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5장 【마기 The labyrinth of magic】
회고록 6장 등가교환
1【천재】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보자. 마기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그 남자, 츠보우치 타카시는 초면부터 범상치 않은 오라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딱 내 정면 자리로 이사해 왔다. 인사도 건성건성하고 그 친구는 '콘센트 꽂을 자리가 부족하네. 자네 콘센트 플러그 좀 사다줄래?'
놀랍게도 초면에 빵셔틀 요구. 그러고 보면 제멋대로 카이조라는 작품에 츠보우치 치탄이라는 성격 드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친구가 모델이었다. 얼굴도 닮았다. 그런 성격 나쁜 사람이 괴롭히기 시작하면 버틸 수 없다. 나는 100엔샵에 뛰어가 콘센트 플러그를 사와서 양손으로 정중하게 바쳤다. 내 기민한 대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츠보우치 씨는 그 날 술을 사주었다.
대화를 나눠보니 성격이 나쁜 게 아니라 이상할 만치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와카키 씨랑 대화할 때랑 같은 감각이었다. 온갖 것에 해박했다. 정치, 예능, 스포츠, 경제, 역사, 문학, 과학, 애니, SF, 테크놀로지까지. 그 지식량에 압도됐다. 오카다 토시오 씨 같았다. 만화 편집자한테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지식의 토대다. 그게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다양한 각도에서 만화가한테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언변. 말빨이 서는 편집자는 즉 미팅을 잘 한다. 그리고 작가와의 미팅에는 빠른 머리 회전이 필요하다. 아니 정확히는 회전 스피드를 자유롭게 컨트롤하는 게 필요하다. 고속으로 회전시켜서 아이디어의 양을 끄집어낼 때랑, 저속으로 회전시켜서 깊고 무거운 아이디어를 낸다. 그 두가지를 츠보우치 씨는 나보다 높은 수준에서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 때 생각했다. 이 사람을 라이벌이라 가정하자.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말 건방진 인간이었다. 옛날부터 누구 밑에 붙는 게 싫은 인간이었다. 나는 이 사람을 이용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온갖 신인작가의 네임을 츠보우치 씨한테 보여줬다. 츠보우치 씨는 순식간에 적확한 어드바이스를 해주었다. 그 작품은 증간호에서 연달아 1위를 차지했다. 그런 남자가 천재 아라카와 히로무와 마침내 연재를 시작했다. 타이틀은 은수저. 2011년 초여름의 일이었다.
2【하느님】
다시 마기 얘기로 돌아가자. 순조롭다 싶더라니 그 후 마기는 좀처럼 기세가 붙지 않았다. 1~2권 동시 발매를 하며 대량으로 인쇄한 단행본은 예상밖으로 엄청 많이 재고가 쌓였다. 라이쿠 씨 제소 이래, 블로그를 중심으로 인터넷 미디어가 선데이를 조롱했다. 재고가 쌓인 마기 단행본을 올리고【비보:마기 하나도 안 팔림】이딴 기사가 작성됐다. 나는 짜증이 났다.
신만세는 잘 나가고, 편집부 분위기도 좋다. 쿠니사키 이즈모의 사정, 아라타 칸가타리, 전파교사, 무시부교, 트라우마이스터, 금강번장 등 내 동기들도 연이어 히트작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들과도 사이가 돈독했고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다. 마기도 변함없이 앙케이트 순위 하나는 좋았다. 전개가 좋을 때는 1위, 나빠도 7위 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하는 식이다. 근데 단행본이 안 팔린다. 애니화 제의도 들어오지 않는다. 힘든 시기였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앙케이트 순위가 나오는데, 그 날은 위가 아려왔다.
결과가 나쁘면 일주일 동안 기분이 깝깝했다. 그 스트레스로 육아를 당시의 아내한테 맡기고 술을 마시러 다녔다. 주말은 가족 서비스를 내팽개치고, 시나리오를 썼다. 하느님께 빌었다. '하느님, 내 인생은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마기가 잘 팔리게 해주세요.' 그러나 안 팔렸다. 지옥 같은 고통이었다.
왜 이렇게 마기 인기에 집착했느냐?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는 점이 컸다. 물론 마기는 전부 오타카 씨 것이다. 나는 담당 편집자로서 거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참고로 가령 잘 팔려도 소학관은 인사고과가 일절 없기 때문에 급여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쓴 대사나 전개에는 내 사상이나 소망이나 세계관이 담겨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나 우정이나 가치관이나 사랑. 그게 세간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절망.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그런 날들을 나는 2년 정도 보냈다. 나는 그때 깨닫지 못했었다. 집에서 마기! 마기!하고 미쳐가는 나를 바라보는 가족의 눈을.
3【악마】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TV에는 비참한 영상이 흘렀다. 나는 와카키 씨랑 미팅을 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택시 안에서 이상한 흔들림을 느낀 나는 위험하다고 느꼈다. 2시 50분이었다. 메일이 와서 가족이 무사하다는 사실은 확인. 다행이다. 다음으로 머리에 스친 것이 주가다. 리먼쇼크를 근성으로 극복한 나는 자잘한 자산운용에 지쳐서, 그리고 마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우량주에 대부분의 자산을 몰빵했는데...그게 토쿄전력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전부 팔아버릴까 한순간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하는 사이 15시가 되었다. 시장이 닫혀버렸다. 다음주, 후쿠시마의 원자로가 멜트다운, 내가 보유하고 있었던 토쿄전력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내랑 비축했던 자산의 대부분을 잃었다. 가족 다 같이 처가로 도망쳤다. 나는 처가에서 몇 주간 시간을 보냈다. 나는 불안한 표정의 가족을 외면하고 오로지 주가와 마기 에고서치에 몰두했다. 그리고 재난이 있은지 얼마 후, 당시의 아내가 이혼을 해달라는 말을 꺼냈다. 전부 자업자득이다. 자산도 없어지고 가족도 위기. 그런 타이밍에....갑자기 마기에 불이 붙었다.
뜬금 없었다. 갑자기 니코니코 동화에서 마기 MAD를 만드는 사람이 늘어났다. pixiv 일러스트 투고도 점점 늘어났다. 마기는 바르바드편이 끝나고, 신드리아편이 되어 있었다. 마침내 1권이 증쇄를 찍었다. 이제 괜찮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는 걸 그만두고 구두로 오타카 씨와 미팅을 하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 집에서는 마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평일도 주말도 용서해주길 구걸하듯 가족에게 충실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그래도 2년 가까이 버텼지만 최종적으로 나는 가족을 잃었다. 하느님, 내 인생은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마기가 팔리게 해주세요...아니었다. 내가 빈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악마였던 것이다.
'인간은 어떤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므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동등한 대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연금술의 등가교환의 원칙이다.'
강철의 연금술사 최초의 명언이다.
4【두사람의 천재】
악마의 힘으로 마기의 쾌진격이 시작됐다. 단행본은 매일같이 증쇄를 거듭, 신간 발행부수는 10만부를 넘겼다. 이제 나한테는 일 뿐이다. 나는 사생활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일에 전력을 쏟았다. 반쯤 자포자기로 트위터도 시작했다. 트위터는 아직 여명기였다. 하시모토 토오루 씨 같은 사람이 내키는대로 말해서 나도 흉내내고 싶어졌다. 요즘이야 만화 편집자 대다수가 트위터 계정을 공개하고 있지만, 당시는 아주 드물었다.
스퀘어 에닉스의 동기 쿠마 군은 센스 있게 이용해서 독자의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렇게 할 마음이 없었다. 나는 싸우기 위해서 트위터 계정을 만든 것이다. 선데이나 마기에 지 좆대로 떠드는 인터넷 미디어에 내 이름으로 반론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적대적인 발언을 반복하는 사이에 인터넷 미디어의 공격을 받게 됐다. 몇 번이고 병림픽이 열렸지만 철저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그 때 번뜩였다. 그렇구나 SNS를 써서 상품을 팔면 되는구나. 승기 도래! 나는 묵혀 두었던 기획을 꺼내들었다.
빅쿠리★마기실 기획이다. 내가 어릴 적에 수집했던 빅쿠리맨실을 모방한 기획이다. 마기 단행본에 세장의 실이 랜덤으로 딸려온다는 아이디어였다. 이 제작과정을 트위터로 올리고, 반응을 기다렸다. 적중했다. 최종적으로 초동이 전권 대비 300%로 애니화를 해도 일어나지 않는 매상 상승이 시작됐다. 잡지로는 인기가 있는데 단행본이 팔리지 않는 딜레마를 마기는 완전히 벗어났다. 초판은 30만부를 넘겼다.
신만세 애니도 절호조. 마기도 절호조. 타이밍이 좋을 때는 마기랑 신만세가 1위, 2위로 연속 피니시를 할 때도 있다. 동기 작품도 잘 됐지만 내 담당작에는 미치지 못한다. 다만 2011년에 시작한 은수저가 항상 앙케이트 높은 순위에 있었다. 전개에 따라 높낮이가 있는 마기랑 대조적으로 은수저는 항상 높은 순위에 있었다. 처음에는 5위 정도에 계속 머무는 식이었다. 얼마 지나자 4위에,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자 3위로 올라왔다.
전개로 인기를 얻는 마기랑 달리 은수저는 캐릭터를 진득하게 키우는 제작 방식이었다. 전개에 기대지 않는다. 오로지 캐릭터의 호감도를 높인다. 강철의 연금술사와는 또 다른 그 방식은 츠보우치 씨 기법 중 하나다. 거침없이 한 획!도 하야테처럼!도 제멋대로 카이조도 그렇다. 그걸 천재 아라카와 히로무가 하면 어느새 은수저는 1위에 있는 일이 많아졌다. 단행본은 처음부터 팍팍 팔렸다. 물론 전개나 컬러 연재 때는 마기도 1위를 차지할 때가 있었지만 평균 순위는 은수저가 좋았다. 나도, 아마도 오타카 씨도 악마한테 혼을 팔아서 간신히 손에 넣은 지위를 아라카와 히로무와 츠보우치 타케시 두사람의 천재는 화려하고도 가볍게 뛰어넘어 버렸다...
【타천】
그리고 나는 꺾였다. 지금까지 한 일이 전부 의미가 없어졌다. 선데이에서의 인기경쟁도 바보 같다. 애초에 가족을 위해서 만화를 열심히 편집하러 왔는데, 왜 만화를 위해서 가족을 잃어버린 것인지. 너무 멍청하다. 애초에 소학관에 입사했을 때 최대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왜 미친놈처럼 일했나? 왜 이렇게 됐나?
마기 애니가 토요일 6시라는 당시 최고의 편성대로 결정나고, 일은 절정인 가운데, 정신은 정반대였다. 매일밤 롯폰기나 에비스에 마시러 갔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에 돌아가는 게 무서웠다. 그렇게나 좋아했던 만화가 급속도로 싫어졌다. 만화잡지도 일절 읽지 않게 됐다.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만화가 단 하나도 없게 됐다. 다만 유일하게 아마추어 투고 사이트 니이토샤(新都社) 작품만큼은 읽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게 ONE 씨의 원펀맨, 스토나미 씨의 더 페니스맨, 토츠카 타쿠스 씨의 오션 마나부였다.
결국 도쿄전력때문에 이혼했다는소리인가...
번역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