방송되자...그 매상 추이가 정점을 찍고 떨어졌다...는 모양입니다.


갑자기 뚝 멈춘 원인은 대략 알 것 같습니다...


여명기였으니까요. 키라라 편집부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습니다. 당시 편집부에서 죄송하다고 사과한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키라라 애니는 히트작을 팍팍 내고 있고, 퀄리티도 흠잡을 데가 없는 작품들 뿐이죠. 몇 편이고 만들면서 노하우가 생긴 거겠죠. 내 작품이 그 초석이 됐다면 바라는 바입니다.(웃음)


키라라에서의 연재를 돌아보시니 어떤가요?


키라라에서의 연재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잡지 전체적인 방향성이 알기 쉬웠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돋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전략을 짜기 편했어요. 그 경험이 다음 연재에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나는 벌 수 있는 동안에 벌어두고 싶은 사람이라서 편집부에서도 잔뜩 일감을 몰아줄 수 있었고, 써먹기 편한 작가이지 않았을까요?(웃음)


과연, 그래서 당시에 히로유키 선생은 다른 키라라에도 연재를 하셨던 거군요.


최고 전성기에는 키라라, 키라라 캐럿, 키라라 포워드 세개의 잡지에서 연재했죠. 항상 마감 아슬아슬하게 그렸지만요.(웃음)


그 후에 키라라에서 강강, 그리고 매거진으로 옮긴 이유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개그 만화는 질리기 쉬운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조건에서 신선미를 유지하기 쉬운 간단한 방법이, 사는 장소를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덤으로 보다 큰 물로 간다,는 점도 의식했습니다. 참고로 강강은 동인워크 1권이 나왔을 때 연락이 왔어요. 매거진은 직접 원고를 들고 갔습니다.


순조롭게 스텝업 하고계시네요.


히로유키는 아이디어가 원패턴이다는 소리를 듣습니다만, 나는 무기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적하면 지금까지의 내 만화를 모르는 사람을 향해서 그리기 때문에, 내용이 비슷한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웃음) 물론 근년에는 매거진에서 두번째 연재를 했기 때문에 살짝 내용의 변화도 주었지만요.(웃음)


얼마전에 완결난 그녀도 여친까지, 네작품이 애니화 된 히로유키 선생인데, 현재의 키라라를 어떻게 보시나요?


키라라다운 만화의 이미지가 최근 들어 고정화된 인상이 있습니다. 물론 그건 그것대로 장점이 있지만, 뒤집어 말하면 너무 이상한 만화는 연재하기 힘들어졌구나 싶습니다.(웃음) 내가 있던 무렵의 키라라는 여러 의미로 느슨해서, 상당히 터무니 없는 내용도 연재시켜줬습니다. 동인워크는 당시의 키라라니까 가능했던 만화고, 나도 시행착오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대로 연재를 하게 해준 편집부에 감사를 표합니다.


다시 키라라에서 그려보고 싶은 생각도 있으신가요?


요즘도 키라라 편집부에서 메일이 옵니다. 그래서 뭔가 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만약 키라라에서 연재가 결정난다면...글쎄요 요즘의 키라라에서 허용되는 범위를 신중이 모색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