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대드 제작진의 버그스낵스


머나먼 스낵투스 섬에서 음식의 형상을 한 먹을 수 있는 생명체인 "버그스낵스"가 발견되었고


주인공이 그 진상을 쫓아 탐험하는 게임...



버그스낵스를 잡아 먹으면 이렇게 신체 일부가 먹은 음식으로 변형된다.




물론 반전이 있다.


버그스낵스는 기생충으로, 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버그스낵스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각자 하나씩 마음에 아픔을 품고 있고, 그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버그스낵스에 손을 대고 점점 중독되기 시작한다.


마치 날개사자를 떠받들며 점점 커지는 욕망에 사로잡혀 파멸해버린 사람들처럼.




욕망, 그것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서 온다. 이것은 그 사람의 약점이기도 하다.


던전밥에서 마르실은 파티원들에게 숨기고 있었지만, 장생종과 단생종의 수명 차이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언젠간 모두 자신을 두고 떠난 것이 두려웠다.


유익사자는 이 "약점"을 공략해 마르실을 조종한다.


유익사자의 이러한 면모는 라이오스를 상대할 때 잘 드러난다.


유익사자는 라이오스가 가지고 있던 인간 세상에 대한 불만이란 약점을 공략한다.


그 소원을 이뤄준다고 제안하여 미궁을 끝내려는 라이오스의 의지를 무릎꿇리려 한다.





리즈버트에 의하면 버그스낵스도 마찬가지이다.


무의식 속에 숨겨진 가장 큰 불만, 두려움... 심리적인 "약점" 이것을 포착해 사람들을 조종한다.


버그스낵스를 먹어라... 더 먹어라... 그리고 버그스낵스에 마음을 열어라...




"느낄 수 있어! 버그스낵스에는 자연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이 기회를 왜 놓칠 순 없지!"


그리고 버그스낵스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결국 몸이 버그스낵스가 되어 붕괴해버린다.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장면이다.




던전밥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마르실이 파린을 "요리하고, 잡아먹으면서" 역겨움을 느끼는 장면이다.


우리 인간은 생태계의 최정점에 선 존재. 나머지 짐승들은 음식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은 음식이 될 수 없다.


이 상식이 붕괴하며 인간은 역겨움을 느낀다.



마르실은 이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공포, 역겨움이라고 한다.


음식이 된다는 것은, 처참하게 갈기갈기 찢겨 죽는 것이니까.


그러나 모든 생명은 필멸하고 또 생명이 끝남으로써 다른 생명을 위한 영양분으로 환원되는 순환은 자연의 섭리.





마르실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로 결심한다.


옛 설화에 따르면 인간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흙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섭취한 음식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도 음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섭리 아닐까?


그래도... 역시 죽는건 무섭다. 존엄한 죽음이 아니라 누가 내 몸을 갈기갈기 찢는 죽음도 무섭다... 버그스낵스는 이를 이용해 심리적 공포를 끌어낸다.



어쩌면 노움 할배처럼 큰 가치를 두지 않고 신경을 끄는게 공포를 극복하는 방향일 수 도 있을 것이다.




던전밥은 라이오스가 욕망을 조종하는 악마인 유익사자를 쓰러트리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라이오스가 가진 천진난만함, 어린아이와 같은 변화무쌍한 욕망을 유익사자가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꿈꾼 최강의 마물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다가 어린아이가 할 법할 vs 놀이를 원했다. (유익사자 vs 내 최강의 마물)


유익사자에게 지자 결국 라이오스는 선을 넘는다...





와 이렇게 짱짱센 유익사자는 무슨 맛일까?


그렇게 유익사자는 라이오스에게 잡아먹혀 소멸된다.





물론 버그스낵스에서도 유익사자를 쓰러트린 라이오스처럼 욕망을 조종하는 악마를 이겨낸 사람이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주인공을 스낵투스 섬으로 초대한 리즈버트가 그렇다.



안타깝게도 버그스낵스는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다.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은 굶주림에 미쳐 날뛰는 버그스낵스 무리를 피해 섬에서 피신하는 것이었다.


버그스낵스를 일시적으로 통제하는 리즈버트가 자신을 희생하여 시간을 버는 사이에...




버그스낵스는 우리 도처에 널려있는 "음식"에 대한 인식을 살짝 뒤틀어 심리적인 공포를 형성한다.


음식은 "죽은" 것이다. 음식은 살아있지 않다.


진화학이 발견된 이래 생명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무언가"로 정의 되었다.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은, 국적에 따라 또 같은 국가라도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했다.


생명체가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하듯이...


음식은 명백히 살아있다.


그것은 인간의 식욕에 기생하여 번식한다.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잡아먹은 인간은, 다시 다음날이 되면 테이블에 음식을 차린다.


음식은 인간에게 맛있기 때문이다.



마치 새에게 먹음직스럽게 보인 다음, 잡아먹혀 그 안에서 번식하는 달팽이 기생충과 같은 행동패턴이다.


인간이 자의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음식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식욕을 이용해 인간을 재생산 기계로 활용하는 것이다.


인간이 음식을 한번 집어먹으면, 그걸로 게임은 끝이다.


음식이 주는 쾌감에 빠진 인간은 다음날 음식을 테이블 위에 "생산"하게 된다.


생명체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점점 다양해지고, 각자의 방향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진화의 법칙이다.


인간은 더 맛있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음식을 개량하고, 다양한 맛을 추구하며 음식을 진화시켜 나간다.



만화 던전밥에서 은연중에 강조하는 법칙이 있다면, 약육강식이다.


먹는 쪽은 강하고 먹히는 쪽은 약하다(그래서 라이오스가 유익사자를 먹어 이긴 것이다.)


버그스낵스는 이를 뒤틀어버린다. 항상 먹히는 음식이야 말로 인간보다 강한 것이다. 음식이 인간을 조종하는거니까.


자연의 섭리의 전도, 여기서 심리적 공포가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