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만화책을 가져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내 다니던 학교에서는 그 녀석들을 만화보부상 등으로 칭했다. 당시 사회수업의 영향이었다.
초등학교 때야 '오타쿠'라는 말은 기껏해야 먼나라이웃나라-일본편에서나 접하는 낯선 단어였고
독서시간에 독서실에 가서 한시간 시간때우다 오는 시간에는 아이들 대다수가 땡땡의 모험이나 아스테릭스와 같은 만화를 탐독했으니 만화를 읽는다고 불이익 당하던 일은 딱히 있지 않았다.
만화보부상들은 평소에는 그저 그런 녀석들이다가도 인기있는 만화를 들고 오면 일시적인 갑질을 할 수 있었고 그날 하루 가치가 솟았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이를 자처해서 하곤 하였다. (본인도 보물찾기 시리즈를 몇권씩 들고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때는 살아남기, 보물찾기, 메이플스토리, 딱좋아 시리즈 등의 비싼 양산형 교육만화류의 만화보부상들이 많았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국산만화를 넘어선 아이들은 일본만화들을 들고 오곤 했다.
선생님께 들키면 압수라는 커다란 위험요소가 있지만 인생에서 가장 생각없고 야만적이며 원시적인 중학교 시절, 당장의 위치가 급급한 몇몇 아이들은 여전히 만화보부상을 자처하며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아이들에게 만화를 빌려주곤 한 것이다.
(중학교 근처에는 서비스정신이 글러먹은 대여점이 하나있었는데 어쩌다가 빼앗기면 책값의 10배를 물어내라는 미친 억지에 멍청한 중학생들은 어버버거릴 수 밖에 없었고 몇놈이 쓴맛을 보자 보부상들은 눈물을 삼키며 만화를 한권한권 사서 가져왔다.)
나 역시 보부상들에게 신세를 많이 졌는데 당시 연재중이던 나루토와 바쿠만, 혹은 완결된 고스트바둑왕이나 데스노트 같은 주로 소년점프에서 연재되던 작품들을 읽은 것도 그 즈음이다.
적어도 만화셔틀의 가치가 있는 그들은 일진들의 애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박해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고 그렇게 그들은 만화책 몇권으로 씹덕질의 면죄부를 얻었다.
그러던 어느날, 바쿠만과 데스노트의 보부상짓거리로 메이져 보부상 위치에 있던 한 녀석이 새로운 만화책을 가져왔다. 보통 5,6권 정도를 들고 오는 것이 보통인데 이녀석은 그날 따로 봉투에 12권을 가져왔다. 그 모습은 실로 보따리장사꾼, 보부상과도 같았다.
가져온 책은.. 페어리 테일이었다.
가져오는 족족 히트를 쳤던 프로 보부상의 선구안은 신뢰를 받기 마련이었고 만력 0의 중딩들은 순서를 지켜 페어리 테일을 돌려보았다.
근데 이상한 것이다. 만화가 존나 야한 것이다. 가슴도 나오고 팬티도 나오고 찌찌 만지고 막 그런 것이다.
히토미도 없던 시절 망가나 야애니로 딸은 안치던 당시의 일반인 중학생들에게 그것은 뭐랄까 존나 신선하면서도 불쾌한, "씹덕"의 향기라는 것을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4권쯤을 보고 있을 때, 내 몇차례 앞서서 읽고 있던 힘 좀 센 일진 한 명이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너 오타쿠지?"
그것을 시작으로 만화보부상들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너 오타쿠지?"라는 말한마디에 심심하던 아이들은 보부상 사찰에 들어갔고 그의 PMP와 전자사전에서 야릇한 냄새의 미소녀 일러스트와 일본노래들을 발견하고는
복도에서 일본노래를 스피커로 틀어놓고 화면에는 슬라이드로 일러스트가 넘어가게 하여 그를 사회적으로 처참하게 매장시킨 것이다.
그와 동시에 다른 보부상들에게도 불똥이 튀었고 매우 빠른 속도로 덕질의 면죄부, 그리고 보부상 문화는 학교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페어리 테일, 한 아이의 야망을 무참하게도 망가뜨린 그 만화를 나는 그때 이후로 보지 않고 있다. 볼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 보부상 친구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듣기로는 고려대에 갔다고 하던데.
페어리 테일, 하면 떠오르는 어린 날의 추억이다.
밑에 글 보고 생각나서 몇년전에 만갤에 썼던 글 올려봄
난 아직도 페테를 보지 않고 있음
마시마 히로가 잘못했네
나 학교 때는 딸기100% 돌려봐도 아무 문제 없었는데 흠
에? 그건 좀
우리땐 가져오면용자였는대
매우 슬픈 글이네요
일찐쉑 편협하노 나는 pmp로 페스나 보면 같이 봤는데 - dc App
학교라는 정글에서 약점을 내보이다니 보부상이 약했던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