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실지 모르겠지만 일본에는 TL이라는 장르가 있는데, 틴즈러브라면서 꾸금만화인 이상한 장르임

근데 장르문법을 이해하면 저런 이름의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원래 읽는 사람도 내용물 수위도 미자 대상이었던 소녀만화에서 플롯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수위만 올린 거라 '어른의 만화는 아니다'라는 뉘앙스를 담아서 만들어진 장르명이기 때문임

물론 지금은 도쿄도조례 때문에 대학으로 바꾸거나 아님 영애물 영향받아서 아예 나이에 따른 사회적 역할이 덜 와닿는 이세계물로 비트는 게 트렌드인데, 암튼 꾸금 만화면서 애들 만화 플롯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는 게 핵심임

원래 '어른의 만화'라는 건 수위 같은 사소한 걸 넘어서 소재, 플롯, 감정선 등등 만화 전체가 아이들의 것과는 구별되는 '어른의 감성'을 추구하는 걸 말했고, 80년대까진 아이의 영역과 어른의 영역이 명확히 구별이 됐는데, 21세기 들어서는 아이의 영역에 있던 어른들이 어른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고 아이의 영역의 미디어를 그대로 소비하고 있음을 TL의 등장이 방증하는 거

근데 최근 논란된 이 만화만 봐도 알겠지만 한국은 애들 만화 플롯을 차용을 해도 어른 캐릭터에게는 '어른의 책임'을 강조해서, 어른 캐릭터가 애같이 행동하면 댓글 폭격 당하고, 작가는 원하든 원치 않든 그걸 의식할 수밖에 없거든? 결국 저 만화도 어른의 책임을 선택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한국은 만화나 팬덤이나 이렇게 어른과 아이를 명확하게 구별하고, '어른이 됐으면 어른다워져야지'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강함

이게 근본적인 차이라고 봄

한국에도 미자들 나오는 청춘물은 물론 있지만 걔네는 타깃 독자도 같은 나이대의 애들로 잡거든? 미국 쪽은 아는 게 잘 없지만 하이스쿨 뮤지컬 같은 건 타깃 시청자 애들로 잡은 거 확실하고

근데 일본은 애들과 어른들이 같은 청춘물을 소비함
자기가 아이일 때 보던 곳과 똑같은 영역에서 세부적인 트렌드만 바꿔가면서 소비하고 있는 거

뭐 거기다가 '일본인은 정신이 미숙해서 그렇다' 같은 식의 정신분석을 내놓는 건 옛날옛적 '소녀들이 야오이를 보는 건 남녀의 사랑을 두려워해서' 같은 고리타분한 평론이나 다름없고... 전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걸 좋아하고 즐기고 싶어하는 일종의 관성으로 봄

돌 위에서 삼 년이라고... 그냥 나를 둘러싼 나의 행복하고 완전무결한 세계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

위 만화가 대놓고 그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과 매정하게도 변해가는 세상의 야속함을 다루고 있음