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즈카 선생의 철완 아톰에서는 2003년 4월 7일에 아톰이 탄생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 날이 임박한 시기에 테즈카 프로덕션에서 만화계를 거론하며 아톰 탄생을 축하하는 기획을 짜고 싶다고 제의를 해주셨죠. 거기서 내가 기세를 탄 나머지 거창한 소리를 해버렸어요. 테즈카 작품을 오마주한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도 좋지만, '지상최대의 로봇' 리메이크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기골이 있는 만화가는 없는 건가라고요. 그랬더니 주위의 편집자가 '직접 그리면 되잖아'라고 태클을 걸었죠. 아니 그건 좀...나는 5살 때부터 이 작품과 함께 살아 왔으니까 엄청난 것을 짊어지게 됐구나 싶었죠.(웃음)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읽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어릴적에 확실하게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는 소위 '정의와 악'의 도식으로 권선징악물이 많죠. 근데 철완아톰은 악당으로 등장한 캐릭터도 마음이 있고, 적을 이겨봤자 기쁘지 않습니다. 싸움 같은 건 무의미하다고 질문을 던집니다. 당시는 뭐야 뭐야 이건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었기에 인생을 걸고서 좇아가는 작품이 됐습니다.


리메이크를 하면서 철완아톰은 대단했다는 단순한 회고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이 던진 메세지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1964년에 지상최대의 로봇이 발표된 이래, 2023년인 지금이 가장 이 이야기에 적합한 시대일지도 몰라요. 그건 문제이기도 합니다. 반전의 소망을 담은 이야기는 인류가 여러가지 것들을 극복하고 언젠가 낡은 이야기가 되어야 하니까.


현재 세계의 도시 풍경을 보면 우리들은 테즈카 오사무가 소망을 담아서 그린 미래상을 최대한 실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그런 희망 같은 것을 그려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목표로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만화가의 역할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테즈카 선생 그림을 내가 건드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작의 권리를 지닌 테즈카 마코토 씨한테 제안한 플롯은 원작의 아톰 그림체 그대로였어요. 하지만 그걸 보신 마코토 씨는 '꼭 우라사와 씨 그림체로 그려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 그림체로 그리기 시작하면 역시 내 만화가 되어버립니다.


물론 골자로서의 지상최대의 로봇 스토리 전개는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정해져 있는 결말을 향해서 가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옆길로 새도 괜찮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전반부에 등장한 노스2호 에피소드는 다시 원작을 읽어보고 '어? 이렇게 짧았나?'하고 생각했을 정돕니다. 어릴 적에 읽은 기억으로는 훨씬 많은 장면들이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없더라고요.




요컨대 내가 멋대로 망상했던 것이죠. 그래서 PLUTO는 컷과 컷 사이에 내가 망상한 것을 전부 넣어본 것이나 다름없는 작품입니다. 5살에 처음 읽었을 때부터 내 머리속에서 쌓아올린 행간을 그대로 그린 느낌이죠.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연기 플랜을 자꾸 캐릭터가 말해요. '여기서 울어볼까요?' '우는 방식은 이런 느낌이면 되겠습니까?'하고요. 그걸 따라서 그리는 거니까, 그렇게 되면 정말 즐겁습니다.


만화는 희노애락을 심플하게 표현하는 매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 사이에 있는 헤아릴 수 없는 표정을 그리려고 해왔어요. 실은 PLUTO의 주인공 게지히트는 독일어로 '표정'을 의미합니다. 그런 이름을 붙인 당시의 테즈카 선생은 굉장하다는 얘기가 됩니다만.(웃음)


로봇이 인간과 가까워질 때 얼굴의 움직임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아톰처럼 고성능 인간형 로봇은 표정도 인간과 닮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로봇을 그릴 때도 인간을 그릴 때랑 똑같이 감정의 기미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것이 인간다운 증거니까요.


테즈카 선생은 철완아톰을 통해서 AI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가 같은 테마를 그렸습니다.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앞서나간 시점이죠. 다만 당시부터 기술의 진보에 대해서 낙관적이지 않았습니다. '괜찮을까?'라는 감각으로 바라보죠. 저도 '진보'라는 단어는 아주 수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점을 바꾸면 퇴화하고 있다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눈앞에 있는 이차원의 정보에 너무 가까이 다가갈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살짝 떨어져서 대상을 대상화해서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만약 이번 애니를 보고나서 만화 PLUTO, 테즈카 선생의 지상최대의 로봇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봐주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같은 퍼스펙티브한 시점을 체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에서 거리를 두고 역사의 깊이를 아는 것은 굉장한 자극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