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1~2장 (스퀘어 에닉스 입사)회고록 3장 (소년 선데이 이직)회고록 4장 (라이쿠 마코토 나빠요)

회고록 5장 【마기 The labyrinth of magic】

회고록 6장(등가교환)

회고록 7장(one)


회고록 8장 우라 선데이

1【편집자 육성 시스템】

당시 선데이 멤버들한테 연이어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과연 그렇게 봤구나 알 수 있어서 재밌네요. 연락 기다립니다. 그리고 본 칼럼에 실명을 언급하는 건 기본적으로 작가와 편집장과 경영자 뿐입니다. 이들은 공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인 허가가 나면 그 사람 실명도 언급합니다.


당시의 우리들은 선데이에서 연이어 히트작을 기획했다. 내 마기, 신만세를 필두로 쿠니사키 이즈모의 사정, 금강번장, 트라우마이스터, 아라타 칸가타리, 무시부교 등. 또 천재 츠보우치 씨가 기획한 은수저, 유가미 군은 친구가 없다, 시나리오를 쓰는 편집자 카츠키 씨 기획의 KING GOLF, 갬블 등의 만화가 잡지를 장식했다. 고작 몇 년만에 이만큼의 히트작, 화제작이 탄생한 것은 선데이 역사상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과를 낸 것은 전부 우리들 같은 중도입사자나 다른 편집부에서 부서이동을 한 선데이 순혈 편집자가 아닌 편집자들이었다. 지금까지의 선데이는 아다치 미츠루 선생, 타카하시 루미코 선생, 아오야마 고쇼 선생, 후지타 카즈히로 선생, 미츠다 타쿠야 선생, 니시모리 히로유키 선생, 시이나 타카시 선생 같은 레전드급 선생님들의 작품이 항상 랭킹 상위를 독점하고 신인작가나, 하물며 다른 회사 잡지에서 성장한 작가가 이들의 작품을 제치는 것은 난이도가 높았다.


안자이 노부유키 선생이나 라이쿠 마코토 선생은 그런 선데이에 자리 잡은 극소수의 성공사례다.(둘 다 후지타 카즈히로 선생의 어시 출신이란 점이 흥미롭다)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질서이기도 하다. 순혈주의 선데이 문화는 그 질서 위에 성립되어 있었다. 레전드 작가들이 확실히 수익을 창출하니까 편집부는 천천히, 확실히 작가를 그리고 편집자를 육성할 수 있었다. 참고로 순혈주의 선데이 편집부의 교육 시스템은 이러했다.

・신입사원은 1년간 철저히 잡일을 배운다. ・2년차부터 거장의 담당을 맡고, 선생님들에 대한 예의나 선데이 편집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배운다. ・3년차 무렵부터 신인상 작가들을 배정 받게 된다. 편집자는 신인작가와 단편을 계속 만들어서 증간호에 연재한다. ・그리고 독자 반응이 좋은 단편을 연재한 담당 편집자는 마침내 연재작품을 기획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스템으로 연재를 궤도에 올리면 순혈 엘리트 편집자 대우를 받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탄생한 히트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구조였다. 이게 육성방법으로 효과적인지 어떤지는 나중에 적겠다. 다만 한가지 문제를 들겠다.


문제는 최초의 3년이다. 이 기간에 공채출신 신입 편집자는 철저한 의식개조, 사상교육을 받는다. 선데이 사랑을 주입 당한다. 그것은 요즘 시대 기준으로 보자면 장절한 파워 하라스먼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장절한 파워 하라스먼트의 채찍을 휘두르는 태반이 똑간은 시스템 안에서 성장한 순혈 엘리트 편집자다. 중도입사를 한 내가 당한 파워 하라스먼트는 신입 사원으로 선데이에 입사한 대졸자들에 견줄바가 못됐다.


그런 관점에서는, 그 후에 대졸 엘리트가 신인상을 탄 유망한 작가를 배정받는 등 우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같은 외부에서 온 편집자는 그 지옥의 3년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랑 내 동기들은 그런 대우를 받은 대졸자들을 보고, 들으며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몸을 지키기 위해서 연합을 결성, 당시의 편집자들 밑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히트작을 배출했다.


내가 입사한 이래, 만난 하야시 마사토 편집장, 나와타 마사키 편집장, 그리고 이 다음에 등장하는 토리미츠 유 편집장은 우리들과 함께 그런 체제의 편집 시스템을 혁신하고, 새로운 작품과 매출과 미디어를 만드는데 헌신한 공로자다. 우리들의 업적을 나는 칭찬하고 싶다. 무슨 영문인지 인터넷에는 이 시절의 선데이를 암흑기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자주 보이는데, 암흑기가 아니다. 변혁기다.

또 나는 당시의 파워 하라스먼트를 규탄할 생각은 전혀 없다. 전원히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당시의 일본사회는 대부분의 회사가 블랙 기업이었다. 그리고 최대 피해자가 우리들 취직 빙하기 세대, 로스트 제네레이션이다. 갑질, 성희롱, 잔업수당 없는 과도한 노동이 당연했다.


그리고 우리 빙하시 세대가 다시 가해자가 된다는 암흑의 루프가 반복된 것이다. 내가 있는 출판 업계도 심각했지만, 광고 업계도, 증권회사도 심각했다. 대학 동기는 여럿 증권회사에 취직했는데 '나는 동기가 여섯명 자살했어' '나는 일곱명' 같은 말을 해서 놀랐다. 현재 왜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 걸까? 작금의 쟈니즈 사무소 문제만 해도 똑같다. 최근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드디어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는 뭘까? 유튜브 덕분? 인플루언서 덕분? 아니다. 쟈니 키타가와가 죽었기 때문이다. 만약 로스트 제네레이션 세대가 받은 고통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가 묻는다면 답은 로스트 제네레이션 세대를 희생양으로 삼아온 이 노인들이다. 그리고 그 노인들은 어느 업계에나 있다. 그리고 여전히 현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노인이 지배하는 나라 일본. 그게 변하는 것은 그 노인들이 수명을 다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100세 시대다. 90살 노인도 앞으로 10년은 존재한다. 길은 끝이 없다.

2【WEB만화】

변혁기라고는 하나 그 시기는 부(負)의 유산도 남기고 있었다. 그게 내가 기획하고, 인터넷 비지니스를 잘 모르는 선배들이 설계한 클럽 선데이다. 이 시기의 선데이 자체는 히트작도 순조롭게 배출했고 수축 추세의 종이 만화 잡지 중에서는 선방하는 편이었는데 클럽 선데이가 기록하는 적자는 심각한 것이었다.


개발회사 하는 말대로 고액의 운영비를 지불해서 만든 그 장소는 그저 신인 작가의 연재가 게재되고 있었다. 거기에는 색도, 폴리시도 없었다. 경주도 없었다. 종이와 다르게 인쇄비가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마음 껏 연재할 수 있다며, 대부분의 기획이 통과됐다. 쓰기 불편한 뷰어는 읽기 귀찮았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전혀 읽지 못하게 되는 그 시스템은 신규 독자의 유입을 막았다. 작가가 상처 받는다는 이유에서 랭킹도 댓글 기능도 없었다. 이것은 이 미디어에서 라이브 감각을 빼앗았다. 경쟁도 빼앗았다.


참고로 클럽 선데이보다 훨씬 전인 2005년에 똑같은 시스템으로 코단샤(講談社)의 WEB만화 사이트 Michao!가 탄생,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2009년에 폐쇄했다. 그 무렵의 출판사 사람들은 정말 인터넷을 잘 몰랐다. 참고로 내가 WEB만화에 누구보다 빠싹했던데는 이유가 있다. 2001년도 에닉스 내부 소동으로 에닉스는 작가가 없었다. 그 때 나는 인터넷으로 작가를 찾았던 것이다. WORKING!이나 리셋을 나는 상업화 했고, WEB만화의 명작 마도 리메이크를 시도한 적도 있다. 특히 마도는 나한테 다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장 좋아하는 판타지 만화일지도 모르겠다. 마기의 알라딘의 말버릇은 마도의 주인공 린트의 말버릇을 차용한 것임을 고백해둔다. 이러한 작품이 연재됐던 WCR은 이제는 없다. 개인 사이트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뭐 이런 이유로 나는 WEB만화 사이트 설계에 자신이 있었다. 다만 당시의 내 의견이 통과되는 일은 없었다.

【옳은 일을 하고 싶으면 출세해라】 춤추는 대수사선의 대사였다.


3【동료 모집】


2011년 여름, 모브사이코100의 네임을 손에 들고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나는 평사원이다. 부하에 대한 명령권은 없다. 그렇다고 나 혼자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는 안건이 너무 크다. 먼저 내 주위에 니이토샤 선전을 했다. 원펀맨이나 페니스맨, 오션 마나부가 얼마나 재밌는지를 광고하고 다녔다. 거의 대부분이 관심을 안 가졌지만, 후배 한명이 흥미를 보였다. A군이다. A군은 선데이 순혈 엘리트로 나랑은 같은 해 입사했다. 말하자면 연하의 동기였다. 즉 6년차 사원이다. 6년차니까 A군은 연재 기획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전부 잘 안 풀려서 출하당했다. 당연하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당시의 선데이 편집자 교육 시스템은 이런 것이었다. 첫해는 오로지 잡무. 조금 일을 익히고나면 거장의 담당을 맡는다. 당시의 편집부는 거장을 담당하면 저절로 편집자는 큰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리고 3년차나 4년차부터 신인상에 응모한 작가를 키워서 신인상 수상을 목표로 한다. 그게 성공하면 5년~6년차에 연재를 기획한다. 그런 방식으로 인재가 성장할까? 성장할리가 없다.


물론 아주 드물게도 나중에 언급할 이치하라 타케노리 씨 같은 히트 편집자가 나올 때도 있다. 이치하라 씨 말고도 따끈따근 베이커리나 최상의 명의를 기획한 순혈 편집자 선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소수다. 편집자를 육성하는 방법은 작가랑 똑같다. 즉 경쟁이다. 그건 뻔한 일 아닌가. 일본 최고의 만화 브랜드 점프 편집부가 바로 그러하지 않나? 스스로 기획한 작품을 작가와 함께 앙케이트 앞에 겁먹고, 상처 받고, 라이벌 편집자한테 질 수 없다며 노력한다. 그런 형식으로만 편집자는 성장한다. 단언하는데, 물려받은 작품을 아무리 경험해본들 편집자는 성장하지 않는다. 신인상을 노리고 작가랑 아무리 작품을 만들어 봤자 편집자는 성장하지 않는다.


나는 에닉스 내부 소동 덕분에 입사 1년차에 6편의 연재를 기획했다. 그리고 당시의 선배들의 인기작품과 앙케이트나 단행본 판매량으로 싸웠다. 때로는 지고, 때로는 이겼다.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입사 1년차에 선데이의 6년차 이상의 경험을 한 것이다. 흔히 신인한테 히트작의 법직이나 노하우를 가르치며 키우려고 하는 편집장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걸로는 성장하지 않는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발견한 노하우만 남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선데이 6년차인 A군을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다. 내 방식으로 키워보고 싶었다. A군은 현재 대량의 클럽 선데이 업무를 떠안고 있었다. 일이 전혀 즐겁지 않다고 했다. A군은 사교성이 있고, 이해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현재 클럽 선데이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트 운용의 기초적인 지식이 있었다. 딱 좋다! A군이 히트작을 만들 수 있게 서포트를 해서, 새로운 사이트 만들기를 돕게 하자. A군도 니이토샤의 작가들에게 연락을 했다. A군의 연락으로 히토쿠이의 MITA 씨가 집필을 약속해 주었다.

또 A군과 오션 마나부의 토츠카 타쿠스 씨와 2011년 여름에 만났다. 그는 우리 로스트 제네레이션 세대가 처음으로 만난 밀레니엄 세대의 전형적인 남자였다. 매사에 거침없이 자기 의견을 말했다. 신선했다. 그도 집필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그는 대기업 취직이 결정나서 부업으로 작가를 한다고 했다. 부업이 허용되는 회사도 당시로서는 간신히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타쿠스 씨는 나고야 이과대학의 학생이기도 했다. 머리도 좋았다. 이 친구와는 그 후, 여러 국면에서 함께 싸우는 동지가 된다. 현재 이 친구는 이웃집 영점프에서 이세계 히로유키를 절찬 연재중이다.

여기에 2011년 가을에 선데이로 이동을 해온 신입 편집자가 있었다. 코바야시 쇼라는 이름으로 CanCan편집부에서 이동을 해온 9살 연하의 청년이다. 에비하라 유리 씨를 에비 쨩이 아니라 유리 쨩이라 부르는 이 친구를 보고 나는 처음에는 경악했다. 어...업계인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 친구한테 관심이 생겨서 물어봤다. 그는 만화편집자가 되기 위해서 사표를 한손에 들고 상사를 설득해서 부서이동을 했다고 한다. 좋아! 나한테 만화 편집을 가르쳐 달라고 하며 마기나 모브 사이코 미팅에 동석을 했다. 좋아! 나는 이 친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는 CanCan에서 사회인으로서 철저하게 단련 받아서 비지니스 매너나 사무처리능력은 완벽했다. 근성이 있었다. 만화도 많이 읽었고, 무엇보다 선데이 교육 시스템에 물들지 않은 점이 좋았다. 아주 좋아!


나는 이 친구를 키워주자고 결심했다. 키워준다고 한들 뭔가를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다. 향상심이 있는 인간은 자리만 마련해주면 알아서 큰다. 나는 내 권한으로 코바야시 쇼가 자유롭게 연재를 기획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평사원이다. 사실은 권한이 없다. 다만 편집장을 움직이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당시에 나는 편집부 1~2위를 다투는 히트 편집자였기 때문에 발언력이 강했다. 나는 나와타 편집장을 통해서 A군과 코바야시 쇼를 지휘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앞으로는 일본 특유의 피라미드 조직이 아니라, 프로젝트에 따라서 자유롭게 팀을 짜고 교체하는 프로젝트 팀이 주류입니다. 구글도 그렇게 합니다. 실험삼아 한 번 해보죠'라고, 적당한 말을 해서 설득한 기억이 있다. 편집장 책상에 구글의 조직론 어쩌고 하는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장은 항상 조직 매니지먼트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실험삼아'라는 말이 효과적이다. 어디까지 실험이니까 실패해도 괜찮은 것이다. 상사를 설득할 때 나는 '실험'을 다용하게 됐다.


3【동료】

이렇게 세명의 인간이 모였다. 나는 이 때의 경험으로 세명의 팀이 얼마나 강한지 배웠다. 그 신선조도 셋이서 한조로 적과 싸웠다고 한다. 셋은 강하다. 의사소통의 스피드도 빠르고 전원이 전력으로 움직여야 일이 진행되니까 아무도 농땡이를 피울수 없는 것이다. 급속도로 사이트 제작은 진행됐다.


개발회사 선정, 서버 관리는 클럽 선데이 운용을 해본 A군과 상담해서 결정했다. 클럽 선데이의 운영비는 너무 비쌌다. 여기저기서 견적서를 받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개발비, 운영비는 클럽 선데이의 10분의 1이 됐다. 나는 모브사이코100, 제크레아토르를 준비했다. A군은 히토쿠이를. 코바야시 쇼는 켄간 아슈라랑 히어로 하츠를 준비했다.



마지막 두 작품은 잠시 언급해보자. 켄간 아슈라는 내가 읽은 격투 만화 구도의 권의 산드로비치 야바코 씨 원작의 작품이다. 구도의 권은 재밌는 작품이었지만 그림이 약점이었다. 그러나 격투만화에는 상당한 수준의 작화가가 필요하다. 심지어 격투기에 해박하지 않으면 작화지시를 할 수 없다. 허들이 너무 높다고 코바야시 쇼와 술을 마실 때 얘기를 했다. 코바야시 쇼는 바로 자기가 연락을 넣을 수 잇다고 말했다. 그는 종합격투기를 해서 카라테의 달인이기도 했다. 당일에 야바코 씨와 연락하고, 작화의 다로메온 씨를 찾아왔다. 제법인데! 나는 흥분했다. 굉장한 신인이 동료가 됐다.


그리고 히어로 하츠의 하루하라 로빈슨. 나는 니코니코 동화에서 엄청난 인기였던 그의 팬이었다. 다만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아주 좋아! 나는 코바야시 쇼만 데리고 매일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3인 체제로 할 일은 아니었다. 개발의 어려운 부분은 A군한테 떠넘기는 모양새로 조직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언젠가 장래에 닥쳐오는 조직붕괴의 날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3 우라선데이


새로 만드는 사이트는 니이토샤를 모델로 했기 때문체 처음부터 결정한 요소가 세가지 있었다. 랭킹 기능, 리플 기능, 만화 뷰어 생략. 전부 클럽 선데이에서는 할 수 없었던 요소다. 랭킹이나 리플 기능이 있으면 그게 작가를 상처 입힌다는 이유였다. 나는 오히려 그걸 견뎌라, 오히려 그걸 즐기는 작가만 모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경쟁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싸우는 것은 작가만이 아니다. 나도 코바야시 쇼도 A군도 자기 프라이드를 걸고 싸우는 것이다. 그게 내 교육 스타일이다.


뷰어는 당시 해적판 대책이었다. 나는 이것도 무시했다. 어차피 해적판은 나온다. 애초에 전화 무료로 읽게 만들고 단행본으로 수익을 창출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시했다. 여기에 추가로 탑재한 게 매일 추천 작품이 바뀌는 시스템이다. 지금은 대다수의 만화 어플이나 사이트가 이 시스템을 쓰고 있지만 우라 선데이가 일본에서는 최초였다.


이건 매일, 편/의점에서 서서 읽은 내 체험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다양한 주간연재가 매일 게재되는 것으로 인해 매일 독자가 방문하는 습관이 싹튼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이트 이름은 많이 고민했다. 클럽 선데이+니 클럽 선데이 분실이니 그런 이름을 붙이라고 클럽 선데이의 책임자인 선데이 부편집장이 요구한 것이다. 웃기지 말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클럽 선데이가 촌스러우니까 만드는 사이트다. 클럽 선데이의 꼬붕 같은 이름은 죽어도 싫었다. 최소한 대등한 관계로 만들고 싶어서 우라 클럽 선데이라는 이름을 지었다...클럽도 필요 없는 것 같았다. 우라 선데이가 딱 감겼다. 다음은 캐치 카피다. 코바야시 쇼가 '탈옥형 웹만화 사이트'라고 말했다. '무엇으로부터 탈옥하는 건데?'라고 내가 물어보자 코바야시 쇼는 대답했다. '많은 것들로부터요.'


...이해한다. 주간소년 선데이 편집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만화 편집부 중 하나이다. 거기에는 빛나는 과거의 업적과 동시에 달아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입사할때까지 굳건하게 존재하고 있던 그것은 일부 사람한테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일부 사람에게는 끈적하게 달라붙는 불쾌함을 주었다. 그 달아날 수 없는 감옥 같은 곳에서 우리들은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선데이 뿐만 아니다. 만화 업계가 가지고 있는 족쇄나 인습의 감옥, 여러 인간의 기득권이나 생각이 만든 무언가가 크리에이터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의 자유로운 발상을 뺏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감옥에서 탈출해서 자유를 손에 넣는다. 우라 선데이의 도전이 시작됐다.


【우라 선데이 시동】

2012년 4월 18일, 마침내 만화 사이트 클럽 선데이 서비스가 시작됐다. 나는 마기 취재로 이스라엘에 있었지만 일본에서 A군과 코바야시 쇼가 철야로 사이트를 지켜봤다. 원펀맨 독자가 잔뜩 유입되어서 우라 선데이는 처음부터 성황이었다. 여기에 나는 트위터로 여러가지 어그로를 끌어서 독자 유입을 늘렸다. 병림픽이 열려도 상관 안 한다. 어그로 상법으로 달렸다. 독자수는 매일 배로 늘었다. 월간 유저숮는 순식간에 100만명을 넘겼다. 당시 클럽 선데이 월간 유저수가 15만명 정도였다. 클럽 선데이의 연재작은 40편이 넘었다. 이에 비해 우라 선데이는 고작 다섯편의 연재작으로 7배 가까이의 유저를 확보한 것이다. 우라 선데이는 인터넷에 지금도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뭐 아무튼 내 편집자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절 중 하나였다. 영간간 창간 당시 느낀 우리가 시대를 만들고 있다는 실감이다. 우라 선데이는 예상대로 대・대・대성공 했다. SNS를 활용한 프로모션이 적중했다. 또 정식 서비스 기사를 빈번하게 내서 세간의 주목을 모았다. 한번은 우라 선데이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기사도 냈다. 지금이니까 밝힐 수 있지만 그건 개뻥이다. 우라 선데이는 선데이 내부 프로젝트다. 인쇄비도 안 드니까 망할리가 없다. 세간은 홀라당 속아서 재밌다고 요란법썩이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게 통쾌했다. 여론을 조종해서 붐을 만든다는 감각이 있었다.


우라 선데이는 순식간에 일본 최고의 웹코믹 사이트가 됐다. 그리고 선데이 편집부 순혈 편집자가 연달아 우라 선데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여러 히트작이 탄생했다. 세계귀, 헬크, 모우킨 쨩 등은 우라 선데이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온 선데이 순혈 1~3년차 신입 편집자가 기획한 작품이다. 그들에게 작품 기획과 랭킹에 달라붙는 고양감을 주었다. 그리고 성공체험도. 젊은이들한테 얼마나 기존의 교육 시스템이 이상했는지 설파했다.

【독립부대】

편집부 내부 편집부의 탄생이다. 모브 사이코100은 증쇄를 거듭, 마기 외전 신드바드의 모험도 우라 선데이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신드바드의 모험 단행본은 1권이 바로 50만부를 넘겨서, 스핀오프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우라 선데이 작가나 선데이 젊은 편집자를 모아서 매달 호화롭게 놀았다. 나는 우라 선데이의 업무를 일로 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작가랑 친구처럼 논 적이 없었다. 작가는 비지니스 파트너이지, 친구가 아니다. 다른 사람한테 물려주면 연락도 안 한다. 쿨하고 드라이한 관계를 마음에 새겼다. 작품을 만드는데 느슨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만화가랑 친구처럼 놀았다. 노래방을 가고, 클럽을 가고, 미팅을 하고, 방탈출 게임을 하고. 펹집부 방침도 만화가랑 토론을 해서 정했다. 만화가와 편집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함께 만드는 이상적인 매체. 그게 우라 선데이의 방침이었다. 랭킹 경쟁은 치열햇지만 휴재는 칼같이 지켰다. 여름은 원래 성수기지만 우라 선데이는 아무렇지 않게 휴재를 하고 해외 여행을 가곤 했다. 33살의 여름. 늦게 찾아온 두번째 청춘이었다. 휴재를 할 때 우라 선데이에는 바다 이미지를 올렸다. 화면에는 '만화 따위 읽지 말고 바다를 가 바다!'

【편집부 개혁】

이렇게 마기 일을 하는 동시에 독립부대의 리더도 맡았기 때문에 편집부에서 적수가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내 동기들도 여기에 편승해서 편집부 내부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좋게 말하면 활기가 생겼다. 나쁘게 말하면 질이 나빠졌다. 잘 관리 받은 성실한 공립학교가 복장도 머리도 자유로운 아메리칸 스쿨이 된 것 같은 변화다. 여기에 대응할 수 없는, 당시의 중견 사원은 나를 상당히 언짢게 생각했을 것이다.


신입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이다. 클럽 선데이 업무도 증간호 업무도 잡일도 신입들이 꺼려하게 됐다. 그야 그렇지. 우라 선데이면 경력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연재를 할 수 있다. 선데이 편집부의 분위기를 스퀘어 에닉스의 그것으로 바꾼 것이다. 그 무렵, 슈에이샤, 쇼가쿠칸, 코단샤, 아키타 쇼텐 같은 오래된 대형출판사가 출판불황으로 힘들어 했는데, 스퀘어 에닉스 만화 사업부만큼은 급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 모델로 움직이는 우라 선데이가 성장하는 건 당연했다. 젊은이들이 연이어 우라 선데이에서 히트작을 낸다. 그리고 히트작을 낸 녀석이 왕이다. 히트작을 내지 못한 편집자한테 가치는 없다. 그러니까 히트작을 내지 못한 상사의 명령은 적당히 흘려 들으면 된다,고 나는 지껄여댔다.


신입들은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매일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이 질서를 파괴하는 내 행동을 당시의 토리미츠 유 편집장은 허용해 주었다. 토리미츠 씨는 2012년부터 나와타 편집장의 뒤를 이어받아 편집장이 된 분이다. 그는 아무튼 신입들한테 인기가 있는 편집장이었다. 또 아오야마 고쇼 선생의 담당을 맡고 오랜 기간 코난의 미스테리 트릭 제작을 도왔다. 그때문인지 아주 논리적인 사고로 하는 말들에 전부 설득력이 있었다. 코난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써먹는데 지금까지 중 가장 능숙한 편집장이었다. 그렇다, 그는 나를 이용해서 선데이 편집부를 바꾸려고 한 것이다. 【마지막 선물】

이 무렵에는 나도 코바야시 쇼도 선데이 업무는 거의 하지 않게 됐다. 나는 그나마 마기 만큼은 담당했다. 코바야시 쇼는 나한테 선데이 일은 안 해도 된다는 말까지 했다. 누가 주의를 하면 그냥 들이박으라는 말까지 했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는 실제로 명령을 내리는 상사랑 싸우고 내가 중재를 했다. 완전 양아치랑 야쿠자 오야붕의 콩트 같았다. 나는 간신히 남아 있는 편집자 교육 시스템이나 편집부의 질서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싶었다. 그남큼 나는 기존의 선데이 교육 시스템을 혐오했다. 다만 어느 날, 당시 세명 있는 부편집장 중 한명이었던 천재 편집자 츠보우치 씨의 호출을 받았다. 당시의 나는 이미 편집장과 츠보우치 씨 말만 따랐다. 나랑 코바야시가 선데이의 일을 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코바야시 쇼의 힘은 전부 우라 선데이에 쏟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츠보우치 씨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따라서 코바야시 쇼는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 결과를 내게 할 수밖에 없다. 코바야시 쇼한테 쇼트 코미디 연재를 기획하라고 지시했다. 1화 6P 정도의 작품. 그거라면 우라 선데이 업무에 지장이 없지 않을까?


코바야시 쇼는 육성 중인 신인을 제안했다. 실력이 좋군. 흠잡을 곳이 없다. 반드시 히트할 것 같았다. 우라 선데이에서 연재를 시키고 싶다. 그러나 츠보우치 씨 말은 무시할 수 없다. 히트시키는 사람이 왕인 것이다. 선데이 서열 1위는 츠보우치 씨였다. 그렇게 코바야시 쇼는 선데이용 기획을 만들었다. 매주 겨우 6P의 쇼트 코미디. 훗날 애니화도 되어 대히트하는 다가시카시다. 그 작가인 코토야마 선생은 훗날 철야의 노래도 히트, 선데이의 간판이 된다.


나도 한편 연재작을 기획했다. 선데이 상을 수상한 작가라서 선데이에 연재시키는 걸 조건으로 담당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건 폭망했다. 내 조사가 부족했다. 또 반드시 히트시키겠다는 마음가짐이 부족했다. 그 작가한테 미안한 일을 했다. 오다 토모히토 씨다. 그의 데뷔작 데지콘은 내 기획이다. 실패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로 성공, 역시나 선데이 간판 작가가 된다. 두사람의 작가는 나랑 코바야시 쇼가 선데이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 됐다. 그렇다 그들의 작품이 선데이에 게재되는 무렵, 우리들의 모습은 이미 소년 선데이 편집부에서 사라져 있었다...


데지콘이나 다가시카시 기획이 통과한 무렵, 2014년 여름, 나는 선글래스 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경비를 너무 많이 써서 혼나려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장은 나한테 제안했다. 선데이를 나가서 편집장을 맡지 않겠냐고.

나는 죽어도 싫다고 말했다. 내가 왜 선데이를 나가야 하나? 나는 야망이 있었다.


당연히 선데이 편집장이 되고 싶었다. 편집자의 목표는 소속 매체의 편집장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내가 그린 그림은 이러했다. 우선 부편집장이 되어, 클럽 선데이 운용을 나한테 맡겨달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클럽 선데이를 해체해서 선데이 웹사이트는 우라 선데이만 남긴다. 그 무렵 클럽 선데이는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우라 선데이에 질 수 없다며 내 편이 아닌 편집자들이 필사적으로 작품을 투입했다. 적자가 더 심해졌다.


만약 내가 부편집자가 되어, 클럽 선데이를 박살내고 우라 선데이에 리소스를 집중하면 선데이는 압도적으로 수익개선을 하게 된다. 또한 클럽 선데이에 투자한 운영비를 우라 선데이 프로모션비로 충당할 수 있게 된다.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우라 선데이는 이미 선데이 본지에 지지 않는 매체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서서히 선데이 본지에 우라 선데이 작가를 투입하자. 선데이 표지에 모브 사이코나 켄간 아슈라를 장식해서 인터넷에서 주목도를 모으자. 종이와 웹매체의 콜라보. 그게 내가 생각한 선데이 부활 작전이었다.

예를 들어 먼저 우라 선데이에서 연재를 시작하고 인기가 생기면 다음화를 선데이 본지에만 먼저 공개한다거나. 그러면 다음 내용을 읽고 싶은 사람은 선데이를 사줄 것이다. 지금의 기다무 같은 시스템을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여기에 선데이에 게재되기 위해서는 우라 선데이 랭킹에서 상위를 차지해야 하는 룰을 만들어서, 그걸 목적으로 만화가와 담당 편집자를 경쟁시킨다. 당연히 선데이 본지의 만화가들한테도 프레셔를 준다.


표면과 이면의 싸움을 연출해서 세간의 주목을 모은다. 그 모습을 당시 갓 나타난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가 터지게 한다. 영어로 번역해서 우라 선데이를 세계규모로 성장시킨다. 이런 망상을 했다. 그 우라 선데이를 내가 쥐고 있는한, 언젠가 선데이 본지 편집장도 나한테 맡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편집장이 되어서 다음은 매거진에 전쟁을 걸고, 최종적으로 점프를 쓰러트린다. 잠꼬대 같은 얘기로 들리겠지만, 나는 할 수 있다. 당시에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따라서 부장한테 그딴 것보다 나를 부편집장으로 승진시켜달라고 말했다.

부장 '너 이제 막 데스크 됐잖아. 그게 가능하겠냐.'


나 '왜요.'


부장 '그런 회사야.'

나 '그럼 출세 안 해도 됩니다. 이대로 우라 선데이를 키우겠습니다.'


부장' 니 방식은 토리미츠(편집장)가 눈감아 주니까 가능한 거라고. 편집장이 새로 오면 허용될리가 없어.'


나 '괜찮아요. 내가 편집장이 될 거거든요.'


부장 '아니 그런 회사가 아니라고. 니가 편집장이 된다고 쳐도 몇 년은 더 있어야 되는 일이야. 지금 편집장이 되려면 직접 만든 매체만 가능해. 잘 들어. 너한테도 이건 기회다. 그 나이에 쇼가쿠칸 편집장이 될 수 있는 건 레어 중에서도 레어야. 일단 거기서 결과부터 내 봐.'

나 '...하루만 생각해볼게요.'

나는 코바야시 쇼와 A군을 불러 상의했다. 나갈 경우의 메리트와 디메리트를 주고 받았다. 매상은 문제 없다. 우리는 운영 코스트를 최소로 낮춰서 만든 사이트. 이미 히트작도 있다. 우라 선데이 코믹스 판매량은 이미 겟산이나 선데이GX 등의 월간지 편집부의 매상보다 위였다. 심지어 잡지를 인쇄하지 않으니 고정비가 안 든다. 대흑자가 약속되어 있는 꿈같은 초우량 편집부의 탄생이다. 그 시절에 그런 편집부는 어디에도 없었다.


문제는 인원이었다. 선데이 신인을 자유롭게 써서 작품에 투자했던 것이다. 아마 부장이 신생 편집부에 배정해주는 건 이 세사람이 한계겠지. 새로운 편집부는 대체로 세명으로 출발한다. 몇 년전에 만든 겟산도 셋이서 시작했다. 그래서는 큰 비지니스는 못한다. 쇼가쿠칸은 사원을 늘리기 힘들다. 조합 등의 승인이 필요해서 1년에 한명에서 두명을 충원하는 게 한계다.


근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끝이 없다. 나는 병이다. 워크홀릭인 것이다. 가정을 잃었을 때, 다시는 무리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햇는데 금세 또 일을 하고 싶어진다. 머리 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실현하지 못하면 개운치가 못하다. 그게 가능한 지금의 선데이 편집부 환경은 최고였다. 그리고 앞서 말한 선데이 본지 부활 아이디어가 아까웠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각사가 우라 선데이 비지니스 모델을 추진해서, 웹코믹 사이트가 연달아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파란 바다는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다. 또한 종이의 시대는 슬슬 끝이 난다. 만약 선데이가 매거진이나 점프를 제칠 기회가 있다면 지금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리는 무리. 그런 회사다.


그리고 신세를 지고 있는 토리미츠 편집장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빠진다는 것은 선데이 매출에서 우라 선데이 매출이 빠진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밝힐수는 없지만 그건 상당한 액수다. 그리고 우라 선데이가 떠난 자리에는 적자 머신 클럽 선데이가 남는다. 이를 대신할 매체인 우라 선데이가 사라지면 신인 작가는 클럽 선데이에 작품을 실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클럽 선데이에 적자는 더 심해진다. 그 적자를 지금의 선데이 편집부가 흡수할 수 있을까? 그 책임을 토리미츠 씨가 지는 모양새가 되지는 않을까? 그리고 남겨지는 신인 편집자들도 마음에 걸렸다. 기껏 탈옥시켰는데 내가 사라지면 괜한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다.


애초에 왜 이 타이밍인가? 모든게 잘 되가고 있는 이 상황을 바꿀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부장은 왜 갑자기 이런 제안을. 아니 부장이 맞을까? 왠지 그보다 더 위의, 내가 짐작할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는 커다란 권력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게 누군지는 알 수 없다.


다음날 부장한테 신설 우라 선데이 편집부의 편집장을 맡겠다고 알렸다.


마음에는 패배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