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제3장 주간소년 선데이
1 녹아버린 뇌
2006년 10월, 나는 소학관에 중도입사했다. 중도 입사 동기는 8명. 다들 중견 출판사에서 이직을 해왔다. 다만 만화 편집자는 나 하나였다. 동기는 모두 미인. 심지어 패셔너블. 당시 에비하라 유리 씨 등이 인기라서 CanCan 같은 여성지가 절호조였다. 소학관은 여성 패션지의 편집자나 광고의 영업맨 채용을 강화하고 있었다. 동기는 다들 화사하고 화려해서 꾀죄죄한 만화편집자인 나랑은 전혀 달랐다. 그래도 상큼한 그녀들은 나를 무척 잘 대해주었다.
그로부터 한달간, 그녀들과 즐겁게 연수 기간을 가졌다. 애초에 스퀘어 에닉스에서 소학관으로 이직하는 사이 두 달 정도, 나는 유급휴가를 소화하느라 일하지 않고 지냈다. 해외여행을 마구 다니고, 아무 생각없이 놀았다. 여기에 또 한달간 연수기간이 있었다. 만화 편집자를 관두고 석달간이다. 고작 석달 만에 스퀘어 에닉스에서 보낸 격투의 나날은 머나먼 과거가 되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내 뇌는 완전히 녹아버렸다.
표정은 온화해졌고 아무 스트레스가 없는 하루하루에 순식간에 순응했다. 석달간 만화도 읽지 않았다. 연수가 끝나고, 부서 배정이 결정나는 그 날, 나는 무슨 착오로 CanCan에 배정되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다. 에비하라 쨩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 부서가 정해졌다. 주간소년 선데이였다. 얼굴이 썪었다. 뭐 만화 편집부 배정이야 어쩔 수 없지만 주간지는 싫었다. 간간WING은 월간지고 영간간도 격주지였다. 매주, 원고를 완성시키는 이미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내 뇌는 녹아있다. 주간연재 기획은 무리다.
그래도 이런 생각도 했다. 꼭 기획을 직접 할 필요는 없잖아? 다른 작품을 이어받으면 되지? 그래 이미 주간연재를 굴리고 있는 히트 작가의 담당 작품을 이어받으면 되는거야! 그리고 주간 소년선데이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을 그리는 만화가가 넷이나 있어!
인생의 바이블인 오늘부터 우리는!의 니시모리 히로유키 선생, 고등학생 때 감동먹은 우시오와 토라의 후지타 카즈히로 선생, 명탐정 코난의 아오야마 고쇼 선생, 그리고 무엇보다 나한테 만화 편집자로서의 첫번째 성공체험의 계기를 마련해 준 금색의 갓슈의 라이쿠 마코토 선생이 있어! 이 네명 중 누군가의 담당이 되고 싶다고 희망하자! 틀림없이 즐거울거야! 내가 이야기를 구상할 필요도 없는 천재들이야. 그냥 담당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일해도 일을 안 해도 연봉은 달라지지 않는 회사니까. 최대한 꿀빠는 환경에서 살아주겠다고!
그렇게 굳게 다짐하고 나는 편집부 문을 두들겼다. 나는 이미 만화 편집자 6년차다. 히트작도 엄청 배출했다. 천하의 소년 선데이에도 이만큼 실적을 낸 20대는 있을리가 없다. 어느 정도의 지위는 약속되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서 편집부 문을 두들겼다. 부서에 배정된 그 날, 아직 사람이 드문드문 있는 편집부에서 편집장은 나를 힐끗 보고 내 표찰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걸 편집부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화이트 보드에 붙였다. 제일 밑이었다. 이 순서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건 편집부 서열이었다. 그 날부터 나는 편집부 카스트 밑바닥에 놓였다.
2 선데이 편집부의 세례
잡일부터, 기사 페이지 작성, 회식 세팅, 도시락 수령까지 전부 시켰다. 이런 업무를 나는 최악 수준으로 못한다고 매일 같이 혼나고, 꾸지람을 들었다. 특기라고 생각한 기사 페이지 작성도, 초고 작성이 너무 허접하다며 몇 번이고 수정을 요구했다. 편집부에 혼자 남아서 심야까지 잡일을 했다. TV에서는 애니화된 스모모 OP이 흘렀다. 눈물이 났다. 불과 얼마전까지 에이스니 뭐니 기고만장했는데 여기서 나는 밑바닥이었다. 매일 혼나면서 내 자기긍정은 다시 제로에 가까워졌다.
어쨌든 경력자 입사니까 나한테도 연재작을 물려주긴 했는데, 나로서는 전혀 재미 포인트를 알 수 없는 슈르한 개그 만화였다. 앙케이트도 원래부터 최하위 근처였다. 만화가랑 만나면 만화가는 나한테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 듣자하니 이 작품은 매번 스토리를 담당 편집자가 정했다는 모양이다. 그 만화가는 나한테 다음화의 아이디어를 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황당했지만 나는 주인공이 거대 풍뎅이랑 스모를 하는 이야기는 어떻겠냐고 얘기했다. 괜찮네요라고 만화가는 답하고 돌아갔다...이런거면 되는건가? 네임이 완성되고, 원고가 되고 교정을 했다. 부편집장이 교정지를 체크해 줬다. 부편집장은 그 만화가 재미 없다, 너는 만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컷 배분도 템포도 다 엉멍이야. 레벨이 너무 낮어!하고 설교를 시작했다.
이런 일은 매주 반복됐다. 길 때는 2시간 정도 계속 서서 혼났다. 슈르한 개그 만화라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순위는 다소 올라갔지만 내가 담당이 된 이후로 완전 재미가 없다며 매주 서서 설교를 들었다. 미칠 것 같았다. 선데이의 선배들은 스퀘어 에닉스에서 내가 기획한 작품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점프랑 매거진 작품 뿐이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회식. 회식은 2차, 3차까지 있었고 신입인 나는 귀가가 허락되지 않았다. 거기서도 계속 설교를 들었다. 내 모든 업무 능력의 수준이 낮다고. 내 자존심은 그 때 땅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뇌도 녹아 있었기 때문에 전혀 받아칠 수 없었다. 이미 아무 말 못하는 로봇이 된 나를 보며 어떤 편집자가 말했다.
'역시 게임 회사 편집부에서는 제대로 된 편집자 교육을 받지 못하나 보네.'
이 말이 뇌가 녹고 로봇이 된 나한테 드디어 불을 지피웠다. 이 말은 용서할 수 없었다. 나 뿐만이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과거의 스퀘어 에닉스 편집자들도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편집자 전원이 과거에 히트작을 기획해본 적이 없는 편집자들 뿐이었다. 오히려 선데이의 히트 편집자들은 이딴 술자리에 오지 않았다. 바빠서 항상 작가 근처에 있는 것이다. 히트작을 내지 못하는 편집자한테 가치가 없다. 존경하는 스퀘어 에닉스 쿠보타 씨의 말씀이다. 이딴 가치도 없는 사람들한테 계속 바보 취급 당하고 있을수 없다. 나는 마음 속에서 스퀘어 에닉스의 대표작 강철의 연금술사의 유명한 대사를 중얼거렸다.
【일어나 삼류, 나랑 너는 격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마】 3 하야시 마사토 편집장
뒤집을 방법은 안다. 히트작을 기획하면 된다. 만화 편집자니까 스퀘어 에닉스 시절과 똑같다. 그러나 선데이에서 기획하는 난이도는 어렵다. 우선 제일 큰 난관이 선데이 순혈주의. 기본, 어지간한 예외를 제외하고 선데이 기획은 선데이 공모전 출신 작가한테만 기획 제출의 허가가 내려지지 않았다. 선데이 공모전 출신이란 즉, 선데이 신인 만화상을 수상한 작가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신인상을 수상한 작가의 담당이 되는 것 말고는 기획을 제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도입사인 내가 아무리 담당 희망을 신청해도, 작가를 배정해주는 일은 없었다. 선데이 순혈주의는 편집자에도 적용된다. 방법이 없어서 스퀘어 에닉스에서 담당을 했던, 아직 데뷔하지 않은 작가들에게 선데이 신인상 응모를 부탁했다. 근데 다른 편집자한테 뺏기면 안 되니까, 내가 임시 담당 편집자라고 밝히고 응모했다.
그런데 그들이 수상을 하는 일은 없었다. 신인상의 평가란은 5단계 평가 중에서 1점이 나열되어 있었다. 내가 임시 담당인 작품은 아무도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것이다. 신인상을 타지 못하니 그 작가들은 선데이에 기획을 낼 수 없다. 이들은 그 직후 스퀘어 에닉스에서 데뷔를 해서 인기작가들이 되었다. 좃됐다, 방법이 없다. 우선은 이 이지메 행위부터 멈춰야 한다.
나는 당시의 편집장과 고민상담을 했다. 하야시 마사토 편집장, 후지타 카즈히로 씨의 꼭두각시 서커스 등을 기획한 실력자다. 나한테는 세번째 편집장. 나는 스퀘어 에닉스 시절처럼 일방적으로 윗사람을 공격하는 습관을 버렸다. 편집장도 인간이다. 일방적으로 추궁하는 부하를 좋아할리가 없다. 하야시 편집장은 이제 막 편집장이 된 참이었다. 강렬한 개성의 편집자나 만화가를 통솔하는데 애먹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처한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편집장의 마음을 헤아리며 얘기하자고 생각했다. 서른을 앞두고 나는 조금 어른이 되어 있었다. 편집장한테는 이대로면 나는 망가진다는 사실,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채용했는데 그러면 아깝지 않겠습니까?하고 교섭을 했다. 나는 기업 체질이 다른 장소에서 자란 편집자라는 사실, 내 지금까지의 실적 같은 것을 다시 한번 얘기했다. 신입 취급은 그만해달라, 나는 반드시 히트작을 내겠다. 단 한번이라도 타석에 서게 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하야시 편집장은 물려받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물었지만, 내 대답은 NO였다. 히트작을 물려받으면 실력을 증명할 수 없다. 나는 기획 전문의 편집자라는 사실을. 누군가 한명 가능성이 있는 작가를 담당시켜달라고 말했다.
편집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한사람의 작가를 제안했다. 이게 실패하면 다음 기회는 없다고 했다. 나는 괜찮습니다. 100% 히트시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에게 붙여준 작가가...와카키 타마키 씨였다.
4 와카키 타마키 씨와 신만이 아는 세계
소개받은 와카키 씨는 나보다 5살 연상의 남성이었다. 쿄토대 졸업의 인텔리에 야겜을 너무 좋아해서 야겜 사이트 관리인도 했었다. 나는 약간 불안했다. 남성 작가는 거의 담당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딱 한 명 있었지만 엄청나게 빡치게 만들어서 담당 편집자를 강판당한 적이 있다. 나는 작품에 대해서 가식 없이 솔직하게 말한다. 많은 작가들을 상처 입혔지만, 작품을 만드는데는 솔직한 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고칠 마음은 없었다. 작품이 히트하는 게 무엇보다 그 작가를 위한 길이니까.
같은 남성, 연상, 학력도 나보다 좋다, 무엇보다 내가 질색하는 게임 매니아. 내 말을 들어주긴 할까? 그래도 해야만 한다. 반드시 히트시킨다. 나는 와카키 씨한테 나는 목숨을 걸고 작품을 히트시킬 것을 맹세했다. 그러니까 무례한 표현이나, 반복될 것이 분명한 수정 지시도 참아달라고 부탁했다. 와카키 씨는 이해해 주었다. 와카키 씨는 전작을 출하당했다. 30대 중반의 와카키 씨도 목숨을 건 싸움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매일 같은 회의를 통해서 나는 성공을 확신했다. 와카키 씨는 압도적으로 머리가 좋다. 사리에 맞는 얘기면 확실하게 들어준다. 다만 내가 언화화를 하지 못한, 감각적인 제안은 거부한다. 그래서 최대한 로지컬하게, 감각을 섞지 않고, 전부 언어화하는 작업을 철저하게 했다. 와카키 씨랑 미팅을 하고 있으면 내 스킬도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입사 당시 녹아버린 내 뇌는 부활하고, 진화를 시작했다. 이 감각은 이후에도 이전에도 와카키 씨가 유일했다. 그리고 입사하고 반년이 지난 무렵 신만이 아는 세계는 연재를 개시했다.
코난한테 져서 1위는 놓쳤지만 1화 앙케이트는 2위였다. 그 후에, 몇 번인가 1위도 따냈다. 단행본은 1권이 발매되고 바로 증쇄를 찍었고 선데이 간판작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점차 편집부 분위기도 달라졌다. 드디어 나를 대등한 동료의 한사람으로 대접해주게 됐다. 하야시 편집장이 내가 낸 결과를 근거로, 아래사람을 잘 다독여 준 것이라고 느꼈다. 그런 어느 날, 편집부에 격진이 일어났다.
금색의 갓슈의 라이쿠 마코토 선생이 편집부를 제소한 것이다.
1~2장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comics&no=286570&s_type=search_name&s_keyword=.EC.83.A4.EC.83.A4.EC.83.A4&page=1
4장 라이쿠 마코토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comics&no=285440&exception_mode=recommend&page=1
야사가 참 재밌어....
씨발 편집자썰 존나 재밌다앗~!
개꿀잼이다앗!!!
이래놓고 쓴 그 다음장이 음험한 라이쿠 고로시라니 참
이런 글 너무 좋거든요
잘봤습니다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글인데 참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