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5장 【마기 The labyrinth of magic】
회고록 6장(등가교환)
회고록 7장 【원펀맨과 도쿄 구울】 1【니이토샤】
가족과 별거한 무렵에 나는 갑자기 만화가 싫어졌다. 일시적이긴 하나 거의 모든 상업 만화를 읽을 수 없게 됐다.(원피스 만큼은 읽었다. 나는 원피스를 정말 좋아한다. 무슨 일에나 예외는 있다.)
상업 만화를 읽고 있으면 뭔가 수상쩍은 가공육을 먹는 듯한 불쾌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만화만 그런 게 아니다. 음악도 그랬다. TV도 그랬다. 소위 대중의 상업 엔터테인먼트에 혐오감을 느끼게 됐다. 돈, 돈, 돈. 인간의 감정을 움직여서 유저로부터 돈을 착취하는 엔터 산업의 구조가 혐오스러웠다. 크리에이터가 생기 넘치게 창작성을 발휘하는 니코니코 동화의 MAD나 음악이 좋았다. 니코동에서 햐다인 씨가 공개한 갖가지 곡에 매료되었다. 추억은 억천만이나 에어맨이 쓰러지지 않아 같은 걸 들으며 울었다.
그런 나한테 니이토샤의 만화들은 충격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네임 같았던 것이다. 상업 작품의 만화는 전부 그림이 깔끔하다. 그 깔끔한 그림 뒷편에는 수많은 어시들의 노동이나 편집자의 수정요구 흔적이 있다. 그게 가공한 느낌으로 여겨졌다. 일시적이긴 하나 나는 거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니이토샤의 작품군은 편집자의 개입 없이, 금전의 수수 없이 각각의 만화가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 가는대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림에는 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 다만 그점이 상업만화에 찌들어 있는 나한테는 무척 순수한, 무척 아름다운 것으로 보였다. 원펀맨, 오션 마나부, 더 페니스맨, 구도의 권, 히토쿠이(人喰い), 세계귀, 패기...그밖에 잔뜩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었다. 만화는 재밌어!!!라고 느꼈다. 당시의 그 감각은 언어화할 수 없다. 첫사랑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의 무언가다.
2【보이콧】
상업만화가 싫다는 소학관 만화 편집자로서 있어서는 안 될 정신상태에 빠진 나는 당시 정말 자포자기 상태였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직장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가정을 잃고, 자유의 몸이 되어 매일밤 롯폰기에 출근도장을 찍는 인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현재의 카와바타 츠요시(※)처럼 되어 있었다.
※『TSUYOSHI〜아무도 못이겨 그녀석은〜』의 주인공. 아싸였던 츠요시가 갑자기 파티 피플처럼 된다. 내가 원작자입니다. 이번 달에 신간 나옵니다. 모르면 한번 사보세요.(웃음)
일할 의욕이 정말 없었다. 마기를 파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마기는 선데이에 실려서 잘 팔리게 된 게 아니다. 인터넷으로 적절하게 프로모션을 하고, 인터넷 유저를 자기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팔린 것이다. 그러면 종이 잡지의 의미는 과연 뭔가? 나는 업무 시간에 니이토샤를 눈팅하면서 고민했다.
원펀맨, 오션 마나부, 더 페니스맨, 히토쿠이, 구도의 권. 그림은 조잡하지만 거기에는 종이 만화 잡지에는 없는 새로운 재미가 분명 존재했다. 기존에도 WEB만화는 있었으나 니이토샤의 작품은 좀 달랐다. 랭킹이 있고, 독자가 코멘트를 쓸 수 있다...돈 냄새가 났다. 나는 병이다. 워크 홀릭인 것이다. 결국은 일과 결부시키게 된다. 그래도 지금 하는 일보다는 이걸 업무로 삼고 싶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바로 행동으로 옮길수는 없었다. 떠안고 있는 업무가 너무 많았다. 신만세 애니, 마기 애니화 준비, 기타 연재 담당작이 있어서 움직일 수 없다. 몇 달을 안달복달 하면서 업무를 소화했다. 그러나 어느 날 폭발했다. 혈안이 되어서 편집장을 찾아가 직소했다. 당시의 편집장은 나와타 마사키 편집장이다.
'나를 마기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배제시켜 주세요.'
3【ONE】
갑작스러운 부하의 직소에 나와타 씨는 난처해 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설득을 했다. 이미 선데이에는 클럽 선데이라는 만화 사이트가 있는데 그건 텄다고. 그냥 신인 작가의 연재를 업로드하고 있을 뿐이지 사이트 자체에 미디어로서의 매력이 없다. 그와 달리 니이토샤의 매력을 말하고, 이걸 재현하면 자동적으로 작가가 모이고 독자가 모이고, 미디어로서 급속도로 힘을 잃고 있는 선데이는 부활할 수 있을 거라고.
결과적으로 나와타 편집장은 나를 마기 이외의 모든 업무에서 제외시켜 주었다. 왜 그러셨을까? 나는 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휴직을 할 생각이었다. 그 각오가 전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와카키 씨한테는 미안했지만 신만세도 그만뒀다. 마기 이외의 모든 작업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원펀맨의 ONE 씨, 오션 마나부의 토츠카 타쿠스 씨, 더 페니스맨의 소토나미 씨한테 메일을 보냈다. 제일 먼저 답장을 준 것은 소토나미 씨였다. 스카이프로 소토나미 씨는 인사를 했다. 소토나미 씨는 아쉽지만 영점프에서 이미 연재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만 더 일찍 연락을 주셨으면 이시바시 씨한테 기획을 보여 드렸을 텐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내심 그 작품이 출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토나미 씨는 굉장한 재능이 있지만 더 페니스맨 같은 천박한 제목의 만화를 그리는 인간이다. 종이 잡지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터.
내가 만들 새로운 매체에서 활약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토나미 씨는 작풍을 바꿔버렸다. 펜네임도 바꿨다. 그 후, 이시다 스이라는 멋드러진 이름으로 도쿄 구울이라는 쿨한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뭐 그렇게 이시다 스이 씨는 놓쳤다.
다음 날 ONE 씨가 답장을 줬다. 바로 ONE 씨가 사는 사이타마까지 만나러 가서, 원펀맨 얘기를 진득하게 했다. ONE 씨는 장신에 성실함을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잘 생긴 사람이었다. 다만 원펀맨은 무라타 유스케 씨 작화로 상업화가 결정났다고 했다. 이런 제길, 흥청망청 놀았던 탓이다.
3개월만 빨랐으면 원펀맨도 도쿄 구울도 내가 담당했을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ONE 씨한테 신작 아이디어는 없는지 물었다. 초능력 소년과 수상쩍은 탐정 아이디어가 있다고 ONE 씨는 대답했다. 그걸로 갑시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ONE 씨는 내가 즉답을 해서 오히려 망설였는데, 밤에 편집부에 돌아가자 ONE 씨가 팩스로 보낸 문서가 있었다. 모브 사이코라고 적힌 타이틀의 네임이다. 밤이라서 편집부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누구의 체크도 받지 못했지만 나는 ONE 씨한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연재 OK, 원고료도 제시했다. 연재 장소는 이제부터 만들 거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 일개 편집자였다. 실은 연재를 결정할 권한도, 원고료를 결정할 권한도 연재를 할 장소도 없었다. 2011년 7월. 훗날 우라 선데이라는 이름이 붙는 사이트가 어렴풋하게 내 머리속에서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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