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세르크 슈퍼 발매 기념 모리 코우지 인터뷰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모리 코우지입니다. 만화가입니다. 홀리랜드, 자살도, 무법도 같은 작품을 영 애니멀에서 연재했고 현재는 창세의 타이가, D.다이버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베르세르크는 미우라 켄타로 선생이 2021년 5월에 고인이 된 이래, 모리 선생이 감수를 맡아서 연재를 재개했습니다.


2022년 6월에 재개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1년 가까이 흘렀는데 여전히 신기한 체험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랑 미우라는 고교 공급생 시절부터 친구로, 만화가를 꿈꾸는 시절부터 40년 이상이나 함께 해왔습니다. 베르세르크의 결말도 전부 들은 것은 내가 유일했습니다. 그걸 떠올려 가면서 전 하쿠센샤 편집자인 시마다 씨랑 쿠로사키 치프 셋이서 미우라가 생각했던 구상을 발굴하여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극명하게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두분 다 연재만화가 있는 바쁜 만화가였잖아요?


우리는 어떤 의미로 평범한 관계가 아니었어요. 고교시절부터 수십년간 10일에 한번씩은 연락을 주고 받았고, 막히면 하루종일 서로 자기 연재 얘기를 했어요. 전화 너머로 다음에는 이런 전개고, 가츠가 이렇게 하고...라는 촌극을 시작하기 때문에 아예 핸즈 프리 모드로 2~3시간 만화를 그리면서 수다를 떠는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수가 없었죠.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서, 불쑥 얼굴을 비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스토리를 알고 있는 거랑, 그걸 만화 작품으로 담아내는 건 다른 차원의 고생이 있겠죠? 스스로도 타이가 연재를 하고 있으면서 왜 감수를 받아들이신 건가요?


고민했습니다. 그보다는 내가 부고 후에 아연한 상태라 내 만화도 그리지 못했어요. 몇 개월간 기능을 못하는 동안, 언젠가 소설이나 무크지 같은 형태로 베르세르크 구상을 어딘가에는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만화 연재의 재개'라는 선택지는 당시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죠.


근데 미우라랑 연재를 하던 스튜디오 가가의 제자들이 '절필한 회의 원고를 끝까지 그렸으니까 봐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내심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364화는 어디까지 미우라가 그렸고 어디부터 제자들이 작업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였습니다. 필사적인 힘은 때로 사람을 기적적으로 향상시킵니다. '우리들이 그 다음도 연재하게 해주지 않겠습니까?'라는 상담을 받고, 어쩌면 완결까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샘솟았어요.


모리 선생님도 큰 결단이었겠죠.


서른 중반 무렵에 1년에 몇 십일이나 철야를 하는 바쁜 시기가 있었는데 나도 병원 신세를 지곤 했어요. 그래서 농담으로 서로 '무슨 일이 생기면 다음은 부탁해'라는 소리를 했었죠. 설마 진짜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하지 않으면 '네가 있으면서, 뭐냐고!'라고 미우라가 많이 화를 낼 거예요. 최종화를 독자들한테 전하는 걸 무척 기대했으니까. 미우라랑 내 은사이기도 한 하쿠센샤의 시마다 이사(당시)님도 '할거라면 회사는 전력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연재를 재개했습니다.


제가 놀란 점은 2022년 북미 만화 매상에서 베르세르크가 80만부로 7위를 기록한 점입니다. 원래부터 TOP20에는 드는 인기만화였는데 체인소맨,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스파이 패밀리 같은 점프 TOP5에 이어서 하나코 군과 베르세르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진격의 거인, 원피스, 드래곤볼보다 잘 팔리고 있어요.





편집자:네. 실은 지금 해외에서 아주 결과가 잘 나오고 있습니다. 미우라 선생의 뉴스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지만, 오히려 원래 팬이었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만화를 찾는 기회가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재개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매일 같이 뜨거운 DM이 옵니다. 절반은 해외팬인데 영어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나 이것저것 옵니다. 최근에는 아랍어도 와서 중동에서도 여러가지 반응이 늘어났습니다.


모리 선생님은 나카야마가 부시로드 시대에 키다니 타카아키 씨랑 프로레슬링을 보러 간 연으로 친분이 생겼습니다. 체격도 장난이 아니신데 도무지 만화가로는 보이지 않으세요...옛날부터 그랬나요?


나는 체격적으로 타고나서 중학생 때도 전국대회에 진출하는 리틀 리그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다른 형제들은 공부를 잘 하니까 너는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는 식이었죠. 키는 180CM나 됐고 서전트도 93CM는 뛰었어요. 악력도 86kg 정도 됐고 아무튼 온갖 수치가 탁월했어요. 미우라랑 같이 니혼대학의 예술학부에 진학했는데 거기서 교수들이 모여서 체육학부 전과를 추천하고, 특별 스카우트가 올 정도로 만화보다 스포츠가 적성이었던 거죠.


완전 육체 엘리트였군요?!


겉은 그런데 속은 완전 오타쿠였어요.(웃음) 중학생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고등학교는 니혼대학 부속 미술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때도 부모님은 만화 따위 때려치라고 쓴소리를 계속 했습니다. 야구를 그만하겠다고 말했을 때는 매일 반성문을 썼을 정돕니다. 그래서 집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혼났어요. 그렇다고 카페에 갈 돈도 없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항상 게임센터 비디오 게임 코너에 있는 기기 위에 동전만 올려두고 게임의 불빛에 의지해서 만화를 그렸습니다.


네? 게임 센터에서 만화를 그리다니 1980년대 전후는 불량한 집단이 모이는 장소였죠?


맞아요. 저녁 7시가 지나면 양아치가 모이는 장소였죠. 양아치들이 덥썩 그 100엔 동전을 훔쳐가요. 나도 난감해서 '돈 돌려주세요!'라고 말하고. 그러면 뒷골목으로 끌려갔죠.


양아치들도 대단하네요. 용케 그렇게 몸집이 큰 모리 씨한테 시비를 걸고요.


야구부를 막 그만둔 참이라서 나도 까까머리, 몸집은 커도 싸움 같은 건 해 본적이 없어요. 그때도 개쫄았는데, 그래도 중요한 돈이니까 돌려받으려고 했다가...개처럼 패버렸습니다. 그 양아치를. 양아치는 이렇게 좆밥이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싸움이 재밌어졌어요. 그때부터는 머리도 기르기 시작해서 살짝 엇나가기 시작했죠. 고등학생 때는 방황하는 시기였습니다. 부모님이 인정해주지 않는 점도 있고 해서요.


각성의 순간이군요! 싸움을 해보고 처음으로 자신의 강함을 자각한다.


맞아요. 소심한 까까머리 야구부원이 압도적인 부조리를 직면하고 고교 데뷔를 한 겁니다. 그러던 차에 같은 반에서 만화가를 꿈꾸는 미우라랑 친해졌습니다. 그 친구는 미대를 나온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자기를 위한 디자이너가 쓸법한 근사한 책상도 가지고 있었고 진짜 부러웠어요. 미우라 집에 놀러다니는 사이에 그쪽 부모님이 '모리 군,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우리집에서 살지 그래?'라고 하셨죠.


맞아요. 고등학생 때 같이 살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용케 단순한 고등학교 친구 집에서 객식구로 사셨네요?


나중에 하시는 말씀이 내가 당시 부모님과 점점 관계가 악화되는 모습을 차마 보기 힘드셨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양아치 나와바리인 게임센터에서 매일 만화를 그리고, 매일 싸워서 상처를 만들고 오고. 부모랑은 사이가 계속 험악해지는데 싸움도 잘 하니까 '언젠가 모리 군은 부모를 폭행할 수 밖에 없다'고 여기신 모양이에요.(웃음) 그렇게 객식구로 삼아 주셔서, 나는 미우라 댁에서 오바Q처럼 일주일에 며칠은 숙박하면서 만화를 그리고, 가끔씩 집에 돌아가는 패턴의 반복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도 그런 짓을 하게 둘까보냐!하고 데리러 왔는데 미우라 군 부모님이 '괜찮아요! 괜찮아요! 제 작업을 거들게 하고 있거든요!'라며 물리쳐 주셨다는 모양입니다. 내 은인입니다. 미우라 집안 사람들은. 그 일이 없었다면 만화가는 되지 못했겠죠.


타입이 다른 미우라 씨랑 용케 친해졌네요. 미우라 씨는 '생각해보면 나한테 모리 군의 존재는 엄청났어요. 그 친구는 마치 자니즈 노래의 주인공 같은, 살짝 나쁜 남자인데 싸움도 잘해서 여자들한테 인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눈부셨죠. 그래서 모리 군과 친구로 있는다는 게 어려웠어요. 너무 눈부셔서 내가 부하가 되거나,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죠. 근데 나는 둘 다 분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 내 무기가 만화가 아닐까 하고 닥치는대로 만화를 그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거 당시에는 전혀 몰랐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말해줬어요. 어디 그뿐일까 나야말로 미우라를 동경했습니다. 그 친구는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그림을 잘 그렸어요. 세상을 잘 타고났으면 미켈란젤로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만큼 천재였습니다. 니혼 대학 시절에 오발다리 의자를 비스듬한 각도 아래에서 그리라는 과제가 있었어요. 다들 머리속으로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1시간 정도 신음하며 그리는데 미우라는 10분만에 쓱싹 쓱싹 그려버렸죠. 뇌의 구조 자체가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함께 합작 만화를 그리셨죠.


같이 그려서 주간소년 선데이 만화상 최종선고까지 갔습니다. 내가 밑그림과 캐릭터를 담당하고 미우라가 배경이나 메카를 담당했죠. 근데 합작은 그 때 딱 한반만 했어요. 내가 진짜 괴로웠거든요. 재능이 10배는 뛰어난 사람과 같이 일을 하는 건 항상 자신의 한심함을 보게 되는 꼴이거든요.


근데 성격이 다른 두사람이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건가요?


고1 때 '모리 쨩 만화 그린다며? 주말에 모리 쨩 집에 놀러갈게'라고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을 때 말을 걸어왔어요. 그렇게 서로의 그림을 보여주게 됐는데 그 친구 그림이 너무 뛰어나서 충격을 받았죠. 나는 아직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쪽팔려서 보여줄 수 없었죠.


이해합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미우라는 미우라대로 충격이었다고 해요. 나는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미우라는 책을 거의 안 읽습니다), 방 한쪽을 다 차지한 책장을 보고 놀랐다고 해요. '모리 쨩...이거...전부 읽었어?'라고. 나도 미우라 원고를 보고 부들부들 떤 분한 기억이 있으니까 '뭐...이거는 내가 읽은 책의 절반도 안 될걸?'라고 허세를 부리고. 사실은 그게 전부였는데.(웃음) 근데 그때 빌러준 소설이 히라이 카즈마사 선생의 환마대전이고, 그 후에 미우라는 SF소설에 푹 빠져서 찾아 읽게 됐죠. 쿠리모토 카오루 선생 작품이라거나. '아 이건 적한테 소금을 보내버렸군'하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그렇게 SF만화 방향으로 점점 나아가게 됐군요. 미우라 씨도 파천황적이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는 모리 씨한테 컴플렉스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미우라 아버지가 난폭한 사람이었어요. 내 눈앞에서 미우라를 막 매도하는 거예요. '너는 그림은 잘 그려도 재밌는 이야기는 못 그려. 재밌는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모리 군 같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야!'라고. 서로 성격이 다르니까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은 거의 없었죠. 그게 좋았던 걸지도 몰라요.


양아치랑 싸우고 다니는 모리 씨를 미우라 씨는 겁내지 않았나요?


사실 미우라는 폭력에 익숙해요. 아버님이 상당히 완력이 있으셔서, 집에 틀어박힌 여동생 방을 때려 부셔대는 통에, 집 뒷편에 부서진 문이 몇 장이나 쌓여 있었죠.(웃음)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사실 수라장도 겁내는 법이 없어요. 나랑 같이 고서점에 갔을 때, 그때 이미 나도 얼굴이 알려져서 유명했으니까 적대하는 불량배 그룹한테 포위당한 적이 있어요. 근데 미우라는 그럴 때 기대를 하거든요. '모리 쨩 엄청난 일이 생겼는데?!'라는 식으로 눈을 반짝반짝 거려요. 뒷골목에 끌려가서 네명한테 포위당해서 아무래도 이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제일 먼저 미우라가 솔선해서 한명을 붙들어 잡았어요. 그 사이에 내가 두명을 원펀치로 날리고, 마지막 한명은 도망가서 격퇴했죠. '꽤 괜찮았지!'라고 말하는 그때의 미우라는 정말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거 꼭 가츠랑 그리피스 같네요! 미우라 씨도 '(모리가) 그리피스의 모델입니다. 근데 내가 가츠일 때도 있는가 하면 그리피스일 때도 있죠. 꽤 자주 바뀝니다. 남자의 인간관계에 흔히 있는 패턴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맞아요. 나 뿐만 아니라 등장캐릭터 대부분이 실재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네? 그랬나요!?


그 후의 이야긴데 니혼대학에서 학부대항 유도대회가 있었어요. 예술학부라서 평소에는 거의 나가지 않는데, 나는 떡대가 좋으니까 미우라도 세트로 끌려나가서 학부 대표로 출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출장한 다섯명이 모리, 미우라, 쥬도, 코르커스, 리케르트입니다. 얼굴도 다 똑같아요. 질투가 심하고 여자를 밝히는 코르커스랑 재주 좋은 리케르트는 당연히 못 이기니까 나랑 미우라, 쥬도가 3승을 할 수밖에 없었죠. 쥬도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친구였는데 그때까지 몰랐는데 유도부였어요. 그 친구의 센스 덕분에 이겨버렸어요. 그렇게 3승을 해서 우승은 못했지만 체육학부의 쟁쟁한 놈들 사이에서 예술학부치고는 꽤 선전했습니다.


매의 단은 니혼 예술대학 즉좌 유도팀이었군요(웃음) 다들 자기가 모델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불평했어요. 특히 코르커스. '나는 이렇지 않아!'라고. 아니 너 그 자체거든(웃음)하고 미우라랑 웃었습니다.


당시 충격적이었던 게 식 당시의 캐스커입니다. 친구였던 그리피스가 가츠 눈 앞에서 강간을 해서 오싹오싹했습니다. 그걸로 남자 고등학생은 NTR 취향에 눈을 뜨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건 원전이 있어요. 나가이 고 선생의 스사노오(1979)에서 주인공 눈앞에서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츠루기 치구사 선배가 악마한테 강간당하거든요. 그거의 어레인지인데 가츠의 눈과 한쪽팔이 짓눌리면서 보고 있는 묘사는 오리지널입니다. 검은 검사 등장 당시부터 그건 식 때 생긴 상처라는 상정으로 만들었습니다.


불량배 그룹도 그렇고 무도대회도 그렇고 왠지 미우라 씨가 베르세르크로 그려온 스토리나 묘사는 본인이 감동하거나 흥분한 체험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네요.


동료들과 흉악한 존재, 위협적인 존재를 격퇴하는 스토리가 미우라가 추구하는 원체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사도 우리가 고등학생 시절에 했던 말에서 따온 게 많아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꿈의 불씨'입니다.










그 제각각인 동료들이 한순간이더라도 목표를 공유하고, 달성하고, 연회를 연다. 그것도 고등학생 시절 문화제 이야기입니다. 다같이 문화제로 들썩이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나랑 미우라는 '나는 검(펜)을 쥘 거야. 누구를 위해서도 아냐.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찰나의 불꽃을 쏘아올리기 위해서...'라는 소리를 했거든요.(웃음) 모두라는 원 안에 들어가는 안심감이나 기쁨은 있더라도, 마지막에는 나는 어딘가에서 고독한 싸움을 계속할 수 밖에 없죠.


그리피스의 대사도 모리 씨가 실제로 한 말에서 따왔다고 들었습니다.(웃음)


부끄럽습니다. 이거 너 임마, 내가 고등학생 때 취해서 한 말이잖아! 뒤질래! 멋대로 쓰지마! '나는 나의 국가를 손에 넣겠어'라니.


일상생활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대단합니다. 과연 만화가. 일상 속에서 드라마를 망상하는 힘이 있군요. 근데 고등학교 때 괜찮은 상도 받고, 그리고 니혼대학 예술학부에 둘이 같이 진학하셨죠? 만화가로 가는 로열로드 같은 커리어입니다.


우리는 슬럼프도 같은 시기에 겪었어요. 16살에 장려상을 받고 담당도 붙은 천재 미우라가 대학에 입학하고나서도 연재 한편 따내지 못했어요. 그 무렵 미대에서 배운 실사에 가까운 그림이 오히려 만화에서는 경원당했어요. 얼굴이 너무 어른스럽다고 편집자가 쓴소리를 해서 수정을 하다가 뒤죽박죽이 되어서 그림 스타일이 이상해졌죠. 딱 한편 SF계열 작품으로 증간호에 실렸지만 인기는 최하위였죠. 그런 시기가 있잖아요? 이른 시기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완성한 작품을 보면 딱 한걸음 모자란. 테마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죠, 그 무렵의 미우라는.


모리 씨는 어떤 슬럼프였나요?


나는 대학 2학년 때 좌절해서 만화를 그릴 수 없게 됐어요. 20~27살까지는 만화는 때려치고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했기 때문에 진짜 둘 다 암흑시대였습니다. 근데 그 후에 미우라는 데뷔를 하게 됐고 내 사정은 생각도 않고 맨날 전화를 해댔어요. 모리 쨩 이거 어떻게 생각해? 스토리 구성 도와주지 않을래? 진짜 나쁜 놈이죠. 만화를 포기한 사람한테 매주 만화에 대해 물어보니까요. '그런 거 나한테 묻지마!'라고 처음에는 버럭했습니다.


미우라 선생은 모리 선생이 돌아오길 바랐던 거겠죠.


그렇습니다. 근데 만화를 그리라는 말은 한번도 안 했어요. 27살에 다시 의욕을 되찾고 내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 '어차피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