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하면 일본도, 원피스하면 밀짚모자, 명탐정 코난하면 안경과 나비 넥타이란 식으로 캐릭터를 제외한 아이템 하나로 작품을 연상시키는 만화가 때때로 있다.

그러면 통나무하면...? 피안도라고 즉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을까?

피안도는 주간 영매거진에서 2002년부터 연재 중인 마츠모토 코지 씨의 호러 만화. 제목처럼 피안도를 무대로 주인공 미야모토 아키라와 아츠시 형제가 마스터 뱀파이어 미야비가 이끄는 흡혈귀 세력과 펼치는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2010년부터는 피안도 최후의 47일간이, 그리고 2014년부터는 무대를 본토 토쿄로 옮겨 피안도 48일후로 2024년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통나무는 인터넷에서 밈이 된 전장에 나설 때 유명한 대사 '다들 통나무는 잘 챙겼지!!'를 비롯해서, 한손으로 통나무를 휘두르거나, 붙잡거나, 트럭 앞에 뾰족하게 깎아 동여 매는 등 때때로 등장하는, 피안도를 상징하는 편리한 동시에 최강의 아이템이다.


통나무 말고도, 손글씨 폰트의 '하악 하악', 둥근 안경+마스크+파카 차림의 형 아츠시 등, 한눈에 피안도라고 알 수 있는 기호는 여럿 있다. 왜 이렇게도 독자적인 노선으로 캐릭터가 개성있을까? 그로테스크한 호러인 동시에 개그 만화라는 소리도 듣는 매우 희한한 세계관임에도 어떻게 20년 넘게 장기 연재를 하게 됐을까?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원래 그전 연재(쿠데타 클럽)가 끝났을 때 어시 중에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계속 좀비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의 작품을 그리고 싶었어요."라고 마츠모토 코지 씨는 피안도의 원점에 대해 밝혔다.

그러나 장대한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아니고 "장기연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0권 정도 낼 수 있으면 고마운 일이지"라는 생각이었다고.

1화부터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그림과 내용이었지만 사실 초기에는 별로 인기가 없었고 반응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피안도에 가서 형 아츠시가 나오기 시작한 무렵부터."였다고.

주인공의 형 아츠시는 본작의 최강 캐릭터로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둥근 안경+마스크+파카 차림도 특징적인데...


"별 생각 없이 그렸어요. 단행본으로 나온 최초의 작품 사오리에 살짝 나왔던 패션을 모처럼이니까 제대로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거의 그대로 등장시켰습니다. 형으로 설정한 것도 나한테 형이 있어서, 형이라는 존재를 그리기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상징 통나무에 대해서는 이런 경위를 밝혔다.


"모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시골섬이 어떤 느낌인지 알기 위해서 취재삼아 당시 편집자였던 두사람과 니지마에 갔습니다.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시골다운 아이템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걷던 차에 딱 좋은 느낌의 집이 있었어요. 거기에 통나무가 있었죠. 통나무는 도시에는 잘 없으니까, 별 생각없이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에 맞춰 또 우연히 그게 무기가 되었을 뿐입니다."


사실 피안도는 흡혈귀가 마을을 잠식하는 스티븐 킹의 공포의 별장에서 힌트를 얻은 부분도 있다고 한다. 근데 왜 '섬'으로 설정한 걸까? 폐쇄된 공간 설정은 다른 것도 많지 않았을까?


"섬을 무대로 삼은 이유는 떨어져 있다는 사실, 닫혀 있다는 사실을 가장 알기 쉬웠으니까. 숲속이나 산속처럼 여러가지 설정은 있었겠지만 통행이 막혀 있다거나 다리가 무너지는 것보다 배가 없으면 섬에서 나갈 수 없다는 게 가장 알기 쉽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작품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제목을 결정한 방식이다.


"별 생각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편집자랑 그럴듯한 흡혈귀 느낌이 나는 제목안을 나열하고 이게 괜찮은 거 같은데?하고 고른 것이 피안도입니다."


"다만 피안도인데 피안이 스토리랑 전혀 관련이 없는데?라는 말에 섬에 피안화가 피어 있는 설정으로 했습니다. 피안화 설정은 제목 때문에 억지로 정한 것입니다.(웃음)"


매번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들이 잘 맞물려서 어느새 20년 넘게 연재를 하게 된 굉장함.

그런데 주인공인 아키라는 어떻게 만들었졌을까?

"주인공도 다른 캐릭터도 나는 일단 등장시키고나서 생각합니다. 점토 세공을 하듯이 이게 부족하네, 이렇게 하고 싶은데,하고 만지작거리면서 조금씩 굳혀나가는 감각이죠."

"출발점은 그림도 설정도 아니고 내 경우에는 아마 그리고 싶은 감정입니다."

"주인공의 경우에는 형에 대한 컴플렉스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처음에 있었고 그걸 이야기의 설정에 어떻게 녹여낼지를 고민했죠. 반대로 오사카성에 꽂힌 통천각을 그리고 싶다는 식으로 장면이 먼저 머리에 떠오르고 거기서부터 이야기의 흐름을 고민하는 패턴도 있습니다."

떠오른 아이디어는 "적당하게 메모한다" 그러나 "개발새발이라서 시간이 지나고 다시보면 뭔 소린지 전혀 모를 때도 많아요(웃음)"라고 한다.

그런 감각으로 탄생한 것이 고급 양복+때때로 애교 가득한 말투로 말하는 최강의 흡혈귀 미야비 님이었다.

"나는 퀸을 정말 좋아해서 고등학생 때 자주 I’m Going Slightly Mad의 차림을 흉내낸 그림을 그렸어요. 흡혈귀 같다고 생각하고요. 그걸 떠올리고 1화에서 훨씬 흉폭한 느낌으로 어레인지해서 등장시켜본 거죠. 그게 어쩌다보니 각인이 되어서 그럼 보스로 설정해 볼까라는 느낌이었죠."

미야비 님은 적의 보스임에도 아키라에 대해서 '그 시절 그대로 고립되어버린 또 하나의 나처럼 보일 때가 있다'며 자신의 젊은 시절과 겹쳐보면서 애착을 보이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 캐릭터성에 대해서는 "딱히 아무 생각도 없다"고 즉답.

"다만 미야비 씨의 출발점은 인간이 싫다는 감정입니다. 인간이 싫다는 것은 아마 파고들면 인간이 좋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처음에는 진짜 아무 생각도 없었고 편집자랑 미팅을 하면서 미야비 씨는 어떤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지 질문을 받고서 열심히 고민해서 조금씩 틀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설정을 세세하게 짜지 않았기에 시청자를 우롱하는 수수께끼의 존재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또 아키라는 훗날 '스승님'의 수행을 거쳐서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게 된다. 거대한 몸에 무서운 가면이라는 임팩트와, 가면 아래는 중후한 꽃미남 아저씨라는 스승님 캐릭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스승의 비주얼은 일단은 다양한 일본의 가면을 보고 구상했습니다."

"당시의 스승하면 작고 머리가 좋은 스타워즈의 요다 같은 패턴이 많아서, 편집자도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은데 나는 그쪽이 아니라 크고 강력한, 야수 같은 남자로 그리고 싶었어요. 거대한 사람한테 아키라가 혼나는 게 훨씬 재밌을 거 같았어요."

"예를 들어 뭔가 작전이 있을 때 그걸 스승님이 말하는 것과 얼빠진 캐릭터가 말하는 거는 설득력이 다르죠."

"사실은 만화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생각한 계획이니까 내용은 똑같은데 가토가 말하면 왠지 읽으면서 실패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게 좀 재밌어서 어떤 말을 누가 하게 할까?라고 고민하게 되는 거죠. 스승님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납득할 수 있고, 성공을 하고, 오히려 정론이 실패를 하고 그런 식으로 캐릭터의 설득력을 이용해서 즐기는 측면은 있습니다."

"그런 결과를 독자가 총합적으로 재밌다고 느껴주신다면 고마운 일이죠."

참고로 마츠모토 본인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시시한 대답이지만 항상 그때 감정을 가장 강하게 그리는 캐릭터를 가장 좋아합니다. 몰입하고 있으니까."

"나한테 만화가 재밌는가 아닌가 여부는 내가 몰입할 수 있느냐가 거의 전부입니다. 내가 무언가에 몰입하는가, 직접 그려보지 않으면 몰라요."

"이걸 해보자. 이 캐릭터를 떨어트려보자. 인간의 성욕을 그려보자라는 식으로 일단 미래의 내가 몰입할 수 있을 법한 소재를 꺼내서, 물고 늘어져 보고 몰입하면 성공이란 식이죠. 따라서 그때마다 붙잡고 있는 캐릭터를 가장 좋아합니다. 지금은 아키라랑 코하루입니다."

호러? 개그? 그 진상은...

피안도는 시리어스한 장면도 그로테스크한 장면도 항상 하이텐션이라서 때때로 개그 만화처럼 보일 때도 있다. 어디까지 노리고 그린 것인지 물어봤는데...

"하나도 안 노렸어요. 최근에 트위터로 독자들 감상을 찾아볼 수 있게 됐는데 다들 내 만화를 이렇게 봤구나 하고 깨달은 게 잔뜩 있었습니다. 나는 오랜 세월 연재했으니까 기왕 그릴 거라면 장면도 감정도 과장하는 편이 재밌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냄새나!하고 괴로워하는 장면이 있다면 진짜로 지독하게 냄새나는 편이 재밌죠. 과장을 하는 편이 본적 없는 장면이 되는 거예요. 만화가 입장에서는 아직 아무도 본적이 없는 걸 그리고 싶으니까요."

"다만 여러가지를 과장하다보니 문뜩 이거 냉정하게 보면 진짜 얼빠진 내용이네 하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나는 외부에 드러낼 생각은 없고, 혼자서, 나만의 즐거움으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사람의 몸보다 큰 가슴에 주인공이 안겨서 정신없이 모유를 먹는 장면이 주인공의 위기로 성립하는 작품을 나는 본적이 없는데다가 너무 재밌기까지 한 걸요. 그리면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봐도 최고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걸 누군가한테 전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나만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설마 독자도 똑같이 메타적인 즐거움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독자에 따라서는 개그 만화로 보이는 것도 20년 넘게 장기연재를 하면서 항상 '본적이 없는 작품'을 추구하며 계속 과장했기 때문. 즉 계속 재밌어지고,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