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1988년에 22살 대학 재학중인 미우라 씨는 단편 베르세르크를 코미코미에 투고. 89년부터 월간 애니멀 하우스에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도 여러모로 상담을 해줬죠. 처음에는 전혀 인기가 없었어요. 베르세르크. 미우라는 약점이 명확한데 어떤 테마를 그려도 결국 똑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소녀가 습격을 당하고 강한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서 적을 물리친다. 그것 밖에 못그려요. 그리고 SF랑 판타지 밖에 테마가 없어요. 현대물은 한편 정도 밖에 그린 적이 없으려나. 미우라도 그점이 컴플렉스였습니다.
베르세르크 초기도 짐마차에서 습격을 당한 소녀가 마에 씌여서 날뛰는 이야기인데, 나도 음울한 시기였으니까 혹평을 했죠. '이거 항상 그리는 패턴인데. 결국 소녀랑 알게 되고 날뛰어서 구해주는 이야기잖아. 전혀 화제도 안 되고, 무한의 주인이 훨씬 재밌어'라고. 그때는 미우라도 상당히 화를 내며 '만화도 안 그리는 게 뭐래!'라고 받아쳤죠. 뭐 싸우게 됐는데 그 후에도 다음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상담 전화가 오는 거예요.
베르세르크의 전환점은 어디였나요?
실은 당시 니혼 대학 선배 중에 훗날 고명한 소설가가 되는 분이 있었어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지성이 있는 분인데, 미우라도 나도 스토리 구상으로 고민하던 차에 선배는 어떻게 스토리를 짜냐고 물어봤죠. 선배의 대답은 '뎃생을 하듯이 상황을 필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상황을 영화의 카메라처럼 상상하는 거야. 원거리에서 부감해서 '오후의 활기찬 캠퍼스 카페에서 죽치고 있는 모리 군 손가에는 카페오레가...'라는 식으로 점점 줌인하는 상상을 하고, 그걸 언어로 바꿔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만화를 그릴 때 도움이 됩니다. 영화적으로 비주얼을 생각하고, 그걸 언어로 변환한다.
이 말을 미우라한테 해줬어요. '한번 아무거나 만화로 그리지 말고 감동한 일을 언어로 메모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친구랑 만났을 때의 감상이나 추억 같은 거' 그게 난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죠. 미우라가 베르세르크로 황금시대(3~12권)를 전개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황금시대편도 1권으로 끝낼 예정이었습니다. 근데 이후에 미우라가 확변해서 일대 장편이 되었죠. 베르세르크 인기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매의 단이 등장하고 나서부터입니다.
모리 선생도 2000년 34살 때 같은 영 애니멀에서 홀리랜드 연재를 시작합니다.
홀리랜드도 미우라가 생각해 준 것이나 다름없어요. 연재를 따내지 못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적에 편집자가 제게 말했어요. '모리 씨가 하는 얘기는 재밌는데 만화는 도무지 재미가 없다'고.
그럴 때 미우라가 말했죠. 모리 쨩이 거칠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라고. 근데 나같은 주인공은 안 된다고. 모리 쨩 그대로인 주인공이면 비밥 하이스쿨이나 고교철권전 터프가 되어버린다. 그런 게 아니라 길바닥에서 갸냘프고 약한 녀석이 올라가는 이야기를 그리라고. 나는 나대로 내 체험을 그리는 게 쪽팔렸죠. 근데 그러더라고요. '부끄러운 일부터 그려! 나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미우라 씨가 모리 씨와의 체험을 베르세르크로 그린 것처럼 모리 씨 또한 거칠었던 길거리 시절을 홀리랜드로 결정화했습니다. 등장인물도 실존인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유도가한테 졌던 일이나 노상의 카리스마라거나.
맞아요. 실체험으로 그렸습니다. 노상의 카리스마는 엄청 인상적이었던 분으로 실존인물입니다. 머리가 좋고 잘 생겼고 스포츠 만능이고. 내 청춘시절의 충격은 미우라랑 그 분이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우라 씨랑 모리 씨의 인연이 가족 이상이구나 싶습니다. 어느 한쪽이 없었다면 베르세르크도 홀리랜드도 탄생하지 못했겠죠. 타계 소식이 알려졌을 때 모리 씨가 심한 충격을 받은 것도 페이스북을 통해 봤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미우라 부고 소식을 듣고나서 만화를 그릴 수 없게 됐어요. 그릴 기력이 샘솟지 않았죠.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만화를 그린 게 아니라 미우라가 있어서 그린 게 아닐까 싶었어요. 만화=미우라입니다. 2021년에는 살도 빠져서 85kg였던 게 73kg까지 줄었죠. 완전 켄쨩 다이어트입니다.(웃음)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법이죠. 그 충격의 크기를.
마지막으로 미우라랑 나눈 얘기가 '모리 쨩 왜 만달로리안 안 봐! 1년이나 방치하고 말이지! 너랑 얘기할 수가 없잖아! 작작 좀 해!'입니다. 그리고 정성껏 디즈니 플러스 가입 방법을 알려줬죠. 그게 마지막 대화라서, 그랬지 참 보라고 한 영화를 봐야지 하고 틀었더니...몸이 떨려서 볼 수 없더라고요. 눈물도 나고.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을 만큼 미우라가 좋아했던 스타워즈 자체가 트라우마가 됐습니다. 몸이 거부반응을 보이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겁니다.
베르세르크 연재 재개로 가장 구원을 받은 게 납니다. 베르세르크 연재를 재개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나니까 비로소 창세의 타이가 작업도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반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예요.
가끔 트위터로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차피 베르세르크 니 멋대로 그리고 있지?'라고. 절대 무립니다. 내 능력으로는 베르세르크를 창작할 수 없고 못 그려요.
지금도 매일같이 미우라가 으쓱해 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입니다. '어때 모리 쨩? 내가 더 생각하고 만화를 만들었지?'라고요.
생전에 미우라가 '최종화까지의 스토리는 모리 쨩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멈추면 이 이야기는 끝나버립니다.
앞으로 만화가로서 어떤 활동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창세의 타이가, 베르세르크, 그리고 모리쨩 켄쨩(모리 선생과 미우라 선생의 에피소드를 엮은 만화) 이 세개를 끝낸다는 생각 말곤 없습니다.
최근 1년은 매일 같이 미우라를 떠올리며 그 친구의 작품만 마주하고 있으까 꿈에서도 나옵니다. 그래서 정말 이 세상에 그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오히려 없다는 생각을 못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런 망상력이 만화가의 장기죠. 언젠가 천국에서 술을 마시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을 떠넘기고 가버렀겠다!'라고 불평을 해주고 싶습니다. 전부 완수한 다음에요.
중년작가의 인터뷰가 굉장히 솔직담백하다
베르세르크 슈퍼 결과물과는 별개로 둘의 관계가 너무 멋짐... 친구의 인생과 꿈을 대신 살아가기로 한 친구 이런
인연이 정말 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인연이네 감탄 부러움 질투..
말도 안 되는 일을 떠넘기고 가버렸겠다! <<<< 이부분 존나슬프네....
감동 낭만
덕분에 잘보고가 고마워 두사람 우정 정말 멋있다 감동먹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